“첫째면 어떻고 꼴찌면 어떻습니까, 다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데...”(마태 20:1-16)
이기찬(이삭) 신부 / 정읍교회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조용한 일’이란 제목으로 쓰인 김사인님의 시입니다. 짧은 시여서 금방 읽히지만 제게 있어 잔향은 오래 남습니다. 저는 삼 형제 중 삼남三男으로 서울 부모님 댁에서 멀리 떨어져서 사제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에, 1년에 두 차례 정도 찾아뵈면서 지냅니다. 교회에서나 이웃 어르신들이 부모님이란 생각으로 지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삶 중에 한 주 전 형에게서 급한 전화를 받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외상(넘어지심)으로 인한 뇌출혈(경막하 출혈)로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수술한다는 내용입니다. 80세 고령이시지만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동의하게 됐고 다행히 일단 경과는 좋음에도 자녀 입장에서 안타깝게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했을 때 편찮은 몸 상태가 자녀들에게 폐 끼친다는 생각으로 건강 상태를 미리 알리지 않으셨기에, 오히려 수술 시기와 건강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의 모습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러한 정서는 또다시 묘하게 자녀들에게 대물림되기도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고 인정하고 알릴 수 있어야, 서로의 수고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에서 아픔과 한恨을 최대한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뇌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허공을 바라보시듯 누워 계신 아버지는 다행히 제 음성과 얼굴을 알아보는 눈빛이었고, 손을 쥐시라는 주문에 약하게나마 쥐시기도 하셨는데, 흔한 일상이었던 서로 마주하지 않아도 알아보기, 말하기(부모 자식 간 잔소리), 작은 손짓마저도, 이젠 크게 바라는 기도 제목이 됐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섬망 증세로 돌봄이 힘들게 될지라도,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귀합니다. 늦은 밤 쉬셔야 하는 시간임을 알려드리고 귀가한다는 말에, 힘드신 중에도 팔을 최대한 드시고 여러 번 흔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눈빛만으로도 안전히 귀가하라는 사랑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최근 아버지 외에도 정읍 교인이신 박효심 아가타 사모님의 접질린 발목이 나아지시는 중에, 윤영숙 엘리사벳님의 양쪽 발목이 접질리는 사고로 수술까지 하게 된 소식과, 오늘은 초평교회 축성기념일이기도 한데 이젠 고인이 되신 김종구 나자로 회장님의 지난 2월 갑작스런 별세 소식 충격에 이어, 지난주 중 김재복 데레사 어머님의 별세 소식으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불현듯 힘들게 뇌수술 받으셨던 이성대 리차드 신부님 건강은 어떠신지... 이외에도 환절기 원로님들 건강과 계속되는 코로나 감염 소식은, 청명한 가을 날씨임에도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에 가을철 낙엽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저 이 순간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의 낙엽이 자라고 떨어질 동안 하느님과 이웃사랑, 부모님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았는지, 불평불만 이유를 외부에서만 찾은 건 아닌지 오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기후 위기’임에도 생태계 모든 미생물 동식물들은 생성 소멸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합니다. 우린 이른 아침부터 일하기도 하고,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다섯 시, 날이 저물 때까지, 이젠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잘 때에도 밤낮으로 일하시면서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우리의 삶이 서로의 수고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느님은 모두에게 똑같이 하루 한 데나리온이라는 품삯을 약속하십니다. ‘한 데나리온’의 삯은 하늘나라를 위해 일한 삯으로써 영원한 생명 아닐까요? ‘하루’라고 하는 ‘한세상’에서의 ‘한 생명’이기에 헛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 한세상을 물질로만 의식하고 이에 휘둘려 산다면 나눔과 섬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마저 돈의 많고 적음으로 따지게 되고 이에 따라 시기, 질투, 자기중심적 사고와 판단, 권력과 명예욕, 갈등과 싸움으로 원수가 될 가능성은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딱 한 번의 귀중한 생명임을 알고 부활 소망을 갖는다면 소소한 일상도 큰 기쁨임을 알게 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집트 노예에서 벗어나게 해준 모세와 아론에게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차라리 노예의 삶이 낫다고 투덜거린 이들의 모습과(출애 16:2-15),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며 자기중심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하느님에게까지 투덜거리며 대드는 요나의 모습이(요나 3:10-4:11) 나에게는 없는지 돌아보게 되고, 투덜거릴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마저 은혜임을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