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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평화교회
 
 
 
카페 게시글
기독 교리 연구 스크랩 교회의 본질
그리여 *_* 추천 0 조회 39 10.01.20 02: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람이 무엇이 관대의 책중에서>

 

 

 

 

교회의 본질 --의미로 이해





교회의 의미


한마디로 성도의 무리가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셨는데 이 교회를 바르게 정의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반석이라는 베드로를 지칭하는 이름은 게바(히)=페터라(헬)인데 여성단수로는 큰 돌이라는 뜻이 있고 남성단수로는 작은 돌이라는 뜻이 있는데 베드로에게 주어진 반석은 남성단수인 페터라로서 작은 돌을 의미합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베드로가 말한 <말씀에 근거한 신앙고백>이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반석인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믿고 시인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의 정의는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오신 목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공의를 비추는 거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의 동일한 신앙으로 연합되어 복음과 복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며 주인의 생각대로 순종하는 종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다수결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닌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분별할줄 아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입니다.


교회란 제도적인 실체가 아니고 초자연적인 실체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초자연적인 실체인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사역을 지속시키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목표에 협력하는 거룩한 백성의 무리인 것입니다.


칼빈 --- ‘교회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예정하신 신자들의 몸이요 집단이다(요리문답). 세계에 산재하며 그리스도안에서 한 하나님을 예배함을 공언하며 세례에 의하여 성찬참여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를 가지고 그 말씀의 전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명령을 유지하는 군중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본질은 외형적 기관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성도의 무리로서의 교회를 본질로 보았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기대하며, 그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성화되고, 인침을 받은 참된 신자들의 회중인 한 보편교회 혹은 우주적 교회를 믿고 고백 한다'


스위스 일치신조---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모인 신실한 자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말씀을 통하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바르게 경배하며 섬기는 자들이요 그리스도를 통하여 조건 없이 주어지는 모든 선한 은혜들에 믿음으로써 참여하는 자들이다'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 제7조-- '우리 모든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오직 하나의 거룩한 교회는 영원히 존속한다. 교회는 성도의 모임이고 복음을 바로 가르치며 성례전이 바로 집행되는 곳이다. 그리고 교회의 통일은 복음교리와 성례집행이 일치하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엡4:5-6에서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라고 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조 --- '공동적 우주적 교회는 볼 수없는 것인데 이 교회는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로 모이는 모든 택한 백성으로 구성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 그의 몸이며 만유 안에서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25조1절)' '유형적 교회는 복음시대에 있어서 역시 공동적이고 우주적인 교회이다. 이 교회는 율법시대와 같이 한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를 통하여 참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로서 구성한다.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족이요 하나님의 집이요 권속이다. 이것을 떠나서는 구원의 정상적 가능성은 없다(25장2절)'


본질적으로 예수께서 교회를 말씀하실 때 구약적인 유형교회의 의미를 포함한 무형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신구약의 교회의 원어는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총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광야교회라고 표현한바 있으며 바울은 이스라엘과 교회의 영적인 연합을 증거하고 있습니다(롬11:17-21). 교회의 본질은 바꿀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하며 결코 무시되거나 개정될 수 없는 법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요일4:15), 그가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으며(요4:42),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거룩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요11:27), 그의 대속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신 것을 믿으며(요일1:7), 그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음을 믿으며(행1:11)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며(요14:9-11), 또한 그를 통하여 성령을 믿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회중과 몸이요, 주의 제자요, 참 포도나무의 가지요, 그의 신부요, 성령이 교통하는 그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엡4:5)인 신앙 공동체로서, 성령에 의하여 한 신앙고백을 하게하는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인 교회


교회를 기독론적으로 또는 성령론적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교회가 존재할 수없다는 것을 깨닫고 교회를 조명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교회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기초를 두고 세우셨습니다(요17:4-8, 요16:7-13, 요14:10-16). 그래서 교회를 경험적인 귀납적 방법으로 교회론을 가르쳐서는 아니 됩니다.

교회를 위하여 사역을 나누어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조 전에, 성자 하나님께서는 창조 후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교회 설립 후에 시간적으로 구분하여 사역하시고, 공간적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우주 밖에서, 성자 하나님께서 우주 안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사역하시고, 시각적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볼 수 없도록, 성자 하나님께서는 볼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께서는 내주하심으로 사역을 하십니다.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identity)은 교회의 사명(praxis)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교회 사명은 본질과 정체성의 뿌리를 심고 그 안에서 선언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삼위일체론적 근거위에 세우셨다는 것을 깨달은 사도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고후6:16), 그리스도의 몸(엡1:22-23, 고전12:27), 성령의 전(고전3:16-17,고전6:19)으로 불렀습니다.

교회의 삶과 목적은 하나님의 어명에 전적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목적을 통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기원을, 교회의 신앙고백을, 교회의 조직을 제공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서 메시지와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서론과 결론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교회의 객관적 기초와 그 존재이유를 보여주셨습니다. 성자는 성령을 통하여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시므로 복음을 세상에 전하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구약적인 하나님만 생각하고 신약의 주님만 믿으면서 성령은 인정하거나 모셔드리지 아니하는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는 인격이시며 한 성령님이시므로 나뉘어 질수 없습니다. 교회가 분파된 것은 아무리 좋은 이유를 말해도 실로 분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요 성령이 하나 라는 것을 망각한 큰 비극입니다.

교회에 성령님이 오셔야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아는 것 즉 그리스도께 속하여 연합하여 있는 사람임을 아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한다면 이는 성령께서 분명히 우리 안에 계심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성령께서 나를 그에게 순종하며 살게 합니다.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사역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검정된 교회


