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호]
올챙이
안성훈
모두가 태수를 싫어한다. 반 친구들 중 태수와 친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태수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빙그레 웃고 다닌다. 우리는 태수가 없을 때, 태수 흉을 자주 본다. 선생님 몰래 태수 이야기할 때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하게 된다.
아이들이 태수를 싫어하는 이유도 전부 제각각이다. 태수는 얼굴에 주근깨가 많아서 싫어. 웃을 때 이가 드러나는 모습이 이상해. 머리카락 색이 까맣지 않고 너무 밝은 갈색이야. 손톱 깨무는 버릇이 있어서 손톱 모양이 이상해. 지난번에 옷소매로 콧물을 닦는 걸 봤어. 숙제도 잘 안 해 와서 선생님한테 항상 혼나. 공부도 잘 못하고 운동도 잘 못해. 왜 자꾸 친구들을 괴롭히는 거야? 더러운 손으로 우리 얼굴을 막 만지잖아!
흥분하는 아이들을 말리는 건 내 몫이다. 나는 작년에 태수와 같은 반이었다. 태수는 다른 친구들을 못살게 굴면서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엄마와 태수 엄마가 아는 사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태수가 날 괴롭히거나 귀찮게 하면 우리 엄마를 통해 태수 엄마에게 알려질 테니까 말이다.
“야, 박정진! 너 오태수 좋아해?”
한번은 쉬는 시간에 주미가 큰소리로 물었다. 반의 모든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나에게 빨래 대답해 보라고 했다. 나도 태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도 태수 때문에 골치아파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입에서 ‘싫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희 엄마랑 태수 엄마랑 친하다며? 너희 학교에서만 안 친한 척하는 거지?”
주미가 나를 몰아붙였다. 그때 태수가 교실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들고 있었다. 밖에서 나쁜 짓을 하다 온 게 분명했다.
“무슨 소리야! 싫어! 싫어한다고!”
주미한테 질세라 나도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까르르 웃었다. 태수는 눈을 멀뚱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향해 대걸레 자루를 들이밀며 말했다.
“지금 무슨 얘기야?”
그 순간 모든 게 확실해졌다. 나는 태수가 싫었다. 태수가 작은 괴물처럼 보였다. 선생님은 태수가 가지고 온 대걸레 자루를 빼앗았다. 끝부분이 날카롭게 부러져 있어서 무척 위험해 보였다. 태수 탓에 나까지 벌을 받았다.
태수는 반 친구들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눈치 챈 뒤로 더 심한 말썽을 피웠다. 1학기 내내 빨리 방학이 되어 태수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름방학 동안 나는 할아버지 댁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할아버지 댁 근처에는 조그만 저수지가 있는데 거기엔 커다란 올챙이들이 살고 있었다. 아빠는 그것들이 황소개구리 올챙이들이라고 했다. 작은 올챙이들은 몸놀림이 빨라서 잡기 어려웠지만 황소개구리 올챙이들은 머리가 크고 움직임이 느려서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처음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나는 그물로 올챙이를 잡아 우유병 한 가득 넣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챙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개구리가 될 수 있도록 먹이도 많이 주고 물도 자주 갈아 주었다. 하지만 삼 주쯤 지나고 여름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자 올챙이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다.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봤는데 올챙이들은 다 죽어 버렸다. 아빠는 시무룩한 내 모습을 보고 개학 직전에 할아버지 댁에 한 번 더 데리고 가 주셨다. 나는 우유병 두 개에 올챙이들을 가득 채워 왔다.
그리고 개학하는 날, 학교에 올챙이들을 가지고 갔다. 모든 관심은 나에게 쏠렸다.
“한 마리만 주라!”
“나도 한 마리만 줘!”
남자아이들은 물론 여자아이들까지 올챙이를 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아이들이 깨끗하게 씻어 온 우유 팩에 올챙이를 한 마리씩 담아 주었다. 그렇게 나누어 주고도 올챙이는 많이 남았다.
“정진이가 아주 좋은 수업 자료를 준비해 왔구나.”
