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가(抒情歌) 1
죽은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인간의 습성 아니겠어요? 하지만 인간은 사후세계까지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보다 더 슬픈 인간의 습성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식물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이 닮았다고 느끼는 것이 모든 서정시의 영원한 테마이다」 라고 말했던 철학자의 이름은 물론 그 앞뒤로 이어지는 문구도 잊은 채 이 말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서 식물이란 그저 피고지기만 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불법의 여러 글귀는 비할 데 없이 소중한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의 나는 이제는 이 땅에 없는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도 저 세상에서도 역시 살아생전의 모습을 하고 계실 당신에게 향하기 보다는 지금 내 눈앞의 계절보다 일찍 핀 저 홍매화가 당신이 소생하신 것이라는 동화같은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님 특별히 눈 앞의 꽃이 이름 모를 꽃이라도 좋습니다. 프랑스와 같이 먼 나라의 이름 모르는 산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에게 당신이 다시 소생해 계신다고 생각하고 말을 건넨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그 만큼 나는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문득 먼 나라를 바라보는 듯 하면 방안에는 향기가 퍼집니다. 하지만 이 향기는 바로 흩어져 버렸어 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깔깔 웃었습니다. 나는 향수를 사용한 적이 없는 여자입니다. 기억하고 계세요? 벌써 4년전 어느 날 밤 욕탕 속에서 돌연 진한 향기에 휩싸인 나는 그 향수의 이름도 모르면서도 벗은 알몸으로 이 같은 강한 향기를 맡는다는 것이 무척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현기증이 나고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나를 버리고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결혼을 하시고 신혼여행 첫날 밤 호텔의 흰 침상에 신부를 위해 향수를 뿌린 것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결혼한 것을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을 맞추어 보니 그것은 같은 시각이었습니다. 당신은 침상에 향수를 뿌리면서 문득 저에게 사과를 하신 걸까요. 신부가 나 이었더라면 하고 문득 생각한 건 아닐까요. 서양의 향수라는 것은 강한 현실의 냄새가 납니다.
오늘 밤은 옛친구 네 다섯명이 집으로 와 카루타놀이를 하였지만 정월이라고 해도 꽤 날이 지난 모임인 탓인지 아니면 이제 제 각각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우리들의 나이 탓인지 서로가 내뱉는 한숨소리가 방 분위기를 무겁게 하고 있는 차에 아버지가 향에 불을 피워 주셨습니다. 향은 방안을 맑게 해 주었지만 역시 모두가 제각각 자신의 추억에 빠진 듯 주위는 활기를 잃었습니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붕 위의 온실이 있는 방에서 네 다섯명의 여자가 모여 일시에 추억경쟁을 하였으니 방에서 피어오르는 심한 향기롭지 못한 냄새 때문에 온실의 꽃은 모두 말라 버릴 것 같았어요. 전혀 이들이 추한 행동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라는 것에 비해서 과거라는 것은 훨씬 생생하고 동물스럽기 때문인 것 입니다.
그런 괴이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내가 신동이라고 불리우던 것은 바로 카루타놀이에서 였습니다. 아직 네 다섯 살 나이의 나는 히라가나 카타카나도 읽을 수 없었는데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홍백전게임을 한참하다가 문득 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알겠지?」
「그렇게 계속 암전하게 보고있어」
라고 말하고 나서는 나를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도 판에 들어와 하나 잡아 보렴」
「우리애도 1매정도 쥐어봐도 되겠지? 철모르는 애 아니겠어?」
라고 말하자 모두는 내밀다 만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이거?」
하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 무릎 바로 앞의 카루타 한 매를 카루타 보다도 더 작은 나의 손으로 잡으며 어머니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어머」
라고 맨 먼저 놀란 것은 어머니이었지만 모두는 어머니에 이어서 감탄의 소리를 내뱉자 어머니는
「요행으로 들어맞았네. 히라가나도 배운 적이 없는 앤데」
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모두는 손님의 입장에서 간살을 부리고 승부가 무색하니 카루타 글귀는 읽어주는 사람마저 애기씨 아주 잘 했어요 라고 말하며 나 한 사람을 위하여 천천히 세 번이나 네 번이나 되풀이 하여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한 매의 카루타를 집었습니다. 이번에도 맞추었지요. 이후 몇 매를 집어도 모두 맞추었지만 노래를 들어도 의미를 전혀 몰랐고 노래 단 한 수도 암송하고 있을 리 없고 글자도 읽을 수 없는데 모두 맞추었다는 것이 사실이고 보니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내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에서 나는 어머니의 강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을 뿐입니다,(『抒情歌』 川端康成. 飜譯 安昌睦)
첫댓글 카루타라는 말을 모르면서 카루타대회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였습니다. 사감선생님의 지휘 아래서 했는데 선생님이 시조의 한 구절을 읽으시면 그 시조의 다른 구절이 씌어 있는 카드를 집어내는 놀이였습니다. 시조를 많이 외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카루타놀이가 바로 그 놀이인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포로투칼어 karta 카드에서 かるた란
외래어를 만든거라고 합니다. 화투보다는 좀 더 고상한 그리고 놀이에 문학성이 가미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