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당에서 보현사 지나 대도극장 앞 단팥죽점방 지나 남문시장의 사탕가게 지나 닷새 만에 열리는 우시장 지나 물비누 팔던 비누공장 지나 도랑의 작은 다리를 지나 청포도 열리는 포도나무집이 있었다
앞길에는 심인당 신도들로 붐볐고 샘물 길으러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남산동 587번지였다
도랑은 복개도로로 포장되고 우전은 차량 부품 거리가 되고 인쇄하는 집들로 골목은 확장되어 가고
도로명 주소로 개명되었어도 노쇠한 채로 남은 남문시장은 쫓아낸 파리로 붐벼도
ㅡ 안윤하 시집『니,누고?』중에서
만물은 계속 변화한다. 변화는 실존을 인식하게 하며 의식 작용은 이를 한층 더 변주한다. 성장과 노화의 몸을 가졌음에도 사람들은 고정불변으로 여겨지는 대상 사물을 '절대'라고 여기기 쉽다. 잠깐 사이에 바뀐 물상物象을 바라보며 주관적인 경험과 의미 부여로 재해석할 여지를 내어주기도 하는데 시가 이러하다. 변화가 가져오는 아련한, 그리움과 아쉬움은 인간 근원의 감정이다. 모체로부터 분리되면서 대상과 주체의 변화와 구분을 실감하면서 완전한 소멸에 대한 불안감도 가지게 된다. 반월당半月堂은 대구광역시에 있는 지명이다. 도시철도 1, 2호선이 교차하는 대구의 주요 교통의 요지다. 아미산 끝자락에서 화재로 소실된 대도극장과 몇몇 남지 않은 헌책방거리, 재건축이 진행 중인 남문시장 등 반월당에서 남문시장까지의 약 500미터의 거리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도 변해갈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역설의 질문으로 남는 '테세우스의 배'가 떠오른다. 건물과 지명이 바뀌고 사라지는 대상의 원래 요소가 교체되어도 반월당은 잔존과 기억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시간력에 대해 대체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이지만 반월당은 대상 존속감이 오히려 커진 채로 동일시점을 유지할 것이다. 변형(transforms)은 사물의 근본 속성이다. 반월당의 변하는 모습에 실존을 지각하며 변화도 삶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된다. 반월당에 위치하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환승역인 지하철역은 시인의 작품처럼 변화의 상징이 된다. 변화라는 물질의 외형적 바뀜에서 시인이 읊은 체험의 미학을 읽어본다. (박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