선생님은 교실 뒤편에 수조를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수조 안에 올챙이를 넣어 키우면서 다 함께 관찰일지를 쓰기로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올챙이를 좋아해서 기분이 좋았다.
몇 시간 만에 다른 반에도 소문이 퍼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올챙이를 보려고 아이들이 열 명쯤 찾아 왔다. 누구한테 들었는지 모두 빈 우유 팩에 물을 받아 가지고 왔다. 나는 우유병에서 올챙이를 한 마리씩 꺼내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우유병에 있던 물을 아이들이 가지고 온 우유 팩에 조금씩 뿌려 주었다.
여름방학 때 집에서 수조를 만들었던 날, 아빠는 물을 가득 담은 수조에 저수지에서 가져 온 물을 섞었다. 나는 이왕이면 전부 다 깨끗한 물로 채우지 왜 그 물을 넣느냐고 물었다. 아빠는 올챙이들에게 고향의 물을 넣어 주는 거라고 하셨다. 그래야 낯선 곳에서 잘 살 거라고 말이다.
개학식이 끝난 다음 나는 열두 시가 다 되도록 친구들에게 올챙이를 나누어 주었다. 올챙이를 징그러워하는 몇몇 아이들을 빼고 거의 모든 친구들이 한 마리씩 가져갔다. 이제 우유병에 남은 올챙이는 다섯 마리뿐이었다. 나는 그 올챙이들을 집으로 가져가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유병 마개를 꼭 잠근 뒤 가방에 넣었다. 우유병 마개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이 없으면 올챙이들이 숨 막혀 죽을지도 몰랐다.
교실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모두들 개학하는 날부터 학원에 가야 했나 보다. 갑자기 교실 앞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태수가 들어왔다.
“나도 올챙이 한 마리만 줘.”
태수가 내 가방을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싫어. 이제 내 것밖에 없어.”
나는 태수의 눈길을 피하며 대답했다. 뒷문 쪽으로 나가려고 하자 태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네가 가져가 봤자 올챙이들 다 죽을걸!”
태수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태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도 잘 키울 자신 있다고!”
태수는 내 어깨를 꽉 잡고 흔들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믿어? 넌 말썽꾸러기 사고뭉치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태수를 어깨를 밀어 넘어트렸다. 그리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자 문득 가방 안에 든 우유병이 생각났다. 나는 멈춰 서서 가방을 열어 보았다. 우유병 안에서 어지러웠는지 올챙이들은 거품을 물고 있었다.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꼭 멀미하는 내 모습 같았다.
일단 정문으로 나간 다음 학교를 빙 둘러서 다시 후문으로 들어갔다. 태수는 우리 집을 찾아갈 게 뻔했다. 나는 학교에서 삼십 분쯤 숨어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무가 우거진 담벼락 밑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입에 침이 고였다. 우유병 마개를 열고 뚜껑 위에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올챙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힘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미꾸라지처럼 힘차게 움직였는데 지금은 지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나는 올챙이 한 마리를 잡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먹이를 잔뜩 입에 머금은 햄스터처럼 볼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입김을 호호 부는 듯한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데 꼬리 끝부분이 잘려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우유병을 살펴보았다. 우유병 안에는 올챙이밖에 없었다. 마개를 잠가 두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결국 올챙이 다섯 마리를 하나하나 꺼내 손에 올려 두고 확인했다. 네 번째로 잡아 올린 올챙이 주둥이에 다른 올챙이 꼬리 조각이 붙어 있었다. 이 올챙이는 다른 올챙이들보다 몸집이 컸다. 함께 있던 올챙이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게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올챙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허겁지겁 가방을 뒤져 올챙이 먹이를 찾아보았다. 계란 노른자가 담긴 통을 가방에 챙기려다가 책상 위에 두고 온 게 기억났다. 집에 일찍 돌아갈 줄 알았던 거다.
“올챙이 내놔!”
