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醉鳳) 초벽하-1
다독마의를 만나고 항주로 돌아온 아군과 궁아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십이사들의 활동내역과 십이사들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천상루에 요청한 것이다.
마령단의 비밀이 풀리고 잠마동주의 속셈을 안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적거리며 시간을 지체하면 할수록 십이사들에게 닥칠 위험은 커져만 가고
마령단의 중독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궁아라가 작성한 서찰은 멀리 낙양에 있는 천상루를 향해 날아들었다.
천상루에 있던 해어화와 다정화는 궁아라의 서찰을 받아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솔직하게 말하면 죽(竹)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고 싶어.
죽(竹)도 다른 십이사에 대해 알아야 앞으로의 어떻게 할지 대책을 마련할 거 아니야.
또 다독마의의 말대로 한다면 죽(竹)은 정상으로 돌아올 가망이 없다는 거잖아
. 죽(竹)이 너무 불쌍해 죽겠어.”
“막내의 희생이 너무 크다
. 궁을 위해 스스로 자청해서 잠마동에 들어갔고 이젠 마령단 같은 극악에 중독되었으니..
아무리 궁을 위한 일이라지만 정말 막내만 생각하면...
그래~ 우리가 막내를 돕도록 하자.
나도 나중에 장로님이나 궁주님께 혼나는 일이 있어도 막내를 도와주고 싶어.
또 사실 막내를 도와주는 것이 본궁에 해가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 막내가 무슨 생각으로 십이사들의 위치와 활동내역을 알려달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도와주도록 하자.
지금까지 지켜본 막내의 충성심이라면 본궁에 해가되는 일은 안할 거야.
일단 막내의 요청대로 십이사의 활동내역과 현재의 위치에 대해 알려주도록 하고
덧붙여서 무림맹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주자.
무림맹에 대한 정보도 막내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하자. 참~ 다독마의가 만들어준다는 약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막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걸리진 않아.
아마 이삼일이면 이곳에 도착할거야.”
“그럼 조금 기다렸다가 약하고 함께 보내주자.
그리고 우리도 죽(竹)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봐야지.
일단은 다독마의의 약을 전해주고 만년삼황이나 공청석유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
설화련을 구하면 더 좋겠지.”
다정화와 해어화는 그동안 십이사의 활동내역과 현재의 위치, 최근 무림맹의 동향,
그리고 다독마의가 제조한 약을 궁아라에게 전해 주기로 했다.
또한 그녀들은 천상루의 정보망을 이용해 만년삼황과 공청석유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북해빙궁에서 동문수학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해어화와 다정화가
사군자(四君子)중 막내인 궁아라를 적극적으로 돕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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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중원 무림 전역으로 펴져나갔다.
소문의 진원지는 최근 들어 40년 동안의 은거를 깨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 사사천교로부터 시작되었고,
두 번째 진원지는 사사천교와 마찬가지로 오랜 잠에 빠져있던 배교의 일부 교도들이
무림에 모습을 드려내면서 시작되었다.
흑백대전 이후 40년 동안 숨죽이고 있던 흑도가 다시 일어났다는 소문은
중원 무림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흑백대전에 패배한 후 세상을 등지고 지하로 숨어들었던 수많은 흑도 고수들은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흑도가 다시 일어났다는 소문만으로도 흥분하기 시작했고,
무림이 이상한 소문에 술렁이기 시작하자 백도문파들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소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찻잔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흑도의 태산북두라 할 수 있는 천마마련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천마마련이야말로 흑도를 대표하는 절대강자이며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은 이상 40년 전의 흑백대전 같은 거대한 싸움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림맹에 있는 군사의 집무실에
혁린영과 무림맹 군사인 마양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충 소문은 펴졌어. 이제 기다리면 되는 건가?”
“이정도 소문으로는 부족합니다.”
“무림이 술렁거리고 있어.
사사천교의 십대사황 중 5명과 사사천교가 자랑하는 사사철기군이 무림에 모습을 드려냈어.
거기에 배교의 호법 중에 일부도 배교를 떠나 무림에 출두할 걸 확인했어.
이정도면 구파일방이나 칠대세가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모든 열쇠는 천마마련이 쥐고 있습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40년 전 같은 흑백대전은 일어나진 않을 겁니다.”
“하긴~천마마련이야말로 중원 흑도의 태산북두 같은 존재지.
쩝~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정도로 무림이 술렁거리면 천마마련에서도 어떤 반응을 보여야 정상 아닌가?
그놈들은 스스로 흑도 무림의 영주를 자처하는 놈들 아니야.”
“그래서 더 자중하고 있을 지도 모르죠.
자신들까지 나서게 되면 정말로 무림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단지 그 이유뿐일까? 다른 이유는 없을까?”
“4가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방금 말했던 이유입니다.
다시는 흑백대전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아직 자신이 없는 거죠.
그들도 40년 전의 원한을 잊지 않고 우리 배화교처럼
복수의 날을 위해 몸을 웅크리고 힘을 키우고 있었겠죠
. 하지만 아직 백도를 상대로 승리할 자신이 없을 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경우는 모든 준비는 끝났지만 구실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백도가 직접적으로 천마마련을 건드릴 적은 없지 않습니까?
싸움을 벌이려 해도 백도를 공격할 대의명분이 없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희박한 경우지만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체고 몸을 사리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경우는 말도 안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조심했는데 그들이 눈치를 체.
