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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0. 4. 9.~10.(목,금) - 음력(3. 17.~18.), 일몰 19:01, 일출 06:06
●산행지: 금강정맥 2구간(함라산-장계산 )
●산행코스: 함라파출소-함라재-함라산 소방봉(봉화산)-칠목재-178m봉-공동묘지-수레재-흥법저수지갈림길-동봉-망해산-취성산-부곡재(거점재)-용천산-미산재-창안마을-대명산-망경산-다리실재-고봉산-에젯고개-지장암 안부-144.6봉-통사동고개-대야면소재지-팔각정-한들고(옥구중)-만자교건널목-용화산-칠거리고개-청암산-119봉-내류마을(옥류정)-칠다리(금성리)-한림마을-백석교회-돚대산-21번국도, 옥정/굴다리-은파교회-아리랑고개-부곡사거리-생태육교-석치산-청소년수련원-점방산-장계산-군산도선장
●먹거리: 생수1,000cc, 찰떡2, 약밥1, 팥빵1, 초코파이1, 몽쉘2, 딸기샌드2, 사탕30, 게비스콘2, 미니아몬드자유시간5
●준비물: 외투1, 조끼1, 충전지, 연결선, 스틱, 헤드랜턴1, 구급약, 경광점멸등, 손수건, 버프, 머리띠, 귀마개, 수면용안대, 반장갑, 휴지, 물티슈, 부직반창고, 우의, 예비양말1, 옷1, 팔토시, 무릎보호대, 마스크, 침낭, 매트리스, 배게, 은박매트
●거리: 약 56km
●소요시간: 28.47h
●누구랑: 나홀로
●경비: 하행KTX32,000, 아침7,000, 버스3,000, 저녁11,000, 아침4,400, 칠다리슈퍼5,200, 월명호수 윌음료2.800, 상행고속20,100, 바나나우유1,500
●날씨: 2~16도
●산행경과:
- 09:54 : 함라파출소
- 10:14~10:33 : 함라재/웅포재
- 10:25 : 함라산 (240.5m)
- 10:47 : 소방봉, 봉화산 (236.3m, 정자, 초소)
- 11:31 : 칠목재
- 12:43 : 삼면봉
- 12:55 : 수레재
- 13:41 : 망해산 동봉 (팔각정)
- 13:51 : 망해산 (230m, 의자)
- 14:44 : 취성산 (219m, 초소)
- 15:09 : 거점재/부곡재
- 15:21 : 용천산 (135.8m)
- 15:47 : 미산재
- 16:07 : 창안마을 정류장
- 16:30 : 대명산 (128.5m)
- 16:36 : 창암재
- 16:50 : 망경산 (129m)
- 17:05 : 다리실재
- 17:24 : 고봉산 (149m, 초소, 컨테이너)
- 17:53 : 144.6봉
- 18:19 : 철봉재
- 18:37 : 통사동고개(번영로)
- 18:51 : 한들고, 옥구중
- 19:00~05:20 : 식사 및 휴식
- 05:54 : 지경교
- 06:39 : 용화산 (103.8m, 초소)
- 06:55 : 칠거리재
- 08:07 : 청암산 (118.8m, 누각정자, 초소)
- 09:07 : 칠다리
- 09:35 : 백석교회
- 09:50 : 돛대산 (91m)
- 10:18 : 옥정/굴다리
- 10:53 : 은파교회
- 11:15 : 부곡사거리
- 11:58 : 생태육교
- 12:30 : 월명호수가 (화장실)
- 12:49 : 석치산 (98m, 통신탑)
- 12:55 : 청소년수련원 (화장실)
- 13:03~13:26 : 점방산삼거리
- 13:11 : 점방산 (135.5m, 전망대)
- 13:37 : 장계산 (108.3m, 초소)
- 14:50 : 군산도선장 (화장실)
- 15:22~15:33 : 군산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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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상 운장산(주줄산) 줄기 조약봉에서 분기하여 다시 싸리봉에서 금남기맥을 내어놓고, 완주군을 휘돌아 여산 천호산과 익산 미륵산을 걸쳐 군산 장계산 이르는 금강정맥을 2구간으로 졸업하였습니다. 2구간은 익산역 중앙통에서 함라초교로 가, 중간 대야면 지경리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월명공원을 여유있게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해망포구 수산물시장도 구경하였습니다.
미륵산을 내려와 함라까지 평지를 걸으며 여기도 분명 금강과 만경강의 경계가 되건만 정맥과 물길이 사이좋게 함께갑니다. 물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을 끌어쓴 이유는, 좌우가 경계가 없는 농토이다 보니 논농사 위주로 인위적인 물길(수로)이 놓여졌다는 것입니다. 수로가 놓인건 언제부터인지 알길이 없고요. 미륵산 이후로 230m 망해산이 최고봉이지만 산진처가 곧 금강의 입해처 장계산에서 서천의 중대산과 마주합니다.
금강정맥은 단맥은 있으되 지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산경표 당시 보잘것 없는 군산이 고도 부여에 금남정맥을 양보했습니다만 서해안시대를 맞아 새만금과 선유도를 잇는 다리로 재도약의 기회에 있습니다.
아래 구간은 금강정맥이 백두대간의 노치와 마찬가지로 평지를 걷는 곳입니다.
* 상마사거리~함라초
* 지경교~용화리
* 옥류정~칠다리~백석마을
이름 또한 신 산경표 금강정맥 외에 대동금남정맥, 금남기맥, 금만정맥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습니다. 금남정맥, 금북정맥, 호서정맥, 금강정맥, 금북기맥, 금남기맥, 금만정맥의 호칭은 다를지라도 산이 있고 길이 있으니 산꾼은 그 길을 충분히 이해하고 다니는게 도리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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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정맥: 378.2km (영취산~망덕포구)
* 금강정맥: 131.5km(조약봉~장계산)
* 금남기맥: 107.6km(싸리봉~구드레)
* 조약봉~싸리봉 22.2km
* 금만(싸리)봉~장계산 109.3km
- 함라파출소~다리실재 21.3km
-. 함라파출소~칠목재 6.5km
-. 함라파출소~수레재 9.8km
-. 칠목재~수레재 3.3km
- 수레재~칠거리고개 21.7km
-. 수레재~다리실재 12km
-. 칠목재~미산재 11.9km
- 다리실재~부곡사거리 23.1km
-. 다리실재~칠다리 16.1km
-. 다리실재~용화산 9.7km
-. 용화산~칠다리 6.4km
- 칠거리고개~군산도선장 21km
- 칠다리~군산도선장 14.6km
-. 칠다리~부곡사거리 7.05km
-. 부곡사거리~군산도선장 7.5km
* 사전정보(식수 보충지)
- 함라산: 0.6km
- 칠목재: 휴게소, 한우촌
- 다리실재: 거시기삼계탕
- 대야면 지경리: 식당, 편의점
- 칠다리: 슈퍼
- 은파교회: 식당가
- 부곡사거리: 도심
- 점방산: 0.4km
- 장계산: 금강슈퍼, 평화슈퍼, 공원매점
* 서울에서 함라파출소가는 길:
- 용산역~익산역: 06:30, 1.26h, 28,800
- 서울(센트럴)~익산고속버스: 2.40h, 13,500
- 남부터미널~익산시외터미널:
- 익산시내버스터미널~함라: 1h
- 익산역~함라: 34,36,37,38번, 0.55h
* 서울 오는 길
- 군산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 매시간 16:30~19:30, 막차19:10, 20,900
- 군산고속버스터미널~센트럴시티: 16:00, 2.40h, 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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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群山市)
