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功過)
(프리드리히 니체의『反시대적 고찰』中 )
1. 망각과 기억
니체는 인간의 삶과 지식의 관계를 망각1)과 기억이라는 인간의 능력으로 설명한다.
망각이란 동물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 동물은 망각을 통해 과거의 무게에서 벗어나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마치 어제 맞은 매질을 기억하지 못한 채 한가로이 행복하게 풀을 뜯는 한 마리 소처럼... 반면에 기억이란 인간의 주요 능력으로 인간에게는 과거의 상처와 무게가 기억을 통해 현재를 끊임없이 짓누르고 있다. 어제 맞은 매질을 기억하고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하는 학생처럼... 니체는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며 동물에게는 망각이라는 비역사적인 태도를 통해 행복이 주어지며, 인간에게는 기억이라는 역사적인 태도를 통해 불행이 주어진다고 본다. 물론 인간도 동물이기에 망각을 통해 행복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을 통해 이러한 행복에서 나와 다시 불행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니체는 이러한 두 가지 삶의 태도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 상반되는 두 가지 삶의 태도가 인간 문화의 조건이라고 본다. 그는 역사적인 태도가 인간을 불행으로 이끌지만 바로 이러한 역사적인 태도를 통해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고 본다. 동물들 중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불쑥 솟아오른 것은 바로 망각의 대지 위에서 기억이 솟아 나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망각과 기억은 대치하고 있지만 기억은 망각에서 생겨난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이 출현한 것처럼. 그리하여 인간의 역사적인 태도는 비역사적인 태도에서 자라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니체는 '망각-비역사적인 태도-행복'이라는 축과 '기억-역사적인 태도-불행'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양자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근대 세계의 지식과 교양에 대한 비판을 전개한다. 이러한 비판은 19세기가 역사(Historia)의 세기였다는 점에 의해 자연스레 역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2. 삶과 역사: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이제 위에서 말한 두 축은 다시 삶과 지식으로 그 단계를 확장한다.
근본적으로 삶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망각이라는 비역사적인 태도는 삶과 관련을 맺고 있다. 반면 기억이라는 역사적인 태도는 과거에 인간이 행하고 이룩한 것들에 대한 지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일관된 확장 속에서 니체는 삶이란 궁극적으로 비역사성을, 반대로 지식은 역사성을 지향하며 양자는 현상적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식이란 본래 삶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식은 또한 삶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삶을 도외시하는 근대의 역사와 지식은 역사를 위한 역사, 지식을 위한 지식으로서 삶을 고갈시키고 파멸시키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역사와 지식이 다시 삶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행복을 위한 불행, 망각을 위한 기억, 삶을 위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2)
2-1. 삶에 봉사하는 역사의 방식
니체는 삶에 봉사하는 역사의 방식, 즉 역사가 삶에 속하는 방식으로 기념비적 방식, 골동품적 방식, 비판적 방식을 제시한다.3) 세 가지 방식 중 기념비적 방식은 활동과 노력의 측면에서, 골동품적 방식은 보존과 존경의 측면에서, 비판적 방식은 고뇌와 해방의 측면에서 삶에 봉사한다.