나머지 경우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군. 그들을 움직이게 할 좋은 방법이 없겠어.”
“간단한 방법으로 무림맹의 힘으로 천마마련을 공격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겠죠. 무림맹이 무슨 힘이 있다고 천마마련을 공격합니까?”
“현재 무림맹에는 본교의 흑풍대와 혈영대가 들어와 있어.
그들의 힘이라면 천마마련을 공격하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그건 저희들만 아는 비밀입니다
. 지금까지 무림맹은 각대문파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원도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혈영대 같은 부대가 어디서 생긴 거죠.
당장 구대문파가 우릴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겁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거야. 자네가 하는 일이 뭐야. 자네가 군사 아닌가?”
“하하하~ 방법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방법을 실행 하려면 약간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어쩌면 약간의 손해도 감수해야겠죠.”
“말해봐~ 위험한 장사가 남는 법이야.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모험은 필요하겠지.”
“먼저 십이사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놈들이 누구죠.
그놈들에게 이번에 제가 생각한 임무를 맡기도록 하죠.”
“십이사를 이용하는 거야?...쩝~ 십이사 중에서 가장 말썽을 부리는 놈들이야.
십사 악무룡하고, 오사 도치라는 놈이지.
한 놈은 시체를 폭약으로 날려버려서 말썽이고, 한 놈은 하도 난도질을 해서 말썽이지.
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놈은 일사인 아군이란 놈이야.
일사라는 놈이 동해어부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실수를 해. 그놈 때문에 천상루에까지 손을 벌렸어.
하지만 천상루의 도움을 받고서도 끝내 동해어부는 찾지 못하고 있어.”
“그럼 이번 일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일사에게 맡기도록 하죠.
계획은 간단합니다.
일사로 하여금 천마마련에 침투해서 천마마련의 장로 한명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세요.
그리고 우리는 뒤에서 정보를 흘리는 거죠.”
“말도 안돼는 소리야. 일사가 아무리 극마관을 출관한 놈이라고 해도
천마마련이 어떤 곳인데 그곳에 들어가서 장로를 죽여..거기에 뒤에서 정보를 흘려.
무슨 정보를 흘린다는 거야?”
“천마마련과 가장 원한이 깊은 문파가 개방이죠.
정사대전 당시 천마마련을 무찌르는데 가장 선두에 섰던 방파가 개방 있었으니 말이죠..
당시 전투에서 쌍방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일사가 성공하던 못하던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일사에게 지정해준 날이 지나자마자
개방에서 천마마련의 장로를 죽이기 위해 살수를 파견했다는 정보를 흘리는 겁니다
. 그리고 그 정보가 천마마련의 귀에 들어가게 만들면 됩니다.
.물론 일사가 성공하면 완벽한 계획이 되겠죠...
하지만 실패해도 우리게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어차피 십이사는 강시로 제련될 놈들 입니다.
그들이 죽으면 시체나 거두면 그만입니다..
또 혼천지계은 십이사가 아닌 육사로 맞추어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잠마동에서 여섯 명 정도나 출관할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일사와 칠사가 죽는다고 해도 혼천지계을 실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겁니다.”
“좀 아깝지만 그들이 실패해서 죽는 거야 상관없는데..
.만일 그들이 천마마련에 붙들려 우리 정체를 실토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십이사는 모두 마령단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마령단을 먹지 못하면 삼일을 버티지 못하고 죽습니다.
우린 마령단의 양을 조절하여 일사와 칠사가 천마마련에 도착해서 장로 한명을 죽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만 주는 겁니다..
그들이 운 좋게 살아 돌아오면 그때 마령단을 전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설사 그들이 천마마련에 붙들린다 해도 하루 아니면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령단의 독에 의해 미쳐버릴 겁니다..
.십이사는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잠마동주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동생인 마수조차도 우리 정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미친놈들이 지껄이는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거기다 삼일만 지나면 녀석들은 죽습니다. 증거가 없어지는 없죠.
그들이 죽고 나서 나중에 그들의 시신만 찾아오면 손해가 없는 장사죠.”
“계획은 알겠어. 그런데 그런 작은 사건으로 천마마련이 움직일까?”
“큰 방죽이 무너질 때도 사소한 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천마마련도 무조건 사건을 덮어버리진 않을 겁니다.
최소한 조사는 하겠죠. 그 다음부터는 쉽습니다.
다음에는 개방 지부장 하나쯤 죽어버리는 겁니다
. 개방의 정보력은 시안이나 천상루를 능가합니다.
개방은 우리가 알려주지 않아도 천마마련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게 될 겁니다..
천마마련이 자신들을 의심한다..
.지부장 하나가 피살되었다..뭐~ 대충 이정도만 진행되면 우리가 손쓰지 않아도
천마마련과 개방은 무림의 전면에 나서게 될 겁니다.”
“음~ 한번쯤 시도할 만한 방법이군. 좋아..일사에게 명령을 내리지.”
혁린영과 마량은 그들 나름대로 천마마련을 움직이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아군은 마령단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것과 아군과 궁아라가 자신들의 정체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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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과 궁아라에게 작은 상자가 배달되었다. 역시나 잠마동주가 보내온 것이다.
상자에는 2개의 마령단과 두루마리 하나가 들어있었다.
