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10장 1~12절
서론: 깨어진 그릇에 금을 메우는 손길
일본에는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옻칠과 금가루를 사용하여 깨진 틈을 이어 붙여 복원하는 '킨츠기(金継ぎ, Kintsugi)'라는 전통 공예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깨진 그릇을 '가치가 없는 폐기물'로 여깁니다. 그러나 킨츠기 장인의 시선은 다릅니다. 장인은 깨어진 금과 조각을 결함으로 보지 않고, 그 기물이 거쳐 온 독특한 역사와 스토리가 담긴 '새로운 미(美)'의 기회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깨진 상처를 숨기는 대신, 오히려 정교하게 깎아내고 옻과 금으로 선명하게 드러내어 이전보다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설로 보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창조된(창 1:27) 인간을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해(사 43:7, 고전 10:31) 목적인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킨츠기 장인 앞에 놓여 완전히 산산조각 난 도자기와도 같은 욥의 고백입니다. 욥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깨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을 향해 묻습니다. "주께서 나를 빚으시고는 왜 이제 와서 나를 멸하십니까?" 욥의 질문은 인간이 삶에서 겪는 치명적인 깨어짐,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인의 실존적 부조리와 고통의 이유를 묻는 깊은 철학적 방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단순한 절망의 탄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복원'을 넘어, 깨어진 존재를 십자가의 은혜로 재창조하시는 신약의 구속 사건을 강렬하게 예표합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깨어진 형상인을 어떻게 목적인으로 변화시키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빚어 만드신 손길이 나를 아프게 할 때
8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עצב, 아차브)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여기서 '아차브'는 장인이 아주 세심하고 정교하게 작품을 조각하고 성형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원은 동시에 '고통을 주다'와 '슬프하게 하다'를 뜻합니다. 킨츠기 장인이 깨진 조각의 다듬어지지 않은 날카로운 단면을 칠이 잘 스며들도록 칼로 다시 깎아내는 과정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 아래서 깊은 고통과 깎여나감을 경험하는 역설적 존재입니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가장 거룩하고 흠 없이 빚어지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아차브'의 고통, 즉 완전히 찢겨지고 깨어지는 고통을 친히 겪으셨습니다. 주님은 깨어진 피조물의 아픔과 슬픔을 친히 몸으로 짊어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연단과 상처가 찾아올 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장인의 손에 들린 조각 칼이 단면을 다듬듯, 성도가 겪는 고통은 무의미한 파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정교한 빚으심(아차브)'입니다.
2. 토기장이의 주권과 신비로운 목적
9절에서 욥은 호소합니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עָשָׂה, 아사)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아사'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주권적인 목적에 따라 그릇 형태의 인간을 만들어 가는 동작을 뜻합니다. 킨츠기 공예에서 파편들을 다시 엮어 하나의 형상으로 세워가듯, 하나님은 진흙에 불과한 인간을 목적을 가지고 빚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21절에서 이 '아사'의 개념을 이어받아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귀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라고 묻습니다. 신약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가장 고귀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으셨다고 선언합니다(고후 4:7).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산산조각 난 우리의 삶을 버리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가장 귀한 금가루로 깨진 틈을 메워 거룩한 그릇으로 재창조(아사)하십니다.
교회는 완벽하고 금이 가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깨어졌으나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길 아래 다시 붙여진 그릇들의 공동체입니다. 내 삶의 모양이 지금 비틀어져 보이고 치명적인 흉터가 남아있을지라도, 토기장이이신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십시오. 주님은 깨진 조각조차 버리지 않으시고 가장 아름다운 용도로 다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3. 깨어진 금을 메우는 언약적 사랑과 생명
12절에서 욥은 고난의 한복판에서 놀라운 고백을 터뜨립니다. "생명과 은혜(חֶסֶד, 헤세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헤세드'는 조건 없는 사랑, 변함없는 언약적 성실함을 뜻합니다. 킨츠기 작품에서 깨진 금을 따라 빛나는 금빛 선이 도자기 전체를 든든하게 지탱하듯, 욥의 삶을 마지막까지 지탱한 것은 세상의 원인 분석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헤세드'였습니다.
욥이 바라보았던 이 '헤세드'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으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할 때의 은혜가 곧 구약의 '헤세드'입니다. 죽음과 깨어짐을 찢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도에게 단순히 이 땅에서의 생명뿐만 아니라, 그 어떤 환난이나 상처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적 사랑을 보장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겪는 환난의 밤이 아무리 길어도 하나님의 '헤세드(언약적 사랑)'는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깨진 흔적을 수치로 여기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우리의 상처와 흉터를 오히려 은혜의 흔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 변함없는 헤세드의 사랑을 붙들고 굳건히 서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상처가 은혜의 흉터가 되는 역사
킨츠기 기술로 복원된 도자기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보다 훨씬 더 높고 귀한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그 도자기는 더 이상 '깨졌던 그릇'이 아니라, '상처를 품어 안아 승화시킨 위대한 작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을 거쳐 십자가로 연결되는 구속사의 은혜는 우리의 깨어진 삶에 동일한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 버려진 쓰레기가 아닙니다. 지금 삶의 깊은 균열과 깨어짐으로 인해 신음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교한 손길로 우리의 상처 난 단면을 다시 빚으십니다.(아차브, עצב)
토기장이의 주권으로 우리를 귀한 그릇으로 다시 만드십니다.(아사, עָשָׂ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언약의 사랑(헤세드, חֶסֶד)이라는 순금으로 우리의 깨어진 삶을 메우고 지키십니다.
칸트는『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인간성을 너 자신에게서나 다른 사람에게서나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의 두 번째 정식입니다.
나를 빚으신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십시오. 세상은 깨진 우리를 단지 수단으로 취급하거나 버릴지라도,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피 값으로 우리를 다시 엮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영광스러운 은혜의 목적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고난의 터널을 지나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Keywords: 아차브(עצב, 빚다, 고통을 주다), 아사(עָשָׂה, 짓다), 헤세드(חֶסֶד,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