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2: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욥이 끝까지 자신의 지난날을 밝히면서 아무 죄도 없는
바르게 산 사람이라고 끝까지 우기니까 세 사람이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깨닫지를 못하니.
욥은 얼마나 자신의 기준에 의해 철저하게 세상에서
칭찬 받는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고 여기는지 전혀
죄를 찾지 못하고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자신한다.
이때는 세상 적으로는 '무법시대'라 어떤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범죄'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자기가 법이었다. 자기 주먹이 법이었다.
재력이 뛰어난 자가 왕권을 행사했고,
힘도 세고 전쟁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자가
왕권을 행사할 때였다.
누가 그를 터치를 못했다.
창조주께서 마음을 바꾸시기 전에는.
그런 권한을 주신 분도 창조주 신이셨다.
그 왕권을 행사하던 사람이 그동안 떵떵거리고
잘 살았고 사람들을 죽이기도 해가면서 부려가면서
잘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닥을 치게 되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었다.
자기 위에 자기를 계산하시고 계시는
신이 계시다는 것을 몰랐다.
(에베소서 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런 말도 이제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나 아는 것이지
성경이 없던 시절이나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자기
마음대로 살았겠지. 성경도 안믿으면 그만이고.
신께서 죄로 정하시는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랐던 것이다.
주께서는 "너는 참 정직하구나"
"너는 참 성실하구나"
"너는 참 진실하구나"
“너는 참 착하구나”
"너는 참 속과 겉이 같구나"
"너는 참 구제와 선행에 뛰어나구나"
"너는 참 마음이 바르구나"
"너희 둘 중에 너는 의인이고 너는 악인이구나"
“너의 눈길이 바르구나”
“너의 느낌이 바르구나”
“네가 사랑하는 것은 진심이구나”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더라도,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법도에 바른 사람을 '의인' 이라고 하신다.
창조주의 계산법에 바른 사람을 ‘의인’ 이라고 하신다.
네가 착하고 정의롭냐, 네가 심뽀가 못 됐고 나쁘냐.
거기다가 속 심령의 깊은 곳까지 꿰뚤으시니 사람의
속마음을 안 들키는 것이 없다.
우리가 볼 때나 ‘선민’ 이고 ‘이방인’ 이고
하는 것이지 신께서 보실 때는 다 주의 백성들이다.
주께서 악인이라고 하시는 관점과 의인이라고 하시는
관점과 사람이 생각하는 악인과 의인과의 관점은
많이 다르시다.
창조주께서 생각하시는 죽어 마땅한 죄와
사람이 생각하는 죽어 마땅한 죄는 같을
수도 있지만 많이 다를 수도 있다.
■(욥 32:2)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성경에서 인물을 설명할 때에 가문부터 말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집안임을 의미한다.
족보를 따지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랑 비슷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양반가문으로 뼈대있는 집안인 것이다.
또한 엘리후가 ‘람’ 종족이라고 하는데
'람 종족'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 중 야곱,
야곱의 아들 유다의 아들 베레스의
아들 헤스론의 아들 '람 1'이나
헤스론의 아들 여라므엘의 아들 '람 2'이 있다.
어떤 '람'이 맞는 람인지 모른다.
성경에서 람 종족 중 '부스' '바라겔' 이름을
찾기는 힘들다.
(창세기 22:20~2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인터넷에서 누구는 말하기를
‘부스’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이라는데
그렇게 되면 람족하고 족보가 안 맞는다.
여기서의 부스는 '람 종족'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저러나 엘리후는 지금의 말로 하면
유대인이다.
욥이 아프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나보다.
타인이 나를 ‘의로운 사람’ 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당장 주께 커다란 징계를 받고 있는 욥 자신 스스로가
자신은 의인이라고 하니 그러면 지금 이 징계는 무엇이냐
이 말이다.
신이 잘 못 계산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나이 어린 사람이라고 해도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대화를 할때 엘리후가 등장한 것인지
그 전에 등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처음엔
세사람이 모여서 대화하던 것이 어느새
네 사람이 되었다.
