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소리들의 북새통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바쁜 혹은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떡볶기를 먹으며 쉴새없이 주절대는 여학생들의 수다가, 리어카에서 울려나오는 유행가 한 자락이, 노전판의 서툰 흥정의 고성이 그곳을 빼곡히 채운다.
의정부시 의정부 1동 ‘제일시장??은 북부도시 의정부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곳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결코 소음이 아니다. 일정한 질서는 없어도 낯익음이 서려있고, 무엇보다 활력이 느껴지는 생활의 소리이다.
제일시장의 주인공들은 대형유통업체의 그늘에 가려진 영세상인들과 일부러 다리품을 팔며 흥정의 재미를 좇는 인근주민들, 그리고 마땅한 놀이문화를 갖지 못해 시장 인근의 그린거리에 몰려드는 청소년들이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이 아직도 시장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제일시장의 북쪽으로는 최근 개발의 열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의정부역에 인근한 까닭에 잠재구매력이 빼어난 탓이겠지만 개발의 방향은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옷가게를 중심으로 여관,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시장의 입구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극단 허리의 ‘허리공간??은 이 일대에서 일종의 문화예술 그린벨트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멀티플렉스 극장의 지하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오늘날 의정부에서의 연극의 자리를 대변해 주는 듯 해 안쓰러운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적어도 무대예술에 관한한 지난 10여 년 넘는 기간동안 허리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지난 90년 창단된 이래 15년째 ‘허리??를 이끌고 있는 유준식(43) 대표는 연극쟁이로서의 핍진한 삶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야위고 피로에 지친 얼굴에 갈피진 주름은 만성화된 재정난에 시달린 소극장운영자로서 가져야만할 숙명처럼 느껴졌다.
공한기(公閑其)인 탓일까, 취재팀이 들어선 허리공간은 다소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주었다.
소극장 허리공간의 연혁을 따져보는 것은 흥미롭다. 극간 허리의 근거지를 옮긴 횟수만해도 이곳까지 합하면 6번째. 한마디로 쫓겨다니듯 의정부 이곳저곳에서 셋방살이를 한 것이다.
허리공간이 존폐에 가장 큰 위협을 받은 것은 지난 2000년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폐쇄를 선언한 직후 “허리를 살리자!??는 한 시민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허리와는 직접적인 관계도 없으며, 더욱이 실업자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재를 털어 종자돈을 마련한 뒤 범시민적인 허리공간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 모금 운동은 의정부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허리가 아직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비록 상업적인 성공은 없었지만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아우르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현실세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지역연극인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허리공간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버팀목은 ‘허리후원회??이다.
후원회의 구성원들은 정치인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혼재해있다. 이들은 적게는 매월 1만원에서 많게는 10만의 후원금을 허리에 희사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중앙부처의 정치인은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 1년치 후원금을 한꺼번에 내기도 해 단원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여기에 허리공간이 들어선 건물의 소유자인 우리나라 영화계의 실력자 이태원 사장의 배려도 한 몫 한다. 그는 적은 임대료(월 70만원)와 영화티켓 등을 통해 지원을 하고 있다.
허리공간은 대략 100평을 헤아린다. 널찍한 교실 하나 정도의 무대는 직사각형에 가깝고 소극장무대의 상징이라할 수 있는 좌석대신 간이 좌석들이 눈에 띈다.
스탠딩 무대를 선호하는 이용객들의 취향에 발맞춰 이동식좌석을 설치하려는 준비기간이라는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지난 한해 이곳을 이용한 단체들의 면모를 보면 이런 설명은 이해가 된다. 마구리밴드, 클랜, 스케치, 글림, 벌거숭이, 풀씨, 천유, 화랑, 미들 등 밴드가 이곳을 이용하는 주객들이다.
연 가동률을 180여일로 할 때 극단 허리의 이용율이 30~40% 가량이며 나머지를 성인, 청소년아마추어 밴드, 댄스그룹 등이 이용하는 셈이다. 수년 전까지만해도 의정부시의 유이한 극단인 무연시가 이곳을 무대로 이용했지만 의정부예술의 전당 개관 이후로는 발길을 끊은 상태이다.
대관료는 5시간 기준으로 1일 15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게다가 악기 등의 대여해 주는 까닭에
아마추어 밴드의 이용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연간 3천여 명의 이용객이 이용하는 이곳의 가동률은 40%. 종합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소극장의 위치를 감안하면 충분치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인 셈이다.
유 대표는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용이한 시장통 속에 위치한 허리공간의 활용도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거리문화축제를 주도해 허리공간이 그 중심에 서게 했으며 상가번영회와 연계해 상인과 손님들을 위한 공연을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소극장 앞 무대를 활용해 매년 여름이면 청소년들을 위한 간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한때는 카페테리아트를 차려 공연과 함께 약간의 주류를 즐길 수 있도록 했으나 ‘이것은 아니다?? 싶어 작파하기도 했단다.