교회사를 살펴볼 때 기독교회는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신실하신 언약을 믿고 적극적인 사랑을 행함으로써 승리해 왔습니다.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카타콤'이라는 지하 도시에 근 삼백 년 가까이 숨어 있을 때에도 로마 시에 큰 전염병이 돌 때에는 성도들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땅 위로 올라가 전염병을 두려워하여 모두 피신한 도시에서 환자들을 돌보아 줌으로써 로마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언약을 믿고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교회만이 그 언약대로 반석 위에 세운 교회이며 하나님께서 보존하십니다. 교회는 인간들의 수단과 방법과 지혜로 보존되어 온 것이 아니라 미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의 섭리로 보존되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이 교회는 많은 시대를 지나오면서 검정되고, 지구촌의 봄여름 가을겨울을 지나오면서 형성되어진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께서 약속하시고 보내신 성령님의 행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돌연히 우리 시대에 나타난 것처럼 생각하며 역사의 교훈을 무시한 채 저마다 가진 각양의 신학과 사상과 전례와 관습을 절대적인 진리로 착각하고 있다면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식의 결여증세는 뿌리부터 흔드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교회사적으로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신앙 고백적 삶의 경험 위에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섬기기 위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린 사도들과 신앙 선진들의 신앙 고백적 삶 위에서 건축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근본 '터전'이 되신다면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선진들은 그 '터전'의 '기초가 됩니다. 그들의 참된 신앙 고백적 삶의 모범과 정신은 기독교회의 신앙 고백 원리입니다. 우리가 현재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사도들과 신앙 선진들의 신앙 모범을 모아 정리한 것입니다. '사도적 전송'을 무시하거나 벗어나서는 아니 되며 교회는 그 사도적 신앙 전송을 현재에 적용해야 합니다.


수많은 교회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켜온 예수 닮기의 삶과 순교적 순례자의 신앙은 그저 한 이야기 거리로 회자될 뿐 오늘의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옛 선진들의 신앙을, 과거를 떼어놓고는 오늘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착오와 오해가 교회사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것임은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타락하고 변질되는 것을 보았고,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단과의 싸움 그리고 박해 속에서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온 신앙도 보았습니다. 그 선진들의 영성의 깊이를 가늠하고 또한 변질된 과거 역사를 반추하여 교회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그 아는 것을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완전하게, 확실하게, 정직하게, 정결하게 지켜나가는 것은 매우 값지고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나 지위에만 마음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 중요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사와 평신도를 지나치게 구분한다면 잘못될 경향이 충분히 있습니다. 교회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온전한 사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본심과 교회에 대하여 진실로 이해한다면 경쟁, 적대, 이기주의, 자만심 등의 어떠한 생각도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현상은 교회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특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이 이상의 큰 특권은 없습니다. 교회의 본질과 성령의 사역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다면 교회를 위하여 유일한 소망은 신앙부흥에 달려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신앙부흥은 하나님의 생생한 사역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신앙부흥은 본질적으로 한 성령 같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지금부터 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상고해가면서 진실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나갈 것을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세계에서 자신의 영광과 거룩과 성품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과 지혜를 나타내시며 자신에 대한 변호를 교회를 통해서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교회 정신의 의미입니다.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교회를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 연구를 통해 누구나 깨닫는 것은 기독교 역사가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져 왔다면 한 세기도 못되어 문을 닫았을 것이다 는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에 와서 새로운 창조를 하셨는데 이 크고 비밀한 창조는 하나님께서 그 은혜의 풍성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 그 무엇인데 이것은 영광스러운 비밀입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시고 우주적인 새로운 창조의 역사로 새로운 무엇이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심같이 신약시대에는 교회를 세우셔서 교회를 축복의 통로로 계획하셨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축복을 주시되, 예수님에 의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위하여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제쳐 놓고는 전혀 상대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중보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가능합니다. 우리 앞에 높이 세우신 십자가, 그것에 등을 돌리는 사람은 하나님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족들, 세계의 다른 지역들의 사람들, 다른 체험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로 통일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의 중요성과 특권과 책임성을 아는 것만큼 놀라운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 곧 성도들이며 하나의 건물이나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백성, 선택된 세대,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광 돌리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감탄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며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고 격찬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열정적이십니다. 하나님의 언약 과정과 성취와 완성을 의미하는 교회, 이 교회를 보존하는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모든 다른 사역을 능가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보고 그냥 어여쁘다고만 하시는 게 아니라 “순전히 어여쁘다”고 하십니다. 교회의 신랑 되셔서 주께서 교회를 가리켜 “너는 여자 중 가장 아름다운 자”라고 부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여왕이나 황후들과도 바꾸시지 않으며 천국에 있는 천사들과도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보라 내 사랑, 보라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아 4:1-원문). 지금도“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마 25:34)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의 생각과 마음과 생활 태도나 행실에 어떤 구별되는 일이 일어나게 하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오 주님

교회가 기도의 호흡과 찬양이 넘쳐나는 생명체가 되게 하소서.

주님이 세우신 교회이오니 주님께서 주인임을 그 영광으로 보여주소서.

오 주님

나의 방패와 피난처이신 주님 내가 주 곁으로 피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사납게 달려들 때 주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렵니다.






교회의 본질-- 원어 해석으로 이해 



1. 신약 용어와 구약 용어


오늘날 영어 문화권에서 사용하고 있는'처치(Church)'는 '주께 속한 것'이란 뜻인 (퀴리아케=주께 속했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교회란 한마디로 무엇일까?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실 때 그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시고 말씀하신 것일까?

신약성경 헬라어에서 교회로 사용하는 단어는 두 가지입니다. LXX에서 유래되었으며 '에클레시아' 와 '쉬나고게' 입니다.

에클레시아-- 이 단어를 신약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에게 '내 교회를(무 텐 에클레시안) 세우리니(오이코도메소)'라고 말씀하실 때 에클레시아 단어를 사용하셨으며 주위에 모인 믿는 무리들을 지칭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에클레시아의 명칭은 '…으로부터'라는 에크(='ejk'=out of)와 '부름 받아 나온 사람들'이란 칼레오(='kalew'=call)가 합쳐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클레시아'라는 교회의 명칭은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중심하여 불러 모으신 회중을 말합니다.

바울은 가정집 같은 장소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대하여 자주 에클레시아를 사용하였습니다. 에클레시아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므로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의 어디에도 교회를 건물로 표현한 곳이 없습니다.


(sunagwgh: 쉬나고게)--이 단어는 신약 교회가 설립되기 전 유대교의 '회당'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습니다. 회당은 유대 교회 공동체 모임이었습니다. 기독교회는 이 '회당 교회'에서 교회 조직과 예배 형식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든지 안식일에는 꼭 회당에 모였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여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를 '인간을 위한 모임'으로 만드는 일을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이루는 성도의 모임인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교회에 해당되는 용어라고 볼 수 있는 단어는 두 가지입니다.

카할 (lhq = to call)과 에다(야다에서 유래)입니다.

