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은 둘이 아닌 하나다
집, 즉 공간은 삶을 담는 그릇과 같다. 사람은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쉰다. 혼자서 책을 보고 가족과 어울려 노는,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을 위한 자리라 하겠다. 쉼과 안정을 주는 정신적 휴식터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사는 터에 따라 집의 모양새는 모두 달랐지만 말이다. 옛사람들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아파트를 상상하지 못했을 테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허리를 구부리고 불을 때서 방을 데우는 방식을 놀라움으로 바라본다. 집이란 공간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같을지라도 이렇듯 물이 흐르듯 제 모습을 진화시켜 간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건축가 김부곤 소장은 빠르게 걷는 현대인들의 삶의 코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집을 찾아보자 한다. 최근 몇 년간 세상 사람들은 웰빙이니 자연주의니 하는 커다란 화두에 매달리고 있다.
“자연과 사람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집 안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연 속에서 생겨났거든요.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집을 짓죠. 집이란 결국 자연이 가진 자원을 소모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집은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일상 생활의 방식은 물론이고, 습관, 정서까지도요. 중요한 포인트는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고,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서로 맞물려 조화를 이뤄 내면서 그렇게 또 하나의 자연을 형성하니까요.”
김부곤 소장은 자연과 집과 사람이 한몸처럼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이 생기고 삶의 질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건축 역시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 지극히 자연 친화적인 본성을 가진 사람이란 존재가 그 안에서 최대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자연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일이다. 김부곤 소장은 오리엔탈리즘에 눈을 돌려 보라고 말한다.
21세기 이후 세계 건축은 오리엔탈리즘에 집중한다
서구 중심적이던 문화의 큰 흐름이 동양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물질적이고 인식론 중심적인 서구 문화는 그 동안 전세계를 이끄는 질서와도 같았지만,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인정한다. 더 크고 포괄적인 무엇인가를 담기 위해 동양의 정신적이고 존재론적인 사고, 관계 중심의 사상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한다.
김부곤 소장은 건축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서양 건축은 자연에 대해 도전적이고 폐쇄적이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동양의 건축은 어떤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고 그 중심에 사람을 둔다. 자연과 공간, 자연과 사람, 공간과 사람이 서로 관계 지어진다. 거기에서 완전에 가까운 삶,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경험하며, 막힘없이 서로 소통하게 한다. 그가 오랫동안 고집하고 있는 작업 철학과 일맥 상통한다.
“동양 건축 중에서도 저는 우리 나라의 전통 공간을 들여다보면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과 중국의 건축이 인위적이고 과장된 것에 비하면 우리 나라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인정하고 있지요. 예를 들자면 식물을 잘라 멋진 분재를 만들어서 눈앞에 가져다 두는 대신, 우리 나라의 공간은 문을 열면 산이 한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죠. 사람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지 않습니다. 열린 구조라 문을 닫아도 빛이 들어옵니다. 기침으로 소통을 하지요.”
지금 우리의 집을 떠올려 본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서구적인 양식의 집에서 살고 있다. 대표적인 집, 아파트는 효율성을 따진 형태이다. 많은 사람들을 살게 하기 위해서 울창한 산을 깎아내리고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획일화된 구조로 만들었다. 좁은 땅에 촘촘히 지어진 아파트 숲에서는 소통 대신 단절을 얻었고, 편안한 자연의 품은 사라졌다. 앞서 얘기했듯이 김부곤 소장은 사람이 타고난 감성 자체가 자연 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이면 자연을 찾아 떠나는 무수한 행렬이, 모두들 입을 맞춘 듯 노후에는 멋진 풍경이 펼쳐진 전원 주택에 살고 싶다고 꿈꾸는 이유가 바로 그런 증거가 된다. 자연을 좋아한다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면 그 마음을 실천하는 일이 남겨진 셈이다.
이제 그가 지은 책 제목처럼 자연으로 집을 지어 볼 차례이다. 인식이 바뀌면서 우리 나라에도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김부곤 소장 역시 주거 공간이든 상업 공간이든 동양 건축이 갖는 장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적용시키려고 한다. 코어핸즈의 대표인 그는 3년 전 종로구 평창동에 사옥 겸 집이기도 한 ‘At The Morn’을 지었다. 아름다운 조망을 위해 강남에서 짐을 꾸려 찾아갔다는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빛’ 속에 살고 있다. 큰 창으로 스며든 햇살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공간 안을 비춘다. 중정의 콘크리트로 만든 물결 모양 캔버스를 통해 빛이 그려 내는 창문 모양을, 바깥 정원에 심어진 나무의 실루엣을 감상할 수 있다. 간결한 인테리어 스타일에서도 힌트를 얻어 본다. 자연을 가장 잘 담아내는 스타일은 ‘젠(禪)’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서재 공간에 자리한 오래된 좌탁은 땅과 비슷한 높이를 느끼게 한다. 편안함을 주는 브라운 컬러의 가구들, 학독을 이용한 오브제…. 절제된 공간에서는 고요한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At The Morn의 사례는 사람들이 실천해 갈 방법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자연을 정형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자연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집을 어떻게 가꿔 나갈지 흐름의 방향을 제시할 기준이 된다고 김부곤 소장은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