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32> 제2편 제4장 심인공부 ⑧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심인공부에서 보리심이 갖는 의미는 지대(至大)하다. 전회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심인공부를 밀교공부로 이해한 맥락에서는 보리심의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즉신성불을 지향하는 진언수행의 밀교는 출가와 재가에 관계없이 보리심 수행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리심론」 제1장 발심수행장에 “오직 진언법 중에서만 즉신성불하므로(唯眞言法中 卽身成佛是故, 금강정유가중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론)”로 설해져 있다.
또한 보리심론 제1장의 “보리를 구하는 자는 보리심을 발하여 보리행을 닦아야 한다(求菩提者 發菩提心 修菩提行)”는 말씀은 만고불변의 이치라 할 것이다. 실제로 티베트밀교의 로종수행법(lojong, 마음 수련하기)이 보여 주듯이 보리심으로 시작하여 보리심으로 끝난다고 할 만큼 보리심을 근간으로 한다. 로종수행법에서는 자비심을 상대적 보리심이라 하고, 지혜심을 절대적 보리심이라 한다.
회당대종사께서 중흥하신 현대 한국밀교로서의 심인밀교 또한 보리심에 대한 인식이 깊었다. 대종사께서 역편(譯編)하신 「진각교전」의 경론집편에는 「보리심의」와 「보리심론」이 편장되어 있다. 이 두 논은 대정신수대장경에서도 밀교부에 편장되어 있다. 보리심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함이 곧 출가이며 곧 구족이라(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是卽出家是卽具足也)”로, 보리심론은 “만약 사람이 부처의 지혜를 구하여 보리심에 통달하면, 부모소생의 몸으로 속히 대각의 지위를 증득한다(若人求佛慧 通達菩提心, 父母所生身速證大覺位)”로 결구를 맺고 있다. 보리심은 출재가를 분별함 없이 밀교적 즉신성불의 대도를 성취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보리심의는 위 결구를 「유마경」 소전(所傳)이라 하고 있으나, 위 원문 그대로 유마경에 나오지 않는데, “보리심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부처가 될 때 대승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나느니라(菩提心是菩薩淨土, 菩薩成佛時 大乘衆生來生其國, 유마경 불국품)”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면,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또 일체중생에게 큰 이익이 될 것(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爲報佛恩, 亦大饒益一切衆生, 유마경 보살품)”와 같은 말씀을 변용시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대종사께서 「실행론」 제6절에서 인용하신 보리심론의 경구는, 이 논에서 설하는 삼종보리심(대종사께서는 실행론 3-4-3에서 별도로 설하셨음) 중 행원보리심(行願菩提心, 교화의 대원을 발하는 보리심)의 화경(化境, 교화할 대상)을 설한 부분이다. 그런데 화경의 중간 부분 즉 「화엄경」 소전의 말씀은 인용하지 않으셨는데, 이는 인용문구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 그 부분을 옮겨 놓으면 다음과 같다. 진각교전 경론집편의 것을 그대로 옮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 이르되, 한 중생이라도 진여지혜를 구족치 않음은 없다. 다만 망상전도(妄想顚倒)의 집착으로써 증득하지 못하나니, 만약 망상을 여의면 일체지(一切智)·자연지(自然智)·무애지(無礙智), 곧 현전(現前)함을 얻는다고 하시었느니라(80화엄경 제51권 여래출현품).”
대종사께서 제6절 ‘보리심과 법불교’에서 인용하신 보리심론의 경구는 세 단락으로 분항(分項)할 수 있다. 첫 번째 단락은 “진언행인은 알지라. 일체 유정은 모두 여래장의 성(性)을 함장(含藏)하고 있으므로 모두 무상보리에 안주함에 감인(堪忍)하나니, 이런 까닭에 이승(二乘) 법으로써 득도시키지 않는다(眞言行人 知一切有情. 皆含如來藏性 皆堪安住無上菩提, 是故不以二乘之法 而令得度)”이다.
여래장의 성품을 간직한 우리 존재는 위없는 보리를 지향할 수 있기에, 이승의 법을 넘어서야 함을 역설한 내용이다. 초대승법(超大乘法)으로서의 밀교법을 설한 것이기에 이승을 성문과 연각이 아닌 소승과 대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보리심론 모두(冒頭)의 “만약 상근상지(上根上智)의 사람이 있어서 외도이승(外道二乘)의 법을 즐기지 않고, 큰 도량(度量)으로 용예하여 미혹이 없는 자는 마땅히 불승(佛乘)을 닦을지니라”는 구절을 보면 이승을 성문과 연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보리심론 결구 부분의 ‘밀엄국토(密嚴國土)’와 조응하면 이승을 소승과 대승으로 적극적 해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두 번째 단락은 “그리고 안락(安樂)이란, 행자가 일체중생은 마침내 성불한다는 것을 곧 알기 때문에, 감히 경만(輕慢)하지 않고 또한 대비문 안에서 더욱 마땅하게 건져내어 구하는 것이다. 중생이 구하는 것을 모두 줄지라. 또한 신명(身命)을 아끼지 말고 그들을 안존(安存)하게 하며, 이미 친근하게 되면 스승의 말을 신임하게 되니, 그 서로 친함으로써 교도(敎導)할 수 있다(所言安樂者, 謂行人卽知一切衆生畢竟成佛故, 不敢輕慢 又於大悲門中 尤宜拯救. 衆生所求 皆與而給付之. 乃至身命 而不悋惜其命 安存使令悅樂, 旣親近已 信任師言, 因其相親 亦可教導)”이다.
‘안락’은 ‘이익’과 더불어 ‘이락(利樂)’이라 하며, 행원의 목적이 된다. 중생들을 이락하게 하는 것이 보리심 수행의 본질이다. 보리심론 제2장 행원보리심장의 “내 마땅히 무여(無餘)의 유정계를 이익케 하며 안락케 하고, 시방의 함식(含識, 중생) 보기를 마치 자기 몸과 같이 할지라. 이익이란, 일체유정을 권발하여 다 무상보리에 안주하게 함이라(我當利益安樂無餘有情界, 觀十方含識猶如己身. 所言利益者, 謂勸發一切有情 悉令安住無上菩提)”는 법구를 상기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안락이 자비라면 이익은 지혜이고, 안락이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라면 이익은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친해져서 믿음을 얻은 상태에서 교화하라는 밀교적 생활법문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세 번째 단락은 “중생이 우몽(愚朦)하여 억지로 제도(濟度)하지 못하므로, 진언행자가 방편으로써 인도하여야 한다(衆生愚朦 不可强度, 眞言行者 方便引進)”이다.
진언행자가 방편으로써 인도하여야 한다는 법문 또한 밀교사상과 닿아 있다. 「대일경」 주심품의 “보리심이 원인이 되고, 대비가 근본이 되며, 방편이 구경이 된다(菩提心爲因, 悲爲根本, 方便爲究竟)”는 삼구사상(三句思想)에서 말씀한 방편의 구경성 말이다. 「법화경」의 방편설은 밀교에 이르러 삼구로 사상성을 확립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대종사께서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법불교(밀교)에 취향하게 하는 심인공부에 ‘방편’이 긴요함을 보리심론을 인용하여 강설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