아군이 두루마리를 펼쳐보니 두루마리에는 ‘무정혈검 독고월’ 죽이라는 내용과
무정혈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무정혈검 독고월이라면 천마마련의 7대 호법 중 한명이야.
사사천교, 배교에 이어 이젠 천마마련까지 건드릴 모양이네.”
“두루마리의 내용을 보면 장소가 장사에 있는 천마마련의 총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잖아요. 총단까지 들어가서 죽이라니...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더구나 무정혈검이라면 무림 백대고수 중 한명이야.
지금까지 상대했던 인물들하고는 질적으로 틀린 절정고수지. 거기에 천마마련의 총단이라니...
천마마련이 개나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 알아. 천마마련은 한마디로 용혈호담이야.
거기에 들어가서 무정혈검 같은 고수를 죽이라니..이건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어.”
“잠마동주가 왜 이런 무리한 명령을 내린 거죠. 이곳 항주에서 장사라면 거리도 만만치 않아요.
그런데 마령단은 딸랑 하나에요. 그 짧은 시간에 어쩌라는 거죠.”
“내 생각으로는 최근에 들리는 소문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아군도 사사천교와 배교가 은거를 깨고 무림활동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지.
잠마동주는 무림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하는 거야..
40년 전처럼 흑백양도가 사활을 걸고 피터지게 싸워준다면 배화교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릴 수 있겠지.
그런데 흑도를 대표하며 가장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천마마련이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어.
잠마동주는 천마마련을 자극하고 싶은 거야.
그들이 움직여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니 말이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천마마련이 그렇게 대단한 세력인가요?”
“천마마련은 일종의 연합체야.
그들의 구성을 보면 북명마련과 남명마련이 있어.
그리고 마도를 대표하는 사대세가가 있어.
마도 오대세가는 백도의 칠대세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이렇게 마도 사대세가와 남명마련, 북명마련이 합쳐진 거대한 세력이 천마마련이야.
한마디로 말하면 천마마련은 중원 마도의 총 연합체라고 할 수 있지.”
“그럼 사사천교나 배교는 뭐죠.”
“흑도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냐. 흑도를 나누어보면 크게
마도(魔道), 사도(邪道), 녹림(綠林)로 나누어지고 마도의 연합체가 천마마련,
사도의 연합체가 사사천교, 녹림도의 연합체는 장강수로십팔체라고 할 수 있겠지.
배교는 근본을 따지고 보면 배화교에 가까우니까 마교라고 볼 수 있겠네.”
“그럼 배교는 배화교와 한패라는 말인가요.”
“아니야. 사상적으로 배화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거지 배화교와는 틀리지.
배교의 교도들은 모두 중원 사람들이야.
50년 전 은하대전 당시 배교가 중원에 편에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들이 배화교와 한패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지”
“복잡하네요...하여튼 잠마동주의 속셈은 흑백양도가 싸우도록 만들려는 거잖아요.”
“우리 십이사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누님...어떻게 하죠. 잠마동주의 음모까지 밝혀진 마당에 계속 그의 말에 따라야하는 건가요.
우리 그냥 도망치면 안 될까요?
아니면 중원 무림에 배화교의 음모를 밝히면 되잖아요. 그럼 우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지 않을 까요.”
“누가 우리말을 믿어줄 것 같아. 아마 우리보고 미쳤다고 할 거야.
도망치고 싶다고..휴~아군!..나도 나만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도망치고 싶어.
아군만 옆에 있다면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하지만 아군은 아니잖아.
아군은 수혜를 찾아야 하잖아. 아군은 그녀를 잊을 수 있어.”
“그...그건...아가씨에게만 연락하면 안돼요
. 아가씨를 찾아 세 명이서 잠마동주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면 되지 않나요.”
“바보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하후소하는 어떻게 할 거야
. 그녀도 아군의 여인이야. 아군 입으로 책임진다고 했잖아..또 있어..
.수혜를 찾으면 어떻게 할 건데. 숨어.그래 운이 좋아 숨었다고 해.
아군도 알지. 다독마의가 지어주겠다는 약은 해독제가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지만 수혜도 평생 동안 마령단의 저주에 시달려야 해.
그리고 ..잠마동주가 우릴 쉽게 놓아주지도 않아. 그러니까...도망치겠다는 생각은 버려..부딫 쳐야지.
날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소하를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아군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 아니잖아. 피하려고만 하지 말란 말이야.”
아군은 할말이 없었다.
궁아라의 말에 백번 지당했기 때문이다. 아군은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
자신보고 어쩌란 말인가?
다독마의의 말대로 극마지경에 들거나 우화등선이라도 하란 말인가?
다독마의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도 했다.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천강성의 기운을 타고난 신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군은 단 한번도 자신을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신처럼 멍청한 놈이 무슨 천강성의 기운을 받은 놈이란 말인가?
피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자신이 한말이 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뒤죽박죽 엉켜버리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래 생각해도 모르겠다.
“누님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전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피하려 하지 마. 현실을 도피하려 하지 마. 잠마동주와 부디 쳐보는 거야.
나는 아군을 믿어. 아군이라면 해낼 수 있어.”
“자세히 알려주세요. 잠마동주를 잡으면 되는 건가요?
잠마동주를 잡아서 해약을 얻어내면 되는 건가요?
다독마의는 잠마동주에게도 해독제가 없다고 했잖아요.”
