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 매운탕
김 국 자
위층에 사는 율이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 남편이 민물낚시를 다녀왔는데 처치곤란이라면서 “붕어 매운탕 끓일 줄 아세요?” 하고 묻는다. 날씨도 더운데 일거리를 늘리는 것 같아 망설이다가 “매운탕 못 끓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고 쏘아붙였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알았어 용~” 경쾌하게 콧소리를 낸 율이 엄마가 양동이를 들고 쏜살같이 내려왔다.
양동이에는 어른 손바닥 길이보다 더 긴 붕어들이 열두 마리가 들어있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큰 붕어는 처음 본다. 두 마리는 비스듬히 뉘여 있고 나머지 붕어들은 까무스름한 지느러미를 뾰족이 세우고 꼬리를 살랑거린다. 살아있는 물고기의 등장으로 삭막하던 우리 집 베란다에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좋아할 아이들 표정을 상상하며 손질을 미루었다. 그런데 비스듬히 누워있는 두 마리의 붕어가 눈에 거슬렀다. ‘저것들을 어떡하나? 건져버릴까?’ 크고 도톰한 붕어를 버리기가 아까워 도마 위에 올렸다.
뻐끔거리는 입에 시선이 닿자 마음이 약해졌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아 차마 칼을 댈 수가 없었다. “알았다. 대신 오래 살아야 돼!” 손바닥으로 받쳐가며 조심조심 양동이에 넣어주었다. 살려주어 고맙다는 듯 지느러미를 나풀거렸다.
나의 배려를 저버린 두 마리의 붕어는 한 시간도 못 되어 둥실 떠올랐다. 회생할 가망이 보이지 않아 다시 도마 위로 올려졌다. 빈틈없이 콕콕 박힌 비늘 때문에 칼을 넣기가 쉽지 않았다. 얇디얇은 비늘이건만 갑옷을 두른 것처럼 단단했다. 항아리뚜껑에 칼을 쓱쓱 문지른 다음 비늘의 반대방향으로 칼날을 뉘였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비늘에서 은빛 광채가 흘렀다.
생명이 남아있는 물고기를 손질하면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무슨 음식이든 싱싱한 재료라야 맛이 있다. 특히 민물매운탕은 싱싱한 물고기라야 한다. 비린내 풍기는 손을 씻으며 양동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멀쩡하던 두 마리의 붕어가 또 할딱거렸다. ‘쯧쯧쯧! 너희들도 오래 가긴 틀렸어’ 방금했던 경험으로 능숙하게 처리했다.
어디 보자. 요놈들은 또 어떡하고 있나? 왜 이렇게 조용하지? 양동이 안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던 붕어들이 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모으고 있었다. ‘잘못하면 쟤네들처럼 죽는단 말이야! 조심해야 돼!’ 마치 작전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래, 알았어!’ 응답하는 듯 모두 꼬리지느러미를 나풀거렸다.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건재하길 바라며 ‘어떡하면 오래 살 수 있을까?’ 궁리했다. 시원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양동이 물을 쏟아버리고 수도꼭지를 확 틀었다. 물을 갈아주고 채반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더니 요란스럽게 텀버덩거렸다. 기분 좋다는 뜻으로 알고 시장에 다녀왔다.
돌아오자마자 붕어부터 문안했더니 모두 둥실 떠올라 입만 오물거렸다. 내 딴엔 잘한답시고 서비스한 건데 빨리 죽어달라고 고사를 지낸 셈이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손질을 끝냈다. 커다란 냄비에 붕어를 넣고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듬뿍 풀었다. 매콤한 풋고추 뚝뚝 분질러 넣고 파 마늘 생강 양파를 고루 넣었다. 얼큰한 매운탕냄새가 진동했다.
붕어매운탕은 아버지가 가르쳐주셨다. 아버지는 식도락가로 음식 만드는 걸 즐기셨다. 친정 집 앞으로 냇물이 흐른다. 가까운 거리에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 있다. 그 곳에는 물고기들이 많았다. 직접 잡아온 장어를 양념장을 발라 굽기도 하고, 인삼을 넣고 고아 주시던 아버지. 장어 다루는 솜씨도 좋았지만, 그보다 붕어매운탕 끓이는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민물매운탕은 설렁설렁 대충 끓이면 맛이 없다, 뼈가 물렁하도록 푹 끓여야 제 맛을 낸다. 양념을 아끼지 말아야하고 고춧가루보다 고추장을 듬뿍 풀어야 맛이 어우러지고 칼칼하다. 깻잎을 넣는 것도 수제비를 얇게 띄우는 것 모두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셨다.
‘이런 음식은 여럿이 먹어야 맛있는 법이여.’하며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이웃부터 부르시던 아버지처럼 나도 동네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깔깔거리는 이웃들과 매운탕을 먹으며 아버지와 함께 붕어매운탕 끓이던 추억을 건져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