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伯夷伊尹於孔子 若是班乎 曰 否 自有生民以來 未有孔子也 (공손추가 말하기를,) “백이와 이윤이 공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동등합니까?”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인민이 있은 이래로 공자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다.”고 하셨다.
班, 齊等之貌. 公孫丑問, 而孟子答之以不同也. 班은 가지런하게 동등한 모습이다. 공손추가 물었더니 맹자가 다르다고 대답한 것이다. 2 曰 然則有同與 曰 有 得百里之地而君之 皆能以朝諸侯有天下 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皆不爲也 是則同 (공손추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같은 점이 있습니까?”라고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있다. 백리 된 땅을 얻어서 임금노릇을 하면 모두 제후들에게 조회를 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거니와, 한 가지 일이라도 불의를 행하며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천하를 얻는 것은 모두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같으니라.”고 하셨다. 與, 平聲. 朝, 音潮.
○ 有, 言有同也. 以百里而王天下, 德之盛也. 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有所不爲, 心之正也. 聖人之所以爲聖人, 其本根節目之大者, 惟在於此. 於此不同, 則亦不足以爲聖人矣. 있다고 한 것은 같은 점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백리를 가지고서 천하에 왕 노릇을 하는 것은 덕의 성대함이다. 한 가지라도 의롭지 않은 일을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는 일은 하지 않는 바가 있으니, 이는 마음의 올바름이다. 성인이 성인인 이유는 그 근본의 항목 중 큰 것이 오직 여기에 있으니, 여기에서 다르다면, 또한 성인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다. 問伯夷伊尹之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 有所不爲 何以言之也 朱子曰 以其遜國而逃 諫伐而餓 非道義一介不取與 觀之 則可見矣 누군가 묻기를, “백이와 이윤은 하나의 불의한 일을 행하고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는다면 하지 않는 바가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으로써 말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그들이 나라를 양보하고 도망쳤고, 정벌을 간언하다 굶어 죽었으며, 도의가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취하거나 주지 않았던 것으로 살펴본다면,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魯齋王氏曰 此亦是自反而不縮 所以不爲也 노재왕씨가 말하길, “이것 역시 스스로 돌이켜서 곧지 않기 때문에,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上文德之盛 根本之大也 心之正 節目之大也 大根本節目同而小處不同 皆可以言聖人 若大處不同則大本已非 吾何以觀之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윗글에서 덕의 성대함은 근본 중의 큰 것이고, 마음이 올바른 것은 절목 중의 큰 것이라고 하였다. 큰 근본과 절목이 같으면서 작은 부분이 다르다면, 모두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큰 부분이 다르다면 큰 근본이 이미 틀린 것이니, 내가 무엇을 가지고 그를 살펴본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3 曰 敢問其所以異 曰 宰我子貢有若智足以知聖人 汙 不至阿其所好 (공손추가) 말하기를, “감히 그 다른 점을 묻겠습니다.”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재아와 자공과 유약은 지혜가 충분히 성인을 알 수 있으니, (이들의 지혜가) 낮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汙, 音蛙. 好, 去聲.
○ 汙, 下也. 三子智足以知夫子之道. 假使汙下, 必不阿私所好而空譽之, 明其言之可信也. 오(汙)는 낮아진다는 것이다. 세 분은 지혜가 족히 부자의 도를 알 만하였다. 그러므로 설령 지혜가 낮아진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사사로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그를 근거 없이 추켜세우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들의 말은 믿을 만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朱子曰 汚是汚下不平處 或是當時方言 當屬下句讀 주자가 말하길, “汚라는 것은 웅덩이 아래의 평평하지 않는 곳이다. 혹은 당시의 방언이다. 마땅히 아랫구절에 붙여서 읽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智足以知聖人 則其智識高明矣 阿私所好而空譽之 則其識趣汚下矣 高明與汚下正相反 高明則不必至汚下矣 反覆極言之 以明三子之言 必可信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지혜는 족히 성인을 알 수 있다면, 그 지혜와 식견은 고명할 것이다. 사사로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부하여 헛되이 기린다면, 식견과 취향이 더럽고 낮을 것이다. 高明과 汚下는 완전히 상반되는데, 고명하다면 반드시 더럽고 낮은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반복하여 극단적으로 말함으로써 세 분의 말씀은 반드시 믿을 만한 것임을 밝혔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4 宰我曰 以予觀於夫子 賢於堯舜遠矣 재아가 말하기를, ‘나로서 선생님을 관찰하건대 요순보다 훨씬 훌륭하시다.’라고 했다.
程子曰: “語聖則不異, 事功則有異. 夫子賢於堯舜, 語事功也. 蓋堯舜治天下, 夫子又推其道以垂敎萬世. 堯舜之道, 非得孔子, 則後世亦何所據哉?” 정자가 말했다. “성스러움으로 말한다면 다르지 않으나, 일의 공적을 따진다면 다름이 있다. 공부자께서 요순보다 어질었다는 것은 일의 공효를 논한 것이다. 대개 요순은 천하를 다스렸고, 공부자가 또한 그 도를 미루어서 가르침을 만세에 드리웠으니, 요순의 도가 만약 공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후세가 또 무엇을 근거로 하였겠는가?”
