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산(830m, 전라북도 순창·임실)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은 6·25전쟁으로 대표되는 좌우대립일 것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우리나라는 남에서는 미국의, 북에서는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아야만
했다.
그 결과로 남한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공주의 정권이 북한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은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했다.
이로부터 우리 민족의 좌우대립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김구나 여운형이 주도한 남북통합과 좌우통합 운동은 점점 발 디딜 자리가 없어졌다.
이렇게 하여 좌익은 남한에서, 우익은 북한에서 낯내놓고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남한의 좌익은 이 때부터 비합법 투쟁을 전개한다.
소위 빨치산으로 불리는 조직적인 좌익 게릴라 부대의 활동이 그 중의 하나다.
남한 빨치산은 이현상이라는 인물이 이끌었던 남부군으로 대표된다.
처참하게 쓰러져간 빨치산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김일성 정권에 의해서도 철저히 버림받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비운의 역사를 가장 현실감있게 접근한 책이 빨치산
출신 이태씨가 쓴 '남부군'이다. 당시 빨치산 활동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남부군'의 무대는 전라북도
순창과 임실을 가르고 있는 회문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회문산 하면 빨치산이 생각난다.
회문산은 첩첩산중인데다가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불리어온
곳이다.
북쪽에서 동쪽으로 섬진강이 휘돌아 흐르고, 남쪽으로
구림천이 감싸고 도는 모양이 산세와 맞물려 태극
형상을 이루고 있는 땅이다.
이러한 지형 때문에 회문산은 일찍이 구한말 의병
활동의 본거지 역할도 하였다.
돈헌 임병찬, 면암 최익현, 양윤숙 의병장 등의
항일 투쟁이 그것이다.
일제 말기에는 무장항일투사들이 은둔하여 유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회문산은 첩첩산중이다. 구림천을 따라가다가 안정리 안시내 마을에서 회문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면 산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간다. 안시내 마을에서 휴양림까지는 2km, 자동차로는 10분도
채 안 걸린다.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휴양림 안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지만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는것두 매력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40년 가까이 회문산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었다.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로 누구 한 사람 찾는 이도 없었다.
덕분에 울창한 숲이 조성되고 수많은 새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잊혀져가던 회문산이 뭍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남부군'이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이러한 회문산에 1993년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매표소를 지나 시멘트 길을 따라 휴양림으로 들어가면 좆박골이라 불리는 계곡이 이어진다.
남녀간의 성교를 의미하는 좆박골은 좌우로 솟은 봉우리와 깊게 패인 계곡이 마치 암컷과
수컷이 교합하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맨 먼저 노령문을 만난다. "의병활동의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효과를 살리기 위하여"
이 문을 세웠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노령문 바로 위에는 출렁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전망대로 연결된다.
33m에 이르는 출렁다리 밑에는 구룡폭포가 하얀 포말을 이루면서 와폭(臥瀑)을 만들어내고 있다.
구룡폭포는 큰문턱바위에서 시작하여 한 굽이 휘돌아 물줄기를 작은문턱바위로 내리쏟는다.
이러한 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도 시원해진다.
길가에 붉게 익어있는 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으면 시콤달콤한 맛이 그지없다.
5∼6월에 꽃이 피어 6∼7월에 열매를 맺는 이 산딸기는 산기슭의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다년생 관목이다. 이 열매를 따서 담근 술은 복분자주라 하여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지 않고 몇 십 미터 올라가니 산막으로 가는 계곡 가에 무학바위가 있다.
이성계가 왕좌에 앉기 전에 무학대사와 마주앉아 회문산의 산세를 논했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2평 정도 됨직한 넓적한 바위다.
곧 이어 우리는 시멘트 길을 버리고 임간수련장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40명을 수용하는 숙소와
강의실, 야외교실까지 갖춘 임간수련장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을 걷는다.
중간에 잔디광장이 있고 나무로 된 의자와 탁자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잡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산벚나무에서 떨어진 검붉은 버찌 열매가 발에 밟힌다.
박달나무, 굴참나무 등도 짙은 녹음을 이루어 여름을 맞고 있다.
녹음 짙은 숲길이 청량하다. 새 소리 또한 경쾌하다.
가파른 길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691봉이다. 일부러 올려놓은 것 같은 바위가 인상적이다.
능선 곳곳에 묘들이 자리잡고 있다.
건너편 능선에도 묘가 보인다. 회문산에는 명당이 많다.
북쪽으로 작은지붕이라 불리는 봉우리와 정상이 가까이 다가선다.
다홍색 참나리꽃과 보라색 엉컹퀴꽃이 활짝 피어 초여름의 회문산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691봉에서 10여분 내려오니 작은지붕 오르기 전 안부다.
여기까지 휴양림 도로가 나 있고 헬기장도 조성되어 있다.
안부에서 10여분 올라가니 헬기장이 있는 작은지붕이다. 북쪽에 지척으로 정상이 있다.
사방으로 전망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산죽과 철쭉나무가 많은 숲 길를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산죽나무가 길가에 많아 칙칙한
느낌을 준다. 작은지붕에서 5분쯤 갔을까? 길 왼쪽으로 5m 정도로 우뚝 선 바위가 있다.
