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웅의조부 정선효자 전재선효자각 삼효각(삼효려)에 보관된 1930년대기록 효행록(1)
효자각은 삼효각으로 공식명칭은 삼효려 세분의 효행포창기록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정려각으로 두분생전인 1938년아버님도 태어나기 전에 세워졌다. 건립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당시효열각건립 과정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조부님은 재자 선자로 호는 학도, 도원으로 주로 학도씨로 불리어졌고 1968년 저와 아버님이 지켜보는운데 78세일기로 이 유적을 후손과 세상에 남기고 떠나셨다. 아버님도 이후 십년도 안된 1977년 38세 저희 4남매를 남기시고 우리곁을 떠나셨다. 효자아들과 손자들에 고난에 연속이었다. 아버님과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큰스승이요 유산이지만 그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효자는 후손이 없고 잘안된다는 아버지 말씀에 다른 효자각을 관찰 확인하게 하셨고 실제 후손이 없거나 관리도 안되어 문중등에서 관리하다 허물어져 백년가는 효자각이 드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문화재돌봄사업단을 통해 관리 되면서 현존시설의 소멸은 면하게 되었다. 효자집후손이 안된다는 이유가 무엇인까? 오래동안 관찰 그 이유를 조금 알게 되었다.
효자가문 후손이 안되는 이유
족보를 탐구하며 정선전씨 시조인 섭자 할아버지부터 53세인 저까지 2000년 역사를 관찰 선조들 이름을 차례로 외우게 되었고 외우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되어 암기와 자칭 족보 전문가가 되었다. 족보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비밀이 담겨있다. 과거 평균수명이 여자들이 훨씬 짧았다는 사실도 족보없이는 알기 어려운 일이다. 선조들의 묘위치가 있어 선조들이 살아온 지역을 알수있는 귀중한 자료다. 선대묘소를 이전하지 않는 이유다. 필자는 효자각에 비치된 자료를 통해 그동안 들은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 기록과 다른것을 알게 되었다.
저와아들이 5~6대 종손이라는 사실도 족보를 통해 정확히 알았다. 어릴때 그토록 강조하던 종손의 의미를 늦게 알게 되었다. 섭자 시조 42세인 유민할아버지후 400년 만에 우리 할아버지는 독자가 되셨다. 당대 효자로 추앙 받으면서도 결혼후 35년 효자각이 세워질때까지 아들이없었고 시묘 기간인 1928~38년에 세아들(무택 완택 声성택)이 조몰하고 효자각건립이 완성된 39년에 아버지가 태어나셨다. 자녀들중 할아버지효도 시묘기간을 함께한 세 고모님들은 그 기간전후에 출가했다. 이 세분은 할아버지에게 효자집 법도를 보고 배운 분들이다. 첫째, 둘째 고모는 출가후 1남1녀, 2녀를 낳고 일찍 돌아가시고 막내 격인 28년생 고모만 5남매를 낳고 70세 까지 사셨다. 기록을 보고 이름을 알게된 갑녀 을순 경녀 고모들은 효자의 딸로서 고난의 삶을 시작했지만 지금 후손들은 그후 태어난 4남1녀 보다 더 많은 후손을 두고 할아버지의 첫번째 열매가 되었다.
조부님은14세에 19세 강능최씨 할머니와 결혼 12년만에 자녀없이 1916년사별 이 할머니가 삼효각에 두번째 주인공으로 행적이 효행록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그후 전주최씨 할머니와 재혼 45세까지 살면서 세아들을 일찍잃고 1남3녀를 키우면서 30년간 할아버지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셨다 할아버지는 1944년 두번째 사별후 7살된 아버지를 데리고 김해김씨 김봉일띠 동갑 할머니와 36세차이로 세번째로 결혼 4남매를 낳으면서 독자의 위태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할아버지 맡딸이 손자에 손자가 자녀를 낳는등 둘째, 세째고모후손 들이 5~6대 100여명 후손을 두게되었다 효자는 후손이없고 안된다는 아버지말씀은 틀리게 되었다.
38세에 아버님이 어머님 떠나신후 2년이 안되어 돌아가신후 우리4남매는 보호자도 없이 낯선땅 서울로 내몰렸다. 40년을 넘긴 자금 아들딸이 대학마치고 손자손녀까지 보게된 지금 할아버지 효자비를 읽으면서 하나님은혜 조상은덕이란 말이 실감난다
할아버지할머니 생전에 세워진 효자비와 효자각을 세우게된 것은 할아버지 삶이 얼마나 강렬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때 이순(50세)이 되셨고 그후 아들를 보는게 소원이셨던 할아버지는 아들넷에 손자들 까지 보고가셨다 어릴때 인왕全 있을在 착할善 각씨氏 귀할 贵 아래下 이름모를 부고장으로 한자를 가르쳐 주시면서 좋아 하는시던 그때가 그옛날이 되었다
정선전씨대동보와 두산백과사전에 올라 있어 '전재선정려' 검색으로 볼수있다. 할아버지 행적을 수십년 관찰후 내부 자료를 읽는 눈이 열렸다. 모든게 신비하고 감동스런 경험이었다. 이제 당시를 목격한 분들은 안계신다. 할아버지 역사는 효자각 기록을 보고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귀중한 조부님에 역사적 자료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저의무지와 교만을 용서해 달라는 <求你赦免我的无知与骄傲>중국어 기도문이 생각난다.