지금의 군산시는 옛 옥구현과 옛 임피현이 합해 이루어진 곳으로 금강 하구의 군산진(郡山鎭)과 군산창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이다. 옥구현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막로국(莫盧國)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마서량현(馬西良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에 옥구현으로 개칭되었다. 왜구의 창궐이 극심하던 1383년(고려 우왕 6)에 군산창이 위치한 진포(鎭浦)에서 최무선 등이 왜선 500여 척을 불태운 진포대첩의 승리를 거두는 등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1487년(성종 18)에 군산진(群山鎭) 옆에 조창인 군산창이 설치되어 전주 등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하는 전라도 조운(漕運)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별호는 옥산(玉山)이었다. 우리나라 서해에서 가장 많은 유인도를 가진 군산은 금강 하구 좌안(左岸)에 있다. 북쪽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충청남도 서천군, 남쪽은 만경강을 경계로 김제시와 접하고, 서쪽은 황해(黃海)에 면한다. 금강 하구와 만경강 하구로 둘러싸인 옥구반도와 서해의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군산은 금강의 하구에 자리잡은 중소도시로, 항구도시이며 대규모 공단을 보유한 공업도시이다.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63개의 섬과 그 섬에서 살고 있는 섬사람을 시민으로 삼고 있다. 1899년 개항한 군산은 그 이전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고려 최무선이 화약을 가지고 왜구를 크게 무찌른 곳이다. 군산의 예전 이름이 진포(鎭浦)이며 지리적으로 금강하구에 위치하여 전략적인 곳이다. 그래서 육군과 수군이 공동으로 주둔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 역할을 했다. 군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고군산군도’를 옛날에는 ‘군산도’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나 지금은 그 명칭을 현재의 군산시에 넘겨주고 옛(古) 군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군산군도는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 10개의 유인도와 20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섬들이다. 바다 위에 무리지어 있는 섬들이라는 고군산군도에 산이 무리 지어 있다는 뜻의 군산(群山)으로 된 것이다. 즉 군산은 ‘산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라는 섬들의 모습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군산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근대문화 도시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왜구가 자주 침탈했던 곳이다. 부족한 일본의 쌀을 보충하려고 자기네 나라로 실어갔던 역사적 아픔이 군산에 서려 있다. 개경과 한양으로 실어 나르는 세곡선이 호남과 충남 지방의 기름진 평야에서 나오는 식량을 금강 하구인 군산에서 출발하기도 한 곳이어서 늘 왜구의 표적이 되었다. 근대에 넘어와서 동학혁명의 좌절과 갑오개혁을 통해서 일본은 실질적인 조선의 경제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1899년 5월 1일에 개항된 항구도시다. 군산은 개항된 다른 항구와는 다르게 오직 쌀 수송에 매달리는 일본인들의 경제적 중심지였다. 일본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군산을 쌀 공급 수탈기지로서 개항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듯 조그마한 군산항은 대륙침략의 구실로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뱃고동소리가 쉬지 않고 울어댔다. 군산 내항에 위치한 구 군산세관 건물은 100년 전에(1908년 6월) 독일인이 설계하고, 유럽풍으로 지어졌다. 군산항 개항의 부잔교도 수탈의 상징이다. 바닷물의 간만의 차이가 심한 이곳에 커다란 화물선들이 부두에 정박하면, 배의 높이와 맞지 않기 때문에 수위에 따라 높이가 자동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부잔교 3기를 설치하여 3천 톤급 화물선 3척이 댈 수 있었다고 한다. ‘쌀의 항구’답게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데도 불구하고 일명 ‘뜬다리 부두’라고 하는 부잔교는 밀물과 썰물에도 화물 작업이 가능했다. 항구 뒤에는 철도가 연결되어 화물을 수송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철로선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이 내항에서 1934년에 200만석의 쌀이 실려 갔다. 이런 수탈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조정래의 ‘아리랑’과 채만식의 ‘탁류’의 소설을 통해 잘 묘사되었다. 그 당시 군산의 인구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비율이 6:4 정도나 될 정도로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군산 내항 중심에서 조선인은 밀려나고, 좋은 자리는 대부분 일본인이 차지했다. 신작로를 따라서 3층의 백화점과 2층의 주택과 상가들이 즐비하여 자전거와 자동차가 종종 다니는 쌀의 항구였다. 이처럼 군산은 구한말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가 얼룩진 곳이다.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1896년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일본과의 수호조약 체결 후 1899년에 군산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개항장과 옥구감리서가 설치되어 옥구부로 승격되었다. 이때부터 인천·부산·마산·목포 등과 함께 항구도시로 급속히 성장했다. 1912년 호남선이 개통되고, 이어 이리로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전라도 평야지역의 농산물이 반출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는 옥구군에서 분리되어 군산부로 승격되었고, 1949년 군산시로 승격했다. 한때 위축되었던 항만기능이 1989년 군산 외항의 건설로 회복되었고, 전주-군산 간 도시권 개발로 전라북도 제1의 상공업도시로 새롭게 발돋움하고 있다. 1989년에는 옥구군 미성읍 일원과 옥도면 일부가 군산시로 편입되어 시역이 확장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옥구군과 군산시가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새로운 군산시가 되었다. 2004년 미개발 지역이었던 수송동과 미장동 일대에 택지개발사업이 착수되어 2007년 수송지구가 준공되었고, 미성지구는 201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새만금 사업은 이제 군산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서울 면적 3분의 2에 해당하는 거대한 땅이 새로 생겨나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토가 확장된 것이다. 이제 군산은 새만금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미래도시의 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다. 현재는 군장공업단지와 새만금 관광단지를 개발하고 군산 신외항을 건설하여 서해안 시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신시도와 선유도를 잇는 단등대교는 군산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하여 눈부신 발전과 도약을 보게 될 것이다.
* 임피현(臨陂縣)
삼국시대에 백제의 시산군 또는 피산·소도·흔문·실오였다.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임피군으로 개칭되었고, 옥구현·회미현·함열현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임피현으로 강등되었으나, 회미현·함열현·옥구현·만경현을 속현으로 병합하고 있었던 큰 고장이었다. 북쪽으로 금강, 남쪽으로 만경강 하류를 경계로 했던 임피현에는 고려시대에 12개 조창의 하나인 진성창이 있었던 전라도 조운의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도 임피현이었으며, 별호는 취성·임영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임피군, 1896년에 전라북도 임피군이 되었다. 그러나 1914년 군면 폐합 때 임피군이 폐지되고, 남일면·내면이 임피면으로, 동이면·동일면이 서수면으로, 남사면·남삼면·남이면이 대야면으로, 서사면·서삼면이 개정면으로, 북일면·상북면이 성산면으로, 하북면·북삼면이 나포면으로 폐합되어 옥구군에 병합되었다.
