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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고치령~늦은목이재 산행기
☞일 시 : 2013년 11월19일
☞참석인원 : 6명
☞등산코스 시간
-.06:20~총신대역 1번출구 출발 <강변도로-하남 만남의 광장-풍기ic-고치령
-.09:25~고치령 도착
-.09:35~고치령 들머리 출발
-.11:35~고치령 6km지점 1096봉 헬기장
-.12:10~마구령 <식사>
-.12:50~마구령 식사 후 출발
-.01:17~1057봉
-.02:47~갈곳산
-.03:02~늦은목이
-.03:25~날머리 포장도로
-.03:34~주목산장 차량회수
산사랑 한마음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소백산이 끝나고
태백산이 시작되는 백두대간의 주능선 고치령(760m).
단종과 금성대군의 애틋한 역사를 간직한 이 험준한 고개 넘어
'영남의 고도(孤島)'라 불리는 마락리가 자리해 있다.
행정구역상 영주시에 속하면서도 고치령 때문에 나 홀로 단양군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
마락리의 지리적 형세를 두고 하는 말일 터다.
오늘 우리는 중앙고속도로 풍기ic 빠져나와 931번 지방도를 타면서부터
이정표에는 어김없이 소수서원과 부석사가 등장한다.
이 친절한 이정표는 갈림길마다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풍기ic에서 소수서원까지는 10여 km, 그리고 여기서 다시 14km 정도를 더 가야 부석사에 닿을 수 있다.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그 중간에 있다.
단산면사무소가 자리한 옥대삼거리가 바로 그곳.
옥대삼거리 지나 단산교회가 자리한 갈림길에서 부석사로 이어지는 931번 지방도를 버리고
'좌석리․마락리'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고치령으로 이어지는 고갯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곳단산교회 앞에서 택시기사님을 만나기로 했다,
고치령에서 늦은목이 32.2km를 나의 그랜드 카니발 차량을 이동시켜줄 기사님 이곳에서 만나 같이 타고
고치령으로 간다,
아~~~ 그런데 이분 먼저번 고치령에서 죽령까지 택시기사님 이분이 그분이 다시한번더 인사하고
그때는 단양 여자 기사님께 부탁해서 단양기사님인줄 알았는데
여자 기산님이 부석 기사님께 부탁해서 생각지도 않게 오늘 또 만났다,
고치령까지는 거리가 제법 멀지만 그래도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운전하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아니, 웬만한 드라이브 명소로 꼽히는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단산저수지를 끼고 도는 구간은 마치 호반도로를 달리는 듯 운치도 있다.
단산저수지를 5km 남짓 지나 좌석리와 연화동으로 이어지는 삼거리 두 곳을 더 지나면
이제부터 고치령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고갯길이다.
고치령은 소백산이 마지막이 되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목적이 비단 백두대간의 주능선이어서만은 아니다.
고치령에 얽힌 슬픈 역사와 그 역사를 보듬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녹아 있기에
그 여정은 더 뜻깊을 수밖에 없다.
차 두 대가 어깨를 겯고 지나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길을 따라 조심스레 차를 몬다.
그럭저럭 길의 형태를 유지하던 도로는 정상까지 제법 오르막이 심하다,
오늘부터 갑자기 추워지면서 강한 바람이 이곳의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는 되는 것 같다,
태백과 소백을 이어준다는 그 상징적 의미에서 오는 이름값이라고 해야 할까.
고치령은 호락호락 그 모습을 내보이기 싫은가 보다.
그렇게 올라선 고치령의 모습은 2주전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때는 산령각에 치성 드리는 분이 깽과리 징소리가 울리더니
오늘은 산불감시요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까지 같이 올라왔다,
요즘 11월15일부터 한달간 입산금지 현수막에 약간은 난감
이곳에 왔으니 돌아 갈 수도 없다 기사님이 차를 가지고 내려갔으니
고개 길 고치령에는 태풍같은 바람에 낙엽만 날린다,
산령당에는 자물쇠가 체워저 있고 일 딴은 산행준비 방한모에 방한장갑
바람에 준비하기도 힘들다,
체조에 몸을 풀고 산행을 해야 되는데 감시요원의 눈치보며 옆길로 나가 돌아 대간길을 잡는다,
사실 모두 같은 백두대간이지만 이들 두 고개에 비하면
고치령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광이라는 게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내에 담긴 역사의 흔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과는 그 깊이가 다르다.