카할은 일반적으로 호렙 산에서 하나님 앞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임을 말합니다(출12:6, 민14:5, 렘26:17). 카할은 백성들이 실제로 모인 모임을 지칭했습니다.

카할은 신약에서 에클레시아로 번역되었습니다.


에다는 지정된 장소에 약속으로 모이는 모임을 뜻합니다. 에다는 신약에서 쉬나고게로 번역되었습니다. '에클레시아'와'쉬나고게'라는 신약의 교회 명칭을 통해서 교회의 근본적인 출처와 목적, 그리고 사명을 재확인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가 형성된 이후 처음 몇 세기 동안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거룩한 성도들의 교제'라는 의미의 코뮤니오 상토룸(communio sanctorum)이라고 불렀습니다.



2. 에클레시아의 구분


'에클레시아'를 여러 가지로 지칭해서 부르고 있는데 구분해 보면, 지교회, 가정교회, 지방적 집단교회, 국가교회, 세계적 공통교회, 가견적 교회(유형교회)와 불가견적 교회(무형교회),전투적 교회와 승리적 교회, 유기적 교회와 조직적 교회 등입니다.


local church (지교회)의 의미


예배를 위해 모였던 그렇지 않든 일정한 장소에 모인 일단의 신자들을 말합니다.(행5;11, 11;26, 고전11;18,14;19,롬16:4, 고전16:1, 갈1:2, 살전2:14).


domestic church (가정교회)의 의미


사도시대에 개인의 집에서 모인 가정교회를 지칭합니다.(롬16;13, 고전16;9, 몬1;2). 바울이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에게 인사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롬16:3-5, 고전16:19, 골4:15,몬2절,행9:31, 15:3). 바울은 교회를 단수로서 보편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고전10:32, 12:28, 15:9, 갈1:13, 엡1:2, 3:10, 21:5 골1:18,24).


church group (지방적 집단교회)의 의미


지교회가 모인 시찰회. 교파는 아니고 그 지구의 교회들의 교회분단을 의미합니다. 단수로 사용되었으며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을 지칭하였습니다(행9;31). 초대교회에 교단이 형성되었다고는 볼 수없습니다.



국가 교회의 의미


모세시대에 국가전체가 교회로 구성된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국가와 완전히 통합된 것이 아니면서 교회국가라는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chatholic church (세계적 공통교회)의 의미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로 구성된 영적 유기체로서의 공동체, 하나님의 교회(고전10;32, 11;22, 12;28, 엡4:11-16)를 의미합니다.


invisble group church( 불가견적 전체교회)


교회의 포괄적 의미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해서 천상과 지상에 있는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 그리스도 안의 모든 성도를 의미합니다(엡1;22, 3;10, 골1;18,24).


***가견적교회(visible church,유형교회)와 불가견적 교회(invisible church,무형교회)

루터의 견해--- 루터는 교회를 가견적 교회와 불가견적 교회로 구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칼빈의 견해 --- 각각 다른 두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양면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무형교회, 불가견적 교회를 말세에 완성될 이상적 승리의 교회, 사람이 볼 수없는 참된 만국교회, 핍박 중에 숨어있는 말씀과 성례를 박탈당한 지하 교회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한 교회의 두 측면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개혁주의 신학--- 원칙상 지상교회를 가견적인 동시에 불가견적인 교회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형적이라는 것은 교회의 본질상 영적이고 육안으로 볼 수없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등록교인 된 사람들로 참된 교회가 결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 --- 유형교회로만 해석하였고 교권이 축복의 분배자가 되어 하나님과 그 자녀들이 직접 교제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교회의 외부적 기관이 구원 축복의 분배자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으로서의 무형 교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보이지 않는 교회는 머리인 그리스도 아래에서 하나로 모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선택된 자들로 이루어진 교회이며, 보이는 교회는 전 세계를 통하여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과 그들의 자녀들로 이루어진다(25장1-2절)라고 두 교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유형교회는 인간이 보는 교회로서 자녀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공동체이고 무형교회는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로서 신자들만의 교회입니다. 로마교는 경험교회(로마 카톨릭)를 참 교회와 동일시하여 가견적 로마교회의 회원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불가견적 교회의 회원이 됨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참 교회로 즉 모든 면에서 성경과 일치하는 가견적 교회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 가견성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적 순종에 있습니다. 이 순종을 통해 교회의 불가견적 측면이 반드시 우리에게 가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타당합니다.  불가견적 교회(무형교회)는 자연히 유형적인 형체를 가지기 마련입니다. 성도 중에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양쪽 다 속한 천국백성이 있는가하면 보이는 교회에는 속하였지만 보이지 않는 교회에는 속하지 않은 사람도 존재합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주님이 '너를 알지 못한다'는 그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교회에 다니지만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보이는 측면으로만 제한한다면 하나님의 선택의 실체가 제거되며 만약 보이지 않는 교회만 중요시한다면 교회의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 무시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전투적 교회와 승리적 교회


전투적 교회(militant church)--- 지상교회를 지칭합니다. 교회는 거룩하며 선한 싸움에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적으로 교회가 이 싸움에 참여해왔습니다. 교회는 악한 세력과 영계의 흑암의 권세와 선한 싸움을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해야함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기도, 명상, 영적 부유, 만족, 자유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싸움에 참여하여 공격적 전투, 방어적 전투를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승리적 교회(triumphant church)--- 천상교회를 지칭합니다. 본질적으로 영적이기 때문에 땅위에 있는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교회이며 칼빈은 무형교회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성도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통치함을 의미합니다. 승리의 교회가 되기까지 지상교회는 신령한 영적전쟁을 힘써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유기적 교회와 조직적 교회


유기체적 교회는 성령으로 연합된 영적인 능력이 있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의미하며 그 영적 배경은 무형교회입니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고 인정하고 그리스도 이외는 중보자가 필요 없는 교회입니다.


조직적인 교회는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말하며 그 영적인 배경은 마찬가지로 무형교회입니다. 은혜의 방편으로 말씀과 성례와 교제와 생활, 신앙고백, 회개, 훈련을 가지고 있으며 구원의 방편으로 제도적 형식을 가지고 죄인들을 개종, 성도들을 온전케, 악에 대해 항거하는 기능으로 나타나는 유형적 조직을 의미합니다. 조직의 직분은 교회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조직교회의 직임 자는 공무원이나 군대장교나 기업체 간부처럼 되어서는 안 되며 성도들을 돕고 격려하는 좋은 인도자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원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 비유적 명칭으로 이해

 

 

1. 그리스도의 몸


교회와 그리스도의 생명적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2;27, 엡6;23, 골1;18). 신자들의 영적 연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로서의 그리스도 개념이며 집합적인 인격으로서의 그리스도 개념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안에 있어야하고(데살전1;1) 그리스도와 함께(롬6;1-11)해야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해야(롬6;3,갈3;27)하며 그리스도의 지체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전6;15).

