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유감
외손자 졸업식에 갔다. 외손자가 어제 초등학교 졸업을 했다. 졸업식 하면 어쩐지 쓸쓸하고 씁쓸한 생각이 드는데 아이들은 밝기만 하다. 지금은 중학교도 의무교육이다. 의무교육이 아니라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60년 전 내가 졸업한 시골 초등학교는 27명이 전부였다. 그중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는 다섯 명이었다. 그래서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하고 노래할 때 울지 않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나도 교실과 이별하는 아이 중에 한 명이었다.
전교생이 모두 상장을 받는 것도 다른 풍경이다. 수상자 결정에 부정이 개입했다는 반증이다. 나도 피해자 중에 한 사람이지만 들어보니 그런 일이 자심했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옥석을 구별하지 않는 이런 제도는 좀 아닌 것 같다. 내가 쓸쓸하고 씁쓸해 하는 이유가 이런 것들이다.
졸업식 하면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대학에 갓 입학한 때였다. 지금 대전에서 병원을 하는 친구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우리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꿈은 있었다.
선배를 제치고 학교에 찾아가 동창회의 이름으로 상을 주겠다면 수상자를 선발해 달라고 제안했다. 주머니를 털어 상품도 마련했다.
졸업식 날 우리도 당당히 교육청에서 나온 높은 손님들과 같이 내빈석에 앉았다.
상장과 상품을 수여하고 축사도 했다. 지금은 교실에 교단도 없고 선생님이
쓰는 탁자도 학생들과 같은 높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높은 교단에 올라서서 선생님들과 학부형들과 내빈들 앞에서 처음으로 하는 축사라 몹시 떨렸다.
단상에서 뭐라고 지껄였는지 기억이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졸업식은 일반적으로 graduation이라는 단어를 쓴다. commencement라는
단어도 있다. 이 단어는 졸업이라는 뜻과 함께 시작이라는 뜻도 있다.
이 단어를 예로 들며 ‘졸업은 끝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라고 유식한 체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등에 땀이 난다.
올해가 초등학교 졸업 60주년이다. 27명 중 19명이 남았다. 이 친구들을 꼬드겨 또 하나의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나는 운이 좋아 몇 년 전 개교 60주년 행사에 총동창회를 대표하며 기념사를 했다. 올해는 우리 기수 단독으로 얼마씩을 추렴하여 도서 전달식을 하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만 생각하면 애증이 교차한다. 4학년까지는 교실 없는 학교였다. 5학년 돼서야 모양을 갖춘 학교에 입주를 했는데 그해 선생님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
다음해 졸업식에서는 남의 이름으로 상장을 받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시집살이가 고되면 시금치의 ‘시’자도 꺼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도 그때를 생각하면 모교가 달갑지는 않다. 하지만 제일 좋은 복수는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이 아닐까. 마주 잡는 손바닥. 도서 기증을 하려는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