* 옥구군(沃溝郡)
옛 옥구현은 이 지역의 서남부, 옛 임피현은 동북부에 해당한다. 옛 옥구현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막로국(莫盧國)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마서량현(馬西良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옥구현으로 개칭해 임피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임피군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조선에 들어 1397년(태조 5)에 진(鎭)을 설치하고, 1403년(태종 3)에는 회미현(澮尾縣)을 병합했으며, 뒤에 현감을 파견함으로써 조선시대 동안 옥구현을 유지했다. 1487년(성종 18)에 군산진(群山鎭) 옆에 조창인 군산창이 설치되어 전주 등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하는 전라도 조운(漕運)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옥구의 별호는 옥산(玉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옥구군, 1896년에 전라북도 옥구군이 되었다. 일본과의 수호조약 체결 후 1899년에 군산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개항장과 옥구감리서가 설치되어 옥구부로 승격되었다. 1912년에 이리-군산간 군산선이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의 전구간이 개통되어, 이 지역은 내륙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개항장을 중심으로 급속히 도시로 발달한 지역이 군산부로 승격되어 옥구군에서 분리되고, 반면에 임피군이 옥구군에 합병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군산부의 정면·서면이 구읍면으로, 동면·박면이 옥산면으로, 장면·풍면이 회현면으로, 군산부의 북면, 충청남도 오천군 하남면, 전라남도 지도군 고군산면이 미면으로 통합되었다. 임피군은 폐지되고 임피군의 13개면이 6개면으로 통합되어 옥구군에 편입되었다. 1910∼30년에 지금의 옥서면 일대에 간척사업이 실시되어 넓은 지역에 농경지와 간척촌이 형성되었다. 1931년에 구읍면이 옥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80년에 옥구면이 옥구읍으로, 미면이 미성읍으로 승격되고, 1986년에 미성읍이 관할하던 도서지역이 옥도면으로 분리되었다. 1989년에 미성읍과 옥도면 일부가 군산시에 편입되고, 옥구읍 서부출장소가 옥서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군산시와 옥구군이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새로운 형태의 군산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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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사거리~함라~봉화산(함라산 소방봉)~칠목재~180.4봉~철탑~수레재
수레재~망해산동봉(팔각정)~망해산~190m~취성산~거점재(부곡재)~용천산(알바)~우곡2교~대명산~망경산~철탑(깊은 알바)~다리실재(육교)~고봉산~애잿고개~128봉~144.6봉~26번(통사리고개)~육각정~지경삼거리~용화산
용화산-칠거리재~청암산~금성산(왕복)~칠다리~은파유원지(미제저수지)~월명공원(설림산,석치산,장계산)~군산도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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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직전의 봉우리입니다. 여기서 금강의 전망이 트이는데 우측으로 웅포대교가 보입니다.
이번엔 정상 직전 봉우리에서 저번구간 미륵산을 바라보았습니다.
폐헬기장인지 암튼 정상찍고 출발합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없습니다.
♤ 함라산 (240.5m)
전북 익산시의 함라면 함열리와 웅포면 웅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함라산은 해발 240.5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산간부의 700m의 높이에 해당한다. 이 부근의 산이 없어 지역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함라의 진산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으며, 가족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조망이 훌륭하여 서쪽은 비단결처럼 굽이쳐 흐르는 금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은 함열의 드넓은 들녘이 조망된다. 북쪽 산기슭에는 약 657년 경에 세워진 유서 깊은 천년고찰 숭림사가 있다. 함라산은 함라면(咸羅)의 지명에서 취한 이름이다. 함라는 함열(咸悅)의 별호이며, 함열군의 치소(治所)인 읍내가 지금의 함라면 함열리였기에 함라면의 얻은 명칭이다. 함라산의 물줄기는 모두 금강으로 합수되어 서해로 흐르며, 동쪽의 물줄기는 합열천을 통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다만 남쪽의 웅포재 부근 고스락의 정맥에서는 좌측으로 만경강, 우측으로 금강의 분수령이 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읍내였으므로 군내면(郡內, 顯內)이라 하였다. 함열면은 본래 함열 군청이 있었으며, 1979년에 함열읍으로 승격되면서 익산군청이 이전하였다. 1995년에 익산군과 이리시가 ‘익산시’로 통합되어 군청이 익산시 함열출장소로 변하여 8개 면을 관장하고 있다.
함라파출소에서 삼부잣집 돌담을 따라 겟세메네기도원으로 올라오니 웅포재입니다. 배낭을 놓아두고 정상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 함라재/ 웅포재
함라재는 금강변의 웅포(곰개)와 평야지대인 함라를 잇는 가장 짧은 산마루 고갯길이다. 예전부터 이 길로 많은 사람과 물건이 넘나들었고 이 길에는 짐꾼들이 금강을 따라 웅포항(곰개나루)에 들어온 진귀한 상품과 풍성한 농수산물을 보따리와 지게에 실어 함라로 나른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재 아래에는 금광이 있었고, 숲이 울창하여 호랑이에게 봉변을 당했다던 이야기와 3부잣집을 드나들던 과객들의 사연, 함라로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의 추억 등 수많은 사연과 전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과 웅포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익산지역의 명산인 천호산, 용화산, 미륵산보다는 높지 않으나 전망은 훨씬 좋습니다.
장수군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군산 하구뚝까지 401km,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긴 금강이 시원하게 조망됩니다. 정상에서 웅포(熊浦:곰개나루)나루 전경이 환히 보이네요.
♤ 함라산 소방봉(236m) 봉수대/ 봉화산(烽火山)
함라산의 서쪽에 있는 소방봉(所方峰)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익산시 함라면 신대리 산61번지에 있으며 봉수는 고려중엽에 설치되어 1894년(고종)때 폐지된 통신수단으로 봉(熢)은 밤에 횃불로, 수(燧)는 낮에 연기로 알리어 봉수라고 하며 봉화라고도 한다. 평상시에는 1홰, 적이 나타나면 2홰, 해안에 가까이 오면 3홰, 적선과 접전은 4홰, 육지에 침입 5홰 하였으며 싸리나무, 섶나무, 쇠똥과 말똥을 태워 사용하였다. 소방봉 봉수대는 제5직봉(여수~서울 목멱산)에 속해 있으며 "서쪽으로 임피현 오성산 봉수에 응하고, 동쪽으로는 용안현 광두원산 봉수와 응한다." 라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고, 함열읍지에는 봉수꾼 75명이 배치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터만 남아있다.
능선을 고집하려 신축 주택으로 올라도 별볼일 없네요. 한우촌에서 길을 따라 오르는게 낫겠습니다.
중간에 철탑이 있고요. 거기서 왼쪽으로 올르면 가선대부판중추부사파평윤씨묘가 나옵니다. 그 위 봉우리에 삼각점이 있습니다. 여기가 어래산성이 있는 어래산이랍니다.
♤ 칠목재(七牧峙)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와 함라면 신목리를 잇는 칠목재는 722번 지방도로가 고개를 지난다. 1972년 소룡골(巢龍)과 칠목마을을 합쳐서 한 마을이 되었다. 소룡은 남병산에 쌓여있어 마치 용이 서리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풍수지리설에 취해진 이름이며, 옛 기록에는 소농(巢農)으로 되어 있다. 칠목은 웅포로 가는 고갯길 옆으로 길목의 전라도 사투리인 ‘질목’이 변음이 되어서 칠목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고갯길 일대에 옻나무가 많아 칠목(漆木)이라 했는데 한자가 어려워 칠목(七木)으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개마루에는 버스정류장과 함라산 등산안내도 그리고 칠목재휴게소가 있다.
♤ 방령고개
방령고개는 익산시 함라면 관원리 방령마을과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30m, 잠깐 다녀와야 하는데 정상에 아무런 표시가 없습니다.
♤ 180.4m봉 (삼면봉)
익산시 함라면과 웅포면 그리고 군산시 나포면이 만나는 삼면봉이다.
♤ 무명봉
500m 진행하면 익산시 함라면과 군산시 서수면 그리고 나포면의 삼면봉이다.
포크레인이 열심히 공사중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수레재에 건물이라도 들어설려는지....
