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본 카페에서 광화문(分)에 대해 질문이 있었고, 조금 앞서 또 다른분의 광화문 분소인가?로 질문한바 있었다. 답변글에서 "분국"이라는 의견과 또 다른분은 "1946.1.1 설치된 군청청 체신국 구내분실이며, 1947.1.1 체신부 구내분실로 개칭"되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를 보면서 타인이 답변한 내용을 본인이 부정하기가 뭣해 그냥 넘어 갔는데 이 문제에 대해 직접 질문이 있어 , 차라리 모두에게 공개하여 사실 정보를 제공하는게 도움이 되리라 싶어 재론한다.
본인에게는 1905년5월18일 경성우편국 광화문분실로 출발하여 1963년까지의 국사(局史)기록인 광화문 우체국 국소원부가 있다. 2005년 광화문우체국 개국100주년기념으로 제작한 광화문우체국100년사 작품을 설계하면서 입수한 자료이다.
이 국소원부의 기록에 의하면 대정10(1921).2.1 체신국구내 광화문국 전신분실이 설치되고 , 대정13(1924).1.25전신분실이 폐지되고 1.26 부터 "체신국 구내분실"이 개설된다. 병행하여 인사에 관한 문서에서 1.26부로 "체신국 구내분실 주임"으로 체신서기 豊崎泰次郞이 발령되었다.
따라서 광화문 우편국의 체신국 구내분실 기구의 제원은 1924.1.26 부터 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의문의 과정이 발생한다.
즉, 구내분실 주임 인사발령이 계속되어 오다가 소화16(1941).7.10 체신서기보 金鐵柱가 발령되는데 , 이후 부터는 광화문우편국 인사명부에서 체신국 구내분실의 인사발령 문제-(관리책임자인 주임)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이는 체신국 구내분실은 광화문국에서 체신국 직속기구로 개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지금의 지방 체신청 전신기구라 할 수 있는 "지방체신국" 관서제가 1940.11.30 시행되면서 "광화문분실체제"가 직속체제로 개편된 확률이 높다.
광화문우편국 청사에 입주해 있던 체신분장국의 우편업무를 광화문분실에서 대행 하던것을, 지방체신국으로 승격 개편된 조직의 직속 기구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1940.12.1 "경성지방체신국"일부인이 공표되는데
이로 볼 때, 광화문분실 일부인은 1940.6.1 이전에 사용이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사관련 조직개편은 추후 이루어 졌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광복이후 광화문분실 일부인은 실용되지 않은-기능적 효력이 상실된 상태로 실물이 존재했던 것이 누군가에 의해 새 우표가 발행되면서 특정우편관서 몫으로 남용된 것으로 본다.
실제로 광화문분실 인영이 날인된 자료가 발견되는데 거의가 초일인으로 말소된 상태이다. 그리고 한사람 필체의 필라테릭 자료 수준이고 의심 받기 적당하게 만들어져 있다.
광화문분실은 일반인을 상대로 우편업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우편물의 인영은 신뢰성이 없다.
단, 광복직후 체신확보위원회에서 광화문분실제도를 복원했을 경우도 영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아직은 미궁 상태이므로 새로운 근거가 제시될 때 까지는 광화문분실 인영은 효력이 상실된 폐기 일부인으로 남게 된다.
*단,미군정청 편제와 업무분장을 조사해 볼것이며-광화문분실이 복원된 사실이 확인되면 다시 정정부분을 발표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