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길
아니다 아닌데
눈에 익숙했던 길이 아니다.
분명 길 속에는 쉬어갈 너럭바위
숲길에는 연리지도 있었는데
헤매고 헤집고
길 속에서 빠져나와
비 갠 하늘 구름도 보고
시원한 산들바람 쐬니
소중한 얼굴이 가까이 있다
늘 곁에 있어서 몰랐다
하지만
엇갈린 길 걷다 보니
새삼스럽게 사랑했나?
찐한 생각이 머무른 길이다
이젠 차분하게 귀를 기울이며 살자
혼자서 걸어가는 길이 아니란 걸
알았으면 천천히 차분하게
늘 처음 만남처럼
바람의 여행
청해진 포구
돛단배에 바람 실어
파란 하늘 닮은 파도 벗 삼아
다다른 낯 설은 타향
기가 막히다
뭔가
믿는 구석도 없고
정처 없는 발걸음
알 만한 낯익은 얼굴도 없다
더욱 의지할 언덕도 없다
바람길 따라 멈추는 땅이다.
살다 보니 그곳도
깔봄과 깨침이 함께 있다
따스한 햇살 비추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집
좁은 골목길도
눈이 내리면 싸릿대 빗자루
정겨운 웃음소리 들린다.
하지만 그리움 솟구쳐
어릴 때 보아왔던 포구
돛배 뫼던 돌 말뚝도
모래자갈 어디론가 사라지고
흉물스럽게 시멘트 벽돌 폐가만
푸른 하늘은 그대로인데
벗들은 보이지 않고
고향은 이제 생각 속의
그리움이다.
문학과 동행
빈손
작년 끝 달 무렵부터
찬바람 일더니
올 새해 벽두에 기어코
하얀 눈발 휘날립니다.
노모의 호미를 쥔 텃밭 일손도
이젠 허리 펴고 편히 쉬라 하며
하얀 눈만 소복소복 쌓이고
난로 가에 군고구마 김 서림만
모락모락 피어오른 겨울입니다.
세월 흐른 한 살 더4
하얀 눈 한 움큼 쥔 손 차갑고
시리면 얼른 버리면 빈손이듯
그렇게 쌓아두고
모아둔 것 없었습니다.
흐릿한 청춘의 기억들
가물가물 추억되고
지난 아픔 기쁨 슬픔도
살다 보니 다 빈손
간절하거나 절박한 갈등에
과연 아낌없이 주는 손
욕망에 거두어들인 손
한 치 앞도 못 내다본 손
오직 집착만 고집한 손
모두 남는 것은 빈손
헛된 꿈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