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문이 산소가 너무 멀어서 아프기 전에도 두어 번 갔었는데, 그런 까닭에 산소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기억마저 가물가물 했다.
이래서 오래전부터 가족장을 만들자, 수목장으로 하자느니 여러 의견들이 있어왔다는 게 이번에 또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매번 큰아버지 아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했다.
그 반대의 의견은 집안에 우환이 있어 더 큰 우환이 닥치면 안 된다는 대충 그런 얘기로 무산되었지 싶다.
그러다가 사정이야 어쨌든 반대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버지께서 총대를 매고 나섰다.
이번 기회에 수목장이든 가족묘지든 하자는 것이었다.
이장 관련 일체의 경제적 비용도 작은 아버지께서 책임질 것이고, 집안의 우환도 우환이지만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작은 아버지나 내 또한 병고가 있어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이야 조금이나마 여력이 있어 벌초는 한다지만, 때를 놓치면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작은 아버지 입장에서는 할머니, 어머니 산소를 보면, 차마 눈뜨고 볼수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살아있을 때 마무리 정리 차원으로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할 말로 고향을 지키고 있는 내마저 저세상으로 가버리면 벌초는 고사하고 조상묘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아울러 산소를 자손들이 찾는다 해도 너무 멀고 흩어져 있다 보니 경제적 부담도 여의치 않고 불편만 더할 거라는 것이었다.
대충 이렇게 보면 내 생각도 작은 아버지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장손의 고충도 어느 정도 헤아릴 필요도 있지만, 이번에는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낫다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작은 아버지와 내가 제주시 연동 수목장에 갔었다.
보는순간 시야가 탁 트인 것이 너무나 좋았다.
예전에도 한두번 오긴 했지만 직접 모시는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너무도 달랐다.
차제에 거기 직원과 대화를 하고 내년에 이장하는 쪽으로 사전 계획하고 내려왔다.
때마침 태풍 마이삭은 마을이나 농경지도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이번 태풍이 무섭긴 무서운 것 같았다.
우리 집도 피해는 예외는 아니었지만 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동거문이 산소를 찾아가야 할 텐데 걱정부터 앞섰다.
자신감이 부족한 내게는 신세타령이랑 농노가 엉망인데 갈수 있을까 근심부터 앞섰다.
다음날 중무장으로 채비하고 동거문이 산소를 향해 출발했다.
그전에 없던 초초함과 두려움까지 두 배는 더 되었다.
아프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발하기 전 작은 어머니가 찍어 놓은 사진을 참고 하면서 그래도 되겠지 심정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한참이나 지난 뒤 송당리 높은 오름 외진 곳에 주차를 하고 동거문이 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을 선택했다.
온통 길바닥은 엉망으로 변했고, 부러진 나무들, 돌과 흙덩어리, 물웅덩이도 너무 많았다.
상황이 말이 아니었고 심지어 갈 수 있을지 걱정 반 근심 반이었다.
또한 신발은 장화까지 신었는데도 웅덩이 물은 무릎까지 튀어 올라왔고 질퍽거려 산행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나마 얼마 지나지 않아 시멘트 포장도로 나와서 조금은 괜찮았다.
다행이 태풍 끝난 뒤라 날씨는 구름과 바람이 섞여서 운 좋게 산행할 수 있었다.
출발한지 대략 8분정도 지나자 철문이 내 앞에 나타났다.
철문의 표지판에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탐방객들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마들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다행히 잠긴 상태는 낡고 헐렁하게 묶여 있어서 쉽게 풀고 진입할 수 있었다.
철문을 통과하자마자 조그마한 샛길을 선택했다.
그만큼 시간이 절약될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고, 산소를 빨리 확인해야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그렇지만 샛길에는 우마들의 왕래가 빈번했는지 배설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냄새도 고약했고, 군데군데 똥무더기가 널려 있어 불편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찾고자 마음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선 산소 가장자리에 술병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았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숨겨놓으라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마치 예견이나 하듯 산소 앞에 비석도 없고, 돌담도 없고 무덤만 있으니 혹시 산소가 어딘지 모를 경우 찾기 위한 방편의 조치였다.
아니 작은 어머니도 그 옛날 이렇게 될 줄 미리 아시고 사진을 찍으셨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그 조치들이 실감 또 실감났다.
그렇지만 대충 이 위치가 맞긴 한데 그래도 어딘지 께름칙했다.
그런데다가 예전에 알던 초지가 나무숲으로 변해선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찾기는 여간 힘들었다.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변해 있었다.
그렇지만 옛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오르고 또 오르고 여러 번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덤불 숲 속에서 꿩이랑 노루가 뛰어나와 놀라긴 했지만, 시원한 공기 탓인가? 기분만은 상쾌하고 좋았다.
아마 산소의 위치만 정확히 알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도 언뜻 했었다.
예전에 어머니 말씀을 새겨들었다면 이 고생은 하지 않았겠지 싶었다.
옛날 사진과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오르락내리락 하길 여러 번,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드디어 산소를 찾게 되었다.
우선은 먼저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농사철이라 전화는 받지 않았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산소를 내려오기 전 먼저 사진을 찍고 카톡으로 몇 장 보냈다.
그래야 작은 아버지, 누나 매형에게 맞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참 지나서 작은 아버지,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먼저 작은 아버지는 고생했는 얘기부터 꺼내셨다. 그리고 누나는 매형이 그곳 지형을 잘 알고 있고 산소도 잘 안다고 위로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와아울러 확인차 이번엔 가보자고 얘기를 덧붙여 주었다.
몇 주 지나서 동거문이 다시 찾았다.
다 같이 찾으니 산행은 한결 가벼워졌다.
게다가 자동차로 내가 가르치는 방향으로 진입하니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산소를 보자마자 맞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예전에 비해 나무 숲이 너무 자라서 그렇지만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그게 아닌지 확신할 수 없을 땐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누나와 매형까지 직접 보고 확인하고 나니 모든 것이 풀리는 듯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번에 산행을 하면서 방심했던 내게, 흔한 얘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옛날 속담이 맞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뜨끔했다.
게다가 얼렁뚱땅 조심성이 없는 내게는 당연히 누렸던 그 흔한 기억들마저 없는지 점검하고 살펴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