고치령 길옆에는 한 칸짜리 아담한 산령각(서낭당)이 자리에는~~~
조선시대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에 오른 단종의 서글픈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고,
그의 복위를 꿈꾸던 금성대군의 마음도 그러했을 터이니 말이다.
뒤틀린 세상을 원망하며,
또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던 이들의 열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고치령이다.
단종을 태백의 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의 신으로 모신 이곳 산령각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산 중의 명산으로 꼽히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몸을 섞는 곳이니 더 말해 무엇 할까 싶다.
고치령 넘어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의 경계에 자리한 마락리는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에 자리해 있다.
길도 꽤 험하다.
이 길을 오가던 보부상의 말이 자주 떨어져 마을 이름까지 마락리가 되었다고 하니,
그 험한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고치령은 야영하기에 그만이다.
고개 마루에서 의풍 방면으로 약 100m지점에 있는 샘터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는다는 시원한 약수들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이 길로 영주버스가 하루 두 차례씩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자가용 물결에 밀려 운행이 중단됐다.
마락리는 백두대간상에서 한강줄기이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오른쪽은 경북이요
왼쪽 충북이라는 것도 형제봉능선이 도계이니 이곳은 양쪽이 경북 ~~~
왜 이곳을 영남의 고도라 하는지 이해가 간다.
마락리 주민들은 이 산에 기대어 살아간다.
산에서 더덕도 캐고 산을 깎아 만든 자그마한 밭에서 배추와 무도 키운다.
그렇게 자식을 공부시켰고,
자신의 삶을 영위해왔다.
누군가에겐 험하기만 한 이 산이
이곳 주민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인 셈이다.
마락리 옆 남대리 쪽은 작년 여름 삼도봉 어래산 넘어 칠용계곡 내리계곡 트레킹때 산행의 들머리로 잡았든 곳
마락리의 고만고만한 집들 사이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마락분교이다.
마락리에서 가장 큰 건물인 마락분교는 도로변 한가운데 자리해 있다.
마락리의 유일한 초등학교였던 마락분교는
지난 1991년에 폐교돼 지금은 '마락 청소년야영장'으로 이름을 달리하고 있지만
그 모습만은 옛날 그대로다.
아니, 조금 더 세련되어졌다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한여름 피서객들을 위한 야영장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이야 무엇이든,
그래도 여느 지역의 폐교들처럼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다.
우리들은 대간의 마루금에서 2주전 우리가 걸어온 소백의 마루금과 형제봉을 뒤돌아보며
낙엽이 싸여 마루금이 안보이는 곳을 조심하며 봉우리를 오르고 내린다,
바람소리는 가까이 지나가는 비행기소리 같고 햇살도 구름에 가러 올 들어 제일 춥다지만 영하 3,4도일 것인데
영하15도에도 산행하는 우리가 첫추위에 몸이 적응을 못해 그런지 사진 한 컷 찍지도 않고 그냥 진행한다,
500m단위로 안내목은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데 같은자리에 국립공원안내목과 같이 있어
표지목은 예산낭비는 아닐는지~~~
고치령 해발780m 바로 위 봉우리 1km지점에 950봉
3km 지점에 미내치에서 내려가 1096봉 헬기장에 올라서고 내려가니 마구령이다
고치령에서 마구령까지는 8km
우리들의 마구령 길 한편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지나가는 자가용들이 처다 보지만 그분들은 바람부는 고개길에서 밥 먹는 우리들이
어떻게 보일까 ㅎㅎㅎ
영주의 북쪽 마지막 고개 마구령
마락리를 벗어나면 단양군 영춘면이다.
