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땅굴 탐지기
6-1. SU-26
나의 직속상관이던 K 기좌님은 과장이 된 후에도 계속 나의 직속상관이었다.
내가 기좌가 된 1978년 여름에 K 과장님의 지시로 서울 용산 국방부 건물 맞은편, 지금의 전쟁기념관 자리에 있던, 육군본부 ‘26 위원회’의 황 대령이라는 분을 만나러 갔다.
군 기밀 사항이라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갔는데, 가보니 땅굴 탐지기 ‘SU-26’에 관한 미팅이었다. SU는 Seoul University의 약자였다.
육본에서 서울대학교 전자과에 땅굴 탐지기 개발을 의뢰했고, 서울대 전자과 학과장 P교수님 제자인 대학원생들이 기본적인 회로 시험을 마쳐서, 이제는 군납 제품을 제대로 생산할 방산업체에 이관하려는 자리였다.
대학교 학창 시절에 P교수님의 번역본 저서인 ‘교류회로이론’을 교재로 공부했던 나는, 그분을 만나 뵙는 것만도 무한한 영광이어서 그저 황송할 따름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P교수님을 따라 서울대학교에 가서 대학원생들이 만든 개발 샘플을 받았는데, PCB도 아닌 만능기판에 부품을 꽂고 점퍼선으로 배선해서,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조립된 브레드보드(breadboard) 수준의 조악한 조립품이었다.
회로도도 종이에 손으로 그려진 조잡한 것이었지만, 차마 P교수님께 컴플레인도 못 한 채 앞으로 내가 만들어야 할 땅굴탐지기의 성능 규격인 스펙(specification)과 그 물건들을 받아서 들고 그냥 내려왔다.
6-2. 지하 200미터
북한이 지하 200m 깊이에서 땅굴을 파고 내려온다고 한다. 휴전선 근처에서는 폭파를 자제하고 굴착기나 곡괭이로 굴삭 작업을 할 것이므로, 지상에서 피에조(Piezo) 압전 센서를 설치하고 그 소리를 증폭하여 감청해서 위치를 파악하는 원리이다.
오디오 증폭기의 게인(Gain)은 120dB로 전압 이득이 백만 배나 되고, 주파수 범위는 40Hz부터 400kHz까지로 엄청 넓은 다이내믹 사운드 증폭기다.
개발 장비의 목표는 피에조 센서를 30m마다 직선으로 길게 묻어서 막사에 있는 탐지기 본체까지는 유선통신용 삐삐 전화선 같은 실드(shield) 선(線)으로 끌어와 연결하고, 본체에는 10개의 LED를 센서별로 채널이 구분되게 장착해서, 만약 어느 센서에 진동음이 전달되어 오면 그 채널의 LED가 진동의 강도에 비례해서 빠르게 깜박거리게 만들어, 굴착지점이 10개 센서 중에 어느 위치에 더 가까운지 쉽게 파악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녹음기를 내장하여 중요한 소리는 나중에 카세트테이프로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브레드보드를 가져와서 회로도와 샘플을 자세히 살펴보니 적용한 회로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수준이어서 소요 부품의 수급이 어려워 기본 골격만 유지하고 회로도를 대폭 수정했다.
PCB를 외주 제작하고 부품을 수배해서 파일럿(pilot) 제품 제작을 서두르고 있는데, 서울 본사 특판영업부서에서는 서울대가 다 개발해 놓은 것을 가져와서 똑같이 생산만 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며 재촉했다.
6-3. 자장(磁場) 차폐
거기에다 한 가지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득이 무척 높은 예민한 탐지기라서 땅속 지자기(地磁氣)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니까, 탐지기가 자장으로부터 안전하게 차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탐지기 주변에서 자석을 들고 움직였을 때 아무런 영향을 받지 말고 정상적으로 동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학교에서 전기자기학 이외에는 자장 차폐를 별도로 배운 적은 없어서, 연구소 도서실을 뒤져 며칠간 관련 서적을 읽어보고야 겨우 감을 잡았다.
오디오 증폭기 회로에 사용되는 트랜스포머가 코일로 잔뜩 감겨있는데, 여기로 자장이 통과하면 코일에 유도전류가 발생하여 잡음을 만들 소지가 있었다.
따라서 외부에서 도래한 자장의 영향을 막는 방법은 이 트랜스를 투자율(透磁率)이 높은 금속 재질의 커버로 덮어 씌우는 것이었다.