평평한 바위 면에 상형문자가 아주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10분도 못걸려 정상에 도착한다. 아래 봉우리를 작은지붕이라 부르고 여기를
큰 지붕이라 부른다.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는 좆박골이 내려 보인다.
저기 내려다 보이는 좆박골을 비롯하여 근처의 골짜기마다 6·25 당시 빨치산들이 자리잡았다.
남부군이라는 책에서 이태는 제일 처음에는 남쪽 건너편의 엽운산(여분산이라 하기도 함)
기슭에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가 자리잡았던 것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투구봉 아래의 대수말계곡으로 옮겨 지휘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회문산은 동쪽에는 천마봉(775m)이, 서쪽에는 투구봉(780m)이 학이 날개를 펴듯 양쪽으로
솟아있다. 그리고 정상은 그 가운데에서 고개를 쭉 내밀고 있는 형상이다.
동쪽의 천마봉은 회문산의 대체적인 산세가 그렇듯이 부드러운 육산이고, 서쪽의 투구봉은
회문산에서는 유일하게 바위 봉우리다.
정상에서 보는 전망 또한 일품이다. 남쪽으로 강천산이 바라보이고, 약간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추월산이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암산과 내장산도 서쪽 저 멀리서
하늘금을 그으며 우뚝 서 있다.
가깝게는 용추산과 국사봉, 그리고 엽운산이 회문산을 둘러싸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첩첩산중이다.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따라 조그마한 논배미들이 고막껍질 마냥 엎어져 있을 뿐이다.
북쪽으로는 섬진강이 과거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흘러가고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정상 근처에는 철쭉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고 나머지 수종도 활엽수 천지라 철쭉꽃과 함께
신록을 맛볼 수 있는 봄철 산행지로 적격일 것 같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능선길을 가는데 정금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정금나무는 초가을인 9월에 좁쌀 만한 검붉은 열매를 만들어낸다.
이 열매를 정금이라 하는데 술을 담그면 빨갛게 우러나오는 색깔하며 은은한 맛이 일품이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10분도 채 못가서 능선은 양쪽으로 갈린다.
여기에서 천마봉으로 가려면 동쪽(오른쪽)으로 가고, 투구봉으로 가려면 서쪽(왼쪽)으로 간다.
투구봉 쪽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새 소리,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 키를 넘어선 산죽이 마치 밀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가끔 명감나무 넝쿨이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소위 자연산 복숭아인 개복숭아 나무가 아직은 앳된 모습의 푸른 열매를
달고 서 있기도 하고, 검붉은 오디를 단 뽕나무가 나타나 오디를 따서 맛있게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햇볕이 따사롭게 비취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참나리나 엉컹퀴가 꽃을 피우고 있다.
모든 것이 원시적인 모습 그대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이런 곳에 들어가면 아무리 닳아진 인간이라도 원시적인 모습으로
돌아간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니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투구봉을 이루고 있는 암봉이다. 바위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섬진댐을 막음으로써 생긴 인공호수, 옥정호의 넘실거리는 물결이 북서쪽 멀리에서 다가온다.
옥정호 너머로도 첩첩이 산줄기가 이어진다. 섬진강 북쪽으로 연결되는 길을 계속 가면
임실과 전주에 다다르고, 서쪽은 정읍으로 이어진다.
투구봉 남쪽 능선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대수말 마을이, 서쪽에는 과촌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 산기슭에는 희여터가 있다.
(조선대학교 홈페이지에서 퍼옴.1998. 6. 20)
*산행코스
- 제1코스 : 자연휴양림 주차장(10분) → 임간수련장(30분) → 691봉(10분) → 작은지붕
안부(30분) → 정상(50분) → 투구봉(15분) → 안부(45분) → 과촌마을
(총소요시간 : 3시간 10분)
- 제2코스 : 정상 → 천마봉 → 일중리
*교통편
① 전주방면에서 접근 할 경우에는 17번 국도를 타고 임실읍에서 우회전, 30번 국도를 타고
갈담까지 간 다음 27번 국도를 타고 일중리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이정표를 따라 안시내
마을을 거쳐 간다.
② 순창에서는 27번 국도를 북상, 노령을 넘어가면 일중리 자연휴양림 입간판을 만난다.
광주나 경상도 방면에서의 접근은 이 길이 제일 편리하다.
부산이나 마산 쪽에서 오는 경우 호남고속도로 옥과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순창으로 가는 27번 국도를 타는 것이 빠르다.
③ 추월산과 담양호을 거쳐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동시에 즐길 생각이라면 88고속도로
담양인터체인지를 뻐져나와 담양댐을 거쳐 순창 구림을 지나 자연휴양림으로
접근하면 된다.
④ 버스 이용시는 어느 곳에서나 순창행 직행버스를 타야한다.
전주방면에서는 갈담에서 하차, 순창 방면 군내버스(하루 24회 운행)를 갈아타고
일중리까지 가야 한다.
순창읍에서는 휴양림 입구 안시내 마을까지 가는 군내버스가 있다.
(운행시간 : 06:20, 09:40, 10:40, 14:40, 16:4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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