♤ 수레재(車嶺)
수레재는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장산리 와촌에서 서수면으로 넘어가는 15번 군도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한국지명총람』(옥구)의 "(서수면 취동리) 수레재(차령 車嶺, 수내미채)는 흥법에서 나포면 장상리 와촌으로 넘어가는 고개. 재의 모양이 수레같이 생겼다 함."이라는 기록에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을 찾을 수 있다. '차령'은 수레재의 '수레'를 훈차 혹은 훈음차한 표기이다. 『군산의 지명유래』의 나포면 장상리에는 수레재의 또 다른 명칭인 수내미재, 순남미재(車峙)가 기록되어 있다.
공주산 가는 구불길을 지나 150m 오릅니다. 전망은 없고, 그냥 구불길 따라 돌아도 상관없습니다.
♤ 동봉
0.15km를 다녀와야 하는 팔각정이 있는 망해산 동봉(320m, 불지산)의 전망은 없으니 힘들게 일부러 가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불지산봉수(佛知山烽燧)는 서쪽으로 오성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동쪽으로 함열현 소방산 봉수에 신호를 보낸다. 금강정맥은 망해산 정상에서 다시 20m 내려와 우틀해야 한다.
군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해안고속도로로 저 금강대교를 건너 상경합니다.
망해산 정상에도 묘지가 하나 있네요. 공주산은 보이질 않습니다. 동봉과 망해산 중간 지점 임도에서는 보였을라나...
♤ 망해산(230m)
바다를 바라보는 산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서 맑은 날엔 금강 너머 서해바다가 보인다는 뜻이다. 망해산은 군산시 나포면 옥곤리와 서수면 축동리에 걸쳐 있으며 금강 하류와 인접해 있다. 해동지도에 산 아래 망해사(望海寺)라는 사찰이 등재되어 있다. 군산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 금강대교와 금강변의 나포면 읍내가 보인다. 북쪽으로 전북 익산시 응포면 일대를 조망할 수 있으며 강건너 충남 서천군 화양면과 한산면도 조망된다. 망해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비단처럼 반짝이는 금강과 철새들의 낙원인 나포십자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나포십자들은 본래 원나포에서 서포까지 갈대가 무성했던 강기슭이었는데 1920년대 간척사업을 통하여 농경지로 바뀐 곳이다.
공주현감이 끝발이 조금 있었나봅니다. 옥구 쌀밥 얻어먹는 재주도 여러가지네요.^^
♤ 공주산 (64.5m)
공주산은 군산시 나포면 원나포마을에 있는 산인데 옛날에는 공주산의 산세(山稅)를 옥구에서 해마다 충청도 공주 관아에 꼬박꼬박 치뤄왔다. 그 까닭은 공주산이 본시 공주에 있던 산인데 큰물(홍수)이 져서 그것이 옥구 나포로 떠내려 왔기 때문이란다. 재미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공주산과 관련한 또 하나의 전설은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새로운 땅을 찾았는데, 그때 준왕 처음 상륙한 곳이 바로 공주산이고, 준왕은 산을 넘어 익산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 당시 왕의 공주가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공주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망해산에서 내려서는 임도에서 찐빵 하나 올라도 되고 임도따라 패스해도 되고, 취성산 정상은 직진하기가 쉬운데 정상에서 급우틀해야 합니다. 내림길이 잘 보이지 않아 알바하기 쉽겠더군요.
♤ 취성산(鷲城山, 219m) /축성산 / 산불감시용카메라와 경보장치, 초소
취성산은 군산시 나포면 부곡리에서 임피면 축산리까지 펼쳐있다. 산의 모양이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의 영취산과 비슷하다 하여 취성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며, 해동지도,대동여지도 등에서도 취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산으로 군산지역의 몇 안되는 200m급 산 중 하나이다.
무덤들이 많아서 웬일인가 했더니...
100m 아래쯤에 교회가 보입니다. 다급할 땐 물은 얻을 수 있겠죠?
♤ 부곡재/ 거점재
군산시 나포면과 임피면의 경계로 고개넘어 나포면 부곡리의 이름에서 부곡재라 부르기도 한다.
♤ 백릉(白菱) 채만식
채만식(蔡萬植, 1902. 7. 21 ~ 1950. 6. 11)은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 31번지에서 1902년 채규섭과 모친 조우섭의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앙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 고등 학원 문과를 중퇴했다. 군산 개항 이후 일제시대 일본인의 집단 거주에 따른 군산항의 모습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다. 빈곤과 실의 속에서 폐결핵으로 1950년 음력 5월 27일 49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묘소는 임피면 축산리 계남마을에 있다.
용천산 내림길도 길이 뚜렷하지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진행해서 무덤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리면 되는데 바쁘다보니 그냥 내려섭니다. 가파르긴 마찬가지지만....
♤ 용천산(136m)
용천산은 군산시 임피면 교동에서 나포면에 이르는 고개에까지 이어져 있다. 북쪽으로 망해산, 대명산, 오성산 등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정상부에는 마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곡형 산성의 용천산성 흔적이 있다.
미산재에서 그냥 길따라서 쭈욱 따라가면 됩니다. 길 옆에 29m봉 삼각점이 있긴한데 특별한 의미를 찾을 수 없네요.
♤ 미산재
조금 오르면 29m봉에 삼각점이 있다. 우곡저수지가 보인다. 우측으로 우곡저수지를 보며 계속 진행한다.
서해안고속도로 굴다리 대명터널(우곡2교)입니다.
굴다리를 지나 창안마을버스정류장을 만납니다. 여기서 다시 고속도로 옆을 따라 길도 없는 길을 따라 대명산으로 올라야 합니다.
♤ 창안마을사거리
깐치멀마을이야기 표지판이 있고 시내버스 승강장이 있다.
저 표지판마저 없었던들 트랭글 뺏지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ㅋ
♤ 대명산(128.5m)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에 있는 산이다. 북쪽에 망경산이 있고, 북쪽 금강변에 위치한 오성산이 있으며 성산면 소재지와 개정면, 임피면을 조망할 수 있다.
금강하굿둑을 금강정맥의 끝으로 본다면 여기서 오성산으로 향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일부러 바라보지 않는한 금강을 볼 수가 없네요.
♤ 망경산(望景山,129m)/ 철탑봉
전북 군산시 성상면 도암리, 고봉리, 임피면 창오리, 산곡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창오리에 나라 곡물 창고가 있어 이곳에서 마을의 망을 보았다 해서 망경산이라 부른단다.
금강하구둑을 막아 금강하구둑 아래를 금강수계가 아닌 금강서해권역 바다물로 본다면 금강하구둑이 입해처로 보인다. 막약 금강의 끝을 하구둑으로 본다면 군산시 성산면 대명산 옆 망경산에서부터 오성산-요동산(금강하구둑)까지는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산줄기가 아닌 모두가 금강을 나누는 산줄기가 된다. 그러나 하구둑은 인위적인 시설물이니 괘념치 말고 대명산-고봉산-대초산-용화산-청암산-금성산-장계산 방향으로 입해처인 금강 하구언으로 향하는게 맞다.
저 간판에 거시기삼계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거시기탕이라면 몰라도 삼계탕은 패스~ ㅋ
다리실재 육교 밑으로 27번 국도(고흥~군산선)가 지납니다.
♤ 다리실재
다리실재는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에서 개정면 도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월곡재, 월곡치, 풍덕매라고도 불린다. 다리실재 주변은 금강수운의 중심이었으며 조선시대 전라도 내륙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금강변에 있는 군산창(진성창)으로 운반하던 중요한 길목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다리실재-고봉산 사이는 비산비야로 묘가 많습니다. 고봉산 이중철책 안에 흑염소가 여러마리 살고 있네요. 겨울에는 무얼 먹고 사는거죠? 사람이 관리하는 건지...