남은 자로서의 그리스도 개념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바울의 "은혜로 선택받은 남은 백성"(롬11;5)의 증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집합적인 인격으로서의 그리스도 개념은 고전15장에 나타났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5;22절,45절, 롬5;12-21).


바울은 에베소서(1;22-23)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충만케 하시는 계획이 그 안에서 충만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몸인 교회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으니 화목하여야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니 그 사랑 안에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엡4;2-3,15,5;2). 바울은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 사역과는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을 통해 교회가 인간에 의한 구조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사역, 예수그리스도의 신적 기원과 사역에 의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오히려 여러 부류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다양한 요소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루는 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획일성 아니라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용어는 에클레시아라는 말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은 여러 곳에서 교회의 의미와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2: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개념은 여호와께서 선택하여 구별한 백성으로 이해되었습니다(창48:9, 출5:1, 렘12:16). 신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은 옛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른 새로운 言約 共同體에로의 부르심입니다. 구약과는 달리 신약에서의 하나님 백성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들과 민족들과 백성들로부터 나온 사람들을 포함하는 공동체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모여서 예배하고, 성례전을 집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는 종교생활하기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형태로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세상적인 가치나 이익 때문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복음과 사랑의 힘으로 변화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 세상에 실천하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흩어져야 하는 교회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17:16,18),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마28:19,20).



3. 새 예루살렘


갈4:26(위에 있는 예루살렘), 히21:22(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계21;2(새 예루살렘)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영적 교제를 나누던 곳입니다. 이 비유는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4. 진리의 기둥과 터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말씀과 교훈)와 교리의 수호자, 옹호자로서 거짓교리와 하나님의 원수들을 대적하는 곳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파되는 곳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고전3;11, 딤전 3;15, 계21;14).





5. 그리스도의 신부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신부로서 그 관계를 인간 모델로 비유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을 사모하며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렘2,호1,요3:29,마25:6,계19:7,엡5:22-23,고후11:2,사54:1-8).



6. 그리스도의 가지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교회는 그의 가지입니다. 교회는 예수 안에 있어야 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온갖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나무 없는 가지는 죽은 가지이며 나무 없는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위에 현실적으로 무엇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교회의 표지로 이해

 

 

교회의 표지를 알 때 우리는 교회에 바르게 충성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계시며 끝까지 교회를 보존하시는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아시아의 7 교회에 말씀하신 내용 중에 참된 교회의 표지가 계시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개혁이후 교회가 신. 구교로 분열되고 신교도 여러 종파로 나뉘어 지므로 인하여 교회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표지를 공개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유지 보존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교회가 때로는 오류에 굴복할 수도 있으며 진리에서 떠날 수 있고 완전히 타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에 의하여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개혁자들이 강조한 것은 참된 교회란 크기나 오랜 역사나 사람 수에 의해 구별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전파와 성례의 적정한 시행과 권징을 성경대로 행하느냐는 것으로 교회를 구별하였습니다.

칼빈은 "어디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히 전파되고 청취됨을 보며 성례들이 그리스도의 규정대로 거행됨을 보는 곳에서 교회를 의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기독교강요4권1장9). 벨직 신앙고백서 제29에서도 "교회가 적응해야할 진리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도 교회가 성경의 신앙고백을 하느냐, 교리, 예배, 권징을 행하는 것이 순수하냐는 것으로 교회의 표준을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참교회의 표지를 찾아봅시다.


1. 말씀의 순수한 선포가 교회의 본질입니다.(요일 4;1-4, 요8;31-32,47, 14;23).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부르셨고 제자들과 동거동락 하시면서 복음을 깨닫게 하셨고 훈련을 시킨 후 말씀만 맡기시고 증언하도록 하셨으며 말씀을 전파할 때 표적과 기사로 사도들의 증언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누가는 교회의 성장은 말씀의 성장으로 보았습니다(행6:7, 12:24, 19:20). 교회의 사명은 말씀을 전하는 사역이었습니다(엡4:11). 말씀 없이 교회의 사도성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도적이 되려면 사도들의 교리위에 세워져야하는 것입니다(고전3:10-11, 엡2:20, 3;4-5).


종교개혁은 교회의 조직이 아니라 복음을 참 교회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하신 말씀 곧 진리의 보전과 전파가 교회의 표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교리를 가르치거나 말씀의 지배를 받지 않는 교회는 참 교회가 될 수없습니다. 교회가 사랑을 강조하다가 진리의 신성함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진리는 사랑을 멀리할 때 거칠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균형있게 성장해야 합니다. 교회 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몰몬교는 기독교적 뿌리에서 나왔지만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계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충성보다 교파에 대한 충성이 더 크다면 이는 교회의 표지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진리선포보다도 말씀전도 선교보다 다른 무엇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참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하며 가르치며 전파하는 교회가 참교회입니다.



2. 교회의 표지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메시야와 교회는 신랑 신부의 관계로 묘사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부부가 아닌 것같이 예수사랑이 없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교회가 구제, 선교, 예배를 잘 드린다 해도 지식이 많아도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위대한 십계명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이 좋은 인격을 만듭니다. 바울은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했습니다. 참된 사랑은 가장 구체적이고 건전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므로 교회의 표지는 사랑입니다. 주님사랑의 동기로 하지 않고 명예 감투를 위하여 자기유익을 위하여 충성한다면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교회는 매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위대한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위대한 명령에 절대 순종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성육신의 삶을 살아야 하며 주님을 사랑하기에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주가 기뻐하는 것을 구하게 되고 주가 기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은 주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요 '성전'이요 '군사'요 '청지기' 라는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순결과 진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격적이며 사명적인 언약관계 속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격적이며, 사명적인 관계 속에서는 피차 '순결과 진실'로 대해야만 그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속죄양으로 삼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교회 역시 순결과 진실로 오직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교회의 표지는 主로인한 고난입니다.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신 말씀에서 교회의 표지는 주로인한 고난입니다.

