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 - 흙,나는 그를 사랑한다
이 세상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진정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처음 그와 친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일이다.
어린 시절 나는 공무원이신 아버지를 따라 늘 도시 읍내에서만 살다보니
그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향인 거창에 계시던 조부모께서
함양 우리 집 근처로 오시면서부터 비로소 그를 알게 되었다.
넓은 밭은 많은 손을 필요로 하여 17살이던 나는 할머니를 도와
처음으로 농사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갖가지 곡식들과 채소들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기까지의 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신기하고 놀랍고 매혹적인 그 모든 것들이 그가 쏟아 내놓은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팥알 만한 목화씨 하나를 구름 같은 흰 솜으로 변화시켜 이불솜으로 만들어주고,
뽕나무 잎을 먹고 자란 누에고치를 나의 예쁜 옷이 되게도 해주었다.
철마다 맛 다르게 입맛을 돋우어주는 다양한 곡식들과 채소들은 그의 선물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일찍이 그의 소중함을 아시고 밭에서 늘 살다시피 하셨다.
"밥 잘 먹는 것은 하나님 덕, 옷 잘 입는 건 마누라 덕, 돈 잘 쓰는 것은 부모 덕이다.
그 중에서도 밥 잘 먹는 것이 제일이다.
이 흙은 생명의 근본이거늘 흙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하셨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늘 내 마음 속에 남아있어서 나는 그를 동경하게 되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내내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어쩌다
땅이 조금 있는 관사에 살 때면 조그만 빈터에라도 여러 가지 꽃과 채소를 심고 가꾸었다.
40여 년 전 처음시골 관사에서 살 때의 일이다.
늘 한 줌의 그가 그리웠던 나는 관사 옆으로 난 모래밭에다
분뇨와 음식 찌꺼기를 뿌려 옥토로 만들었다.
냄새가 난다고 야단치는 남편의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다.
너무 잘 자랐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끔 들여다보고 "일등 농사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관사로 들어오는 길에는 갖가지 예쁜 꽃들이 방글거리고
호박은 돌담 위에 올망졸망 달려있고,
담 밑에 키 큰 옥수수와 채소들이 한창 어우러진 7월에
남편이 대도시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4년여 정을 붙이고 가꾸던 그들과 헤어지려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만큼이나
마음이 아프고 누가 나만큼 그들을 사랑해줄까 싶어 못내 안타까웠다.
남편 퇴직 후 이사온 조그만 양옥집 옥상은 내 작은 농장이었다.
이웃에서 버린 옹기에서부터 고무 함지박, 플라스틱 통, 스티로폴 박스,
크고 작은 화분 할 것 없이 80여 개가 넘는 그릇에 담긴
수많은 그들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그가 싫어하는 비료나 농약은 한번도 써본 적이 없다.
여름철 가물 때면 물주기에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느냐? 고생하지 말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많은 교훈을 얻고 있다.
모두가 싫어하고 버리는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도 마다하지 않고 모두 감싸안으며
그것들을 좋은 거름으로 승화시켜 생명들에게 되돌려주는 그 위대함을 본받고 싶어서이다.
우울할 때나 화가 날 때나 따분할 때면 옥상에 올라가 꽃삽으로 그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다보면 나는 어느새 천사가 되어버린다.
그는 나의 스승이자 친구이다. 나는 그저 그가 한없이 좋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화학제품, 독극물로 그를 병들게 하고,
썩지 않은 갖가지 일회용품으로 그를 괴롭히며,
불필요한 건축물이나 시멘트로 그를 숨막히게 한다.
이렇게 그를 병들게 하고 괴롭히며 숨막히게 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창조주께서 모든 생명들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인 걸 왜 모르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그가 생명의 근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의 이름은 바로 '흙'이다.
신이 주신 위대한 흙의 특성들을 본받고 그를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며 다듬고
가꾸면 흙은 천년 만년 영원토록 우리들을 위해 몇 만 배를 되돌려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