♤ 고봉산(147.6m) 1등급 대삼각점(한산11)
고봉산은 군산시 개정면 아산리에서 군산시 성산면 산곡리 경계에 까지 이어져 있다. 철수한 미군기지 안쪽으로 정상이 있다. 고봉산을 오르면서 성산면을 버리고 개정면을 만나고 이후 개정면과 임피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한다.
무덤에서 보는 전망이 좋습니다. 가야할 방향 구장항제련소 굴뚝이 아슴하게 보이네요.
♤ 145m봉 / 삼각점
애잿고개 지나 128봉이 군산시 성산면, 대야면, 개정면의 삼면봉이다. 이후 대야면과 개정면의 경계를 타고 용화산으로 간다.
지경리에서 용화리로 걸어가는 718 지방도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철봉재랍니다.
용화산이 보이는 육각정을 지나 고개로 내려섭니다. 지도를 보니 옆 동네가 통사리입니다.
통사동고개 도로명이 번영로라는데 여기서 길을 따라 내려서면 대야면 소재지인가봅니다.
♤ 통사동고개 (대야낚시 음료수)
26번 국도가 지나간다. 대야면 표시판이 있는 전봇대에서 우틀해야 정확한 마루금을 탄다.
상수원시설입니다.
가스공사 건물을 보며 오르니 정수시설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 정상에 육각정입니다. 여기서 잘까도 생각해봤습니다만 배가 출출해서....
건너편에 용화산을 쳐다봅니다.
내려서니 한들고/옥구중이 나오네요. 장항선 철길을 건너 용화리 정상에 초소가 있다는데 거기까지 가볼까하다가 지경리 시내로 들어섭니다.
♤ 장항선
충남 천안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전북 군산과 익산을 연결하는 총연장 154.4㎞의 노선이다.
장항선은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에 의하여 충남선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사설철도선이었다. 1922년 6월 천안역∼온양온천역 구간이 처음으로 개통되었고, 1931년 8월 남포역∼판교역 구간이 개통됨으로써 전구간을 개통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사설철도 및 부대사업 일체에 대한 국유화조처(1946.5.10)로 다른 사설철도와 함께 국유화되었다. 1955년에 종점인 장항의 이름을 따 장항선으로 개칭되었다. 1991년에 새마을호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였다. 2007년 3월에 천안역·온양온천역 구간이 새 선로로 이전되었으며 2007년 12월에는 온양온천역·신례원역, 주포역·남포역 구간이 직선화되었다. 2008년 1월에는 장항역·군산역·대야역 구간을 개통하여 군산선의 대야역·익산역 구간을 장항선에 편입하였다. 장항역이 신설되면서 구 장항역은 장항화물역이 되었다. 서천군 장항읍에 위치하였던 종착역인 장항역의 이름을 따 장항선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나, 2007년 12월 장항선과 군산선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장항역은 장항읍이 아니라 마서면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장항선 또한 장항읍을 전혀 지나가지 않게 되었다. 2008년 12월에 천안역·신창역간이 복선전철로 개통되었다. 익산역·대야역 구간을 복선전철화하고 대야역을 기점으로 하는 군장국가산업단지 인입철도를 만들 예정이다. 이 철도는 천안에서 온양을 거쳐 장항, 전라북도 군산, 익산까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평야지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가면서, 예산·홍성·광천·대천 등 이 지방의 주요한 도시들을 거의 지나고 있어 충청남도 남서부 지역의 매우 중요한 교통축이 되고 있다. 또한 전라북도 익산까지 노선이 연결됨으로써 전라북도 서북지방과 충청남도 서남지방 간의 교류확대도 기대된다.
♤ 군산시 대야면 지경리입니다.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야간행군을 하지않을 요량으로 침낭을 준비해 왔습니다. 8시로 예상했는데 어둡지 않게 도착했습니다. 김치찌개에 고기좀 넉넉히 넣어달라며 만원짜리로 주문해서 저녁을 먹고, 인근을 어슬렁거리다 바람을 피할 장소를 찾아 휴식을 취합니다.
농협하나로마트 맞은편 임대로 내놓은 빈 건물인데 뒤편으로 돌아가니 뒷문이 열려 있더군요. 화장실에서 샤워도 가능했습니다만 십원짜리 하나 흘리지 않고 흔적없이 자고 나왔습니다.^^
편의점에서 우육탕면에 밥말아 고추참치캔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출발합니다. 장항선 철길을 건너 지경교에서 수로를 바라봅니다.
♤ 지경삼거리/ 인공수로
이번 구간 대야면의 만자교(지경교)와 금성리 내류마을 앞의 칠다리에서 두번 큰 다리를 건너고 들판을 지난다. 농토를 확장하느라 평지를 흐르는 정맥의 능선은 경지정리로 완전하게 평지가 되면서 수로를 따라 물길을 잡느라 비전문가로서는 산자분수령은 고사하고 무너미의 기준이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곳이다.
무심코 뒤돌아보니 붉은해가 밑바닥에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718번 지방도를 따라 용화리로 들판을 이동합니다. 수로는 계속 옆을 따라오는군요.
용화산을 지나며 남쪽으로는 옥구 너른 들판이 보이는데 만경강 하류이구요. 북쪽으로는 군산시내가 조망이 됩니다.
칠거리재로 가면서 보이는 군산시내 전망이 좋습니다. 구장항제련소 굴뚝을 찾아 끝나는 지점이 저기로구나 짐작을 해봅니다.
♤ 용화산(103.8m)/ 삼면봉
용화산은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와 옥산면 남대리에 걸쳐 있다. 군산시 개정면에서 옥산면 남대리로 접어든다.
저 아래 칠거리재가 보입니다.
칠거리재 버스정류소에는 옥산과 회현의 중간 표산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칠거리재에서 다시 산을 올라 고씨유택을 지납니다. 계곡을 가르는 황새고개에서 다시 봉우리로 올라야 하는데 반딪불이체험장 입구에 울타리(연두색 휀스)를 쳐놓았습니다. 안에서는 거위가 꽥꽥 거리고,,, 욕 나오더라고요. 지나고 나니 굳이 봉우리 하나 패스하고 길을 따라 내려서도 되겠다 싶었지만...
♤ 칠거리고개/ 표산 버스정류장
지방도 709번이 지나는 칠거리고개는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와 군산시 옥산면 남대리를 넘나드는 고개이다. 칠거리재로 부르기도 한다. 회현면 고사리 대위마을 북동쪽에 포산, 신당, 풍촌, 대위, 옥산, 남내, 용화산의 일곱 갈래로 갈라지는 길로 칠거리라 한다.
청암산을 오르는 곳에서 만난 음수대와 청결한 화장실이 인상깊네요. 저수지와 청암산을 잇는 수변길이라 산책하는 분들도 꽤 많은지 간이매점에서 커피도 팔았었나 봅니다.
♤ 사오개길
사오개는 옥산저수지(현재 군산저수지)가 축조된 1939년 이전에 회현면 대정리, 월연리, 세장리 사람들이 옥산이나 군산시내를 갈려면 넘어야 하는 청암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고개의 이름이다. 당시 6척 이상의 큰 길이 시내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회현사람들과 군산시장통을 이어가면서 민초들의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길이기도 하였다. 아쉽게도 옥산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사오개에서 옥산면 신성동까지의 대부분 길은 물 속에 잠기게 되었지만 도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사오개는 회현사람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고갯길이었다.
그다지 높지않은데 잠깐 동안 경사가 꽤 가파릅니다.