주를 위해 고난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가 주를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핍박이 오는 것은 그들이 먼저 주를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사울을 향하여 주께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적들은 마귀적 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황제에게 절하지 않음으로 타협을 원하는 그들을 거부함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손해를 보며 궁핍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받아야 할 대가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고난은 모든 교회의 필수 불가결한 표지입니다. 고난이 진정한 교회의 보증이 됩니다. 교회가 고난을 피해 다닌다면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입니다.

순교자 본회퍼는 "고난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뱃지이다. 제자는 그 선생보다 낫지 못하다... 아우그스부르그 고백을 준비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각서들 중의 하나는 교회를 '복음을 위하여 핍박받고 순교 당하는 자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하고 있다....제자의 신분은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놀랄 것이 못 된다" 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타협을 한다면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됩니다. 현재 주를 위해 고난을 받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타협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순수한 말씀을 선포해야 하며 세상과 타협할 것이 아니라 순교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고난을 받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머니 교회로서 거룩해야 하며 제자교회로서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4. 교회의 표지는 성례의 정당한 집행입니다(마28;19,막16;15-16,행2;42,고전 11;23-30).


주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만찬에서 떡과 잔을 통하여 십자가의 피와 살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례는 말씀의 유형적 전파입니다. 성례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 연유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 앞에서 고백되어야 한다고 하셨으며 세례를 제자됨의 표지로 삼으셨습니다(마28:19).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표지입니다. 성찬도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생생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올바르게 성례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그 성례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선교단체, 가정교회, 기타 공동체 운동들과 교파가 교회가 될 수없습니다. 그 기관들은 교회를 보완하고 지원하기 위한 보조 단체이지 말씀이 있고 예배가 있어도 성례가 기준에 따라 시행되지 아니하므로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5. 교회의 표지는 권징의 신실한 시행입니다 (마18;18, 고전5;1-5,13, 14;33,40, 계2;14-15,20).


신자의 생활을 말씀에 순종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교리를 순수하게 지키고 성례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권징의 목적은 추악하고 부끄러운 생활하는 자에게서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을 빼앗으므로 하나님께 더 이상 치욕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지 않도록(고전5:6)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하며 각성하며 유익하도록 하며 영원한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천국의 열쇠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최종적 권징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이방인과 세리로 간주하도록 하셨습니다(마18:17). 권징으로 교회의 순결과 성례의 신성을 유지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지상의 유형교회는 부단히 악한 세력과 싸워야 하는데 만일 교회의 수적성장을 목적으로 권징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게 되면 윤리적으로 부패하게 되고 진리가 어두워지며 거룩을 잃게 됩니다. 권징의 궁극적인 목적은 말씀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성례의 오용을 방지하며 거룩성을 유지하며 교회를 뿌리내리게 하며 권면을 통해 형제를 구하는 것입니다(마18;15).

교회는 말씀과 성례로 정체성을 나타내고 권징으로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는 것이며 교회는 권징의 시행에 신실하며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성례를 정당하게 집행해야 하며 교회는 권징으로 순수한 신부로서의 공동체를 유지해야 합니다. 


(찬송가 245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흔들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생명샘이 흘러나와 모든 성도 마시니 언제든지 솟아 나와 부족함이 없도다 이런 물이 흘러 가니 목마를 자 누구랴 주의 은혜 풍족하여 넘치고도 넘친다


주의 은혜 내가 받아 시온 백성 되는 때 세상 사람 비방해도 주를 찬송하리라 세상 헛된 모든 영광 아침 안개 같으나 주의 자녀 받을 복은 영원 무궁 하도다 아멘







교회의 본질--교회의 특성으로 이해

 

 

교회의 특성은 교회의 외면적인 성격을 말합니다. 교회의 특성을 알 때 우리는 강할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어느 시대보다 세상 문화와 가장 잘 타협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배에 형식적으로 참석하는 사람은 많고 영적으로 아주 헌신된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숫적인 성장은 했어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정체성이나 교회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 양육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진정 교회다워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특성이 아니라 <거룩하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를 세우신 주님과 성령님과 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체적인 공동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인간들의 단체가 누리지 못하는 신적인 특권이 교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특성은 교회의 외면적인 성격을 말하고

교회의 속성은 교회의 내면적 성격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아래 존재하는 교회는 외면적으로 초월성과 불멸성과 진보성과 조화성과 진정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특성을 이해함으로서 지상에서 어떠한 환난이 와도 교회는 영원히 하나님의 언약아래 있는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깨닫고 영광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는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초월적 특성


믿음의 조상이며 교회의 신앙 원조인 '아브라함'을 부르심(창17:7),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심(요3:16), 오순절 성령이 임하심(행2:1-4)은 인간들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신적인 기원(창3:15, 엡1:4-5, 2:19)을 가진 초월적인 사건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초월적인 특성을 가지고 보존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초월하시는 분이 세우신 초자연적인 본질(창2:18,롬13:1, 요19:11, 벧전2:9, 엡1:23))을 가진 특별한 공동체라는 초월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초월적 존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미 그리스도 안에 선택되어(엡1:4-5)있었기 때문에 그 존재 기원적으로 신적이며, 말씀과 성령의 공작으로 사람을 교회되게 하셨으므로(요1:12) 본질적으로 초자연적인 존재입니다. 교회는 신적이며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초월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결코 정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으로 변화된 신적 공동체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조직체와 같이 사람의 계획과 뜻으로나 혈통이나 육정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설립하셨기(요1:12-13) 때문에 초월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로 주님의 교회를 사셨습니다(행20:28). 교회를 향하여'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요15:5)라고 하신 말씀에서 이 '피'(진액)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피는 생명이며 교통이며 연합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로써 존재하고(갈2:20) 그리스도와 교회는 머리와 몸으로서의 일치성으로(골1:18), 몸과 지체로서의 일치성으로(고전12:12), 신랑과 신부로서의 일치성으로(계19:7,9; 계21:2),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성찬의 관계로서의 일치성으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엡2:1) 죽으심으로 교회를 사신바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초월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신적 사역이므로 교회는 초월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역사하시기 때문에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성령께서 바람같이 역사하여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소로 인간의 지적, 감정적, 의지적 능력 모두를 즉 전인적인 변화를 우리 속사람에게 행하셨습니다(엡4:22-24).