“물론 먼저 잠마동주를 잡아야지. 하지만 잠마동주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우리 둘만의 힘으로는 그를 상대하기 힘들어. 그렇다고 빙궁이 우릴 도와주진 않을 거야.
표면적으로 배화교와 빙궁이 손을 잡고 있으니 빙궁이 전면에 나설 수는 없어.
그럼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같은 처지에 있는 십이사의 힘을 한곳에 모아야해.
십이사가 뭉친다면 잠마동주을 상대할 수 있을 거야. 현재로써는 그 방법이 최선이야.
그리고 마령단 해약의 열쇠는 아군이 쥐고 있잖아.”
역시 결론은 하나다.
십이사가 힘을 합쳐 잠마동주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다독마의가 말한 영약들을 찾아내던가
아니면 자신이 어서 빨리 수라기를 극성으로 익혀 극마지경에 들어야 한다.
아군은 얼마 전 이막수와의 만남을 생각났다.
그때 이막수와 삼 개월 후 개봉에서 만나기로 했다.
개봉에 십이사 모두를 모를 수 있다면 잠마동주의 처리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저번에 이막수와 약속했잖아요. 삼 개월 후에 개봉에서 만나기로..
그때 모든 십이사가 모이면 잠마동주를 상대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 까요.”
“그 생각도 안 해 본건 아니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 마령단의 독은 지금도 우리 몸에 축적되고 있어.
아군은 모르겠지만...마령단을 먹어야 하는 시기가 오일정도 앞당겨졌어.
처음에는 한달가격으로 마령단을 먹으면 됐지만 지금은 이십오일가격으로 마령단을 먹어야 해.
앞으로 이 가격은 더욱 짧아 질 거야.”
“그..그래요...그럼 어떻게 하죠. 십이사에게 따로 연락할 방법이라도 있어요?”
“천상루의 힘을 빌려야지.
다독마의의 약이 도착하는 즉시 천상루의 정보망을 이용해서 십이사에게 연락할거야.
최대한 빨리 십이사를 만나야겠지.
그전에 이건 우리들만 아는 비밀로 해야 해. 잠마동주가 눈치 체는 날에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돼.”
“누님 말은 잠마동주가 의심하지 않도록 지금은 잠마동주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거군요.”
“천마마련이 지옥이라고 해도 지금은 갈 수밖에 없어.
잠마동에서도 살아남은 우리야. 아무리 천마마련이 용혈호담이라도 우리는 무사히 돌아올수 있을 거야.”
“알았어요. 누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궁아라와 아군은 그길로 다시 여장을 챙겨 천마마련이 있는 장사로 출발했다.
아군과 궁아라가 장사로 출발한 오후에 그들이 머물던 객잔에 천상루의 인물이 찾아왔다.
해어화의 서찰과 다독마의가 제조한 약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군과 궁아라는 이미 장사로 떠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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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과 궁아라는 작은 객점에 들어왔다.
그들은 창가에 앉아 간단한 소채와 만두를 주문했다.
항주에서 장사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잠마동주가 지정한 날에 무정혈검을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항주에서 출발하고부터는 밥 먹은 시간도 아끼며 장사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군과 궁아라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 탁자에 검을 찬 몇 명의 무사들이 자신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아군이 시끄러운 소리에 그들을 바라보니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내들이며
복장으로 봐서 표국의 표사들 같아 보였다.
“자네 말이야.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말하는 거야. 흑도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는 소문 말이야.
그런 소문이야 어디 믿을 수가 있어. 40년 동안 잠잠하던 무림에 무슨 일이 있으려고.”
“그 소문 말고..우리 같은 놈들이야. 흑도가 깨어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저기 말이야. 무림사미(武林四美)라고 들어봤어.”
“무림사미?..황보세가의 황보혜경, 남궁세가의 남궁자영, 벽력세가의 악소소,
사천당가의 당령을 말하는 거잖아.
집안 좋고 미모 받쳐주고 정말 남자라면 한번쯤 욕심낼만한 여인들이라는 소문은 들었지.”
“이 친구 소식이 깜깜하군. 얼마 전까지는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아냐.
무림사미 중에서 사천당가의 당령이 빠지고 천마마련의 초벽하가 들어갔어.”
“초벽하?...무림에 그런 여인도 있었나?”
“천마마련주의 손녀라는 소문이 있어..
그녀가 한번도 무림에 모습을 드려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녀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지.
그런데 얼마 전에 그녀가 천마마련 밖으로 외출한 적이 있었고,
일단의 사내들의 그녀를 보았다고 하네
. 그 후로 무림사미가 오미가 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당령을 빼고
그녀를 대신 무림사미에 포함시켰다는 소문이 있어.”
“웃기는 이야기네...단지 몇 명이 보고 어떻게 그녀가 당령보다 예쁘다고 하는 거야
. 미(美)란 보는 사람의 따라서 제각각인데 말이야.”
“하하하~ 자네 말도 맞아. 하지만 말이야.
초벽하라는 여인을 본 사내들이 그날로 모두 상사병에 걸렸다고 하네.
그중에서 한 놈은 상사병이 심해져 결국 죽었다는 소문이야.
얼마나 예쁘면 그녀를 보았던 모든 남자들이 상사병에 걸렸겠어.”
“헛소문 아니야. 무림사미중에서 당령이 여자답지 않게 괄괄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그녀를 모함하기 위해 만들어낸 헛소문 말이야.”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확실한건 모르겠어.저런 소문도 있네.
