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9. 목요일. 저녁7시. 한남동 스트라디움. 바씨스트 안동혁 선생님의 목요 음악회
1920년대 파리의 조지 거쉬인
「1928년작 파리의 아메리카인」
때는 1928년 3월말. 한 남자가 새벽의 찬이슬을 맞으며 코트의 깃을 잔뜩 세운 채 콩트르 에스카르프 광장을 걸어가고 있었다.
모리스 라벨, 프랑시스 뿔랑,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의 유쾌한 사교모임. 가난한 미국 촌놈이 이만하면 제법 성공한 둣 싶었다. 4년전 발표한 「랩소디 인 블루」 그 작품이 성공의 보증수표가 될 줄이야!!
옆자리에 누운 애인처럼 고른 숨소리. 파리는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다.
그 당시 파리 레프트뱅크의 예술가들처럼, 그도 이따금 생미셸 광장의 어느 기분좋은 카페를 드나들었다. 카페는 오늘처럼 황량하고 춥고 바람부는 날씨일수록 그 진가를 톡톡히 발휘했다. 때로는 작가로 보이는 이들도 볼 수 있었는데 그네들은 카페오레가 식은줄도 모르고 글을 썼다. 사각사각 연필소리, 웨이터의 발소리, 세인트 제임스 럼주를 마시는 소리, 여인들의 수다, 카페 밖의 푸조의 경적소리......
어느새 그는 오선지를 꺼낸다. 1920년대 파리의 모든 소리는 고스란히 음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뉴욕판 로미오와 줄리엣
「1958년 초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모두가 잠들었는지 쥐죽은듯 고요하다. 오직 마에스트로의 서재에만 이시각에도 불이 훤히 켜져 있다. 너구리 굴처럼 뿌연 담배 연기로 둘러쌓인 방, 책상은 구겨진 수많은 오선지,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위스키, 숱한 담배로 얼룩진 재떨이로 뒤덮여 있다.
「캔디드」 그 옆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해산의 고통을 다스리기란 지독히 힘들다. 산소가 희박한 이 곳에서 이란성 쌍둥이가 태어나려는 중이다. 출산이 임박했나보다.
진땀이난다. 한 잔 더 하자. 그리고 한 개비 마저 피우는거다. 진통이 가까스로 잦아든다.
얼마 전에 로저스와 해머슈타인이 그를 찾아왔다. 신작 뮤지컬을 올리려는데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사고관과 옷을 입혔으니 그에게 숨을 불어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뮤지컬에서 생명은 바로 음악이니까......
세간에서는 그가 클래식 지휘자이니만큼 뮤지컬이 다소 무거워지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두고보라지......그는 재능과 운을 믿는다. 오래전 브루노 발터의 대타로 나가 지휘가로서의 극적인 데뷔를 하던 그날 밤을 떠올린다. 운명의 여신은 이번에도 그의 편이 되어 주었다. 1958년 미국 브로드웨이 토니상 수상에 이어 196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10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아카데미 역사상 최다 뮤지컬상 수상작으로 기록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바이블,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앙드레 클뤼탕 지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1악장」
3시 음감회 대타로서 진행하느라 매우 매우 긴장된 애송이는 진도 8.0의 강진을 품고는 엄청 떨었는데 마치고 나서 완전 녹초가 되었다. 온 몸은 두드려 맞은듯이 욱씬거렸고
손과 발은 시체처럼 차디찼다. 하지만 일단은 끝났다는 홀가분한 맘에 얼어붙었던 사지는 이내 녹아 따뜻해졌고 진앙지엔 다시금 평온이 깃들었다. 바로 그러한 편안한 상태로 7시 대가님의 음감회를 들었다.
"트릴이 아주 정확하고 균일하지요? 트릴 도합 몇번...셀 수 있을 정도로...도무지 대충하질 않아요."
한석봉 모친에대한 일화...어둠 속 가래떡 썰기...똑같은 간격으로 썰린 가래떡이 생각나고...
"한번은 내 차에 서울시향 동료 바이올리니스트를 태웠을 때 이 음반 틀었더니 그 명반을 수백번씩 들으며 연주가의 꿈을 키워나갔다고...바이올린 전공생에겐 성경 그 자체라고..."
학창시절 학교에서 종종 밤샘 작업하던 의류 전공 친구들 생각나고...미드 sex and the city가 패션 바이블이라나!!
"선 굵은 강렬한 연주지요?! 저 두툼하고 큰 손가락을 보세요. 어떻게 저런 큼직한 손으로 섬세한 바이올린을 다루는지 신기하지요?"
역시나!!선생님은 바이올린을 전공하진 않으셨으나 같은 현악기군인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시다보니 세밀하게 잘 들리시나보다.
그의 연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진행되는 동안 디스크 자켓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후덕한 돌부처처럼 3자를 닮은 두 귀...그 아래 한번쯤 잡아 당기고픈 칠면조 턱살...우리들 중 누군가는 레오니드 코간식의 이지적이고 차가운 스타일을 좋아할지 모른다. 나 역시 내 천성과 정반대의 사람에게 이따금 매력을 느끼니까...하지만 결국엔 유한 사람에게로 돌아오더라...
괴물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카라얀 지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D단조 1악장」
서독 철옹성 같은 베를린 장벽 동독.
그 시절 초등학생 1학년 코흘리개가 뭘 알겠냐마는 오래전부터 여지껏 베를린에 살고 계시는 필자의 큰이모를 통해 1989년 이전의 베를린의 특이한 구조를 대략은 알고 있었다.
매우 갑작스런 베를린 장벽의 무너짐. 엄청난 인파가 무너진 장벽 곳곳에서 서로 부둥켜앉고... 키스를 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한 안경 쓴 노신사가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 Freiheit!!
Freude!! 타지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떠들어 댈 필요가 없이 세기와 국경을 초월한 언어 이전의 언어...어쩌면 바벨탑 이전의 언어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날 그 모습은 오롯이 각인되어 로스트로비치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듣는 내내 오버랩이 되었다.
"구러시아...철의장막이 걷히기 전까진 아무도 이 괴물이 있는지조차 몰랐어요. 이후에 서방 세계 공개되었을 때 그 대포같이 힘찬 소리! 엄청난 테크닉!" 단지 야수의 육체적 힘 자랑이 아녔다. 그건 예술성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때 돌연 발휘되는 괴벽이었다. 또한
영국의 첼리스트 줄리어스 해리슨의 말대로 오늘밤 낭만 음악의 정원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꽃은 시베리아 대륙에서 움튼 야생화였다.
이젠 진짜 가을이다. 제법 스산한 바람이 분다.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도 도심의 밤이 1도 하락하는데 일조한듯싶다.
9월 마지막 목요 음감회♥
그러고보니 스트라디움 식구 된 지도 어언 3개월째로 접어들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