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연수기 -마지막 회-
자유의지와 파리 미학(3회에서 이어짐)
< 9월 19일>
“아빠 빠이 와”
이른 시간 숙소주변 산책에 나섰으나 비가 시작되어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부스가 눈에 띄어 집에 전화를 걸기로 하였다. 시차 때문이라도 이따금 어른들과의 통화는 가능하였으나, 그간 아빠라고 유일하게 부르는 33개월 된 ‘서형’이란 녀석과는 자주 눈과 가슴에 어리고 밟히기는 하였음에도 전화로 목소리 듣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연결되자 녀석이 그랬다, “아빠 빠이(빨리) 와, 빠이!” 그리고 끊어졌다. 콧등이 시큰하더니, 미처 비를 맞는 줄도 모르고 숙소에 도착하여 커피를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끌리스(CLIS)와 파리 제16구 방문
프랑스는 데빠르뜨망(d´epartment)이라고 불리는 100개의 도로 이루어져 있고, 다시3~4개의 도가 합쳐져서 레지옹(r´egion)을 이룬다. 그리고 데빠르뜨망 안에 시(ville)와 꼬뮌(commune)이라는 행정단위가 있다. 한편 파리는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이라고 불리는 20개의 구로 이루어졌음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리고 각 구는 각기 나름의 전통과 특색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제5구는 소르본느 대학과 고등사범(둔) 등이 있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많이 살고, 13구에는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계가 많고, 19와 20구는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제16구는 파리에서 주로 부유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1982년 미떼랑 대통령이 지방자치화의 첫 발을 내디딘 이후 그동안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이 지방으로의 분권화가 진행 중에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조스팽 전 총리의 주도로 지역주민 참여확대를 위한 “민주주의와 근접성”이라는 법이 금년 2월에 발효되었으며 ‘들라노에’ 현 파리시장은 이 법을 파리시에 적극 반영하여 지난 7월에는 16구에도 ‘구역주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구 단위의 주민참여기구가 있긴 했으나 구 전체에 걸친 구성의 한계를 벗어나 근접성을 강조하여 16구를 6개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의 위원회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 위원회에서는 구역의 모든 관심사를 논의하고 협의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위원 수는 24명으로 시장과 시장 지명의 2인, 지역의원 5명, 지역시민단체 8명, 그리고 능력과 자질을 갖춘 개인 8명으로 구성되어 1년에 최소한 2회 이상의 회의를 열어야 하며, 회의는 공개하고 그 결과는 구청 게시판에 게시해야 한다. 시행 초기로서 문제점은 있으나, 일단은 참여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평가되고 있다.
16구의 경우 우파 시장이지만 주민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주민들이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여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구 행정의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시장 밑에는 여러 명의 부시장이 있는데, 아예 ‘시민단체와 지역민주주의’담당 부시장이 있었다.
우리가 안내되어 설명을 들은 장소는 의회가 열리기도 하고, 시장의 강연과 구민의 결혼식까지 거행되는 곳이었는데 , 흥미로운 것은 결혼식은 한달에 50쌍 정도가 하며, 시장이나 부시장이 참석해서 서명해야 결혼이 성립된다는 것이었다. 인구 16만에 공무원 수는 400명 정도로 다른 구에 비해 많은 편이라 했다. 한편 구의원은 39명이고 이중 13명은 파리시의원이 되는 겸임제였으며, 구의원은 무보수이나 시의원은 유급제였다.
한편 16구청사 내에 공간을 확보하여 구행정과 주민의 활발한 가교역할을 하는 끌리스(‘주민연결과 발의센터’-CLIS)라는 단체를 방문하게 되었다. 1975년 출범 당시 가장 큰 현안은 노인문제였으며, 이를 안고 시작한 처음의 노인문제연대의 성격체가 발전하여 오늘의 시민단체 연대체의 끌리스가 되었다고 한다. 노인 문제 외에 청소년, 교육, 문화강좌 등의 프로그램을 행정기관의 재정적 지원 없이 기부금과 자원봉사자들로만 운영하고 있었으며, 임원진과 자원봉사의 주 참여자는 주로 정년퇴직자가 중심이 되는 노년층이었다. 지역사회의 일반적인 노인단체 성격과는 판이한 사회 참여와 봉사내용이 인상에 남았다. 우리의 방문 며칠 후인 28일부터 29일까지 16구에서 활동하는 150여개의 단체가 참여하는 ‘시민단체박람회’의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16청사의 방문일정을 마치고 파리에 머물고 있는 '사회운동연구소장‘인 정수복 박사의 안내로 잠시의 짬을 이용해 찾은 곳은 블로뉴(Bois de Boulogne)숲이었다. 무려 1,500헥타르의 규모로서 파리에서는 벵센느(Vincenne)숲과 함께 파리의 양대 허파로 불리고 있었는데 규모뿐만 아니라 관리측면에서도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그 공원 내의 호수 역시 잘 관리되고 있으며, 곳곳에서는 한가로운 산책과 조깅장면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어 다음 일정에 따라 찾은 곳은 전국적인 조직으로 2,00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프랑스, 자연, 환경(France, Nature, Environment -FNE)’라는 단체의 신축된 지 얼마 안 된 사무실이었다.