무림사미가 모두 백도 여인들뿐이잖아.
그래서 흑도 사람들은 무림사미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무림사봉(武林四鳳)을 따로 정했다는 소문도 있어.”
“무림사봉?...하하하~ 이젠 별짓을 다하는 군. 그래 누구누구라고 하던가?”
“천마마련의 초벽하, 사사천교의 하후소하, 장강수로십팔체의 조옥선 그리고 또 누구라고 그러던데.
.하여튼 한명이 더 있어. 그 네 명을 무림사봉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쩝~ 아니 그럼 해어화나, 다정화, 월화 등은 어떻게 된 거야.
그녀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상루의 최고미녀들 아닌가?”
“하하하~ 모두 듣기 좋으라고 만들어낸 소문이겠지. 자자~ 술이나 한잔 하세.”
아군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방금 무사들이 떠들던 여인들 대부분을 아군이 보았기 때문이다.
무림사미는 모용세가에서 모두 보았던 여인들이고,
하후소하는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의 여인이 된 여인이다.
“소하이름도 나오네...아군이 보기에는 누가 제일 미인 같아.”
“하하하~ 글쎄요. 다들 각자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거죠. 보는 사람에 눈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고.
.제 눈에는 누님이 제일 아름답게 보여요.”
“호호호~ 아군도 그런 말 할줄 알아. 거짓말이라도 기분 좋은데..”
“진심이에요. 아가씨도 예쁘지만 누님도 정말 아름다우세요.”
“그럼 하후소하는 어때.”
“물론 소하도 아름답죠.”
“호호호~ 다 예쁘다는 거야. 나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잖아...
하여튼 고마워~ 음식 나왔다. 빨리 먹고 출발하자.”
아군과 궁아라는 소면과 만두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천마마련을 향해 달려갔다.
호남성에 위치한 장사는 상강(湘江) 하류에 발달한 호남성의 성도로서
중원의 주요 곡창 지대 가운데 하나이다.
기원전 221년, 진(秦)의 시황제가 여기에 장사군을 설치하고
1664년에 호남성이 설치되고 나서 성도가 될 만큼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발달한 곳이다.
아군과 궁아라가 장사에 도착해보니 잠마동주가 지시한 날이 삼일정도 남은 상태였다.
아군과 궁아라는 항주에서 장사까지 쉬지도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장사에 도착한 첫날은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객점에 여장을 풀었다.
그들은 점소이에게 부탁해서 목욕물을 준비해 달라고 해서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들은 객점에서 간다하게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일단 장사일대를 살펴보고 천마마련의 위치도 알아보기 위해서다.
길을 나선 아군과 궁아라는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보였다.
궁아라도 오랜만에 파란색 궁장으로 아름답게 치장을 했고,
아군도 깔끔한 회색 무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다만 궁아라는 남의 이목을 끌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는 반면
아군은 역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못생기고 멍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어
길가는 남자들은 아군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못생긴 놈이 미인과 함께 있는 것이 배가 아픈 모양이다
. 그러나 아군과 궁아라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장사일대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장사라는 도시가 단시간에 돌아볼 정도로 작은 도시가 아니다.
“누님 이렇게 돌아보다가는 밤 세도록 돌아봐도 다 못 보겠어요.”
“넓긴 넓다. 다리도 아프고, 우리 잠깐 쉬었다가 천마마련으로 가자.
천마마련 일대만이라도 미리 숙지해 두어야지.”
“그건 내일하면 안될까요? 장사까지 왔는데 술이라도 한잔 해야죠.”
“술?..아군이 술을 마시겠다는 거야.”
“저번에 한번 마셔보니 괜찮더군요
.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으니 오늘만이라도 모든 고민을 털어버리고 즐겁게 놀아봅시다.”
“호호호~ 좋아. 우리도 한번 즐겨보자. 저기~ 객점이 좋겠다. 한번 가볼까?”
“누님이 사시는 거죠. 전 돈 없어요.”
“걱정하지 마. 돈은 충분히 가지고 있어. 출발하기 전에 좀 챙겨왔거든.”
아군과 궁아라는 거대한 3층 건물로 들어갔다.
장사일대에서 가장 큰 객점인 모양이다. 그들이 객점으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달려온다
. 궁아라는 점소이에게 3층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1층과 2층은 사람들이 많아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궁아라는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곳에서 아군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3층에 올라가자 1, 2층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들은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밖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창가에 위치한 탁자에 자리 잡았다.
궁아라는 점소이에게 서봉주(西鳳酒)와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서봉주라는 술인데~ 섬서지방의 유명한 술이야. 중원 10대 명주에 꼽히는 술이지.”
“10대 명주라...비싸지 않아요.”
“오늘은 즐기자고 했잖아. 우리 한번 취해 보자.”
잠시 후 궁아라가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왔다.
궁아라는 아군에게 술을 따라주었고, 아군도 궁아라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두 사람은 장사의 경치를 구경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궁아라와 아군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해 반쯤은 풀린 눈동자로 아군을 쳐다보던 사내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아군이 앉아 있는 탁자로 왔다.
“이봐~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봐~”
아군이 고개를 돌려보니 20대 초반의 사내가 약간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그런데 옷차림은 분명 사내인데 눈썹은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고,
눈동자는 술에 취해 약간 풀려 있지만 밤하늘의 벌처럼 영롱하게 반짝거리며,
콧날은 오뚝하고, 약간 붉은 색을 띄는 입술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거기에 얼굴이 작고 피부가 촉촉하게 젖어있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
사내라고 하기보다는 마치 아름다운 미녀를 보는 것 같았다.