우선 기념비적 역사는 활동하는 자의 역사로서 삶에 대한 체념에 항거하고 현재의 삶이 지닌 활동적인 모습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역사다. 이는 과거의 위대했던 순간이 현재에 다시 가능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리라는 믿음에 근거하며 역사를 통해 삶의 지침을 마련하고자 한다(Historia est Magistra Vitae). 즉 기념비적 역사는 인간의 삶이 팽창하고 풍부해지는 시대에 삶이 지닌 활동적인 모습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념비적 역사는 역사가 지니는 삶에 대한 대립의 속성에 따라 낭만주의 역사4)가 된다. 낭만주의 역사는 과거의 위대성을 왜곡하거나 신화화하여 삶을 짓누르고 질식시킬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지우고 양자를 동질화하려고 한다.5) 그리하여 역사적 원인causa을 도외시하고 그 결과/효과effectus의 유사점만을 기념비적으로 내세워 역사를 결과들의 집합으로만 구성한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효과의 진정한 역사적 결합connexus이 철저하게 인식된다면 동일한 것은 미래와 우연의 주사위 놀이에서는 결코 다시 출현할 수 없다.'(p.122) 나아가 무력하고 비활동적인 자들의 낭만주의 역사는 과거의 기념비적인 것들을 내세워 현재 삶의 새로운 창조를 억압하며, 이에 따라 과거에 대한 박학다식은 현재의 창조를 거세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골동품적인 역사는 인간이 자라온 터전과 환경들을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존경하여 보존하는 역사를 말한다. 이러한 존경과 보존으로 골동품적 역사는 앞으로 생성할 것들의 터전과 환경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삶에 봉사한다. 인간의 삶의 터전과 환경이 불안정하고 위기에 처해있을 때 이러한 역사는 지나온 삶을 애써 보존함으로써 삶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고향에 대한 역사감각을 가지고 과거를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재발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골동품적 역사는 기념비적 역사가 생성하는 것에 대해 추측하는 본능을 지닌 것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생성하는 것을 도외시하고 보존에만 집착을 한다. 그리하여 골동품적인 역사가 지나치게 되는 경우, 즉 삶을 도외시하고 지식으로서의 골동품적 역사가 되는 경우, 랑케(Ranke)식의 역사주의가 된다.6) 이는 호고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하며, 개별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 고찰하는 대상을 고립화한다. 대상들 상호간의 관계나 가치 차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호고적인 회고 속에서 무조건적인 상대주의적 긍정(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에 빠져버린다. 결국 이러한 역사주의는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과거와 다른 현재의 삶의 창조를 배척한다. 과거의 삶에 대한 봉사와 취향으로 감각이 고착화되어 새로운 삶과 고양된 삶은 파괴되고, 역사적 삶이 현재의 삶을 미이라화 하여 결국에는 과거에 대한 고향의 감각도 미이라화 되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비판적 역사는 하나의 새로운 삶의 욕구를 위하여 과거를 해체하고 심문하고 판정하려는 역사다. 비판적 역사를 가능하게 한 경우는 새로이 팽창하고 자기자신을 욕구하는 힘이 현실과 부딪힐 때, 그 힘이 현재의 조건을 깨닫는 경우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보통의 삶이 망각하고 있는 삶과 부정의 동일성을 잠깐동안 부정하여, 삶이 부정하다는 것을 밝히려한다. 그리하여 과거로부터 정당화되어 온 삶의 형태들을 부정하고 재판하려고 한다. 이러한 부정과 재판이 삶을 저해하는 경우 계몽주의 역사가 등장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재판과 부정은 위험한 태도일 수 있는데, 이는 현재가 늘 과거의 연속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억지로 강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비판을 통해 얻은 현재의 새로운 삶의 태도는 삶에 투영되어 실천되지 못하고 인식으로 그치기 십상인 경우가 많다.
이상의 세 가지 역사 방식은 현재와 미래의 생명력 넘치는 삶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야 한다. 즉 세 종류의 역사는 삶에 봉사한다는 특정한 상황에서만 각각 타당한 것이다. 위대한 것을 창작하려는 삶이 필요로 하는 기념비적 역사가 활동 없는 노력, 즉 실천 없는 지식으로 전락할 경우 현실의 삶을 도외시 한 채 현실의 바램이 투영된 과거만을 추종하는 낭만주의 역사로 된다. 또한 현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과거의 것을 보호하려는 골동품적 역사는 경건 없는 보존, 즉 열정이 없는 단순한 골동품 수집으로 전락할 경우 랑케식의 역사주의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 때문에 현재를 바꾸려는 비판적 역사는 고뇌 없는 해방, 즉 고난이 없는 비판으로 전락할 경우 계몽주의 역사가 되어버린다. 즉 어떠한 역사 방식이든 활동, 경건, 고뇌라는 인간 삶의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2-2. 삶에 해를 끼치는 역사의 과잉