♤ 청암산(靑巖山 118.8m/ 샘산)/ 누각정자/ 1등급 대삼각점(군산11)
청암산은 군산시 회현면 세장리와 옥산면 금성리에 걸쳐 있다. 취암산의 명칭 유래는 조선시대 이전에 푸르다는 의미의 취암산(聚岩山)이었으나 일제시대 청암산(靑岩山)으로 바뀌었다. 샘산이라는 말은 취암산을 빠르게 말하는 소리가 샘산으로 들려 그리 불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암산 일대는 일제시대 1935년 최초로 수원지로 조성되고 1963년에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45년간 자연생태계로 보존된 곳이다. 청암산은 금성산과 함께 군산의 수원지인 군산저수지(옥산저수지)를 품고 있다. 저수지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약2.5km이며 정상에 서면 옥구읍 수산리 상평리 이곡리와 회현면의 금광리까지 펼쳐진 수산이곡평야, 그리고 만경강 하류를 조망할 수 있다. 우측으로는 군산 시가지와 오늘 마무리를 할 장계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북쪽으로는 금성산이 마주보인다.
청암산을 지나 채석장이 보이면 알바를 조심해야 합니다. 정맥길은 그 채석장으로 직진해 바로 옆을 위태위태 진행해야 합니다. 채석장을 지나며 만경강 하류 너른 들판이 조망됩니다.
♤ 죽동마을
마을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1930, 40년대경 만경강 하구 마을에서 옥서 하제까지 민물고기, 바닷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가던 어촌마을 사람들이 죽동마을에 매년 농사 시작 전에 대나무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고 댓금 흥정이 끝나면 달구지에 대나무 다발로 차곡차곡 실어 먼지 풀풀거리는 진흙길을 뒤짚어 해안 쪽으로 가곤했는데 그 대나무는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 고기잡이 방식인 '쑤기놓기'에 사용하였단다. 그 당시 대나무밭에서 대나무를 잘라 파는 일이 논에서 벼를 재배해서 나오는 소득보다 대여섯배 많았기 때문에 현재보다 대나무 군락이 폭넓게 분포하였다.
사진은 중계탑이 있는 119m봉입니다.
금성산은 임도처럼 널찍한 길로 다녀와야 하는데 가지 않았고 내류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 금성산(錦城山 126m)/ 정자
금성산은 군산시 옥산면 금성리와 옥산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 이 산 아래 박지산면이 있어서 박지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금성산에는 만경강을 이용해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던 박지산성이 있던 산이다.
옥류정 내려서는 길은 대나무숲을 따라 인가 마당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길을 막아놓았습니다. 저 옥류정에서 비박하면 좋겠다 싶어 문을 열고 보았더니 땡벌이 엄청 죽어있더라구요. ㅋ
♤ 옥류정
금성마을 갈림길에서 2~3분 정도 진행하다 직진방향이 뚜렷한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서면 편백나무숲이 나오고 119봉을 지나 조금 내려서면 삼거리에서 등로가 뚜렷한 좌측길을 버리고 희미한 우측 가시덩쿨 길로 하산을 하여 민가 마당을 지나 진행하면 옥류정이 나온다.
옥류정에서 마을길을 따르다 이정표가 있는 수로에서 좌틀합니다.
칠다리슈퍼를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요. 캔맥에 아스께끼로 군것질을 하고 갑니다.
여기도 칠다리를-학림마을-군산화물선 철로-백석마을까지 들판을 지나고, 백석교회로 돛대산에 올라야 합니다.
♤ 칠다리(제2금당교)
칠다리는 군산시 옥산면 금성리 내류마을에 있는 다리로 70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금성마을을 배그메라고도 부른다. 옛날, 박지산성(금성산성)이 있어 만경강을 이용해 침입하는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이기도 하였다. 또한 강줄기가 이 곳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제방을 쌓아 농토를 만들어 넓은 들이 생기자 들땅리라 부르기도 한다. 일설에 물줄기(도랑)가 일곱 칠(七)자형으로 흐른다고 하여 칠다리라 부른다고도 한다. 그러나 다리를 만들 때 다리난간 받침을 나무로 사용하여 그 위에 옻칠을 입혔다 해서 칠교라 했다. 이를 두고 칠(漆)다리라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돛대산 정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군산-장항간 산단철도를 놓고 있습니다. 국도를 지날려고 왼쪽 10시 방향으로 빙 돌아서 갑니다. 우측 1시방향으로 가야하는데 말이죠. 까마득한 옛날 금강의 물길이 이쪽으로 흘렀을 때 돛대산에 배를 많이 메어 놓았다나...
♤ 돛대산(91m)
군산시 옥산면 당북리와 상평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형국이 배의 돛대처럼 생겼다고 해서 돗대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옥정/굴다리를 지나 무덤있는 곳으로 오르려니 후손들이 울타리를 단단하게 쳐놓았네요. 다시 백해서 도로 옆으로 진입합니다. 아리랑고개에 미제지호수옆 군산의 맛집 할머니백숙집인데 예약시간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겐 시간이 딸리네요.
내려오는 아저씨에게 전망있냐고 물어보니 없답니다. 그냥 지나갑니다.
♤ 60m봉 (삼면봉)
군산시 옥산면과 옥구읍 그리고 미제지 옆 지곡동의 경계이다.
위 사진은 옥정굴다리를 지나 산으로 달라붙어 진행하다 돛대산을 건너다보며 좌틀해서 할머니백숙집 가기 전에 미제지를 찍었습니다.
정맥길은 미제저수지로 내려서서 은파교회를 지나 부곡사거리까지 벚꽃길 수변을 따라갑니다.
♤ 미제지(米堤池)
미제지란 지명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제작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한다. 이 문헌의 옥구현 산천조는 '米堤池는 옥구현 북서쪽 10리에 있으며 둘레가 1만910척(尺, 약 3,3km)에 달한다'라고 간략하게 기록해놨다. 광복 후에는 선제뜰 관개용 저수지로 사용됐고, 1950년대 제방을 높이는 확장공사로 둘레가 6.9km로 늘어난다. 미제지 축성 연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시기로 미루어 고려 시대에 축조됐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팔도지지> <전국지지> 등을 근거로 백제 시대까지 소급하는 향토사학자도 있다. 미제지 용수는 우리나라 최초 수리조합 설립의 근거가 됐다. 미제(米堤)와 선제(船堤)를 관개에 이용하기 위해 1908년 12월 8일 탁지부(지금의 재경부에 해당)로부터 허가받아 설립된 '옥구서부수리조합'이다. 이 수리조합은 조선인이 주도했고, 조합원 다수가 조선인이었으며, 몽리(蒙利) 구역의 70%가 조선인 소유였다는 점에서 다른 수리조합들과 사뭇 구별된다. 미제지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설화(세 바위 전설, 애기장수 서울터 만들기, 금도구통 금도구때 등)가 전해진다. 이름도 미제저수지, 미제방죽, 쌀뭍방죽, 절메방죽, 아흔아홉귀 방죽, 미룡저수지, 은파 뽀드장, 은파유원지, 은파관광지 등 다양하게 불렸다. 이곳은 1969년 이후 관광유원지로 개발되고,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다. 이어 전국 100대 관광명소로 선정되면서 '은파호수공원'이란 새 이름을 얻는다. 전북 군산시 은파호수공원에 '은파'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미제저수지에 유원지 영업을 구상한 사업가 류모씨가 영업 허가 원서에 자신의 아버지의 호인 '은파'를 붙여 1975년 허가 받았기 때문이다. 은파호수공원은 군산시의 허가에 따라 1976년 유원지로 결정되었고, 1985년 8월 26일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 은파교회
은파교회부터 도심으로 들어섭니다. 교회 앞 미제지에는 먹거리촌 고급음식점이 형성되어 있네요.