조부님 전재선효자연보작성중 출생에서 사망까지
가장최근 모습(며칠전)삼효려 안내문은 삼효각이라 되어있어 사람들이 현판을 삼효각이라 읽는 분들이 있다. 현판은 삼효려이다. 관련정보 문의 010 2218 2274 메시지만 가능함(집필관계)
정문현판 삼효려
★효자비 할아버지와 강릉, 전주최씨할머니
조부님은 돌아가시기 30년전 효자비와 효자각이 건립된 것은 중국과한국에서 매우 드믄일이다. 여러곳에 효자각을 관찰했지만 효자각 건립과정에 자세한기록과 포창문등 17점에 자료가 있는 효자각은 삼효려가 유일 당대효열각건립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효자비 뒤면 조정서내린 비문(대성문학원)
내용은 포창문액과문서로 정선전씨 대동보 수권에 올라 있다. 당시 중앙에서 내노라하는 판서들이 임원으로 있는 조정을 대신한 大聖文學院, 慕聖公會 대성문학원과 모성공회서 내린것으로 이를근거로 안내문에는 세분의 남다른효성을 가상히 여겨 이곳에 삼효각을 세우게 하였다 라고 안내하고 있다. 원래 효자각은 효자가 태어난 곳이나 효를 행한 마을에 건립하게 되어있다. 조부님이 태어난곳과 효를 행하며 사신곳은 운치리다. 이곳에 세우게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효자의 삶중에서)
차례대로 14면이 게시되 있고 3~40%정도 훼손되어 수보잔서실력이 아니면 알아보기 어려운글자가 많다.
★찬양문서문 찬양발기인명단 내용
★향교어중찬양서문(대표자 20여명) 소화14년기묘년 1939년효자각건립시
★시묘천포운(효자의中父 전석우등 15명)
★표창장<강원도지사(손영목) 관동명덕회>
★정려건축시 기부금열명기
삼효려건축대표자, 관리책임자, 수리책임자,
땅제공자, 기부금열명기, 의연금출연자, 건축 참여자등 200여명의명단 당시 참여자 인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삼효건조기<발기인명단26명>
★찬양서문 주요인사들의 글 게재
★표창장(함기섭 정선군수와 정선향교임원)
<최초문서로 모친사후 부친생존시 부제>
★포정(강원도지사 손영목 관동명덕회)
大聖文學院, 慕聖公會 중앙조정대리기관
★찬양문(모성공회)중앙효열각선정포창기관
★포창문(대성문학원) 향교중앙집행기관
당시 강윈도와조정을 대리한 기관이들다
★포정(대성문학원)
★구장등 지역인사들 추천문(대표20여명)
★효행록 찬양발기인)20여명
건립후 후손들의운명처럼 무너질듯 하면서 살아남은 삼효려가 후손들의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사진 정선전씨 대동보에 오른 효자각과 효자비와 비문이 정려기로 올라 있다. 후손들은 족보에서 궐단으로 빠져있다.
할아버지산소를 찾아 헤메다 만난 45대 성기 성자 기자 성기할아버지묘비발견 아들 손자 중 우리직계 46대중흠 47대백린 할아버지 함자 나도모르게 눈물이났다. 할아버지 소개문에 치욱의증손자요 병노의손자 석견의 아들이라 했는데 바로 치욱할아버지와 치구 치조 할아버지를 낳은 할아버지가 바로 백린 할아버지시다. 비석 크게보면됨 중흠 자 백린 자가 보입니다
묘비는 숙종 계유년생 무인년 12월16일졸이 보입니다. 아마 첫째아들 백의 할아버지 후손들이 산소를 관리하고 있는거 같다. 옆에 분들이 선대묘옆에 큰비석을 설치했다. 그렇게 효도하려면 옮겨서 해야되는데 성기 할아버지후손들 큰묘비보고 뭐라하실까? 부끄러웠다. 53세손인 제가 45세 할아버지 산소와 묘비를 만난건 20년탐구 결과로 만난 신비스런 만남중 하나다.
400여년전45세 할아버지묘비가 51세 조부님효자비와 대조된다. 개인이 한것과 조정기관에서 한차이를 느끼게 한다.
필자가 두번째 쓴 한자교육연수원교재
필자가 첫번째 집필한 교재로 종로5가 구 기독교방송국에서 연수교육장면 1999년
필자가 세번째 집필한 한자종합교재와 중국어읽기연수교육 교재다.
두산백과사전에 올라있는 조부님의 정려각
'정선전재선정려' 또는 '전재선정려' 검색시 현지 사진을 볼수 있다.
첫댓글 천자문5분읽기 비대면 교육 신청시 조부님과 증조부님 이름 모르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010 2218 7774 메시지만 가능함(집필관계)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