하지만 니체가 보기에 19세기의 역사와 지식은 이러한 삶에 봉사하는 모습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니체에게 이 시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비록 삶은 사멸할지라도 진리는 널리 퍼지게 하라(fiat veritas, pereat vita).'(p.131) 19세기는 실로 역사의 세기이다. 모든 것은 역사와 관련지어서 설명된다. 이러한 역사 지식은 집적된 과잉 지식으로서 근대적 교양의 특징을 이룬다. 근대적 교양의 특징은 무엇인가? 니체는 그리스인의 교양과 근대인의 교양을 비교한다. 그리스인이 내적인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한 지식과 지혜를 삶의 실천 속에서 발산시켜 나갔다면, 근대인은 자신의 삶에서 괴리되어 있는 과도한 외부지식을 내적으로 수용하여 내적인 혼돈을 야기한다. 즉 근대인의 지식은 그리스인의 지식에 비해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피상적인 지식으로 혼잡하게 가득 차 있다. 다량의 외부지식을 내적인 성찰 없이 수용하는 근대적 지식은 약한 인격성을 등장시킨다. 근대인의 역사지식 수용은 먹고 싶은 것만을 먹고, 먹던 것만을 먹으면서도, 자신이 매우 다양하고 훌륭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식생활로 비유될 수 있다. 그리하여 편식이 인간의 몸을 허약하게 하듯이 근대지식의 내용과 수용방식은 근대인의 인격을 허약하게 한다. 다시 허약한 인격은 현실을 생동감 있게 바라보지 못한 채 빈약한 인상만을 포착하고 피상적인 지식만을 만들어내며, 결국 이러한 순환은 삶과 동떨어진 얄팍한 지식, 무엇보다도 인간의 허약한 내면성과 취약한 인격성을 심화시킨다.
이어서 니체는 허약한 인격이 파악하는 역사지식의 가장 큰 특징인 부정적 객관성의 추종을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역사지식의 객관성은 삶의 객관성 즉 삶의 허약함과 일맥상통한다. 19세기 역사지식의 객관성이란 사실 공정한 입장을 취한다는 주장 아래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는 거세된 객관성이다. 근대인의 역사지식, 즉 객관성이라는 공정성을 추구하는 이 지식의 형태는 근본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렇게 판단하려는 욕망은 역사를 자신의 삶으로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한 시대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강한 인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약한 인격성은 한 시대의 삶에서 피상적인 역사지식만을 도출하여 수용한다.7) 그리고 그러한 빈약한 지식을 모든 지식으로 착각한다. 자신의 삶과 괴리된 대상은 자신의 활동과 실천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역사가는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스스로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판단'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멀리 떨어져서 대상을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주관성의 한 측면일 뿐이다. 즉 역사를 서술하는 행위는 법정에서 공과를 저울질하는 진리/정의 충동과는 별개의 행위다. 역사서술은 근본적으로 과거라는 소재를 가지고 창작하는 활동이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의 직업은 극작가의 직업과 동일하다. 즉 역사서술의 충동은 역사가가 과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자기표현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역사파악은 예술충동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8)
3. 새로운 역사
3-1. 정의로서의 역사와 예술로서의 역사
이러한 차원에서 창조적 역사라는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부정적인 객관성이 아닌 주관적이고 긍정적이 객관성을 추구하며, 경험적인 자료 속으로 몰입하여 주어진 유형에 따라 창작을 진전시킨다. 그리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창조적인 관심을 배태한다. 부정적 객관성의 역사란 무미건조하고 생명력을 상실한 역사로서 늘 불편부당한 무관계적 태도를 취하지만 사실 그러한 태도는 역사의 객관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대립은 근본적으로 니체에게 도덕과 예술의 대립이다. 도덕이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약자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에, 도덕과 공모한 정의의 역사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상에만 매달려 역사적 태도만을 고집한다. 정의와 심판의 역사는 보편성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삶의 미숙을 조장하고 훈련시킨다. 이러한 과정사성을 수용한 비역사성이다. 초역사적 태도는 역사의 '과정 속에서 구원을 보지 않으며 세계는 개개의 순간에 완료되어 있고 종말에 달해 있다'(p.116)고 주장한다. 이는 현재의 순간 순간에 중요성을 두기 위해 과거의 기억이 동원되는 삶이다. 이 삶의 태도는 미래의 환상을 준비하며 미래로 과거의 무게와 힘을 유출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여기, 바로 지금을 위해 과거의 모든 무게와 힘을 삶에 쏟아 붇는다. 초역사적 태도는 현재의 삶의 행복을 위해 과거 삶을 고찰하는 태도로서 삶의 행복을 위한 은 바로 삶과 괴리된 학문의 분업화, 양적 비대화, 대중화, 저질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다. 반면에 예술로서의 역사는 비역사적 태도를 수용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망각을 위한 기억, 삶을 위한 지식을 추구하고 나아가 과거의 삶을 창작하고 현재의 삶을 풍성하게 창조해 낸다.