미제저수지 지나면 부곡사거리를 만납니다. 횡단보도 건너 저 앞에 보이는 산으로 직진...
♤ 부곡사거리
부곡사거리에서 조금 더 직진을 해서 산에 달라붙어 찐빵 2개를 넘으니 생태육교가 나옵니다.
첫번째 찐빵...
두번째 찐빵에서 급우틀입니다.
계속 길을 따라 내리면 아파트가 보이고 생태육교를 건넙니다. 우측으로 정수시설 울타리를 만납니다. 좌측은 공동묘지인데 설림산 오르는 등산로가 나옵니다. 울타리를 따라 계속 가서 우틀합니다. 정수시설 지나 할매산 평화탑으로 올랐습니다. 여기부터 월명공원에 해당된답니다.
월명호수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이 설림산입니다.
♤ 설림산(雪林山 해발 116m)
삼각점이 있다. 은적사는 설림산에 있는 절로 군산시 소룡동에 위치한 군산에서 가장 큰 절이다.
불자가 해탈의 목적으로 수도, 정진하기 위하여 은거하는 사찰이라는 뜻에서 은적사란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호숫가에서 윌음료 두개 사먹고 잠시 숨을 돌립니다. 동네아주머니들 나물하며 건새우, 우엉, 취나물 등등 잔뜩 내놓고 흥정을 합니다. 시내로 통하는 고개입니다.
생태육교 지나 정수장 수도시설 울타리로 달라붙고 평화정을 올랐다가 내려서 한동안 진행하면 월명호수가가 나옵니다. 저 사진은 점방산 가는 길에 찍은 건데, 우측이 설림산입니다.
♤ 월명호수
군산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군산 제 1수원지라고 불렸고, 군산시의 중심지인 월명 공원 안에 위치하여 월명 호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도심의 산 위에 위치한 호수이다.
♤ 군산클라이밍센터(인공암벽장)/ 군산시 소룡동 솔꼬지1길 46
월명호수가에서 호수변을 따라 청소년수련관으로 가는 도중에 건너편에 설림산이 있다. 그 설림산 뒤편에 은적사가 있고 오른쪽 월명호수 제방이 있는 곳 아래로 인공암벽장이 2003년 조성되었다.
호수변을 따라 청소년수련원까지 가도 되며, 고개 2개를 넘어 석치산으로 가도 됩니다. 호수가를 따라가면 청소년수련원 직전에서 배낭을 놓고 석치산으로 계단길 150m 올라갔다 와야 합니다.
♤ 석치산(98m)
군산시 송풍동에 위치해 있으며 석치산에는 산불감시카메라가 있고 삼각점 2개가 있다.
청소년수련원입니다. 맞은편 점방산 오름 입구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서 삼거리입니다. 점방산을 잠깐 다녀와야 합니다.
푸짐하게 꽃을 피운 동백나무가 군데군데 많이 있네요.
점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구장항제련소입니다.
장계산으로 가는 중간에 바라본 구장항 제련소입니다.
♤ 구장항제련소
수시탑에서 바라본 구장항제련소입니다.
점방산 전망대
♤ 점방산 (139m) 봉수대
장계산 갈림길에서 400m 떨어져 있어 10분 정도 소요된다. 점방산 봉수대사적비와 월명공원 전망대가 있다. 금강하구에 금란도와 동백대교 그리고 건너편 장항으로 호서정맥의 마지막 용당정이 보인다. 해망동 바닷가에 우뚝 솟은 점방산[천방산 혹은 봉화재]은 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서 그 정상에서는 서해와 금강 하구 일대가 한눈 안에 들어온다. 정상에 바로 점방산 봉수대가 있었고 지금도 산 정상에는 봉수대의 터가 남아 있다. 고려 말 이후 왜구는 내륙 지방 깊숙이 침입해 들어와 식량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해안 일대에 배치된 봉수대는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것이다.
금강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입니다.
♤ 장계산 (長溪山, 111.7m)
군산 해망동 장계산은 월명 공원 내에 위치한 월명산, 점방산, 설치산 등과 함께 능선을 이룬다. 장계산 정상에 오르면 20평 정도의 평평한 잔디밭이 있다. 나무 숲 사이로 서해 바다와 금강 하구 건너 충청남도 서천군에 위치한 구 장항 제련소와 금강 하굿둑, 그리고 금강 하구 일대와 오성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로부터 풍수지리는 선현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명당공간을 찾기 위한 입지관과 토지관이 내재된 우리의 한국학이다. 이러한 명당공간은 지속적으로 좋은 기를 받고 있는 입지를 말하며 발복이 일어나는 곳이다. 명당입지는 백두대간-정맥-지맥으로 이어지면서 행룡하는 용맥이 물을 만나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마지막에 기봉한 산은 강한 지기를 머금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은 백두산에서 발맥(發脈)한 백두대간이 근간을 이루어 남하하면서 12정맥과 여섯기맥, 그리고 많은 지맥을 형성하면서 기봉한 것이다. 금강의 합수처에는 서천의 중대산(102m)과 군산의 장계산(110m)이 마주한다. 중대산은 호서정맥이 음성(보현산, 483m)-천안(고려산, 304m)-청양(백월산, 560m)을 거쳐 온 산진처(山盡處)다. 장계산은 백두대간 장안산(1237m)서 분맥한 금강정맥이 진안(마이산, 685m)-진안(운장산, 1126m)-완주(국사봉, 718m)-익산(미륵산, 420m)을 세운 뒤 행도를 멈춘 산이다. 마찬가지로 금강을 따라 행룡한 두 정맥의 명산보다는 이곳을 찾아 오르게 되면 강한 기를 받게 된다.
♤ 3.1운동 기념탑
앞에는 등대역할을 하는 어업지도국 무선소가 있고, 자동차가 서있는 곳 옆에 백릉채만식선생문학비가 있습니다.
♤ 백릉채만식선생문학비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향은 서서남으로 밋밋이 충청 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타고 흐른다. 이로부터서 물은 조수까지 섭슬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넓이가 훨씬 퍼진게 제법 양양하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채 얼려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항구래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된다. 미두장(米豆場)은 군산의 심장이요 전주통이니 본정통이니 해안통이니 하는 폭넓은 길들은 대동맥이다. 이 대동맥 군데군데 심장 가까이 여러 은행들이 서로 호응하듯 옹위하고 있고 심장 바로 전후 좌우에는 중매점들이 전화줄로 거미줄을 쳐놓고 앉아 있다.
- 장편소설 [탁류]의 머릿글에서 -
♤ 바다조각공원
여유있게 한바퀴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초딩5년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오고 40년 만에 다시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때는 미세먼지였는지 장항제련소 굴뚝이 흐릿하게 보였던 기억입니다.
