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루터교 교단 회보를 읽다가 공감이 가는 글이라 퍼 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보수적 개신교(다분히 미국적인)의 문화와 요소, 분위기들을
닮아가는 우리 대한성공회의 실정을 생각해 볼 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되어 다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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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한국루터회 2003 년 12 월호 회보 ▶
[한국 루터교회의 정체성]
김경현 (캐나다 거주)
근래에 들어서 한국 루터교회의 홈페이지에, 한국루터교회의 갈 길과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갑론을박이 있는것을 보고, 이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아닌가해서 미흡하고 외람되나마 펜을 들었습니다.
적지않은 분들이 지적하시기를, 한국 루터교회는
장로교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주장은 장로교적 색채를 버리고, 루터교 정통주의적인 모습을 회복 하자는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보다 루터교 정통주의적인 예배의식으로 복귀, 장로교식 용어 폐기, 성직자의 호칭변경 등을 제안 하였습니다.
첫째,
루터교 정통주의적인 예배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입니다. 루터교회의 정통적인 예배의식이라면, 말틴 루터 박사님의 German Mass 가 가장 좋은
본보기일 것입니다. 이 German Mass를 살펴보면, “미사”라는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고, 기존의 미사의 기본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인에게 구하는 기도, 죽은자를 위한 기도 등만이 삭제되고, 그 외에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한 Elevation
(거양성체), 거양성체시 종을 울리는 것, 거양성체 후 Genuflection(오른쪽 무릎을 굽히고 성체를 향해 경의를 표하는 것), 집전자의
제의 (chasuble) 착용, 향불 사용(이건 선택사항입니다.) 등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둘째, 장로교식 용어의 사용입니다.
그 예로, 교역자(교회에서 일하는 사람), 목사안수(그저 단순히 손을 얹는다는 의미입니다), 당회장(장로들로 구성된 당회의 “장”),
성찬식(일반 개신교는 단순한 기념으로 보기에 성찬예식이며, 그 줄임말입니다.), 성령충만 등입니다. 루터교회에는 거룩한 성직의 직무(The
Office of the Holy Ministry)를 위해서, 성별되고(consecrated), 이를 위임받아서 집행하는 분명한 성직자의 구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아우그스부르크” 신앙 고백과 그 변증서에서도 분명히 말하기를, 이를 위해 특별히 부름받고, 서품받은
성직자가 아니면, 설교와 성사를 시행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많은 개신교회들은 평신도와 성직자의 구분 자체를 만인사제설에 위배
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교리” 때문에, “평신도”와 “성직자”라는 용어 자체를 싫어 합니다. 그래서 “교역자”나 “목회자”라는 말을 널리
씁니다. 이런 차원에서 그들은 “성직수임식” 또는 “성직서품식”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손을 얹는다는 뜻의 “목사안수”라는 말을 씁니다.
또한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 변증서(13조 9절/ 14조 2절)에 보면, “우리의 사제들은…”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나옵니다. 영어판
신앙고백서에도 “Priest”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유럽의 루터교회들은 대부분 일컬어 “사제”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개신교식의 발상과 용어사용은 명백히 오류입니다. 루터교회는 장로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북유럽 루터교회와 ELCA는
“주교(bishop)님”이 관할하는 “주교정치(Episcopacy)”를 하고 있으며, LCMS는 교단정치와 회중정치를 적절히 섞어서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므로 당회에 의한 장로정치를 하는 장로교식 용어인 “당회장”은 루터교회의 용어로서 옳지 않습니다.
성찬례도, 일반 개신교와 달리, 떡과 포도주 속의 주님의 실재 살과 피의 임재를 믿고, 이를 은혜를 전달하는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으로 보며, 성사(Sacrament)라고 하니, 성찬식이라는 말은 루터신학에 위배됩니다. “성령충만을 부르짖는….” 등의 표현도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오순절 은사주의적 표현입니다. 위의 신앙고백에 의하면, 성령께서는 복음이 선포되고, 성사가 시행되는
곳에 역사 하신다고 가르칩니다. 부르짖는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은, 외적인 말씀없이 인간의 준비나 업적(예: 부르짖음,
철야기도 등)을 통해서 성령이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가르치는 것을 명백히 정죄하고 있습니다.
셋째, 성직자의 호칭문제입니다.
솔직히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모두 거룩하고 좋은 호칭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의 북유럽 루터교회에서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직자를 일컬어 “사제”( 그리고 여전히 부제, 사제, 주교의
삼중성직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며, 존칭으로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 루터교회는, “목사님”을 널리 쓰며, 한국
루터교회의 모교회인 LCMS의 일부 성직자들은 “신부님”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LCMS에서 선교된, 러시아 루터교회는 “신부님”
호칭을 사용하고 있고, 같은 교단에서 선교된 한국 루터교회는 “목사님”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좋겠지만, 루터교회가 초대교회에서부터
이어오는 기독교 전통의 “의식예배”를 드리고, 매주 성찬례(미사)를 거행하며, 성직자들이 성직복장을 입으시기에, 한국사람들의 정서상,
신부님이라는 호칭이 더 맞지 않을까하는게 일부 루터교인분들의 생각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신부님이라는 호칭은 오직 천주교회것으로만 아는데, 이것은
명백히 잘못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부님”이라는 호칭은 분명히 루터교회(주로 북유럽 루터교회) 성직자의 호칭이자, 정교회, 성공회
일부 성직자의 호칭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일반 한국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정서가 무엇인지를 깊이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일부
교인들의 호칭문제 제안을 심사숙고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교단의 정체성 형성은 단순히 외형적인 모습이나 또는 단순히
교리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둘다 바로 어우러질때 형성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외형적인 모습을 간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생각하는 내적인 것의 표현이 바로 “외형적인 모습” 즉, 예배의식, 관습 등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인정 하기 싫지만,
한국 루터교회는 그동안 장로교적인 색채가 많았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이제는
루터교회의 정통주의를 회복할 때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지나치게 저교회파적인 모습만 유지해왔습니다. 우리 루터교회의 강점은
종교개혁을 거친 개혁교회이자, 전통과 종교개혁 이전 교회의 외형적 모습을 본유한 “역사적 단절됨이 없는 공번된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는 후자가 절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깊고 전통적인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테제 공동체”입니다. 루터교회는 이점에서 정말 좋은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통적인 모습을 회복하고 확립함으로써,
21세기에 한국 기독교를 이끌어가는 루터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