거듭난다는 것은 성령의 신적 사역이므로 교회는 초월적 존재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계속 성장하게 되므로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교회는 인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성화시킴으로 성장하고 그 기원, 출생, 성장이 모두 신적 사역에 의한 것이므로 초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공동사역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영광이며 세상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직분은 세상 직분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사람이 준 것이 아닙니다. 교회직분을 세상직분보다 가볍게 보는 사람들은 교회가 초월적인 존재인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직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초월적 특성을 이해하고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교회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운 초월적 존재로서의 교회라고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초월적인 의와 평강과 희락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2. 불멸적 특성


세상의 단체는 언젠가 사라지지만 교회는 그 특성 때문에 영원히 존재합니다.

비록 세상에 불의가 득세하고, 교계가 혼탁하여 교회의 권위가 희미한 때일지라도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서 영원히 살아계시니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존재하며 또 교회의 사명을 이루시도록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창17:7). 인생들은 실패하고 실족할지라도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사9:7)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권세를 힘입어 '이기고 또 이기며' 존속해 왔습니다. 천국에서 모두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날까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계17:14).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평안하게만 인도하시며 발전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박해와 어려움을 통해서도 교회를 더 굳건한 자리로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가 불멸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엡1:6)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사랑하시는 '아들들'(엡1:5)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선택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고 세우셨으므로 멸망할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엡1:6).




3. 진보적 특성


언약적 구속의 진리는 원시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 점진적으로 확대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교회는 진보적인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성경 역사적 특성, 계시 역사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벨탑 시대의 언어 혼잡으로 흩어진 역사가 교회의 오순절 사건으로 언어의 통일이 일어났고 모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심판의 역사가 회복의 역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에 국한된 공동체가 아니라 타민족에게도 열린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저주와 성전 청결의 특행을 보이시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지향하셨습니다.  민족주의적 시오니즘에 찬 유대인에게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선포는 받아 드리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새 시대의 교회가 출현되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구약(사56:7)에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마지막 공동체의 출현을 알리신 것입니다. 사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심은 사울 자신이 핍박하는 그 교회 무리들과 주님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몸된 교회”라는 신학적 인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인식의 체험은 바울의 생애를 완전히 바꾸어 하나님이 누구시며 교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신지식이 평생 동안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일에 종의 헌신을 감행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인해 그는 교회를 보는 시각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지게 하신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은 교회의 출현이 종말론적 사건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에클레시아와 디아스포라로서의 긴장이 특성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Local Church와 Para Church의 긴장이 특성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가정교회에서 국가교회로 국가교회에서 보편적 교회로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왔습니다. 성령님도 교회를 진보적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성령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에서 교회를 진보적으로 조명하여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변하는 시대에 따라 불변한 진리의 말씀을 적용하도록 말씀을 깊이 계시하시며 은혜의 풍성을, 영광을 풍성을 점진적으로 부어 주십니다. 사단은 교회의 부패를 목표로 하며 영향력을 상실하게 합니다. 교회가 진보적이지 못하면 고인 물같이 썩게 되며 종교개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4. 조화적 특성


교회는 강한 조화성을 그 특성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케(엡2:13-16)하므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시며(엡4:2-3), 성령께서 하나의 믿음, 한 소망, 하나의 세례를 통하여 조화되게 하십니다(엡4:5). 하나님은 하나의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 되게 하십니다. 모든 교회가 하나의 진리위에 바로 선다면 반드시 조화롭게 됩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슥8:19). 진리는 참된 평화의 선 조건입니다. 진리로 유지되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평화롭고 따라서 조화를 이루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화는 말씀대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김으로,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을 버림으로, 심령이 가난하므로, 죄를 애통하므로 온유와 화평과 청결과 의를 사모하므로 긍휼을 베풀고 어린아이같이 됨으로 나타납니다.



5. 진정적 특성 ---복음을 사수. 전파. 탐구



교회는 진리를 수호해야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진리입니다. 구약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지키며 보전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롬3:2). 신약교회도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딤전3:15) 구약교회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믿으며 지키며 전하며 보전해야 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전달하는 자로 교회를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를 통하여 신약시대는 성령의 계시하심으로(갈1:11-12)기록된 복음의 말씀을 성령과 함께 교회가 진리를 믿고 지키며 전하고 보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외면적으로 진정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만들어진 모든 신조와 고백서가 구원에 관한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 강요된 것이며 이 일은 교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교회의 특성을 살린 결과입니다. 교회의 임무는 성경에 계시된 진리와 제시된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며 거룩한 진리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진리 앞에 놓을 수 없습니다. 사랑 때문에 타협할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 수호차원에서 교회는 수나 교회의 크기와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진리로 생명이 풍성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수하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는 교회입니다. 외형과 재정만이 강조되어서도 안 됩니다. 진리를 사수하는 남은 자가 중요하고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국에 자랑스러운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평양 산정현교회입니다. 산정현교회의 목사와 장로와 성도가 일치단결하여 복음을 사수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잘 것 없는 소수 12명의 손에 교회를 맡겨두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중요한 것은 수가 아니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이며 순수성입니다. 결심하고 결정하는 것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다른 종교와 서로 교류하는 것도 좋지만 바른말을 하여야 합니다. 구원이 없는데 구원이 있다는 식의 비 진리를 선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신사참배와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으로 천국에 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무시하십니다. 만약에 무지해서 그렇게 했다면 예수님께서 책망하지 아니하십니다. 제자들이 무지하여 예수님께서 500여 성도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해야하는 역사적인 순간에도 로마에 속국이 되어있는 이스라엘을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듯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주실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3년 동안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의 부활전이나 부활 후나 메시지의 주제는<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보여주었는데도 영적 이스라엘의 해방과 자유에 대하여 이해 못하였고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하고 땅의 나라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획하신 이 승천의 날에 땅에 것을 질문하는 이 영적으로 무식한 제자들을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꼭 필요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으로 천국을 이해할 수도 없고 증인도 될 수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것을 깨닫게 하고 증인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 그레고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마음이자 영혼이라고 하였으며 토머스 왓슨은 성경은 성령의 도서관이며 신령한 지식의 요람이요 신앙의 정확한 모본이자 강령이며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들과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사항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성경은 진리의 기준이요 진리 논쟁의 심판관이고 우리 의지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이요 신성한 안약이며 영혼의 치유제이다고 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며(딤후3:15) 하늘로 인도하는 길잡이며(사8:20), 명령은 등불이요(잠6:23) 만국을 소성시키는 생명나무 잎사귀들입니다(계22:2). 진리의 말씀에 의하지 않고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약1:18). 진리는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진리는 확실하여 우둔한자로 지혜롭게 하며 진리는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진리는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고 진리는 정결하여 다 의로우며 정금보다 더 사모할 보배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친구보다 더 가까이 해야 하며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고 세상의 모든 위안거리보다 더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분깃으로 삼는 천국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말씀에 순종하며 살 것이며 진리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 것이므로 이 진리는 천천금은 보다 고귀한 보화인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인 것은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진리를 발견하고 굳게 잡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계시에 의해 존재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를 선포하며 믿고 순종하며 사수하고 탐구하며 그것을 전파해야 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세지말에 좀더 구체적으로 그 특성을 밝히 알고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성취해주시기로 언약하신 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성취하신 사역 즉 이 복음 진리가 세상으로부터 잠식당해 버린다면 기독교회는 그야말로 모든 생명과 가치를 상실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는 그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은 영원무궁한 교회의 생명이요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어찌하든지 그 복음 진리를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빼앗기 위하여 우는 사자와 같이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의 복음을 교회가 끝까지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 속에서 믿는 자와 비밀스러운 일체를 이루신 감격을 현대 신학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구원을 그리스도외에서 찾고 있습니다. 교회가 중심이고 그리스도는 그 다음인 교회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교회의 표지를 무시하는 것은 그분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교회가 세속화 되어 세속문화를 교회 모든 부분에 적용하여 세속주의를 따르고 말씀을 자유주의로 해석하는 교회, 자기 교회 밖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교회, 사회사업 조직의 형태 또는 수익 사업으로 교회를 움직이는 기업화가 일반화되어 갈 때 이미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교회가 된 것이며 이는 예수님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복음이 교회의 생명이라면, 복음을 사수하는 신앙은 그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는 진리는 영원불변한 성도의 구원의 수단이요 삶의 방편입니다. 사탄은 이 복음을 온갖 수단을 다하여 의심하게 하고 거짓으로 파괴하고, 변질, 왜곡시키려고 오늘도 활동하고 있습니다(벧전5:8).


