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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스크랩 복건성 무이산 여행 셋째 날: 고정서원과 주자묘
沙月 추천 0 조회 591 11.11.21 09:3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오부리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처음 들른 고정서원. 내리자마자 입구에 우뚝 솟은 석패방이 위용을 드러내 한껏 기대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계단 또 계단이다. 참 계단이 많은 나라. 저 계단 위에 자리잡은 고정서원을 바라보는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수리 중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물을 헤체복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하회마을 등에 가면 지금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므로...

 

그러나 꼭대기에 도착해보고서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참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붕을 새로 인다든가 하는 것이 아닌 관리 부실 아니 포기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완전히 무너져 내려 폐허가 되기 전에 와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부를 둘러보니 상황은 더욱 참담했다. 복원 당시 정성을 다하였을 법한 단청이 벗겨지고 아름다운 채색 그림도 한창 색이 바래져가는 중이었다.

 

바닥에는 떨어져나간 문짝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고 온갓 쓰레기 더미가 나뒹굴고 있었다. 심지어 곳곳에 불을 놓은 흔적도 보였다. 제대를 보니 복원 당시에는 상당히 신경을 썼을 법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천장은 곳옷에서 구멍이 나 이렇게 풍우마저 막아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고정서원은 악록서원, 백록동서원, 자양서원(지금의 무이서원)과 함께 중국 송나라의 4대 서원 중의 하나이다. 지난번 호남성 여행 때 악록서원을 들르기로 되어 있었으나 시간이 촉박하여 못들른 터라 이번 고정서원에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이 모양이다.

 

풍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외부. 우리나라의 서원과는 구조가 좀 많이 다르게 생각되었다. 원래 모양이 이랬다면... 우리나라에는 그래도 강당과 동-서재, 그리고 전사청, 장서각 등이 조그마한 규모에도 짜임새있게 배치되었는데 이곳은 그냥 궁전 같은 웅장한 건물만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그래서인지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마치 화재가 나서 타버린 듯한 외양. 이곳에느 그래도 우리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상당수 둘러보았다. 모두들 중요 문화재를 이렇게 방치하는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뭐라고 표현은 못한 듯하였지만 모두들 가슴이 아파왔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폐허더미를 보러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고.

 

다시 내려와 은영(恩榮)이라 새겨진 위풍당당한 석패방을 보니 더욱 서원의 영욕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가이드 말로는 복원을 해놓아봤자 주위에 볼만한 관광자원이 없는터라 이곳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원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단다. 우리나라 서원은 그래도 양사(養士)라는 교육 기능 외에 존현(尊賢)이라는 향사 기능이 있어서 완전히 신식교육으로 돌아선 이후에도 버려진 적이 없는데...

 

이제는 저 앙상한 지붕이 수리 중이 아니라 무너져내리고 있는 상태임을 안 이상 석패방 사이로 보이는 고정서원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듣기에 우리나라의 신안 주씨들이 고정서원을 복원하는데 상당히 재력을 보탰다고 하는데 이제는 더이상 힘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국인들도 돌아보지 않는 유적에 굳이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도 모르긴 해도 들었을 것이다.

 

이곳에 와본 사람들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두 번 갈 곳은 못된다고들 하였다. 다음에도 올 기회가 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아마 청대에 세워져 이곳을 지켜온 이 석패방만이 우뚝 서 있는 것은 아니겠지...

 

맞은 편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독수리 조각이 멋있게 서 있었다. 고정서원이 잘 보존되어 있었더라면 이 조각도 시너지 효과를 발했을텐데 오히려 이 뜻 모를 독수리 조각에 더 눈길이 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석패방에는 정교한 솜씨로 기린이며 봉황 같은 상서로운 동물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만큼 주자가 세운 이 서원이 당시에는 존숭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처사는 분명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돌아본 서원의 모습. 기약없는 돌아섬이지만 반드시 멋진 모습으로 다시 세워져 주자가 중국의 문화에 끼친 영향을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가이드나 기사나 주자의 묘소가 어디 있는 지를 몰라 내려서 수 차례나 물어서 갔다. 네비게이션이 아직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중국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다. 작년에 장완의 묘소와 사당을 찾지 못하여 헤맸던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내 생각에는 네비게이션이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주자의 묘소 같은 곳이 표시될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몇 되지 않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하여서 말이다.

