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한 허물만 보인다. 후우, 불면 하늘 높이 올라가 산산이 흩어질 것만 같다. 숲을 떠난 장수풍뎅이는 이렇게 몸이 가벼워졌다. 오래된 어느 날, 외진 곳 산비탈에서 만났었다. 그때는 몸집이 크고 자유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유치원에서 손녀, 민서를 데리고 오는 중에 아파트 출입문 앞에서 민서 친구가 매미 허물 같이 생긴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냐고 민서가 물으니, 집에서 키우던 장수풍뎅이가 죽어서 버렸다고 했다. 셋이서 화단 한 귀퉁이에 묻어주었다.
장수풍뎅이는 다리와 몸통이 굵고 힘이 세서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으며, 큰 딱정벌레목 곤충이다. 검은색을 띠고, 머리 앞부분에는 부채 모양이다.
장수풍뎅이 같이 숲을 떠나와 야성을 잃어버린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서울생활에 잘 적응하여 다시 생기를 되찾아야 하는데. 이제 고향으로 돌아 갈수도 없다. 6남매를 낳은 시어머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서만 지냈다. 가장 큰 장수풍뎅이 같이 키가 크고 튼튼한 몸으로 농사도 지으면서 늘 활기찬 모습으로 생활을 하였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시면 뿔 모양의 돌기가 있는 장수풍뎅이 모습이 된다.
장수풍뎅이를 묻어 주고 나니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어 보았다. 이것이 어디서 났냐고, 깊은 산속에서 잡아왔냐고 하니까, 농장에 가서 분양해 왔다고 했다. 내가 산비탈에서 만난 장수풍뎅이가 아닌 것에 이제까지의 불안이 가셔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고 농장의 애벌레를 덜 신경 쓴다는 말은 아니다. 곤충들은 사람들이 만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데 자연속의 장수풍뎅이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잡혀 왔을 때 얼마나 적응하기가 힘들겠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 애는 정말 자식 키우는 엄마같이 열심히 키운 것 같다. 수명이 다해서 죽었다고 투덜거렸다. 너무 짧게 살아서 약간 억울한 듯 말하면서, 자기가 키우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애벌레는 별도의 먹이는 필요 없고, 습도가 알맞은 톱밥 속에서 조용하고 따뜻한 공간이어야 성충으로 잘 자란다. 그렇게 키우면 튼튼하고 큰 장수풍뎅이가 태어난다.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죽고 10마리의 애벌레를 남겨 놓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곤충도 자기들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어미는 죽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구나, 하고 생각하니 집에서 애완으로 키우던 장수풍뎅이의 죽음이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안동에 살 때는 가까운 오지마을로 차를 달려가면 굽이굽이 도는 국도 길은 하루 종일 다녀도 맞은편에서 오는 차나 뒤 따라 오는 차가 하나도 없을 때도 있었다. 산비탈에는 밝은 빛이 도는 장수풍뎅이가 나를 기다리듯 있었다. 까만 드레스를 입은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내 차에 날아 들어온 장수풍뎅이와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 하다가, 산비탈을 돌아설 무렵이면 저 멀리 숲속으로 날려 보내주었다.
나의 신혼 무렵의 기억 속에는, 장수풍뎅이 같이 위풍당당하고 힘세고 아름다움을 간직하신 분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신 시어머니다. 한때는 서로 소중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힘들게도 했다. 그때는 시어머니께서 조금만 힘이 빠졌으면 좋겠다고 못된 마음을 먹은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무엇을 해드려도 기운만 차리시면 다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안동에서 살았으면 더 오래 힘차게 생활 하셨을 텐데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오기 싫어하는 어머니를 많이 설득하여 모셔왔다.
일층 오빠네 장수풍뎅이 같이 왜 힘이 빠지냐고 투덜거리니, 남편은 자연의 이치라고, 내가 시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에 힘들어하니까, 남편은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어떤 사람도 시간을 비켜가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까만 비로드 옷을 입으신 시어머니, 10마리의 애벌레를 낳고 허물만 남은 장수풍뎅이. 여기 오늘 허물만 남은 장수풍뎅이를 땅속에 묻어 주면서 남편의 위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만 같다. 그것을 지켜볼 뿐, 속수무책인 나. 그냥 순리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에 안타까울 뿐이다.
며칠 있으면 손녀의 유치원 방학이 시작된다. 나도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숲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어머니하고 민서를 데리고,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안동 근방의 오지마을의 산비탈에 장수풍뎅이를 만나러 갔다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