마구령은 임도였던 고치령길과 달리 지방도로 지정돼 있어 도로도 넓고 상태도 양호하다.
그래도 호젓함은 고치령길에 뒤지지 않는다.
구절양장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마락리에서 마구령 넘어 부석사가 지척인 두봉교에서 끝이 난다.
예부터 의풍계곡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영남에서는 마구령과 고치령이 있어 접근하기 쉽지 않았고,
단양과 강원 영월에선 남한강을 따라 소백산과 태백산 험산준령을 넘어야 했다.
숲이 빽빽해 대낮에도 어두워 길을 잃기 쉬웠으니 임란이나 병란도 비켜간 천혜의 은둔지였다.
한때 <정감록>을 믿는 후예들이 몰려와 좁은 계곡을 따라 200여가구 남짓 살았다는데
지금은 곳곳에 빈집들과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하지만 신통하게 효험을 봤다는 사람들은 약초꾼이나 산장지기를 일삼아 이곳을 떠나질 못한다.
마구령은 부석사 인근 임곡리에서 남대리로 넘어가는 고개 ~~~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을 마주한다.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馬驅嶺)이라 하고,
경사가 심해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린다.
그 이름만큼 고갯길은 험하다.
길은 좁고 발밑으로 깎아지른 벼랑이 아슬 하게 서 있다.
돌고 도는 굽이마다 하늘이고,
돌고 돌아서면 좌우가 벼랑이다.
한고비를 넘으면 하늘에 성큼 다가서고, 한 굽이를 돌면 하늘 끝에 닿는다.
마구령은 하늘로 오르는 고개다.
어느덧 하늘에서 내려가는 풍경은 오르는 것보다 훨씬 수려하다.
이곳에서 남대리에 내려서면 주막거리를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발걸음을 세운다.
마구령을 넘어다니던 행상과 선비들이 쉬어가던 주막이 꽤 번창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지명이다.
산 너머 마을에 장이 서는 날이면 이웃의 단양과 영월 사람들이 나무와 약초 등을 지게에 지고 주막거리를 지나
고치령을 넘어 순흥장과 단산장을, 마구령을 넘어 부석장을 다녔다
소백산과 태백산을 잇는 험준한 백두대간을 힘겹게 넘어와 도착한 너른 평지.
이곳에서 함께 얼굴 맞대고 살아오면서도 의풍리와의 사이에 그어진 도 경계선 때문에
늘상 고개 돌려 험준한 고치령 너머의 영주 본토를 그리며 살아야 하는 운명.
마락리나 남대리의 운명을 보면 묘한 지형에 기인한 고독함이 엿보인다.
그리움, 격리 등을 떠올리게 되는 마락리나 남대리의 지형을 두고 '영남의 고도(孤島)'에 비유함은 참으로 절묘하다.
마락리.
옛 지명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어기 생활 풍속도를 짐작할 만한 열쇠가 숨겨져 있는데
이 경우는 이동수단인 '말' 이다.
안내표석에 따르면 고치령을 넘어다니던 짐 실은 말들이 고갯길의 말굽이바위라는
좁고 험한 곳에서 종종 벼랑으로 떨어져 그리 붙여졌다는 것.
안동대학교 민속학 연구소에서 내놓은 <고치재 산령각 조성>이라는 자료에 다르면
1940년대 마락리에는 마구와 숙박시설이 있어 마부나 선질꾼에게 숙식을 제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치령이 생활도로로 왕성했던 것은 강원도와 기호지방(충청도와 영남)을 잇던 죽령길이나
마구령길에 비해 고치령은 순흥도호부와 영월을 잇는 최단거리 길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였을까?
6.25때 서낭당이 불타기 전만 해도 비각 안에 철마를 모셔 두었던 것은...
사연은 세조 3년인 1457년으로 돌아간다.