♤ 월명공원
월명공원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빵집, 일본식 근대가옥 등 관광지로 유명한 군산시 월명동에 위치합니다. 월명공원은 군산의 상징인 월명산을 비롯하여 장계산, 설림산, 점방산, 석치산 등이 이어져 조성된 군산의 명소로 군산의 60~70년대에는 최고의 수학여행 코스였다. 총 면적이 약 77만 평이나 되고, 산책로의 길이도 12km나 되는 거대한 공원이다. 해망동과 신흥동에 걸쳐 있으며, 군산의 상징이자 월명공원의 상징인 수시탑에 오르면 서해바다와 금강하굿둑, 그리고 군산시가지와 비행장, 외항, 금강과 장항제련소 등의 주변 전경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공원 정상에는 전망대와 바다조각공원, 수시탑, 삼일운동기념비, 개항35주년 기념탑, 생각하는 시민상, 일제강점기 어둡고 혼탁한 현실을 고발한 '탁류'를 기념하는 채만식 문학비가 있다. 정상의 수시탑은 1968년 군산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성시탑이 되었다가 얼마 후 다시 군산을 수호하는 탑이라는 의미의 수시탑으로 변경된 28m 높이의 탑으로 군산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선박의 돛 모습과 타오르는 불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 군산·장항 지구 해병대 전승 기념비
비둘기 광장에서 수시탑에 오르는 중간의 오른쪽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기념비를 만날 수 있는데 이 탑이 군산·장항 지구 해병대 전승비이다. 이 탑이 만들어진 내력을 보면 6·25 전쟁이 일어나고 7월 19일 군산 지역은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는데 이때 제주도에 주둔하던 해병대 고훈길 부대가 해군 함정으로 7월 16일 군산에 상륙한다. 고훈길 부대는 두 개조로 나뉘어 한 조는 해군 군산 경비부 육전대와 함께 군산에 비축되어 있던 정부 양곡 천삼백여 가마와 기타 정부 물자를 해군 함정에 실어 후방으로 운반하였고, 주력 부대는 금강을 건너 장항 북방 4㎞ 지점에서 주둔 중이던 대대 규모의 인민군에게 기습 공격을 가하여 적군 사살 62명, 사상자 311명, 포로 5명의 전과를 올렸다. 이를 기념하여 이 기념비가 만들어졌다.
점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백대교입니다.
장계산에서 바라본 동백대교입니다. 삼일기념탑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내려서도 되더군요.
♤ 동백대교
생각하는 시민상에서 바라본 동백대교입니다. 점방산에서부터 내려서면서 시선이 자꾸 동백대교 건너 용당정에 꽂혔습니다.^^
♤ 해망굴
전북 군산시내 원 도심과 수산물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해 중앙로 서쪽 끝에서 장계산을 통과하는 근대기 터널(군산시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로서 1926년에 시작된 군산항 제3차 축항공사를 통해 화물하차장 확대, 부잔교 추가설치, 창고건설 등이 수행되었고,그해 10월 16일 당시 구시청 앞도로인 명치통(중앙로1가)~해망동을 연결하고자 길이 131m 높이 4.5m의 규모로 만들어 졌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진주한 인민군 지휘소가 이곳에 자리하여 매일 같이 연합군과 공군기들의 기관총 폭격을 받아 총알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2005년 6월 18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보행자만 통과가 가능하다.
♤ 해망동 어시장
팔아주지도 않을거면서 꼴뚜기회도 몇개 찍어먹는데 아주머니 자꾸 가자미 눈으로 바라보네요. ㅋ~
♤ 군산도선장
금강하구언이 준공되기전에는 장항과 군산을 연결하는 뱃길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군산도선장은 군산과 장항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 선착장으로 군산시와 장항읍을 오가는 지역민들의 이동편의를 위해 만들었으며 1934년 일제 강점기부터 운영되다 2009년 운영이 중단되었다. 군산지역은 일제시대에 이르러 미곡(쌀)의 수탈을 위한 창구로 이용되었다. 대구, 평양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의 하나인 강경은 일제에 이르러 군산에 그 지위를 넘기게 되었고 군산은 주변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의 수탈 창구로 이용되었다. 금강정맥은 동백대교 건너 충남 장항의 호서정맥 종점 용당정과 마주하고 있다. 금강 하구의 군산과 장항지역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 사비성의 관문으로 백제말 나당연합군과 백제가 교전하던 기벌포가 이곳이며, 고려 우왕때 왜구의 침입으로 100척 밖에 안되는 배로 500척이 넘는 왜군의 배를 최무선이 개발한 화포로 무찌른 자랑스런 진포대첩의 현장을 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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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또 한장의 스토리를 완성 하셨네요 함라산 오르기전 전통가옥과 마을풍경이 인상 깊었고요 함라산 줄기에서 바라보는 금강변의 골프장 풍경들도 생각납니다 대야의 들판을 지루하게 걷던 기억과 마지막 월명공원 구간에서는 지인들과 함께하며 뒤풀이 추억이 떠오르네요
옛날에는 금강하구둑이 없었기에 서천이나 장항으로 가려면 이리로 부여로 빙 돌아 갔답니다 그래서 도선장이 빛을 발하였는데 지금은 장항으로 몇발짝 넘어서면 되니 격세지감을 느끼는군요 예전 도선장에서 호남정기화물에 짐을 잔뜩 싣고 위태롭게 강을 건너던 추억이 퐁라라님의 산행기를 읽다보니 떠올랐네요 장도 여행길 고생많으셨습니다 ^^
넵 happy마당쇠님!
이번엔 동백대교를 건너 용당정에 서보고 서천터미널에서 상경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걷다보니 다 사그라졌습니다.^^
웅포대교, 금강대교, 하구둑, 동백대교에 이어 군산~장항간 산단철도도 놓고 있으니 그때 생각하면 상전벽해네요.
금강정맥이 부여와 공주의 끝발에 밀렸는데 이제 군산이 떠오르니 이 또한 격세지감입니다. 감사합니다.^^
금남정맥 금강기맥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감사합니다. 세르파선배님 길게 나폴거리는 띠지 잘 만나보고 있습니다.^^
금강쪽 산줄기도 마무리하셨네요.
아무튼 거침없는 발걸음은 오늘도 이어지셨습니다.
날씨도 좋아 산행하기에도 적절한 요즈음인 듯 싶구요.
이제 다음은 한강쪽 큰 산줄기 흐름으로 진행하실련지?
이어지는 안전하고 멋진 추억의 여정 기대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방장님!
다음엔 한남정맥인데 2구간, 3구간 고민하고 있습니다.^^
17~18 출격할 수 있는데 비가 온데니 아쉽게 되었습니다.
금강기맥 5구간으로 살방살방 거닐던 생각이 나네요.
야트막한 청암산의 1등삼각점도 ...
산행중 1등삼각점 보면 무슨 보물이라도 본듯이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ㅎㅎ
큰산줄기 하나 마무리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거침없는 발걸음 건강히 이어 가시길 바랄게요. 퐁라라님 ^^
감사합니다. 다류대장님!
청암산은 옥구 만경강 하류쪽 너른 들판을 바라보는 조망과 반대편 군산저수지 수변공원과 어울려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인가 봅니다.
요소요소 대장님 띠지 확인하고, 떨어진건 보수도 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강기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시네요 우리는5구간도 힘들게 걸었는데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왕봉운영자님!
저는 언제쯤 지맥길에 접어들지 아직 기약이 없습니다. 두분 알콩달콩 앞에 가시며 남긴 흔적 덕분에 알바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명칭도 많고 말도 많은 금강정맥.금강기맥. 등등.
그 긴 거리를 여유롭게 걸으면 고루고루 많이도 둘러보셨네요.
산행이라기보다 여행의 진수를 보여 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뜰이운영자님!
시간이 있고, 돈이 있어도 무릎이 아프고 발이 아프면 갈 수 없는 정맥길입니다.
무엇보다 정맥길과 기맥길을 가보고자 하는 마음이 오래 간직되길 바랄 뿐입니다.
금강 2구간은 거리만 있다뿐 다른 정맥에 비해 크게 힘든 지점이 없었던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