問夫子賢於堯舜 有論宰我此言之失者 南軒張氏曰 殊不思 孟子引宰我此言爲甚 曰 遺書謂 語聖則不異 事功則有異 曰 便是這箇意思 五峯云 成一時之勳業有限 開萬世之道學無窮 亦是此意 누군가 묻기를, “공자께서 요순보다 어질다고 하였는데, 재아의 이 말이 잘못되었다고 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남헌장씨가 말하길, “맹자가 재아의 이 말을 인용한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유서에 말하길, 성스러움을 말한다면 다르지 않지만, 일의 공이라면 다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바로 이러한 뜻이다. 오봉선생이 이르길, ‘일시의 공업을 이룬 것은 유한하지만, 만세에 도학을 열어준 것은 무궁하다’고 하였으니, 역시 이러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語聖則不異 以其德言也 事功則有異 就其所爲事與成功而言也 堯舜治天下 夫子又推其道以垂敎萬世 此言事功久遠之不同也 堯舜之道 非得孔子 則後世亦何所據哉 此言事功始終成就之不同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성스러움을 말하자면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 덕으로 말한 것이고, 일의 공이라면 다름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행한 일과 성공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요순은 천하를 다스렸지만, 공자께서는 또한 그 도를 미루어서 만세에 가르침을 드리워주었다는 것은 일의 공이 오래 가고 멀리 감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요순의 도가 공자를 얻지 않았다면 후세는 또한 어느 곳에 근거할 것인가? 이 말은 일의 공이 시작과 끝, 그리고 성취함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後世聖賢之君不作 異端漸熾 苟非得孔子祖述堯舜以詔後世 則無所據依 以入堯舜之道矣 輔氏有言當時若無孔子 今人連堯舜也不識 由此言之 則孔子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爲往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 其功業豈不賢於堯舜遠哉 宰予此言 可謂深知孔子 其得在言語之科 宜矣 此孟子所以表而出之於子貢有若之言之先也歟 신안진씨가 말하길, “후세에 성현다운 임금이 일어나지 않고, 이단이 점차 치열해졌는데, 만약 공자께서 요순을 祖述하여 후세에 알려줄 수 없었더라면, 의거하여 요순의 도에 들어갈 바가 없었을 것이다. 경원보씨는 당시에 만약 공자가 없었다면, 지금 사람들은 요순조차 알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이를 말미암아 말한다면, 공자는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웠고, 백성을 위하여 명을 세웠으며, 지난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이어주었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성대를 열어주었으니, 그 공업이 어찌 요순보다 훨씬 더 어질지 않겠는가? 재여의 이 말은 공자님을 매우 깊이 알았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언어과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맹자가 재여의 말을 자공이나 유약의 말보다 먼저 표출한 까닭이 아닐까?”라고 하였다.
5 子貢曰 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 由百世之後 等百世之王 莫之能違也 自生民以來 未有夫子也 자공이 말하기를, ‘예절을 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면 그 나라의 덕화를 알 수 있으니 백세의 뒤에서 백세의 왕들을 차등지어 보건대 그 실정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우니 백성이 살아온 이래로부터 선생님 같은 분은 있지 않았다.’라고 했다.
言大凡見人之禮, 則可以知其政; 聞人之樂, 則可以知其德. 是以我從百世之後, 差等百世之王, 無有能遁其情者, 而見其皆莫若夫子之盛也. 무릇 어떤 사람의 예를 보면, 곧 그의 정사를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곧 그의 덕을 알 수 있으니, 이런 까닭으로 내가 백세 이후에 백세의 왕을 차례로 등급을 매겨보아도, 그 본래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자는 없으므로, 그들 모두 공부자의 성대함만 못하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差等猶言品第 情實也 以見禮知政聞樂知德二句 鑒之 皆不能逃於洞察之下 신안진씨가 말하길, “差等이란 품평하여 등수를 매긴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情이란 실질이다. 禮를 보면 그 정사를 알고 樂을 들으면 그 덕을 안다는 2구절로써 비추어보면, 전부 다 통찰하는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 是謂夫子 是謂他人 朱子曰 只是大槪如此說 子貢之意 蓋言見人之禮便可知其政 聞人之樂便可知其德 所謂由百世之後等百世之王 莫之能違 我之見者 所以斷然謂自生民以來未有孔子 此子貢以其所見而知夫子之聖如此也 一說夫子見人之禮而知其政聞人之樂而知其德 由百世之後等百世之王 莫有能逃 夫子之見者 此子貢所以知其爲生民以來未有也 然不如前說之順 누군가 묻기를, “그 예를 보면 그 정사를 알고 그 음악을 들으면 그 덕을 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공자를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말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그저 