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성도
예레미야 15:15-18 2009.12.13.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16절)
사람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대개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십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안 바꾸고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음이지만, 기왕에 이름을 바꾸려면 조심해서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바꾸어 놓고 그 이름값을 못하면 안 바꿈 만 못합니다.
제 이름은 제 아버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達相이였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려고 호적을 떼어 보았더니 뜬금없이 達雄이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족보에는 相자 돌림인데 왜 제 아버님은 이름을 엉뚱하게 바꾸어 놓으셨을까. 많이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살다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상하게 생활비가 ‘달랑달랑’합니다. 제 아내가 그럽니다. ‘당신 이름 때문에 생활비가 달랑달랑한다.’고. 심지어 제가 지금까지 해온 목회도 적자는 아니지만 항상 달랑달랑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제가 기도를 쉬지 않거든요.
저도 한때는 이름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송 다윗 목사’ ‘송 바울 목사’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제가 용기가 없어서 이름을 못 바꾸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름을 바꾼 분들이 여럿이 계십니다. 저는 나쁘다고는 안 합니다. 그러나 부탁 하건데 그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2010년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제직을 임명을 했습니다. 제직에게는 항존직으로 부르는 이름이 있고 임시직으로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명한 것이니 성직으로서의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대강절 셋째 주일이자 성서주일입니다.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말씀에 순종하자는 취지에서 지켜지는 교회의 절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예배를 시작하면서 제단에 성도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에 말씀의 빛을 비취는 촛불을 밝혔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성도의 심령과 가정에 밝게 빛나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용할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말씀을 생활화하고 실천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이 날로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뭐라고 부릅니까? ‘김 아무개, 이 아무개, 박 아무개’ 하며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겠지요. 또는 ‘누구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혹은 ‘누구의 자식’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름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름값을 못하면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욕을 돌리는 것이고, 자식에게 부끄러운 것입니다. 잘 못 살고 이름값을 못하면 ‘아무개 자식이 저래!’ ‘아무개 애비 엄니가 저래!’하고 비난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부르십니까? ‘그야 뭐 그냥 ‘나지’ 뭐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있는가?’ 예, 철없는 질문 같아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을 부르는 특별한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聖徒’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거룩한 무리’ 라는 뜻입니다.
누가 거룩합니까? 세상에 거룩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聖徒가 된 것입니다. 그냥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주님과 신령한 관계로 한 몸이 된 사람을 聖徒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육신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배운 것도 많지 않고 지위나 명예도 권세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잘 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의 백성이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른바 성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들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거룩한 존재들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름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그 이름값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자신의 이름과 직분에 걸 맞는 역할과 생활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도인데, 과연 성도의 이름값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사인데, 과연 집사의 이름값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권사인데, 권사의 이름값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장로인데, 장로의 이름값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저 자신에게도 엄중히 묻습니다.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목사인데, 너는 목사의 이름값을 하고 있느냐?’ 저는 솔직히 이름값을 하느냐고 묻고 있는 저 자신이 심히 부끄럽습니다. 지금 이 시간, 성도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아무 흠이 없고 떳떳하고 자랑스럽습니까?
우리가 이름은 그럴듯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왜 그 이름값을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영혼이 건강해져서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영혼이 믿음으로 건강해져야 성도답게, 성직을 맡은 직분 자답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성서주일에 말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으시고 말씀으로 영혼과 생활이 건강해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다 같이 읽으십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네, 감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고 말합니다. ‘얻어먹었다’는 표현이 좀 비굴하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말씀”은 선지자나 설교자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공급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그리워하면서 수시로 주시는 말씀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달게 먹어야 잘 자라나는 것처럼, 성도는 말씀의 굶주린 심령으로 말씀의 젖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속사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와야 말씀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대학교에 다닐 때 기숙사에서 잠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기숙사의 식당은 식사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다가도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면 빨리 달려가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먹 거리가 풍부하지 못해서 한 번 식사시간을 놓치면 다음 식사시간까지 쫄쫄 굶어야 합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에 몰두하다가 깜빡하는 사이에 식사시간을 놓치고 배고파서 혼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 주머니에는 항상 여유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말씀을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말씀을 얻어먹고 싶은 성도는 그 시간에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 시간이 언제입니까? 성도 여러분이 모른 바가 아닙니다마는 하도 그 시간을 빼먹는 성도가 많아서 제가 친절하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매일 새벽 5시입니다. 주일 낮 11시입니다. 그리고 오후 1시 30분, 수요일 저녁 7시입니다. 영의 양식으로 매일 말씀이 베풀어집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말씀식사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육신을 위해서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하시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 일주일에 세 번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저는 종종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육신을 위해서는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꼬박꼬박 찾아 처먹으면서도, (미안합니다. 처먹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욕이 아닙니다. 말씀도 갈급한 영혼으로 처먹어야 영혼이 살이 찝니다.) 영혼을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 끼만 먹고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주일동안 혹은 몇 주간 동안 말씀을 아예 한 끼도 안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무슨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런 교인은 사실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미 죽은 영혼입니다. 육신은 살았다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죽은 영혼이 살았다고 돌아다니니 그에게서 썩은 송장냄새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의 이름 값, 직분자의 이름값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믿는다는 이름만 가지고 사실상 영혼이 죽어있으니, 그 심령들이 주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비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영혼이 삽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영혼이 힘을 얻습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능력을 받습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모든 시험을 이깁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영혼이 성장합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은혜생활을 합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승리합니다. 말씀을 얻어먹어야 축복을 받습니다. 말씀은 일주일에 세 번만이 아니라 날마다 새벽제단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얻어먹을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시때때로 얻어먹어 영혼과 생활이 건강해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6절 말씀에서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산해진미가 입은 즐겁게 할지 몰라도, 영혼에는 기쁨이 안 되고 마음에는 즐거움이 될 수 없습니다. 고급와인이나 포도주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혼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영혼을 기쁘게 하고 성도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9) 말씀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옛 성도의 고백입니다.
다 같이 눈을 감으시고 오늘의 말씀을 묵상합시다. 사람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이름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성도도 성도의 이름값을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한 일이 교회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로서의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말씀을 얻어먹고 믿음이 건강해져야 합니다. 믿음이 건강한 성도가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섬길 줄 압니다. 믿음이 건강한 성도가 좋은 교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시간, 시간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얻어먹고 믿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이나 육신의 기쁨과 즐거움은 잠시 잠간입니다. 순간적이요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한 것입니다. 말씀의 기쁨은 나의 삶을 활기차게 합니다. 나에게 능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나로 하여금 때마다 일마다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도가 되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날로 자라나 영혼의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을 영원히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송달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