사내는 아군이 바라보자 피식 웃더니 아군의 옆자리에 주저 않았다.
“나도 미인이 따라주는 술 좀 마셔보자.”
사내는 아군이 마시던 술잔을 빼앗아 궁아라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궁아라의 눈썹이 올라간다.
오랜만에 아군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뜻밖의 방해자가 나타나 분위기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방해하지 말고 비키세요.”
“앙칼진데..그러지 말고 한잔 따라봐~”
사내는 궁아라의 손을 잡으려 했다.
궁아라는 생각 같아서는 사내의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지만
자신이 성질을 부리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사내의 손을 피하며 아군에게 눈짓을 했다.
아군보고 처리하라는 표정이다. 그런데 아군의 표정이 이상하다.
그는 자신의 옆에 앉은 사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몸에서는 달콤한 사향(麝香)이 풍기고 있었다.
술 취한 사내에게 술 냄새가 나야 정상인데 술 냄새가 아니고 사향이 풍기는 것이다
. 더욱이 사내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본래의 목소리가 아닌 가성 같다는 느낌이다.
또 사내의 손은 어떤가? 사내의 손이라라고 하기에는 너무 예쁜 손이 아닌가?
그의 손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고 손톱까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군은 사내의 눈동자를 유심히 바라본다.
반쯤 풀린 눈꺼풀. 반짝이는 눈동자. 하지만 눈빛이 무척이나 슬퍼 보인다.
아군은 자신이 술병을 들었다.
“내가 한잔 따라 드리죠. 한잔 드시고 일이 나세요.”
“자네는 빠져. 내가 자네보고 따라달라고 했어.”
사내는 아군의 팔을 쳐내려 했다. 기분 나쁜 모양이다. 아군이 사내를 손을 잡았다.
차갑다. 하지만 무척 부드럽다.
사내는 약간 당황하는 빛이 역역하더니 살며시 아군에게 잡힌 손을 빼낸다.
“뭐야~ 못생긴 자식이 누구 손을 잡는 거야”
아군은 피식 웃으며 궁아라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제가 따라주는 것보다 누님이 따라주는 것이 좋겠네요. 누님이 한잔 따라주세요.”
“뭐~정말 나보고 따라주란 말이야.”
아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 궁아라는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아군과 사내를 번갈아 보더니 입술을 깨물고
아군의 손에서 술병을 낙아 체서 사내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마시고 꺼져.”
“미인이 따라주는 술이라 맛이 각별하겠군. 거기에 서봉주란 말이지.”
사내는 술을 한입에 떨어 넣고 술잔을 궁아라에게 내밀었다.
궁아라는 부르르 떨더니 사내가 내미는 술잔과 아군 번갈아 쳐다본다.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물어보는 눈치다. 아군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궁아라는 숨을 들이마시고 술잔을 받았다.
터지려는 화를 아군 때문에 억지로 참는 모양이다.
사내는 궁아라에게 술을 따라주고 궁아라를 뚫어지라 쳐다본다.
궁아라는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술을 한입에 떨어 넣었다.
이상해. 당신 같은 미인이 왜 이런 못생긴 사내와 어울리는 거지.
이 친구 돈이 많은가? 가문이 좋아? 그것도 아니면 정력이 좋은가?”
“당신...죽고 싶어. 군랑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는데...참는 것도 한도가 있는 거야.
그리고 말이야. 내 눈에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당신보다 군랑이 백배는 더 멋있어.
그러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호~ 이 못생긴 친구가 나보다 백배는 더 멋있다? 눈이 어떻게 됐군.
그리고 군랑이라고 그런 호칭을 쓰는 것을 보니..둘이 보통사이가 아닌 모양이네.
설마 이런 못생긴 사내와 혼인한건 아니겠지.”
궁아라의 눈에 불똥이 튄다. 곧이라도 폭발할 것 같다.
아군은 궁아라의 손을 잡아주며 고개를 흔들더니 잔에 술을 따라서 한번에 마셔버리고
사내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래 자내 말대로 우린 혼인한 사이야. 그런데 자네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군.
사람을 외모만으로 평가하면 안 되는 거야. 사람의 외모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중요한 건 마음이야. 마음이 아름다워야 진정 아름다운 거야.
난 말이야. 누님의 외모를 보고 사랑하는 게 아니야. 누님의 마음을 보고 사랑하는 거지.
마찬가지로 누님도 나의 외모를 보고 사랑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해.”
“하하하~ 자네는 화를 내지 않는군. 왜~! 참고 있는 거지.
이정도 모욕을 당했으면 당연히 화를 내야 정상 아닌가?”
“물론 화를 내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왠지 자네가 밉게 보이지 않는군. 이름이 뭐야.”
“이름?..하벽. 자내 이름은 뭐지.”
“하벽이라..난 아군이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네.”
아군은 사내의 어깨에 손을 얻었다.
사내는 움찔하며 아군의 손을 피하려 했지만
아군은 팔로 사내의 목을 감아 자신에게 끌어당기니 사향 냄새가 더욱 진해진다.
“뭐~ 뭐하는 거야. 이거 놓지 못해.”