사실 허리극단은 의정부예술의 전당의 건립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다.
유일한 문화공간이었다가 그 자리를 대형 공연장에 빼앗긴 격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대관료 감소와 관객들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재로 유 대표도 관객들의 이탈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허리공간은 새로운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으며 그것은 청소년문화공간으로서의 모색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벌이고 있는 일련의 시설개조의 움직임은 허리후원회를 중심으로 한 법인화 움직임과 더불어 향후 허리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전문가 소고
한중곤 (백제예술대 출강, 前 도립극단 무대감독)
5전6기의 신화, 그 옛날 권투 영웅 홍수환 선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 1동 국도 빌딩 지하 2층에 위치한 극단 허리의 소극장, ‘허리 공간??의 이야기다.
경기 북부지역 아니, 우리나라 최북단에선 유일한 전통 민간 공연장 ‘허리 공간??은 1990년 4월 유준식씨를 대표로 14인의 연극 동호인들이 모여 ??휴전선과 서울 사이??란 의미의 ??휴서사??란 이름으로 극단을 창단했다. ??국물 있사옵니다?? ??회룡가?? 등 5편의 공연을 올린 뒤, 95년 6월 인간의 신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는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인 허리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 여건상 그 허리부분에 위치한 의정부의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극단 ??허리??란 이름으로 개명, 현재에 이르기까지 ??통일로 가는 길?? ??만남?? 등 우리나라의 뼈아픈 현실을 반영한 통일극 공연을 해왔다.
‘통일 솟대놀이?? ??백수 산대놀이?? 등 전통 연희 계발, ??홍도야 우지 마라?? ??은혜 갚은 까치?? 등 소외 계층을 위한 방문 공연, 그리고 미래 문화의 주역이 될 청소년을 위해 ??불타는 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수십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또한 단원들의 교육과 훈련은 물론 창작 활동의 실험적 공간으로서 연극뿐만 아니라 음악 연주, 시낭송, 국악 연주, 노래 공연, 무용 발표 등 모든 공연 예술을 아우르는 문화운동의 장으로서 지난 1991년 4월 ‘휴서사 소극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단 자체의 힘만으로서 감당 하기에는 너무 버거웠기에 14년의 세월 동안 5번의 폐관과 6번째의 재개관을 반복 해온 것이다.
1998년 7월에는 폐관되는 ‘공간 허리??의 안타까운 현실을 본 한 시민의 발의로 ??의정부 시민 모두가 함께 만드는 극장??이란 이름으로 ??허리 살리기 운동??이 전개돼, 시민들 성금과 극단 자체기금을 포함한 1천200만원을 조성, ??공간 허리??가 재개관 되어 전성기때는 삼천명이 넘는 관극 회원들의 사랑속에 1년에 15편의 작품을 공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001년말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개관되면서 극장 운영은 더욱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예술의 전당 탄생은 훌륭한 공연장에서 대형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 제공이라는 점에서 환영 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현대는 물질의 풍요에서 정신의 풍요함으로에 가치관이 변함에 따라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해마다 높아지고, 그 활동도 문화예술의 감상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참여하고 행하는 창조 활동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즉 감상하는데만 중점을 둔 ‘보는 극장??에서 탈피, 작품에 스스로 참여하여 만들어 가는 ??창조하는 극장??을 원한다는 뜻이다.
예술의 전당 대·소공연장에서 해마다 수십편의 공연이 올려지지만 외부 초청 공연이 대부분이고 지역적 특색을 살린 자체 공연이 없다. 더군다나 청소년을 포함한 일반 아마추어들의 문화 사랑방으로서의 역할은 전무하다. 그동안 ‘공간 허리??는 자체 공연장에만 머물지 않고 각종 콘서트, 청소년 밴드 및 연극 동아리 등에게 발표의 공간을 제공했으며 직장인,주부,청소년 극단을 운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의 장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시민 끼 경연대회, 연극 페스티벌 등의 기획 행사를 개최하여 공연문화 대중화에 이바지 했던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예술의 전당과는 다른 ‘허리 공간??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허리 공간??은 최악의 경제난 속에 6번째 폐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상근단원 6명과 명예단원을 포함한 20여명의 단원들과 200여명의 후원인들, 그리고 15인의 운영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전문예술 법인화를 추진해 재원 마련에 전력을 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자체의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개인, 기업, 재단, 정부 등의 공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 외부 지원이 지금처럼 작품이나 극장 경상비에 대한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지원, 소액다건이라는 실적 위주의 지원이 아니라 문화예술진흥원의 공연예술 소극장 임대 지원 사업과 같은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허리 공간??이 6번째 폐관하고 7번째 재기하는 신화를 꿈꿀 것이 아니라 전폭적인 지원하에 계속 존속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역문화는 지역주민이 만든다는 인식을 가지고 예술을 발굴할 것이 아니라 발아시킬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되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