■(욥 32:3)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엘리후가 세 사람에게도 화를 냈는데
욥의 말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대답도
대답도 못하면서 계속 욥만 정죄하고
있었다고.
■(욥 32:4)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어느 대화 중에 엘리후가 끼게 되었는데 그 중에
나이가 어렸나보다. 함부로 중간에 말 끊고 끼기
뭐해서 계속 참고 기다렸다.
■(욥 32:5)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의 대화에 끼면
“어디 어른들 이야기하는 곳에 끼느냐?”고
혼나는게 생활문화였던 때라 엘리후가 갑자기
말을 하면서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이 유구무언이자 더 힘을 얻어
계속 뭐라고 하고 있다.
■(욥 32: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앞에서 족보를 말했는데 지금 또 말하고 있다.
상당히 중요한 사람인가 보다.
엘리후가 하는 얘기를 욥기에서 5장씩이나 할애한다.
많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들이 이야기 하는 자리에
끼는 것이 실례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풍습이 있다.
나름 엘리후도 학자인 것 같다.
창조주에 대해서 연구하는.
그리고 창조주께서 감동을 주셔서
그들에게 말을 하게 하신다.
■(욥 32:7)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세 어르신이 그래도 나이도 있고 연륜도 있고
경험도 있고 지혜도 있으니 욥에게 잘 가르쳐
줄 것이라 기대했다.
■(욥 32: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하지만 나이가 많으나 어리나 창조주의 영이
계시므로 각 사람에게 주께서 깨달음을 주신다.
■(욥 32:9)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어른이라고 다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노인이라고 다 정의를 깨닫는 것도 아니다.
주께서 깨달음을 주실 때는 꼭 높은 사람부터나
꼭 나이가 많은 순서로 하시는 것이 아니다.
■(욥 32: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나도 이제 내 의견을 말할테니 잘 들어보시오.
■(욥 32:11)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엘리후가 얼마나 나이가 어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신 관련 공부를 한 사람에 속한다.
세 어르신들이 욥을 향하여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니
나이 어린 사람이 끼어들 수는 없고 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나 하고 어르신들이 말하는 것만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욥 32:12)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세 어르신이 아무리 욥의 잘 못 산 것을 추궁해도
욥이 끝까지 자기는 잘 못 산것이 없다고 눈을
부라리고 주장하는데도 그를 설득시킬만한 말을
하지 못했다.
■(욥 32:13)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욥이 어떻게 자랐으며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알지만 욥을 추궁할 분은 신이시라고만
하지 말라.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느끼고, 어떤 앙심을 품고,
어떤 상처를 입고, 어떤 판단들을 하는지,
어떤 정죄를 하는지도 상관이 있는 것이다.
■(욥 32:14) "그가 내게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욥과 내가 대화한 것도 아니고 어르신들 하고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나의 생각을 말하겠소.
세 어르신의 말을 인용해서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욥 32:15)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었더라"
그동안 세 어르신이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도 없고
지치기도 했는데 어린 엘리후가 이젠 자기가 자기
의견을 말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나서니
"어디 어른이 하는 말에 애들이 끼냐!"
라고 말을 못했다.
■(욥 32:16) "당신들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
욥이 자기가 의롭다고, 젊었을때부터 의롭게
살아왔다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나니 세 어르신이
할 말을 잃고 그에 답변도 못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나보다. 이때 엘리후가 끼어든 것이다.
■(욥 32:17)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나도 내 직분도 있고 내가 느낀 대로
내 생각을 말하겠다.
■(욥 32:18)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내 속에 할말이 얼마나 많은지 말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욥 32:19)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속이 터지는지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욥 32:20)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아주 답답해서 내 속이 다 터질 지경이다.
■(욥 32:21)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다.
■(욥 32:22)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
엘리후는 자기가 누구에게 아첨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므로 여기 있는 4명에게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한다.
아첨하는 말이면 당장 죽어도 괜찮다.
그 정도로 당당하게 살았다는 것은
욥에게 어떤 도움을 얻으려고 손을 비빈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