하벽은 아군의 팔을 떨치려 했다.
하지만 아군은 하벽의 목을 잡고 있던 팔을 풀러 이번에는 하벽의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에게 끌어당기니
하벽과 아군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었다.
궁아라는 아군을 보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군...뭐하는 거야.”
아군은 궁아라를 보며 눈을 찡긋하고는 하벽의 허리에 두른 손으로 움직여 하벽을 쓰다듬는다.
갑자기 싸늘한 살기가 느껴진다. 하벽에게 싸늘한 살기가 일어난 것이다.
“변태 같은 자식”
“펑~”
“악~”
하벽의 장(掌)이 아군의 가슴을 쳤다.
아군은 하벽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고
아군을 공격한 하벽은 자신의 팔목을 잡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무슨 사람 몸이 돌덩어리 같아. 당시 사람 맞아.”
“당신에게서 사향 냄새가 나.”
아군의 동문서답에 하벽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군의 말에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는 아군과 조금 떨어지며 아군에서 술잔을 내밀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셔.”
아군은 하벽의 술잔을 받아 단숨에 마셔버리더니 앞에 있던 궁아라의 잔을 빼앗아 아군에게 내밀었다.
아군은 하벽의 잔에 술 따라주었다.
하벽도 단숨에 술을 마셔버린다.
궁아라는 기가 막혔다.
아군이 무슨 생각으로 하벽이란 친구와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다.
“아군~ 그만 일어나자.”
“잠깐 앉아있어요. 점소이..점소이.”
아군은 점소이를 불려 술과 잔을 달라고 해서 새로운 잔에 술을 채워 궁아라에게 내밀었다.
궁아라는 복잡한 시선으로 아군을 바라보더니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받아 술을 마신다.
아군은 하벽이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싶은 모양이다.
궁아라는 아군을 위해 조금더 참아보기로 했다.
“혼인했다고 했나...하~ 정말 이해가 안돼.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정말 너무 안 어울린다.
당신 말이야. 혹시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이런 멍청하게 생긴 사내와 혼인을 하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군.”
“자네는 그 문제를 가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군. 좋아. 내가 이런 모습이라면 어때.”
아군은 잠깐 고개를 숙이더니 천면역용술을 풀어버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벽은 아군의 변한 얼굴을 보고 입이 떡 벌어진다.
아군이 한순간에 절대미남자가 되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이..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자네 지금까지 역용을 하고 있었던 건가?”
“사정이 있어 역용을 하고 다녀. 어떤 이 얼굴은 볼만 한가?”
“멋있어....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그래서 저런 미인을 얻었군.”
“조금 전에도 말했지. 누님은 내 외모를 보고 사랑하는 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아군은 다시 고개를 숙여 역용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참~ 요상한 재주를 가지고 익히고 있군.
그런데 왜 다시 역용을 하지. 보기 좋은데 그냥 그대로 있어.”
“사정이 있다고 했잖아. 술이나 마시게.”
아군과 하벽라는 다시 술을 마신다. 탁자에 술병이 쌓인다.
벌써 10병의 서봉주가 바닥이 났다.
처음부터 약간 취해있던 하벽는 이제 완전히 취하 모양인지 허가 반쯤은 꼬였다
. 아군도 취한 모양이다. 궁아라는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군 취했어. 그만 일어나자.”
“어~ 벌써 가려는 거야. 딱 한잔만 더하고 가자.”
“좋지. 점소이 여기 술 좀 가져와”
하벽의 말에 아군이 술을 더 주문하니 궁아라는 한숨을 쉬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좋아. 한 병만 더 마셔.”
점소이가 술을 내오자 아군과 하벽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시니 다시 한 병을 바닥낸다.
궁아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일어나.”
“음~ 그만 가봐야겠군.”
“갈 거야.”
“누님이 진짜 화내기 전에 일어나야지.”
“그럼 나도 그만 일어나야겠군.”
하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아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벽을 부축했다.
“놔~ 혼자 갈수 있어.”
하벽는 아군의 팔을 뿌리치고 혼자서 몇 걸음 걸어가더니 몸이 앞으로 넘어간다.
아군은 하벽을 잡아주려 했다.
그런데 아군보다 빨리 하벽을 부축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벽하를 품에 안았다.
“누구야...어~ 거패(巨覇)로 구나....쩝~ 잘가. 다음에 또 보자”
하벽은 아군에게 중얼거리고 눈을 감아버린다.
거패라는 사내는 아군에게 인사를 하더니 하벽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덩치하나 정말 크다. 아군과 함께 있으니 아군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하하하~. 우리도 그만 가죠.”
“아군은 왜 그 이상한 사내와 술을 마신거지.”
“여자에요. 남장한 여인이었죠.”
“뭐야. 여자라고..정말이야. 하긴 남자치고는 너무 예쁘장하게 생겼더라.
그런데 아군은 그걸 알고도 그녀와 술을 마셨단 말이야.”
“여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불쌍해 보여서 같이 마셔준 겁니다.”
“불쌍해?..무슨 소리야.”
“글쎄요. 제 눈에는 그녀가 슬퍼보였어요. 특히 눈빛이 그랬죠.”
“치~ 아무래도 의심이 가는 걸. 혹시 그녀에게 흑심이 있었던 건 아니야.”
“하하하~ 누님을 앞에 두고 감히 한눈을 팔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호호호~ 좋아. 이번에만은 욕서해 주지! 하여튼 한눈만 팔아봐! 그때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자~ 우리도 그만 가죠.”