단종 임금이 영월로 유배될 무렵 조카를 보호하다
형인 수양대군의 눈밖에 난 금성대군도 순흥도호부로 유배지를 옮겨가는데,
이때 금성대군이나 밀사가 단종을 만나러 고치령을 넘어 영월에 다녔을 거라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복위운동이 실패하고 목숨을 잃은 두 사람은 각각 태백과 소백을 지키는
신령이 되자 두 성산(聖山) 경계인 고치령에 서낭당을 세웠다는 게 요점이다.
비극의 실존 인물이었던 단종임금과 금성대군은 산신령이 되어 고치령 서낭당에 상주하고 있으니
고치령은 재 아래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고갯길의 차원을 넘어 정의로운 새상에의 염원을 실현시켜줄 통로쯤 되었을 법.
당시 순흥, 풍기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산신당을 찾아와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해서 부석면과 단산면은 물론 풍기 영주에서 와 치성을 드렸다.
6.25 때는 화재를 당하자 새목마을 사람들은 군수 서장의 도움을 받아 서낭당을 다시 지어 올렸을 정도였다.
마을 한 중간 논바닥에는 앉은 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옛날 마귀할멈이 소백산에서 반지를 잃었는데 그 반지를 찾으려고 산을 파 내려가 골짜기가 생기고
땅속에서 나온 큰 바위가 골짜기를 굴러 내려오다가
지금의 자리에 멈추어서 자리잡았다하여 앉은 바위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우리들은 마구령에서 식사를 하고 늦은목이를 향해 마루금을 따라 올라간다,
나랑 갈현동님 앞서가고 뒤 처저 오는 님들은 시작부터가 후미다,
아니 오늘은 짧은 코스라며 나의 옆지기 산국화가 같이하는 산행이라
백두대간의 경험자 고향 친구가 뒤를 봐주어서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이 좋으며
우리의 호퍼 남태공님 앞으로 왔다가 뒤에도 합류하고 사박사박 춥지만 낙엽소리도 이제는 경쾌하게 들린다,
1057봉을 오르니 남대리에서 마구령으로 돌아 올라오는 길이 보이고
그쪽에서 바로 올라오면 늦은목이 인데 아직도 남은 거리는 2,5km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갈곳산 같고
그 아래의 능선이 봉황산 같은데 아직도~~~
곳 앞산이 오르면 또 한 봉우리 그 다음이 또 다른 봉우리
ㅎㅎㅎ선달산도 저기인데 양쪽을 바라보며 갈곳산은 .......
오늘은 써비스 코스처럼 높은 봉우리도 없고 이름 있는 표지석 하나 없는
평탄한 백두대간의 가름자 갈곳산에서는 선달산을 바라보며 왼편으로 돌아 북쪽으로 간다,
갈곳산에서는 늦은목이까지 1km 20분이면 된다,
내려가는 길은 제법 급경사이고 급경사를 조금 지나니 평탄 한 길
작은 능선을 약간 돌아가면.......
오늘 고개를 고치령 마구령 은 대로이고 미내치 새 밑재는 고개 길은 이제 느낌만 있고 넘어 다닌 헌 적은 없는데
늦은목이는 남대리 아래 충북의 영춘 온달관광지와 김삿갓유적지와 연결되는 고치령과 마구령 갈림길가 연결된다,
이곳이 오늘의 대간 마루금을 마무리하고 생달마을로 내려간다,
생달 마을도 첩첩산중의 마을 고치령에서 택시기사님께 부탁한 우리의 애마는 어느곳에 있을까
내가 부탁한곳보다 300m아래라는데 500m 더 내려와도 차는 없다.
그냥 500m라 했으면 편안하게 내려 올 것인데 어느 산장 멋진 돌탑들을 지나니
주차하기 안성 마춤인 곳에 나의 애마는 날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월래는 도래기재까지 가야 되는데 하루코스 벅차다며 반 토막 산행이라
우리님들 조금은 아쉽다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올겨울 대간길은 서울과 거리도 멀고 편안하게 하기로 했다,
여유로운 오늘의 산행 이제는 집으로 갈 시간 승차를 하고
두지골에서 생달마을 물야 저수지를 옆에 끼고 큰길로 나온다,
물야 저수지는 농업용수 확보와 소수력 발전 등의 목적으로 1995년에 완성됐단다.
