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
정예리
우린 3월 20일 바디커퍼션을 만났다. 그전까지 나는 바디커퍼션 이라는 것을 들어보기만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 '바디커퍼션이란 무엇이지?' 하는 궁금점을 나 스스로에게 묻고 상상하면서 머릿속에서 재생시켜 볼 뿐이었다. 제대로 된 답은 듣지 못해도 정답을 알기 전까지 친구들과, 또는 혼자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도 나에겐 즐거움이었다.
난 어릴 때 한국무용을 했었어서 공연과 준비, 연습에 익숙했다. 몸은 잊었을지 몰라도 머리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이런 때일 수록 단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고된 노력이 필요하단 건 모두가 다 알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동작을 배울 때, 아프다고 생색내거나 우스꽝스럽다며 웃는 친구들을 보며 그때까진 나도 즐겁게 선생님을 따라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 이틀째가 되고 날이 가면서 서로의 팀이 생기고 점점 불만도 생겼다. 여기서 자기 팀이 더 우수하다는 말은 당연히 나왔고, "왜들 그래, 우리 두팀 모두 다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서로 싸우지 마." 라며 다독이는 친구들의 마음에도 조그마한 경쟁심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모순적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사람은 그렇지."
처음 팀이 나뉠 때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진 않을까, 만약 만들어진다면 '적어도 나는 휘둘리지 말고 친구들 잘 토닥여서 제대로 공연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일 수록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할 뿐더러 혹여 싸움이 생겨도 선생님들께서 먼저 제지를 해주실 테니 난 내 일을 하면 됐던 거다. 이런 괜한 걱정을 하던 중 시련에 맞닥뜨렸다. 원체 바디커퍼션 이란 게 몸을 쳐서 소리를 내고 박자를 만드는 것인데, 허벅지를 때리는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회피하고픈 마음이 크게 들 때도 많았고, 안무 중 팔의 높이를 달리 들어서 마치 구미호의 꼬리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이돌 안무, 무용 등 다양한 부류에서 활용되는 안무였다. 나는 그 부분을 배우고 연습할 때 가장 낙심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난 나름대로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하다보니 팔이 아프고 잘 지탱이 되지 않았다. 또 마치는 부분에서는 박수를 연발로 치는 게 있었는데, 7명이 순서대로 박수를 치고 마지막으로 팔을 저마다 다른 높이로 들고 퇴장하는 너무 예쁜 안무였다.
마음에 정말 들었는데, 생각처럼 한번에 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팀에겐 시간이 없었다. 결국 우리 '하품' 팀만 강당에서 선생님들과 연습을 진행하게 되었다. 다들 충분히 힘들었을텐데, 잘 참고 해줘서 모두에게 따뜻한 용기를 주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공연 전 마지막 날이 갔고, 공연 당일이 되었다. 그날은 정해진 구역이 아닌 학교 대청소를 했다. 설레기도 하고, 맞춰입은 우리의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자녀를 보기위해 오신 부모님들, 가족과 반갑게 인사하는 친구들과 선배들. 그때 그 사이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아빠였다. 친구들이 웃으며 인사하는 아빠와 나를 보고 닮았다고 했는데, 조금 웃겼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반으로 돌아갔는데, 연습을 하는 '작은 팀' 친구들을 봤다. 언제봐도 작은 팀 안무는 정말 멋진 것 같다. 하품의 안무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뒤 우리는 고등학교로 가서 리허설을 시작했다. 리허설을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무용을 하면서 수많은 무대에 섰고, 무대 전의 긴장도 많이 느껴봤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오묘하고 여운이 남는 느낌은 공연이 끝난 직후에 느껴진다. 오랜 시간동안 연습 했던게 지금 막 끝났다는 약간의 공허함, 하지만 곧 환호와 박수로 꽉 채워지는 마음. 행복이라 칭해도 될 만큼 좋은 느낌이다. 옅은 감정인데도 난 이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것을 매 공연 직후에 느껴왔고, 나는 내 마음속에서 이 느낌을 데자뷰라고 해왔다. 데자뷰의 뜻과 딱 들어맞지 않는 걸 알고 있지만, 오묘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데자뷰 말고 생각나는게 없었다. 데자뷰는 원래 '데자뷔' 라고 칭하는게 맞는데, 그럼 데자뷰는 뜻이 없는 다른 단어이니까 데자뷰는
'정예리라는 사람이 공연 또는 오래 준비한 무언가를 발표한 직후에 느끼는 감정' 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보기도 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물음표이다. 열심히 준비한 공연은 잘 끝냈고, 작은 팀도 정말 수고했다. 그날 같이 공연 한 14기 선배들의 공연을 보면서 너무 몰입한 탓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행복한 일주일을 보낸 것 같다. 이 글에서 아마 아주 중요할 공연에 대한 소감 또는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은,
이미 데자뷰에서 설명을 마쳤기 때문이다.
첫댓글 예리야! 에세이 어떻게 써야될지 모른다고 하더니, 이렇게 잘 쓰고
애들한테도 예쁜 댓글 남겼더라
정말 멋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