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원 사념처 24강 2014.02.11.mp3
24회 사념처 수행
경기불교 문화원 2014.2.11
24강 - 사성제와 고성제
1. 사성제四聖諦
사성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입니다.
첫째, 이 진리는 매우 성스럽다는 것,
둘째, 성자聖者에 의해 발견된 진리라는 것,
셋째, 성자가 되어야 알 수 있는 진리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네 가지 성스런 진리는
고성제 :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
집성제 :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런 진리,
멸성제 :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런 진리,
도성제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도 닦음의 성스런 진리
부처님의 최초 설법인「초전법륜경」은 바로 사성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여래가 감각적 쾌락과 극단적 고행이라는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실천하시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완전하고 청정해졌을 때, 비로소 부처님께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세상에 선포를 하십니다.
부처님은 「대념처경」에서 사성제를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전법륜경」에서는 괴로움의 진리는 바르게 이해하고,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는 마땅히 버리고,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반드시 증득하고, 괴로움을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는 마땅히 닦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고성제苦聖諦 :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
부처님께서는 「대념처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늙음은 괴로움이다. 죽음은 괴로움이다.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은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요약하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가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는 생生, 노老, 병病, 사死,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취온고五取蘊苦로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태어남은 다섯 가지 무더기의 일어남, 늙음은 활력의 감소와 감각기능의 쇠약, 죽음은 몸을 버림 생명기능의 파괴, 슬픔은 이런저런 손실로 상처받은 사람의 내면의 근심, 비탄은 이런저런 손실로 상처받은 사람의 울부짖음, 육체적 고통은 몸의 아픔과 몸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고통스럽고 불쾌한 느낌, 정신적 고통은 마음의 아픔과 마음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고통스럽고 불쾌한 느낌, 절망은 이런저런 손실로 상처받은 사람의 실망,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은 싫고 불쾌한 사람들과 함께 섞여있는 것,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은 기분 좋고 유쾌한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은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슬픔, 비탄, 정신적 고통, 절망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의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그것 자체가 괴로움인 고고苦苦와 무상으로 인한 변화에서 겪는 괴로움인 괴고壞苦와, 조건에 묶여있어 어쩔 수 없이 겪어야하는 괴로움인 행고行苦가 있습니다. 중생이 오온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고고, 괴고, 행고를 얻는 것입니다.
「초전법륜경」에서는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바르게 잘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통찰지가 생기고, 명지가 생기고, 광명이 생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여덟 가지 괴로움의 진리는 원인과 결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법이며, 이것은 알아차릴 대상이라고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괴로움은 ‘와서 보라’고 나타난 법이며, 일어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실체가 없습니다. 괴로움은 빨리어로 둑카Dukkha입니다. 둑카Dukkha의 두Du는 ‘하찮은’이란 뜻이며 카Kha는 ‘비어있음’이란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괴로움은 하찮고 비어있는 것으로, 사는 동안 항상 경험하는 흔한 것이며,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으로 괴로움이라는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피하고 없애려 하기보다 알아차릴 대상으로 받아들이면 괴로움에 휩쓸리지 않고, 괴로움에서 오히려 지혜를 얻고, 그 괴로움을 극복합니다. 이때의 괴로움은 수행자에게 단지 법이며, 수행의 도반이며, 스승이 됩니다.
수행자가 지금 경험하는 괴로움을 올만해서 온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순간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도록 이미 조건 지어진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괴로움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괴로움은 ‘와서 보라’고 나타난 법이 됩니다. 그래서 괴로움을 법으로 알아차리면, 이제 괴로움에 휩쓸리지 않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괴로움을 법으로 알아차림으로써 거기서 괴로움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고, 괴로움의 실체 없음을 보고, 괴로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그 괴로움은 수행자에게 성스런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