환경법학자 ‘뷔송’교수와의 대담
B.뷔송(Benoist Busson)교수는 파리 1대학에서 환경법을 강의하며, 이 단체에서 환경문제 관련한 소송 등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FNE는 유전자 조작식품, 쓰레기, 물, 해양, 농업문제 등 환경과 자연에 연관된 종합적인 문제를 현장 활동 중심이 아닌 소송과 로비를 통한 제도적인 접근을 한다는 의미에서 그린피스와 같은 환경단체들과 구분되고 있었다. 그들의 재정은 국가가 70%를 연구기금 명목으로 지원하고, 나머지 30%는 자체적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며, 유럽환경회의 등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법치국가이나 시민단체(아쏘시아송)가 법에 명시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는 시민의 기본권이며, 민주주의 증진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견해를 그는 피력하였다. 현재 환경문제는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경향이 증대되고 있음을 밝혔다.
그에 의하면 ngo는 정보요구와 접근의 권리, 공적토론 참여의 권리와 기능 및 사법제도에 참여하여 기능할 수 있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민단체에게는 거부권이 없어 처음부터 공적토론을 활성화해서 의견수렴을 어느 정도 강제해야 행정의 독단을 막아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사법제도를 통한 해결방법이 유효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행정재판이나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소송의 유형도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주문하였다.
지역이나 개별국가 차원에서는 시민참여의 제도가 확보되어 있으나, 유럽연합(EU)차원에서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여 제도화를 빨리 달성해야함을 역설하였다. 독일이 대단히 분권적인데 비해 중앙권한의 이양기에 있는 프랑스로서는 아직은 자치권을 가지고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자치권을 행사하는데 많은 제약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뷔송 교수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행정권한과 법적 독립권 및 선거를 통한 조직권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전문성과 확고한 신념을 지닌 젊은 학자와의 대담 프로그램은 파리의 마지막 밤을 훨씬 의미롭게 우리를 고무시켰다.
비교적 늦은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상젤리제 거리를 찾아갔다. 그동안의 강행군으로 생긴 고단함도 잊은 채 이번 여정의 끝자락에 서 있는 아쉬움들을 그들은 마치 거쳐야 하는 어떤 의식처럼 그곳 낯선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물면서 기억의 크기와 의미를 증대하려는 듯한 안타까움 들로 범벅이 되었다. 아름답고 순수한 열정들로 뭉쳐진 그네들, 한국사회의 중견 시민활동가들로부터 전율처럼 어떤 희망을 감지한 밤이었다.
그렇게 파리의 밤은 저물었다 밝으면서 동양의 이방인들마저 감싸 앉았다.
< 9월 20일>
이튿날 예정된 프로그램 중 2개씩이나 차질을 빚어온 상젤리제 번화가에 위치한 ‘한국지방자치단체국제화재단’의 파리사무소를 찾아 2개월 전에 부임하였다는 소장에게 공식 일정 파기에 따른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가’를 따져 묻고 돌아섰으나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리옹 역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아쉬운 걸음들을 마치 세듯이 뒤로 하며 다시 드골공항을 이용,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 후 그 곳에서 연결편국적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돌이켜보면 파리의 의미성에는 카톨릭의 전통과 피의 시민혁명 이후 전개된 공간에서 자유의 가치를 방종이 아닌 자율을 통해 승화시킨 것으로 이해되는 자유의지의 부분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이 그들만의 미적 삶이고 자부로 느껴졌다.
연수기를 마치며
7박 8일, 결코 길지 않은 기간에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지방자치와 시민운동’을 접근하고 이해하고자한다는 연수목적의 설정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부분적이나마 진지한 나름의 성찰을 통해 우리사회와의 비교는 일정 정도 가능하였다고 판단된다.
그런 맥락에서 앞서의 단편적인 제목들로 설정해 본 이를테면, ‘민주주의는 결과에 대한 집착이 아닌 절차와 과정 및 참여의 중시에 있었다’라거나, ‘살아 있는 노대국 영국의 저력’ 또는 ‘자유의지의 토양에서 생성된 파리미학’ 따위의 표현은 우리와 크게 대비되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200년이 넘는 자생적‘시민사회’의 역사성이 그들 사회저변의 건강성과 자부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러한 숨결이 사회 전 부문에 깊이 천착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네트웍 시스템으로서의 ‘(자치)행정’이 철저하게 ‘서비스’화 되어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며, 마땅히 (시)민이 주인이 되어 있었다.
* 후기 / 그동안 4회에 걸친 졸고를 관심으로 읽어주신 독자들께, 특히 컬러 면을 통해 사진을 포함한 본고를 게재해준 칠갑신문사 측에 고마운 뜻을 표하고자 한다. 앞으로 적당한 기회에 현지에서 수집한 자료 중 유용한 일부를 번역,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