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야기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2002년에 개봉했고 2015년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10부작 TV드라마로 제작하여 상영했던 작품이다. TV드라마는 보지 못했으니 영화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었고 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나온 점을 감안하면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했고 작품성도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에겐 매우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54년. 워싱턴 DC에 프리크라임이라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크라임이라는 말은 ‘범죄’라는 뜻이고, 프리는 ‘이전’이라는 말이니까, 범죄 특히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그 낌새를 미리 알아내서 차단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런데 프리크라임의 핵심은 기계가 아니라 예지자(미래의 일을 미리 알아내는 사람)라고 불리는 세 명의 소녀들이다. 십대 후반 쯤 될 것 같은 소녀들이 의식이 반쯤 마비되고 반쯤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예지활동을 한다.
소녀들의 머리는 복잡한 시스템에 연결되고 몸은 물 위에 반 정도 잠겨 있다. 예지자들은 마치 꿈을 꾸듯이 곧 일어날 범죄 상황을 예언적으로 머리 속에 그려내고 그들이 내다보는 상황은 뇌파를 통해 커다란 스크린으로 전달된다. 경찰은 스크린을 지켜보다가 범죄가 발생할 상황이 포착되면, 실제 범죄가 일어나기 직전에 현장을 덮쳐 범죄예정자를 체포한다. 그런데 이 예지 작용이 길게는 며칠, 짧게는 몇 시간 전에 일어나기에 경찰은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워싱턴 DC는 살인 사건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도시가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는 프리크라임을 지휘하는 존 앤더튼 반장으로 나온다. 사랑하는 아들을 유괴당한 아픈 경험을 안고 자신과 같은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경찰에 뛰어든 존은 프리크라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세 명의 예지자는 정확하게 살인 장면을 구현해 냈고, 스크린에 나타난 현장 모습을 통해 위치를 파악한 존은 부하 직원들과 함께 범죄현장을 덮쳐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에 완벽하게 범인을 체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어김없이 존은 프리크라임을 작동시키고 스크린을 주시한다. 화면에는 곧 일어날 살인 사건이 구현되고 있다. 누군가 총탄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데 놀랍게도 권총을 난사하는 사람은 존 자신이다. 그 기막힌 현실 앞에서 존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 프리크라임은 조금도 오차를 보이지 않는 완벽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존은 할 수 없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프리크라임을 통해서 미래의 살인자임을 확인한 경찰이 존을 그대로 놔둘 리 없다.
옛 상관인 존은 도망자가 되고 부하들은 존경하던 선배 경찰을 좇는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결투 장면이라든가 첨단 장비, 50년이 지난 미래의 교통수단에 대한 묘사, 이런 것들이 영화의 재미를 더해 주지만 여기서 자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 프리크라임의 실수라고 확신한 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찾아 나선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 보고서)는 세 명의 예지자 가운데 가끔 한 명이 다른 의견을 내 놓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프리크라임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고 아주 적은 오류의 가능성은 있지만 그 가능성을 인정하면 더 큰 범죄를 예방할 수 없기에 그 사실을 극비에 부치고 완벽한 시스템으로 위장해 왔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존은 경찰청 본부로 잠입하는데 성공해 세 명의 예지자 가운데 한 명을 납치한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고 결국 존은 살인 현장까지 내몰린다. 그런데 살인 현장에서 맞닥뜨린 범인은 바로 자기 아들을 유괴해간 파렴치범이다. 존은 순간적으로 프리크라임의 완벽성을 인정하고 그 파렴치한 살인마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예지자의 절규에 정신을 차려 경찰의 신분으로 돌아오고 억제된 감정으로 천천히 미란다의 법칙을 설명해 준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그러자 범인이 당황해서 당신이 이러면 보험금을 탈 수 없다며 존의 권총을 빼앗으려 한다. 존은 어쩔 수 없이 권총을 발사한다. 결국 존은 체포되지만 그 과정에서 무서운 음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것은, 프리크라임 자체에 결함이 있었지만 그걸 자신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경찰국장이 철저히 숨겨왔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지자는 궁지에 몰린 경찰국장이 존을 살해한다고 예지한다. 그러나 존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경찰국장을 설득한다. 결국 경찰국장은 존을 쏘는 대신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해 자살한다. 이렇게 해서 프리크라임은 폐기되고 예지자는 정상인으로 돌아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2) 소수자와 소수 의견을 존중하라
내용 설명이 좀 길었다. 내가 이 영화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낸 이유는 작품에 담겨있는 메시지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작자 필립 K. 딕의 의도는 이미 제목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소수자와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에 맞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과 현대사회에 “다수결만이 좋은 건 아니다. 소수 의견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현대인은 보편성과 다수결의 원칙에 익숙해있기에 소수자와 소수 의견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결핍되기 쉽다. 하지만 때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또는 생각하지 못하는 소수의 의견이 세상을 파멸로부터 구원하기도 한다.
히브리성서(요즘은 유대인에게 결례가 되는 표현이라 하여 ‘구약성서’라는 말 대신 ‘히브리성서’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의 예언자들은 민중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축복을 남발했던 다수의 거짓 예언자들과는 달리 평온한 듯 보이는 현실세계 저편에서 다가오는 어두운 미래를 내다보고 재난에 대비하라고 외친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수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많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폭력성과 과격성을 두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수가 그들의 폭력성에 대해 질타할 때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소수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나는 그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는 무슬림 테러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도 동성애자나 장애인, 다문화인, 탈북인 등 소수자들이 당하는 편견과 고통은 헤아릴 수없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해결을 위한 단초는 이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충분히 제공한 것 같다. 그들 소수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필립 K. 딕의 메시지를 새겨듣는 것이다.
3) 인간은 인간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살짝 감추어져 있는, 그러나 어쩌면 더욱 중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영화이야기를 젊은 그대들에게 소개하는 주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좋아한다. 평화주의자인줄 알았는데 전쟁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서 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에게서는 여타 영화감독들과 다른 무언가 특별한 점이 느껴진다. 그는 국적은 미국이지만 유대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성서, 특히 히브리성서적인 가치관이 물씬 묻어 나온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편인 <레이더스>라는 영화는 십계명을 담고 있는 법궤를 차지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을 믿고 잃어버린 법궤를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서 법궤를 차지한 독일군이 뚜껑을 여는 순간 신의 천사가 나와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을 모두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스는 눈을 감았기에 살아난다.
스필버그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는 유대교의 전설을 기초로 영화를 꾸몄다. 그가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인간은 결코 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일 게다. 당시의 최강대국인 독일과 미국이 법궤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지만 결국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에게 기다리는 것은 비참한 종말일 뿐이라는 것이 그가 영화 <레이더스>에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스필버그의 그런 외침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그가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세상에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프리크라임은 없다.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나 제도를 절대화하지 마라.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은 인간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