농어촌공사에서는 '맑은 물' '깨끗한 환경' '풍요로운 농어촌 만들기'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농업이 사양 산업화 하는 현 시점에서 정말 그런지 의심스럽다.
어떤 면에서는 농어촌공사를 살리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물야저수지는 자갈과 흙을 섞어 만든 일종의 사력댐으로 해발 400m 높이에 만들어졌다.
원래 소백산 자락길은 물야저수지 서쪽 산자락을 따라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쪽으로 길을 내지 못해 물야저수지 북쪽으로 돌아가도록 돼 있다.
우리도 별 수 없이 저수지 북쪽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간 다음,
저수지를 끼고 남서 방향으로 이어진 915번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저수지 북쪽 길에서 우리는 오전댐 쉼터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도 만나고,
2009년에 오전 2리 주민들이 세운 보부상(또는 부보상) 위령비도 만난다. 보부상 위령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비다.
비문에 있는 보부상들이 전 재산을 투자해 오전리 애전 마을에 토지를 구입해 농사지으며 살았다.
그들이 죽으며 그 토지를 마을에 희사했고,
마을에서는 그들의 뜻을 기려 매년 9월 말일 그들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그러다 1995년 물야저수지가 생기면서 그들의 묘가 수몰되었고,
이곳에 제단과 위령비를 세워 그들의 고마운 뜻을 기리고 있다.
저수지를 돌아 915지방도로를 따라오다 물야면소재지에서
931지방도로를 따라 부석면 단산면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지나 풍기ic
중앙고속도로 올라서 만종jc에서 영동고속도로 올라서는 허 참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고속도로는 조금씩 정체되고
이를 줄 알았으면 도래기재까지 산행하고 늦은 시간에 출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덕원 우리 집 앞에서 산을 좋아하는 우리들 산을 닮아가는 친구와 막걸리 한잔에
그 친구의 좋은 이야기 들으면 오늘 하루 산행일정을 마친다,
첫댓글 휘몰아치는 거친 바람속으로 멎진 산행하셨네요
후기먼 읽어도 함께한듯한
느낌 이니깐~~ ㅋㅋ
고마우이
한우물님도 곳 합류 할것이야
그때까지 천천히 갈께
한우물대장님 하루빨리 건강히 회복되어 대간길에 합류하기를 바랍니다.
대간을하면서 많은느낌과
그지역 특산물
한많은 우리 선조들의 삶까지
오늘도 김삿갓처럼 걸어가고 잡다,
이번산행은 단풍이 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시원한 올겨울 들어 첫번째 겨울산행이였습니다. 몸에 열이 날때까지는 약간 추웠지만 몸이 풀리고나면 땀이 안나서 마냥 걷기에는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무성한 잎새로 볼수 없었던 숲속안을 훤히 볼수 있었지요, 특히 겨우살이가 까치집처럼 여기저기서 매달려있는게 인상적이였답니다. 낙엽을 다떨군 앙상한 나뭇가지도 크리스마스 츄리처럼 보이고, 가끔은 겨울잠을 자는 연두색 고치집도 포근하게 보이고, 그런대로 볼거리는 많았답니다.
매번 산행후 총대장님의 산행후기를 보면서 다시 산행을 하는 듯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총대장님^^ 산행기 잘보고갑니다.
산길에 고치집도
앙상한가지사이에 풍경도
폭신폭신한 떨어진 낙엽도
요즘 아니면 볼 수 없는것들
내가 본것이나 태공님이 본것이나
댓글을 보면서 한번더 생각나네
여름은 여름대로 좋고
가을의 단풍도
겨울이 찾아오는 요즘 산행도
좋은점은 역시 많은것
대간의 전사들 여기 모이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