태수가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라 우유병을 엎질렀다. 우유병 안에 있던 물이 흘러 흙모래를 적셨다. 올챙이들은 병 안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나는 올챙이들을 한 마리씩 잡아 병 안으로 넣었다. 하지만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태수가 내 앞까지 달려왔다. 태수는 가방과 우유병을 추스르는 내 앞에서 땅에다가 발길질을 했다. 흙먼지가 날려 내 얼굴과 옷에 묻었다.
“진작 줬으면 이런 일 없잖아!”
나는 태수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다행히 후문 바로 앞에 수돗가가 있었다. 그 앞으로 걸어가 우유병 안에 수돗물을 채웠다. 태수는 내 옆에 서서 올챙이를 달라고 우유 팩을 들이밀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건 내가 가져 온 올챙이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줄 수 있다. 그런데 태수는 막무가내로 올챙이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마치 내가 자기 올챙이를 빼앗아 간 것처럼 화를 냈다. 분하고 억울해서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여기서 울어 버린다면 태수가 두고두고 나를 놀릴 게 분명했다.
“너희 아직 집에 안 갔니?”
선생님이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선생님에게 지금 내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태수는 선생님을 보자 신이 난 듯 달려갔다. 나는 우유병에 묻은 물기를 손으로 닦아냈다.
“선생님! 박정진이가 저만 올챙이 안 줬어요!”
태수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팔짱을 낀 채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마음이 놓였다. 흙먼지가 묻은 내 얼굴과 옷을 본다면 선생님은 틀림없이 태수를 혼내리라 생각했다. 태수는 벌을 받고, 나는 올챙이 다섯 마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거다. 지난 1학기 내내 그랬다. 태수는 언제나 사고를 쳤고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정진아, 태수한테도 올챙이 주자.”
선생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얼른 짐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렴.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싫어요! 태수가 저를 괴롭혔단 말이에요!”
나는 인상을 팍 쓰고 말했다.
“태수도 우리 친구잖아. 친구들에게 모두 주었으니 태수에게도 주어야지?”
선생님이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태수는 선생님 뒤에서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히죽거리는 태수 얼굴을 보니 더 화가 났다.
“태수는 나쁜 아이잖아요! 쟤한테 올챙이를 줄 수 없어요.”
내가 말했다. 선생님은 나를 더 끌어당겼다. 나도 모르게 우유병을 꼭 끌어안았다.
“태수가 학교에서 말썽꾸러기라고 해서 올챙이를 잘 키울지 잘 못 키울지는 모르는 거야. 우리 반 친구들 다함께 올챙이를 키워 보기로 했잖니? 태수에게도 기회를 주자.”
선생님은 태수의 우유 팩에 내가 올챙이 두 마리를 넣어 주었다. 태수는 우유 팩을 들고 폴짝폴짝 뛰다가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선생님이 나를 달래 주었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어째서 저 멍청한 아이에게 내 올챙이를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이 지났다. 교실 수조에 있는 올챙이들 중 몇 마리는 죽고 몇 마리는 살아남았다. 반 친구들과 함께 올챙이들을 관찰했다. 살아남은 올챙이들은 앞다리와 뒷다리 모두 나왔고 꼬리가 조금씩 없어지는 중이었다.
친구들에게 물어 보니 대부분 올챙이들이 죽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올챙이가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워서 죽은 건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 수조에 있는 올챙이들이 모두 살아남은 걸 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1교시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말썽쟁이 태수는 오늘도 지각인 모양이었다.
“자, 이제 자리로 돌아가 앉으세요.”
“잠깐만요, 선생님!”
태수가 작은 물병을 가지고 뒷문으로 들어왔다. 태수는 물병에서 잘 자란 올챙이 한 마리를 꺼냈다. 그리고 올챙이를 수조에 넣어 주었다.
“얘가 혼자 남더니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요.”
태수가 말했다. 나는 자리에 앉은 태수를 흘끔 보았다. 태수는 올챙이가 신경 쓰이는지 자꾸 수조가 놓인 창가 쪽을 자꾸 바라보았다.
* 안성훈/ 2012년 제6회 웅진주니어문학상 장편부문 대상 받고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