투자율 ‘뮤’가 높은 재료는 철(쇠)인데, 순철은 ‘뮤’가 2만~10만쯤 된다고 나와 있어서, 1.0t(두께 1.0mm)의 순철을 매입하여 주먹 크기의 밑바닥 없는 육면체 금속 커버를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트랜스 위에 씌우고 PCB 기판의 그라운드(ground) 면에 납땜을 철저히 했는데도 자석을 가까이 대고 흔들면 10개의 LED 중 몇 개가 깜박거리며 회로가 오동작했다.
나중에 원인을 규명해보니, 순철을 가공하여 용접하는 과정에서 열이 가해져 ‘뮤’가 낮아져 잡철이 돼버린 것이었다.
납기는 다가오고 특판영업에서 독촉은 빗발치는 가운데, 며칠씩 밤새며 문제 해결에 매달리던 나는 혼미한 상태에서 자석을 들고 장비 주변을 돌리다가 뭔가를 건드렸고, 그것이 테이블 아래로 툭 떨어졌다.
나는 무심코 다른 손으로 떨어진 물건을 집어 올려보니, 납땜하는 인두여서 그걸 인두 받침대에 꽂아 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손가락 끝이 따끔하여 들여다보니, 피부가 노랗게 변했고 살이 타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아닌가? 내가 무심결에 뜨거운 인두를 손으로 집었던 거다.
나는 화끈거리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 수돗물을 틀고 담갔는데, 금세 서너 개의 물집이 생기더니 점점 커지며 부풀어 올랐다.
그 일이 있자, 사수이신 K과장님이 일본 기술잡지를 건네주며 퍼멀로이(Permalloy)의 수입을 검토해보라고 했다. 퍼멀로이는 니켈과 철의 합금 소재로 일본의 상표명이었는데, 얇은 두께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실드 케이스(Shield Case)를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서둘러 수입한 퍼멀로이 케이스로 문제를 해결하여 근근이 자장 차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땅굴 탐지기 계속됨)
첫댓글 와우! 이번엔 땅굴 탐지기!
하루님이야말로 보배로운 인재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화이팅!!
네, 퓨전아티스트 난정 주영숙 박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저, 하루 아니고 세하루 입니다. (맘세하루=마음 세하루=심 삼일) ㅎ
ㅎㅎㅎ ~ 송구합니다.
그냥 삼일 이재영 님이라 호칭할께요.
@蘭亭주영숙 ㅎㅎ 문피아 어떤 작가님은 "맘세님"이라 부르더군요.
'오라버니'만 빼고, 뭐든 부르시면 됩니다. ㅎㅎ
근데 그후 손가락은 잘 치료했겠죠?
네. 왼쪽 엄지, 검지, 중지에 물집이 여남은 개 생겨서 한 보름 고생했습니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요, 위의 글과 반대로, 살 타는 냄새가 먼저 났고, 무슨 냄새지? 두리번거리자 손가락이 따끔해서 데인 줄 알았습니다.
(그대로 쓰면 일반인이 거짓말한다고 할까 봐 "따끔해서 보니 피부가 노랗게 변했고..."라고 바꿔 썼습니다.
@삼일 이재영 하핫! 옛날에 어느 단칸방 새댁이 연탄을 갈고 그 뚜껑을 부뚜막 옆에 놓았다가 갑자기 아기가 울어서 얼른 들어가다가 보니 어디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나더라고
@蘭亭주영숙 그 새댁 한동안 혼났지요.
@蘭亭주영숙 그 새댁이 뜨거운 연탄 아궁이 덮개를 무심코 무슨 고기 위에 얹었을까요?
@삼일 이재영 아하, 그 새댁 성씨가 혹시 주논개와 종씨가 아닌가요? ㅎ
@삼일 이재영 발바닥 굽는 냄새를 고기 냄새로 알았답니다. 당시에 저는 젖먹이가 없었고, 한 집 다른방에 새 살던 새댁.
그런데 그 남편이 주논개 후손.
@삼일 이재영 아아니, 그 새댁이 저하고 자기 남편하고 종씨라고 저한테 많이 의지했는데요.
당시에 데프론 코팅 냄비가 나왔었고
저는 월부장사 하는 친구에게 넘어가서 그걸 월부로 구입했었는데
이 새댁이 그걸 꼭 한번만 써보겠다고 빌려가더니, 아아~
그걸 어찌나 깨끗하게 닦아왔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깝네요.
@蘭亭주영숙 아하, 작가님과 한집 다른 방 새댁 얘기였군요. ㅎ
테프론 코팅 냄비를 잘 씻어 돌려준다고, 철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서 코팅 다 벗겼나 봅니다. ㅋㅎ
@삼일 이재영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월부금만 냈었죠.
너무 아까워서 한 십년 이사갈 때마다 가지고 다니다가 결국 버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