교회는 예수님처럼 복음을 사수할 뿐만 아니라 전파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따라서 진리를 전파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에 의해서만 진리를 깊게(고전2:10). 그리고 온전하게(고전2:12-14) 전파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인간 구원을 위해서라면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도 사용하십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파해야하는 의무는 무게가 있는 교회의 특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 탐구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령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다'(요5:39)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상고'한다는 것은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사수하고 전파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교회는 풍성한 진리를 얻을 수가 있고 영적 생명력을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기록된 말씀(진리)이므로 성령의 조명 없이는 이해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성령의 조명은 진리를 오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게 하고 항상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진리를 통달하게 하십니다(고전2:10).


바울은 말씀을 전할 때마다 몹시 두렵고 떨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도 똑같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하였고 스펄젼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나 않을까 항상 두려워 떱니다"고 하였습니다. 참 복음은 인생의 삶을 바꾸고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교회가 죽기까지 사수하고 전해야 하는 진정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교회의 본질--교회의 속성으로 이해





교회의 속성은 교회의 내면적 성격을 말합니다.

1. 거룩성(holiness)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고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 하시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교회가 거룩하게 살 것을 담대하게 외치면 부흥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성장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의 본질입니다. 리처드 뉴하우스는" 성장을 위한 성장, 인간이 만든 성장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이는 것이 될 수 있다. 인위적인 성장은 영적으로 죽은 목회의 마지막 피난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어야 하는 것은 구원의 목적과 연결됩니다.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인 것입니다.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은 소극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고 말씀하셨고 소극적으로 요한을 통해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전해주셨습니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에 대하여 높은 차원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표현되었듯이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가르침으로 교회를 존경하도록 하였습니다.


거룩의 참된 의미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거룩해져야 하는 이유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그 분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요17:11).

거룩성은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godliness). 성도는 하나님이 없는 삶 즉 버려진 생명에서 의미 있는 거룩을 향한 진정한 생명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거룩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벧전2:9,히2:14). 로마 카톨릭에서는 외적 의식적 성결을 교회의 거룩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의 정치 예배 성례 등 의식의 거룩함으로 성자들을 낼 수 있으므로 교회가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개신교는 그리스도의 중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한 객관적으로 거룩한 교회가 되었으며 교회가 완전한 거룩을 목적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성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거룩한 교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붙인 '거룩'이라는 단어는 'hagiazo'라는 원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하여 구별된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의식법과 시민법의 구조는 하나님이 거룩으로 부르신 백성의 독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이라는 말은 인본주의와 죄로 물든 세상과는 '구별'된 것을 뜻합니다. 거룩함의 본질적 의미는 윤리적인 차원보다 영적이며, 신적인 차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인생들의 고상한 삶과 행위를 '거룩하다'라고 할 수없습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속한 것을 뜻합니다.



거룩해야할 이유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된 신분의 변화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거룩해야 합니다(엡2:20, 고전1:2, 벧전2:9, 롬3:28).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죄를 사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았기 때문에 세상과 분리되고 객관적으로 거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라는 말로 40회 정도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 16-17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성도들을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 (벧전2:9) 들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거룩성을 잘 반영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해주시지 아니하면 죄 많은 피조물의 모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본질적으로 거룩한 무리로 여겨야 합니다.


거룩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본체이며 거룩성을 잃어버린다면 사단의 장난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엡4:4-6, 고전3:16-17, 6:19-20).


청교도 존 오웬(John Owen)은 '거룩이란 복음을 우리의 영혼 속에 심고 기록하고 실현하는 것이다'고 정의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성장해야하는 본질적이고 사명적인 거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속문화의 가치에 스스로 굴복함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거룩입니다.


예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게 거룩을 요구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자들 곧 진리를 거스리는 거룩하지 못한 자들과 도덕적인 타협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결한 생활과 의로운 성품이 교회의 필수적인 속성임을 제시하셨습니다. 교회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성품을 지닌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사단은 이 거룩을 무너뜨리는 것이 사단의 사명입니다.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성취를 위해 교회 중에서 오직 거룩한 도구들만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거룩이 동반되지 못하는 사역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 것입니다. 거룩이야말로 교회와 설교자와 성도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살전4:3, 엡1:4, 딛2:13-14, 살전4:7-8).