궁아라가 술값을 계산하려 하니 먼저 간 하벽이란 사내가 계산을 했다고 한다.
계 속
중국의 명주
중국의 이름난 술을 알아 본다.
중국에서 이름난 술을 드는데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변함없이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술을 네가지 꼽는다면
절강 소흥(紹興)의 소흥주(紹興酒), 산서의 분주(汾酒), 섬서의 서봉주(西鳳酒),
사천의 노교주(老 酒)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들은 저 유명한 마오타이주(茅台酒)가 빠져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지만
마오타이는 개발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므로 빠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명주들은 전국평주회의(全國評酒會議)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동 회의에서 1953년에 정한 8대 명주를 소개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중국의 8대 명주(1953년)
백주(白酒) : 55도-65도
분주(汾酒) : 산서(山西)산
서봉주(西鳳酒) : 섬서(陝西)산
마오타이주(茅台酒) : 귀주(貴州)산
노교주(老 酒) : 사천(四川)산
황주(黃酒) : 15-20도
소흥주(紹興酒) : 절강(浙江)산
과실주 : 15도
홍포도주(紅葡萄酒) : 산동(山東)산
브랜디 : 40도
금장백란지(金奬白蘭地) : 산동(山東)산
베르뭇(vermouth) : 17-18 도
미미사(味美思) : 산동(山東)산
위에서 보면 산동에서 나는 술이 여덟개중 세개나 차지한 것이 눈에띈다.
역시 자칭 사나이중의 사나이라고 하는 산동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건국 초기에 여덟개로 지정하였던 국가공인명주는
1979년의 제3회 회의에서는 무려 18개로 늘어 났다.
여기서는 정통 중국술이라 할 수 없는 과실주, 브랜디, 베르뭇을 제외하는 대신
이미 다른나라 사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맥주를 포함하여 소개드린다.
중국의 명주(1979년)
백주(白酒) : 45-65도
분주(汾酒) : 산서(山西)산
마오타이주(茅台酒) : 귀주(貴州)산
오량액(五粮液) : 사천(四川)산
검난춘(劍南春) : 사천(四川)산
고정공주(古井貢酒) : 안휘(安徽)산
동주(董酒) : 귀주(貴州)산
양하대곡주(洋河大曲酒) : 강소(江蘇)산
노교특곡주(老 特曲酒) : 사천(四川)산
죽엽청(竹葉靑) : 산서(山西)산
황주(黃酒) : 15-20도
소흥 가반주(紹興加飯酒) : 절강(浙江)산
심항주( 缸酒) : 복건(福建)산
맥주 : 16도
청도 맥주(靑島 酒) : 산동(山東)산
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과실주중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장성(長城,츠앙츠엉)이라던가
Dynasty 는 빠지고 다른 포도주(煙台와 民權)가 들어있는점과
사천(四川) 지방의 술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 재미있다.
사천 출신의 등소평이 권력을 잡은 것이 1977년이니 의심의 눈을 주자면 그럴싸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이같은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곳곳에 지방마다의
명주를 고이 간직해온 중국인들의 정성에 비추어 보면 돌아가면서 명주로 치켜 세운다해도
그다지 무리는 아니라고 믿는다.
실제로 필자는 중국의 어느 지방에를 가도 그 지방의 명주가 있을 뿐더러
조악한 병에 포장은 보잘 것 없어도 제각기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 것에 매혹되곤 하였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점기간중에
총독부의 정책에따라 곡주의 생산과 가정에서의 양조가 제한 또는 금지되었고
해방후에도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이러한 정책이 계속되면서
각 지방의 특산 명주의제조법마져 끊긴 것이 하나둘이 아닌 점에서 볼때
술을 사랑하는 필자로서는 그들의 지방 명주의 맛이 더욱 별다르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네들의 식량사정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전 보도에 의하면 위와같은 정부의 공인을 받는 명주의 권위에 이변이 생기고 있다 한다.
중국의 국가통계국이 최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중국인이 선호하는 10대 백주에서 1위의 자리는 오량액(五粮液)이었고
오랜동안 수위를 차지하던 마오타이가 2위로 밀려났는가 하면
싫어하는 순위에서는 첫째가 마오타이였다고 한다.
이 조사에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술의 순위는 사천(四川)의 오량액, 귀주(貴州)의 마오타이(茅台),
사천 여주(濾州)의 노교특곡(老 特曲), 강소 양하대곡(江蘇 洋河大曲), 사천의 첨장(尖庄),
섬서의 서봉주(西鳳酒), 산서(山西)의 죽엽청(竹葉靑),
북경의 이과두주(二鍋頭酒), 사천의 검남춘(劍南春)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싫어하는 술의 순위는 마오타이주, 서봉주, 이과두주, --- 등의 순이었는데,
통계국 측은 이러한 뜻밖의 결과에 대해 마오타이의 경우 가짜가 너무 많은 탓을 원인으로 돌렸다고 한다.
사실 가짜냐 진짜냐가 문제 아니라 목숨이 걸린 문제다.
왜냐하면 가끔 적지않은 사람들이 가짜 마오타이를 마시고 저세상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도 마오타이는 고급 호텔에서 마시거나 공항등의 공공시설에서 산 것을 마신다.
- 자료출처 : 인터넷 검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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