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52-너무나 소중한 숙소의 남긴 음식
순례 여행 29일 째. 이제 날도 어느덧 7월의 한 가운데로 접어 들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달형제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식탁으로 향한다. 아침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가면서 궁금해진다. 100명이 훨씬 넘는 순례자가 머무는 이 알베르게에 그렇게 작은 식당에서 어떻게 아침을 먹을지.
아니나 다를까 적잖은 수의 순례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식탁은 기껏해야 한꺼번에 30명이나 앉을까 말까 한다. 수녀님들이 차를 서비스한다. 달형제는 당연히 밀크커피를 주문한다. 친절하게 직접 타주시는 수녀님들이다.
밀크커피를 가지고 탁자에 앉으니 먹을 빵의 양이 그리 많지 않다.
‘뭐… 이것만 해도 어딘가. 밀크커피만 마셔도 족할 판인데~’
최대한 빨리 먹고 나오는데 출입구 바로 옆에 기부상자가 눈에 띈다. 가볍게 지나치는 달형제다.
짐을 챙겨 나오는 달형제는 숙소 밖의 길바닥에 새겨 있는 안내표시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하루 일정을 시작한다.
안내 표시를 조심스럽게 주의하며 따라간다. 이 표시를 잃어버리면 도시 안에서 미아가 되어 버린다고 한다.
표시를 따라 가니 곧 그 유명한 대성당이 나온다. 부르고스 대성당만큼이나 크고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이 성당도 제대로 볼려면 몇 날 며칠은 죽치고 앉아서 관람해야 될 것 같다. 성당 앞의 벤치에 앉아 감상을 해본다.
레옹 대성당
잠시 후 그의 옆에 한 외국인이 앉더니 엽서를 쓰기 시작한다. 이에 달형제가 묻는다.
“실례합니다만 여기 근방에 우체국이 있나요?”
지난 번 숙소에게 가져온 엽서가 있기에 언제 시간이 나면 한국의 딸에게 하나 보내려고 생각해 온 그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그러면서 얘기를 시작한 달형제는 상대방이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평상시 궁금해 한 것을 물어본다.
“유로화로 통합되고 나서 좋아요? 나빠요?”
“어디가든지 그냥 쓰던 돈 쓰니까 저는 참 편리해서 좋아요.”
그리고 상대방도 달형제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기회다 싶어 자신의 순례의 길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달형제다. 다 듣고 난 상대방이 제안을 한다.
“당신에게 이 돈을 드릴 테니 딸에게 꼭 엽서를 붙이세요.”
“감사합니다. 당신의 친절에 대해 기억하고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배낭을 매고 길을 떠나는 달형제는 대성당을 관람하고 있는 한국인 순례자들에게 자신의 엽서 몇 장을 나누어 준다. 어차피 공짜로 가져온 것이니.
화살표를 유심히 관찰하며 도시를 서서히 벗어나는 달형제는 그러면서 도시의 이곳 저곳을 잘 살펴 본다. 가장 그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노숙할 장소다.
‘참 예쁜 도시구나. 이렇게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다니. 그런데 딱히 노숙할 만한 조용한 곳은 눈에 띄지를 않네. 도시 중심가는 밤새도록 시끄러울 것이니 외곽으로 벗어나야 할까보다.’
대도시라서 그런지 길은 도시를 벗어나는 듯 하다가 다시 도시의 외곽 마을로 이어진다. 그래서 길바닥은 계속 포장길이다. 걷기에 한결 수월하다.
‘어제를 생각만하면… 휴… 다시 또 그런 길을 걸으라면 걸으려나?’
정오쯤 되니 공립 알베르게가 있는 ‘라 비르헨 델 까미노’라는 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순례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양쪽 어느 길이나 다음 숙소까지 15km나 남은 거다.
‘요 며칠 계속 20km정도를 걸었더니 몸과 다리도 피곤하고, 오전에 거의 9km나 왔는데 지금 여기서 그 거리를 간다는 것은 무리지. 여기서 멈춰야되. 순례를 계속 이어 가려면. 좀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일찍 쉬자.’
바로 숙소로 방향을 튼다. 제일 먼저 도착한 순례자가 되었다. 등록을 마치고 배낭을 풀고 곧 바로 식당으로 간다. 그의 할 일을 시작하는 거다. 큰 냉장고가 두 대나 있다. 그리고 그 냉장고들 안에는 음식과 음료수가 꽤나 많이 남아있다.
‘오~ 스파게티 해놓은 것도 있네. 점심은 요걸로 됐고. 어디보자. 저녁은…’
다른 쪽 냉장고 냉동실에는 감자계란오물렛도 있다. 봉사자에게 가서 냉장고 음식 먹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흔쾌히 승락하는 봉사자다.