교회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져도 거룩이 빠진다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제물과 음행이 교회와 함께 할 수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고 육신의 정욕을 통제하며 마귀의 유혹을 저항하며 거룩을 지키면 광명한 새벽별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거룩은 영광입니다. 거룩은 교회를 교회되게 합니다. 거룩은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 하도다“(사6:3).



2. 보편성(catholicity)


헬라어 카톨리코스(katbolikos)는 보편적, 전체적, 전체와 관련된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는 교회에 대하여 사용한 바가 없으며 초대교부들이 이단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공식적으로 선포함으로 보편의 교회(에클레시아 카톨리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칼빈은 정통성을 떠난 로마 교회의 보편성은 의미가 없고 아무리 지역을 넓게 확장하여도 사도적 복음의 선포가 없다면 보편성을 가진 참교회가 될 수없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은 일체성에 근거하며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편성의 근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모든 죄인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된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에 의해서이며(막10:45,히9:12), 이 속죄의 은혜는 보편적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10:12).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는 모든 믿는 개인들에게 적용함에 있어 높고 낮음이 없고 동서양, 피부의 색깔, 유식 무식, 악인 선인 관계없이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됩니다. 여기에 은혜의 보편성이 있습니다.


교회의 보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는 항상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대와 족속과 국경을 초월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존재의미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속죄 공로와 성령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없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중직자일수록 어떤 영적인 우월감이나 자만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충성된 바울은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한적으로 예정하신 십자가의 도 안에 존재하는 교회, 성경에서 계시된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와 사도들로부터 전수된 신앙 규범을 따르고 믿는 교회가 성경이 인정하는 보편성을 가진 교회입니다. 십자가의 도의 은혜에 일체성을 가지고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는 이 보편성이 교회의 속성이고 그 속성이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엡4:12; 갈6:2).


무형 교회의 보편성--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는 모두 계시의 주인공인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무형 교회들은 그리스도 안에 보편성이 있습니다. 이 무형 교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교회로서, 사람들이나 교파에 의하여 판단되지 않는 절대적 신비적 보편적 교회입니다.


유형 교회의 보편성--영원히 존재하는 불가견적 교회 안에 있는 가견적 교회만이 보편적 교회입니다. 유형교회가 조직체로서의 교회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신분이 있는 조직체가 아니라 다만 직임만이 있는 조직체입니다. 교회에 신분이 있다면 그것은 '형제'와 '자매'이고, 다만 봉사의 직임으로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유형 교회는 이러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체로서의 유형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로서 거기에는 어떤 계급이나 신분의 차별이 없는 성경적 보편적 교회인 것입니다.




3. 통일성


바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서의 교회는 믿음, 세례, 소명(엡4:5-6) 때문에 신비로운 영적 유기체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당연히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는 속성들을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라고 한 것은 교회의 통일성(unity), 거룩성(holiness), 보편성(catholicity)의 3가지 속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견해는 교황이 전 조직의 유형적 머리이며 조직적으로 관할함으로 통일성을 유지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교회의 통일성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비적인 결합체로서의 영적 통일성을 말합니다. 이 내적 통일이 신앙고백과 예배 성례에서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통일성을 외적인 조직에서 찾아서는 아니되며 내적이고 영적인 성격에서 통일성을 찾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령님의 사역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된 신비로운 통일체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형교회와 유형교회의 통일성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고전12:12-31, 엡4:4-16)). 그리스도안에서의 통일성, 이 원리는 만유를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롬12:5, 고전12:12-13, 엡1:22-23). 교회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한 통일성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에 통일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연합된 생명체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내면적 영적 유기적인 통일체인 것입니다.


교회 연합의 근거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 연합의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것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안에서 연합되어야만 참된 연합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연합은 동일한 신앙 내용이 있어야 가능 합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입니다. 바울 사도와 야고보 사도의 '강조점'은 달랐지만 내용은 하나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본질을, 야고보는 믿음의 실존을 강조했을 뿐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 이천 년 동안 검정되고 고백한 신앙의 한계를 넘어선 교리는 결코 하나 될 수 없다는 것을 성도들은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사업의 목적도 형식도 다르다 해도 오직 그리스도의 '영생 복음 전파'를 위해서

일하는 교회는 '하나'된 교회요, 궁극적으로 이 땅의 행복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하신

'영생'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삼는 교회가 주 안에서 '연합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인본적인 사업을 하거나 '인간을 위한 지상 천국 건설'을 교회의 궁극적 목적으로 추구하는 교회들은 빌라도 앞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18:36)고 하신 주님의 뜻과 다른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인 것은 광선은 많으나 태양은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나무에 가지는 많으나 원줄기는 하나이며 잔뿌리가 많으나 원뿌리는 하나입니다. 진리를 희생시키면서 외면적 통일을 시도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연합운동을 한다거나 큰 통일성을 위해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안에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획일성만 산출할 뿐 영적인 통일성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신앙고백의 일치에 불과하다면 실패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 이상인 것입니다. 사랑과 인격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인 교회라면 죄와 잘못된 편견을 날마다 고치고 세속주의와 싸우는 통일성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4. 사도성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요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교회는 이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증거와 사역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교회는 사도성이라는 속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주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보내신 교회의 시작이며 영구한 기초석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자이므로 이 사실에 근거하여 교회는 사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도적일 때 교회는 복음적인 통일성과 보편성과 거룩성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이 증거하는 복음의 터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사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325년 니케아 신조에서 교회의 4가지 속성중 하나로 사도성을 확정하였으나 로마 교회가 이 사도성을 악용하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이 사도성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도직은 로마 교회처럼 어느 개인이 대신하거나 대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하며 다만 성령받은 교회가 계승자라는 의미의 사도성만 속성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꾼된 사도들이 전하여준 복음을 그대로 계승하는 교회가 사도적 속성을 가진 교회입니다(엡4:13,눅1;2). 교회는 사도적 제자훈련을 할 때 교회의 체질이 바뀌고 교회의 속성으로서의 본질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246장)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내 주의 교회는 천성과 같아서 눈동자 같이 아끼사 늘 보호하시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 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합니다

성도의 교제와 교회의 생활과 구주와 맺은 언약을 늘 좋아합니다

하늘의 영광과 베푸신 축복이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치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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