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terday
난 벽조목이다. 벼락 벽(霹), 대추 조(棗), 나무 목(木), 즉 번개 맞은 대추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 여름, 오래전 마을마다 벽조목이 탄생하기도 했었다. 잘 구워진 검붉은 속살은 마른 피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여름마다 천둥소리와 벼락은 다음날 전설을 몰고 왔다. 모든 것들이 이성으로 설명이 되는 삶이 행복할까? 반문도 해본다..
삶에서 벼락을 맞음으로 명품으로 탄생하는 순간이 있다. 살짝 타서 어두운 부분은 가마살을 닮았다. 비싸기로 유명한 자연산 참치의 1.7% 정도에 해당하는 최고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맛을 지닌 부분이다.
애리조나 사막을 건너기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생명의 음식인 잘 말린 육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색깔이 어둡고 탁해 보인다. 고가 명품이다. 벼락 맞은 주술적인 것들이 좋다. 미사여구 (美辭麗句)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오늘 하루,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고 번개 맞고 싶은 여름밤이다. 서명(Signature, 시그니처)이라는 서양문물에 자리를 빼앗기기 전 벼락 맞은 대추나무 도장은 재물을 상징해서 부적처럼 귀히 여겨졌다. 삶에서 벼락 맞은 날, 나에겐 더 이상의 기쁨도 슬픔도 없다.
지하 슈퍼에서 5천 원 주고 현란한 땡땡이 몸뻬를 사서 입었다. 남편이 참 잘 어울린다고 극찬을 했다.
" 뭔가 말 못 할 사연 있어 보이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배우 김부선 닮았네."
내 생에 이런 극강의 외모 칭찬은 처음이다. 여름엔 헐렁한 것들에게 마음 주고 싶어 진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서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나도 그녀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아! 그리운 완서 언니! "이젠 배 째" 이런 마인드였던 것 같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내가 내 목을 조르는 버마 뱀처럼 질식사할 것 같은 밤이다. 정신과 약을 먹었으니 이제 곧 잠으로 빠져들 것이다. 삶을 도둑맞을 것이다. 날마다 나와 다른 나와 나와 같을 것 같은 나와 싸운다. 남편이 멀리서 뒷모습을 보고 저 작은 머리통엔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했다고 했다. 넌 왜 사는 거니? 나도 궁금했다. 호두만 한 뇌가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해외출장 갔다 오는 길에 "무심코 네 이름이 있어서 사 왔다."
우리는 서로를 응원한다. 사랑하기보다는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아내가 죽어가는 남자를 만났다. 사실 난 초로의 그의 얼굴에서 아내의 죽음보다는 그의 죽음이 더 잘 보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친구"라고 했다. 8월의 덥고 지친 날, 난 두 명의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난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영혼까지 타버렸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평생을 불안에 떠는 내가 그를 응원할 자신은 더욱 없다. 내 불행한 이야기만 했다. 이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큰 슬픔에는 위로가 독이 된다.
나의 친구와 나는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신세계에 함께 온 것이다. 둘이 사이좋게 잘 살려면 입안의 혀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있어야 한다. 보이는 대로 말하면 안 된다. 불에 탄 불상처럼 타들어가도 참아야 한다. 8월의 어둠은 차가운 에어컨이 냉기를 뿜는 시체실에 놓인 기분을 만들어낸다. 날마다 사그라드는 불빛을 보고 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