 

주자의 묘소가 있는 구봉이라는 표지판. 우리나라의 새마을 시절에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남평의 구봉산과 한자가 똑같다. 지주의 시멘트가 벗겨져나가 철근이 안간힘을 다하여 버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송휘국문공주자묘도라는 비석. 자정대부 독학사자 팽온장이라는 사람이 비석의 글씨를 썼다.

 

조금 더 나아가니 근래인 1986년도 다 끝나가는 12월에 만든 주희묘라는 표석이 있다. 86년이면 25년 전으로 유교가 광란의 소용돌이였던 문화혁명이란 재앙에서 맛 벗어났던 시점이다.

 

주자의 묘소로 가는 길은 우리네 시골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말리기 위해 포장도로 위에 널어놓았던 벼를 쓸어담는 사람들 사이로 일행이 걸어가고 있다.

 

남의 단점에 대해서는 부디 말하지 말고, 나의 장점에 대해서는 절대로 자랑하지 말라. 시서(시경과 서경)는 배우지 않을 수 없고 예의는 알지 않을 수 없다. 주자의 말로 가로등을 장식하여 놓았다. 시골 깡촌이라도 문화대국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모습니다.

 

고향의 옆집 아저씨가 일을 끝내고 자전거로 집으로 향하는 듯한 모습. 참으로 정겨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묘소 아래에 있는 이 정자의 이름은 사원정(思源亭)이다.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인데, 역시 주자의 <관서유감> 시가 떠올랐다.

 

사원정의 현판

 

햇살을 받는 쪽으로 앵글을 맞추었더니 금빛 햇볕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사원정에서 묘소에 이르는 마지막 길은 오솔길이었는데 대나무 숲이 왼쪽으로 병풍이 되어주었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주자의 묘소. 다시 "이건 아닌데..." 하는 막연한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에 잘한다고 그런 것이었겠지만 아마 1986년 경에 이렇게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시멘트를 섞어 주자의 묘 주변을 이렇게 자갈로 포장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묘소까지...

 

이역만리 중국에 와서 주자의 묘에 참배하는 일행. 단장인 소장님께서 신발까지 벗고 앞에나서셔 절하고, 회원들은 그 뒤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이날 묘사가 있는 날인데 우리집 산소는 가보지 않고 주자의 묘나 참배하다니...

 

정말 보니 무지막지하다. 하루빨리 옛 모습을 찾기를 바라는 심정 간절하다.

 

최근에 누가 왔다갔는지 꽃이 한 다발 놓여 있다. 칙칙한 색깔과 대비되어 안타까움만 커져갈 따름이다.

 

내려오는 길 농가의 지붕. 손톱 같은 기와가 덮여 있다.

 

해가 졌다. 멋진 늦가을 놀이 아름답다.

 

잘 사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아도 평화로워보인다. 지붕을 지키는 바둑이 한 마리.

 

논에는 오리들이 한가로이 배회하고... 이상 주자 묘 참배는 묘소 자체는 실망을 주었지만 호젓한 시골의 산책길 같은 느낌이 드는 코스가 정말 좋았던 것같다.

 

드디어 무이산으로 들어서는 버스. 기사는 야오(姚) 쓰푸였는데 운전이 얼마나 와일드했는지. 좁은 시골 포장길을 80km 이상으로 달렸다. 이런 사진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닐터...

 

짐을 풀고 옛집을 둘러보듯 숙소인 무이산장을 둘러보았는데 역시 아름다웠다. 고난의 행군에 비길 만한 이틀간의 강행군도 멋진 숙소와 내일부터 이어질 코스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모두 상쇄된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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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1.24 23:05

    첫댓글 길에 쓰여져있던 주자말씀들을 읽으며 가던 시골길의 고저녁한 분의기,해질무렵당도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드렸던 묘소.여유로움과 낭만을 만끽했습니다.

  • 작성자 11.11.25 00:00

    저도 이번 여행 중 가장 호젓하고 여유로웠다는 인상을 받는 곳이 주자의 묘도(墓道)를 걷는 코스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끼리끼리 짝을 지어 한담을 나누며 우리네 시골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록 고정서원과 주자의 묘소는 이제는 다시 찾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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