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의 마지막 장인 4장은 보아스가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과 마을의 장로들을 함께 불러 룻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친족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친족은 룻을 아내로 맞기를 거절합니다.
이 문제는 단지 한 미망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문의 재산문제라든가 대를 잇는 문제 같은 복잡한 문제가 함께 따라가는 것이었기에, 그 사람이 권리와 의무를 모두 포기한 것으로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게 됩니다. 13~17절을 보겠습니다.
13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인이 자기 아내가 되자, 그는 그 여인과 동침하였다. 주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주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늘 기리어지기를 바랍니다.
15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17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하였다. 그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다. 그가 바로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룻기는 원래 여기에서 끝났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덧붙은 내용이 있습니다. 18~22절입니다.
18 다음은 베레스의 계보이다.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본문은 예수님의 족보로 마태복음에 거의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룻기 이야기가, 왜 이 시점에서 역사서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룻기를 실제로 있었던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한 알렉산드리아의 디아스포라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70장로라는 지식인층의 사람들이 사사시대의 이야기니까 사사기 다음에 넣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룻기는 포로기 이후에 만들어진 성문서,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문학작품입니다.
그러면 왜 룻기의 저자는, 사사시대로부터 수백 년이나 지난 시대에 이 문학작품을 쓴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학자들의 해석에 따라 분분하지만, 저는 신명기 법전에 대한 저항으로 썼다고 생각합니다.
신명기 법전은 모세오경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모세오경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명기 법전의 중심내용이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며, 우상숭배를 너무나 싫어한 나머지 이방인과의 교류를 철저하게 차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배타적 민족주의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일신 사상과 결합하면서 더욱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신관으로 변해갔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하고, 페르시아의 민족유화정책에 따라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때가 서기전 6세기 후반에서 5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때 모세오경을 비롯해서 구약성서의 70~80%가 완성됩니다. 서기전 5세기가 지날 때까지도 완성되지 않은 책들은 거의가 유대교 기준으로 성문서들에 속한 책들입니다. 성문서들은 서기전 2~5세기 사이에 거의 다 쓰여졌다고 현대신학자들은 말합니다.
이 시기는 세상이 크게 바뀐 시대입니다. 우선 약소민족들이 대제국에 병합되어가는 시대였습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가 알렉산더 대제의 그리스에 패망하면서, 그리스가 세상을 다스리는 시대가 서기전 4세기 후반부터 서기전 2세기까지 이어집니다. 서기전 2세기부터는 잘 아시다시피 로마제국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이중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강대국은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그리스입니다.
바벨론은 유다의 지식인들을 대거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식층으로 하여금 다른 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강제로 만나게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유다 지식인들이 페르시아의 유일신종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라는 인류 최초의 유일신종교가 발흥한 곳입니다. 민족신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 고대 근동지방에 전 세계를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유일신 개념을 소개함으로써,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이스라엘의 전통 종교와 유일신사상이 결합되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페르시아는 종교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스는 군사력도 최강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선진문화를 가진 문화강대국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군 최고사령관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이고,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바로 알렉산더입니다. 그는 우월한 그리스문화를 전 세계가 함께 누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복전쟁을 시작한 것이지요.
세상이 빠르게 변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문화와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여전히 독선과 배타로 무장한 배타적 유일신 신앙만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래가지고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배타와 독선의 세상은 이미 지나갔다. 포용과 교류의 세상이 다가왔다. 이제는 우리도 이방인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배타와 독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가두면 우리는 변화된 세상에서 반드시 파멸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열린 신앙으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이스라엘 민족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다. 전 세계를 창조하시고,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다. 그런 분이 어찌 한 민족만 사랑하시겠는가? 그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독하는 것이다. 그분의 역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는 것이다. 제발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아라. 이웃민족을 향한 배타심을 버리고 함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자!
이런 생각을 마침내 글로 옮긴 선각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선각자가 바로 요나서의 저자입니다. 룻기도 요나서와 같은 시각을 가진 선각자의 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가 썼는지 그 이름은 남아있지 않지만, 시기에 대해서도 어느 시점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포로기 이후에 신명기 법전에 대한 저항으로 쓰여진 문학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성문서 중에도 신명기 법전의 철학을 따르는 문서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책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 13장 23~25절을 보겠습니다.
23 그 때에 내가 또 보니, 유다 남자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을 데려와서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절반이 아스돗 말이나 다른 나라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였다.
25 나는 그 아버지들을 나무라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단을 치고, 그들 가운데 몇몇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였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두고서 맹세하게 하였다. "너희는 너희 딸들을 이방 사람의 아들에게 주지 말아라. 너희와 너희 아들들도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데려와서는 안 된다.
느헤미야서의 기록자는 이방인과의 교류를 철저히 차단하고 신명기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러나 룻기의 저자는 이런 배타와 독선으로 무장한 국수주의로는 다원화된 세상에서 생존의 길이 아니라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토록 싫어하는 이웃 민족 중에서 모압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글을 쓴 것입니다. 이렇게 착하고, 이렇게 순수하고,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도 이렇게 깊은데, 그런데도 신명기 법전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배척해야 하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룻기 원본의 마지막 두 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16~17절입니다.
16 나오미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17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하였다. 그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다. 그가 바로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룻기가 완성되고 얼마 후, 누군가 이 위대한 설화의 메시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없었던 4장 종반부가 첨부된 것입니다. 그 부분을 다시 보겠습니다. 18~22절입니다.
18 다음은 베레스의 계보이다.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이방 여인인 룻이 바로 너희들이 그토록 존경해마지 않는 다윗의 증조할머니였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 기록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복음서 첫 장에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