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정보화 시대에서 본 우리 소설
| 이 유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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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호 靑多 《현대문학》(1961) 등단,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강남문인협회 초대회장 및 회장 역임, 배화여대 교수 정년퇴임,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비평가협회,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고문, 청다문학회 이사장, 합천이씨 전국 중앙종친회 고문 / 평론집 : 《반세기 한국문학의 조망》외 8권, 수필집 : 《세월에 인생을 도박하고》, 《황혼의 이정표 앞에 서서》외 / 현대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한국문학상, 남명(조식)문학상 수상 |
세월은 변화를 몰고 오고, 그 변화는 곧 그 주어진 환경을 새로이 조성한다. 이른바 정보화 사회가 되자 그간 우리의 소설문학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어 왔고 또 있다.
익히 알다시피 컴퓨터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기 이전, 우리의 소설문학은 오로지 제도권 문학이었다. 크게 말해 192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도권 내의 소설가들이 문학지를 통한 활동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기의 소설문학의 주류는 순수문학 계열의 순수소설, 아니면 다른 형태의 본격소설이 주종을 이루었고, 여기에 비주류의 대중소설이나 통속소설 그리고 추리소설이 곁가지로 가세했다.
1990년대 중반 전후에 컴퓨터 보급이 상용화 되자 새로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개인별 컴퓨터가 대중화됨에 따라 PC통신이 활성화 되자 이른바 ‘PC통신소설’이 출현했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쉽게 자신의 습작품을 게시판에 올리던 것이 그 시초였다. 그 후 수십 개의 작품이 발표되고, 이에 덩달아 기성작가들도 이에 가세했다.
그리고 이런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들이 일단 ‘PC통신소설’로 선을 보인 후는 또 ‘PC소설’로서 속속 출판도 되었다. 개중에는 베스트셀러 아니 밀리언셀러에 진입한 작품도 더러 나와 기성작가들을 놀라게도 했다. 무협소설 ‘퇴마록’(이우혁), 추리 수사물 ‘하이텔 연속살인’(최지우),정치 추리물 ‘토끼바위산’(안봉선) 등이 그렇고, 특히 ‘드래곤 라자’(이영도)는 무한한 상상력, 깊이 있는 세계관과 그 작품성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판타지소설로 자리 매김도 되었다. 1998년도에 책으로 출간되어 그 후 10년간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니 시대의 변화에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추세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또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PC통신에서 인터넷이 새롭게 등장하자 이른바 ‘웹(Web) 소설’ 혹은 다른 말로 ‘인터넷 소설’, ‘사이버 소설’ 이란 것이 새로이 선을 보인다. 그리고 ‘장르 소설’이란 새로운 용어도 등장한다. 이 용어는 ‘PC통신 소설’이 인터넷으로 자리바꿈과 동시에 다루는 장르도 확대되다 보니 편의상 부쳐진 용어가 되었다.
이런 ‘장르 소설’이란 것에 통합되어 있는 소설의 장르는 현실에서는 없는 상상속의 환상세계를 그린 판타지 소설, 모험적이고 가공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그린 로맨스 소설, 무협 소설, 공상과학 소설, 추리 소설, 스릴러 소설, 공포 소설 등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편의로 사용했던 말이 일종의 용어로 차입되어 굳어진 용어인데 장편, 단편 모두에 사용되는 말이다. 소설의 소재, 주제 중심의 여러 양식 중 어떤 특정 장르를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장르 소설’이 2000년대에 들어와 활개를 치자, 기존 제도권 소설은 고사 상태에 빠져 있다. 문학지의 순수소설이나 본격소설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 있는 형국이다. 시대의 변화요 독서 취향의 변화다. ‘인터넷 소설’이란 비제도권의 오락, 흥미 위주의 대중문학이 전면에 서게 된 것을 이르는 셈이다. 지난날과 비교해 보면 주류의 소설들이 비주류로 퇴물신세가 되었고, 반대로 비주류였던 대중문학이 주류가 되어 버린 격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자극받아 제도권의 작가들도 ‘인터넷 소설’에 동참도 했다.