‘이런 거 먹는 것도 물어봐야 한다고 했으니깐~’
그 동안 만난 순례자들과 자신의 여행 방식에 대해 얘기할 때면 그들이 종종 물어보는 말이 봉사자에게 승락을 얻고 음식을 먹느냐고 하는 거였다. 그럴 때면 달형제는 속으로 ‘그런 것도 물어봐야 하나?’하고 생각을 했지만 서양 방식은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
마음 편하게 스파게티를 전자 레인지에 대우고 남은 우유와 주스까지 알뜰하게 챙겨 먹는 달형제는 남은 맥주를 못마시는 것에 안타까워 한다.
그리고 빨래를 하고 밖의 뜨거운 태양빛에 널려 둔다.
‘어디 베드 버그가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자.’
요즘 한층 더 피부 두드러기가 더 많이 번진 달형제다. 팔꿈치 주변. 배. 그리고 가장 심한 곳이 허벅지다. 많이 가렵지만 서서히 참아가기 시작하는 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밖에 앉아 있는데 저쪽에서 눈에 익은 복장의 여자분이 알베르게로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역시 한국 분들 특히 여자 분들은 특별하게 눈에 띈단 말야.’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눈만 빠꼼히 내놓고, 팔은 토시로 완전히 가려져 있으며 특히나 손등도 안태우려 장갑까지 끼고 있다. 이러한 복장은 순례길에서 이야깃 거리가 되곤 한다. 무슬림도 아니면서 그렇게 얼굴과 몸을 가리고 다닌다며.
도착하면서 여자 분은 달형제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오늘 머무시나봐요.”
마스크를 벗으니 비로소 누군지 알게 된 달형제다. 어제 숙소에서 뵌 분이다.
“네. 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여기서 머물게 됐어요. 그런데 오늘 늦게 출발하셨나 봐요?”
“네. 그 한국 젊은 분들하고 다 같이 오전에 중국 해산물 부페에 갔었어요.”
“어때요? 괜찮던가요? 거기 유명한가 봐요. 어제 길에서 만난 한국 분도 그 부페에 간다고 가시던데..”
“10유로니까 가격대비 괜찮아요. 근데 소스가 우리 입맛과 조금 다르긴 해요. 저는 여기 아시는 분이 태권도장을 하셔서 그 분이 초장을 만들어 오셔서 회를 다들 맛있게 먹긴 했지만요.”
“잘 하셨어요. 그렇게 먹는 것도 여행의 묘미지요. 한번씩 영양 보충도 하고.”
“근데 그 분들 대부분 어제 스마트폰 도둑 맞았어요.”
“네? 아니 어떻게?”
“숙소에서 충전하려고 꽃아 놨는데 단체로 다 없어져버렸데요. 제대로 도둑에게 걸린거죠. 다행히 저는 그 때 충전 안하고 있어서 괜찮았어요. 그 후로 스마트폰 신경 쓰느라 죽겠어요. 충전도 마음대로 못하고.”
“역시 대도시라 그런 일이 생기는 군요. 하여튼 없는 게 마음 편하다니깐요.”
순례자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저녁이 되자 달형제는 낮에 봐뒀던 냉동고 속의 감자계란오물릿을 꺼낸다. 양이 많아서 반만 잘라서 전자 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그 때였다.
“저기요. 이거 우리 봉사자건데 먹으면 안되요.”
“네? 이거 아까 낮에 있던 봉사자분께 허락 받아서 먹는 건데요.”
“그래요? 알았어요.”
하며 부엌에 들어왔던 여자 봉사자 분은 다시 나간다.
다시 한 번 이곳 알베르게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 보는 달형제다.
‘봉사자 분들은 숙소 부근에 사는 사람들인가 보구나. 서로 교대하면서. 그런데 그들은 급료를 받나? 아니면 순수한 자원 봉사자들인가?’
오물렛을 다 먹고 좀 더 먹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고 냉동고로 손이 가는 달형제는 문득 보지 못한 안내글을 본다.
‘오스피탈레로(봉사자) 음식’
‘이런… 이거는 봉사자 전용 음식이었구나. 그렇다면 낮에 허락한 그 분은 내가 다른 음식들을 먹어도 되냐는 질문으로 이해를 했었을 수도 있는 거구나. 음… 어쩐지 음식이 너무 잘 보관 되었다 했어. 뭐… 어떻게해.. 이왕 이렇게 먹은 거 깨끗하게 먹어줘야지.’
그러면서 달형제는 남은 오물렛을 조금 더 먹고 남은 것은 내일 먹을 수 있도록 비닐 봉다리에 잘 싸둔다. 순례길이 지날수록 넉살만 좋아지는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