대개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자공의 뜻은 대체로 한 사람의 예를 보면 그 정사를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그 덕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른바 ‘백 세대 후에서 백 세대의 왕을 등급 매겨도, 내가 본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단정적으로 백성이 생겨난 이후로 공자 같은 분은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자공이 자기가 본 바로써 공자의 성스러움을 알아본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또 일설은, 공자께서 다른 사람의 예를 보고서 그 정사를 알았고, 남의 음악을 듣고서 그 덕을 알았으니, 백 세대 뒤에서 백 세대의 왕을 품평하여도 공자님께서 보신 것에서 도망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자공이 백성이 생겨난 이래로 공자 같은 분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만, 그러나 앞의 학설이 순조로운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6 有若曰 豈惟民哉 麒麟之於走獸 鳳凰之於飛鳥 太山之於丘垤 河海之於行潦 類也 聖人之於民 亦類也 出於其類 拔乎其萃 自生民以來 未有盛於孔子也 유약이 말하기를, ‘어찌 오직 백성뿐이리오. 기린이 달리는 짐승에 있어서, 봉황이 나는 새에 있어서, 태산이 언덕과 개미 둑에 있어서, 강과 바다가 길바닥에 고인 물에 있어서와 같은 것이다. 성인이 백성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 그 종류 중에서 빼어나며 그 무리 중에서 훨씬 뛰어났으나, (특히) 백성이 생겨난 이래로 공자보다 훌륭한 분은 있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垤, 大結反. 潦, 音老. 垤(질) 개밋둑, 萃(췌) 모일췌
○ 麒麟, 毛蟲之長. 鳳凰, 羽蟲之長. 垤, 蟻封也. 行潦, 道上無源之水也. 出, 高出也. 拔, 特起也. 萃, 聚也. 言自古聖人, 固皆異於衆人, 然未有如孔子之尤盛者也. 기린은 털 달린 짐승의 으뜸이고, 봉황은 깃털 달린 새의 으뜸이다. 질이란 개미가 막은 둑이다. 行潦란 길 위의 수원지가 없는 물이다. 出이란 높이 빼어나단 말이고, 拔이란 특별히 일어난 것이다. 萃란 모인다는 말이다. 자고로 성인은 본래 모두 일반 사람보다 특별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공자만큼 특별히 훌륭한 사람은 있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特 梃然孤恃也 特이란 의젓이 외롭게 자부함이다.
衆所聚之中 많은 수가 몰려드는 가운데이다.
新安陳氏曰 此聖人字是汎說從古以來之聖人 신안진씨가 말하길, “여기서 성인이라는 글자는 옛날 이래의 성인을 널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孟子此章, 擴前聖所未發, 學者所宜潛心而玩索也.” 정자가 말했다. “맹자의 이 장은 이전 성인께서 미처 말씀하지 아니한 것을 확충한 것이니,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음미하여 탐색해야 할 바이다.”
指養氣與知言而言也 養氣와 知言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雙峯饒氏曰 孟子要學聖人 故於子游子夏子張冉牛閔子顔淵 皆曰姑舍是 伯夷伊尹 雖是古聖人 然伯夷偏於淸 伊尹偏於任 不若孔子之時中 故曰 乃所願則學孔子 解孟子與解論語不同 論語章句短 孟子章句長 須要識他全章大指所在 又須看敎前後血脉貫通而後可 쌍봉요씨가 말하길, “맹자는 성인을 따라 배우고자 하였기 때문에, 자유, 자하, 자장, 염우, 민자, 안연에 대하여 모두 잠시 놓아두자고 말했던 것이다. 백이와 이윤은 비록 옛 성인이기는 하지만, 백이는 너무 맑음에 치우쳤고, 이윤은 너무 맡음에 치우쳤기에, 공자님의 時中만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말하길, ‘오히려 원하는 바는 공자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맹자를 해석하는 것은 논어를 풀이하는 것과 다르다. 논어는 장구가 짧지만, 맹자는 장구가 길므로, 반드시 그 전장의 큰 요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고, 또한 모름지기 전후의 혈맥이 관통하게 만들어서 살펴보아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公孫丑疑孟子動心 孟子遂極言養氣知言之功 公孫丑疑其知言養氣之旣聖 孟子遂極言夫子之聖之盛 要之 夫子之聖不假乎養氣知言 孟子之養氣知言 乃學而至聖者也 前則深斥告子闢異端也 後則推尊孔子承聖道也 前後之言 若不相貫而實相貫 學者味之 운봉호씨가 말하길, “공손추가 맹자의 부동심을 의심하였기 때문에, 맹자는 마침내 養氣와 知言의 공을 말함에 이르렀던 것이고, 공손추가 知言과 養氣로 맹자가 이미 성인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의심하였기 때문에, 맹자는 마침내 공자님의 성스러움이 얼마나 성대한지 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요컨대, 공자님의 성스러움은 養氣와 知言에서 힘을 빌리지 않지만, 맹자의 養氣와 知言은 도리어 배워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앞에서는 고자를 깊이 배척하고 이단을 물리쳤지만, 뒤에서는 공자를 推尊하고 성도를 받들었던 것이니, 앞뒤의 말이 마치 서로 관통하지 않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 관통하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이것을 음미해 보라!”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