2007년도에 박범신의 온라인 연재소설 〈촐라체〉를 시작으로 하여, 2008년도는 황석영이 〈개밥바라기별〉을, 뒤이어 공지영의 〈도가니〉,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선보였고 또 김훈과 신경숙 그리고 비교적 젊은 작가인 정이현, 박민규, 백영옥 등도 가세했다. 이 중 박범신, 황석영, 공지영의 작품은 연재 후 종이책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나마 제도권 작가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아무튼 현재로 보아서도 인터넷상의 ‘장르 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연재가 끝나면 곧 전자책으로 나와 독자의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제도권에서는 마냥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있을 수만은 없겠다. 시대의 변화와 독자 취향의 변화를 겸허히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백일몽처럼 지난 시대의 영광만 들먹일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가져야 하리라 본다. 물론 그 언젠가 지난날과 같은 본격소설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다면 참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대조차 어려운 상황이니 노상 한숨만 쉬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비평가로서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작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첫째, 제도권의 많은 능력 있는 우수한 작가들이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인터넷 소설’ 작단과 담을 쌓아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적극 참여해야 되리라 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 비제도권의 그런 소설도 우선 질적으로 향상되리라 본다.
제도권의 본격소설이 인터넷상의 ‘장르 소설’에 압도당하고 있는 독서계의 이런 현상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 세의 약화로 머지않아 본격소설이 말 그대로 광의의 장르 소설‘에 편입되리란 전망도 하고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분발하지 않으면 필시 문학관의 전시용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둘째, 제도권에서 문예지를 통해 발표되는 소설에도 과감한 많은 변화가 있어야 될 것이다. 본격소설이다, 리얼리즘소설이다 라는 회고 취향적 고집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독자대중의 기호 취향을 감안하여 응분의 능동적 환골탈퇴도 필요하다. 가령 지난 날 순수소설이 지나치게 외골수로 빠져들 때 그 타개책 아니면 탈출구로서 순수와 대중소설의 중간쯤을 열어나가 보자는 뜻에서 이른바 ‘중간 소설’ 이란 장르를 부르짖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때와는 문화 환경이 확연하게 달라진 만큼 제도권의 본격소설과 인터넷의 ‘장르 소설’을 융합시킨 이 시대 나름의 ‘중간 소설’이 나와야 할 것이다.
또 콩트라는 장르는 이미 있지만 단편소설도 꼭 5~60매 이상인 것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 반으로 압축시킨 ‘단단편 소설’도 시도해 볼만하다. 이 시대의 취향이 긴 것 보다 짧은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경향을 고려해서이다. 수필에서도 ‘5매 수필’ 또는 ‘단형 수필’이 나와 제법 좋은 반응을 얻은 바도 있다. 그리고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소재나 제재의 발견은 물론 작법의 대혁신도 뒤따라야 하리라 본다.
셋째, 비제도권의 ‘장르 소설’에서는 문학 본연의 임무도 신중히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노상 흥미나 재미 위주로 흐르거나 또는 호기심 충족에만 전력투구 한다면, 저질이나 통속이란 불명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제언해 본 조건들이 앞으로 우리 소설문학에서 충족만 된다면 요컨대 제도권 소설이건 ‘장르 소설’이건 상생의 길은 열리리라 본다.
문학에도 유행이 있기 마련이다. 시대의 변화나 변화된 그 여건에서 기인이 되었건 또 아니면 기존의 것에서 새로움을 추구해 보자는 의도에서건 또 아니면 복고주의에서건 다 유행이 있다. 결국 크게 보아 문학사의 사조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된 소산이 아닌가. 그리고 그 무엇이 되었건 흥망성쇠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장르 소설’이라 해서 언제까지나 힘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고, 또 반대로 비록 제도권의 소설이 현재는 힘을 잃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서로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소통을 통한 상생의 길을 찾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본다.
사실 그 흥망성쇠를 딱 무엇이라고 부러지게 점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내일의 어느 시기까지를 위해서라도 서로의 좋은 유전자를 이식할 필요가 있다. 그 용어는 [본격형 장르소설]이 되건, [장르형 본격소설]이 되건 또 아니면 적절한 다른 용어가 되건 서로의 융합은 있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