3-2. 초역사적 태도
이렇게 역사적인 태도 속에 함몰되어 현재의 삶을 잃어버린 근대 역사지식을 니체는 역사병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역사병의 해독제는 과연 무엇인가? 니체는 역사병의 해독제로 비역사적 태도와 초역사적 태도를 제시한다.
비역사적 태도란 바로 망각 가능성이자 '자기를 제한된 시야 속에 갇어 놓는 기술과 힘'(p.185)을 말한다. 이는 망각으로 함몰하는 동물의 삶이다. 하지만 니체는 더 나아가 '현존재에 영원불변의 의미를 지닌 성격을 부여하는 것, 즉 예술과 종교 쪽으로 향하게 하는 힘' (p.185)인 초역사적 태도를 제시한다.
초역사적인 태도는 망각을 수용한 역사성이자 망각을 위한 기억이며, 그리하여 삶과 역사가 하나를 이루는 태도이다. 역사와 기억을 위한 망각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초역사적 태도는 삶을 기반으로 다양한 역사적 태도들을 동시에 긍정한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고, 여러 역사적 태도들이란 자신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한해서 삶을 설명할 뿐이며, 그 범위 안에서 삶에 봉사하게 때문이다. 초역사적이고 창조적인 역사가는 내적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삶과 욕망을 되새겨 보고, 수많은 역사지식의 혼돈을 자기 내부에서 조직화하고 질서를 부여한다. 이러한 초역사는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 새로운 문화란 니체에게 그리스적 개념의 문화, 내부와 외부가, 삶과 사유가, 외관과 의욕이 상호 일치된 문화이다.
<각주> 1) 니체의 망각 개념은 우리에게 원한,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권유한다. 이러한 원한과 과거에 대한 집착은 금욕주의적이고 획일적인 태도와 관련이 깊으며 나아가 지식과 학문의 기반을 이룬다. 이에 대해서는『도덕의 계보』를 참조할 것.
2) 불행을 초래하는 역사적 지식이 지닌 부정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삶의 긍정적이고 망각적인 성격의 대립상을 통해 정의될 수 있다. 니체가 보는 인간의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삶은 바로 창조적인 삶이다. 그가 보기에 지식과 학문은 이러한 삶의 창조적 능력을 앗아가는데 있다. 따라서 그가 비판하는 지식은 바로 획일적인 법칙으로 공식화되고 축적된 지식이다. 그가 볼 때19세기의 역사학이 이러한 지식을 대표한다. 결국 그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지식이나 역사, 학문이라는 외면적 분과들이 아니라, 지식과 학문이 지니는 부정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정적이고 반동적인 성격을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으로, 즉 삶을 이해하고 기반으로 한 성격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3) 물론 이는 세 종류의 역사학들이 자신들의 부정성과 반동성을 벗어나 삶으로 되돌아 왔을 경우에 그러하다. 이 세 종류의 역사학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학문의 성격에 더욱 충실하여 삶에 멀어질 경우 자신들의 바탕인 삶을 부정하면서 스스로를 삶을 초월하고 지배하는 절대진리, 진실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4) 물론 낭만주의 역사가 단순히 기념비적 역사의 부정적인 면만을 그 특징으로 가진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필자는 니체가 19세 역사학의 큰 흐름 중 하나인 낭만주의 역사서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굳이 기념비적 역사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계속해서 나오는 골동품적 역사와 비판적 역사가 당시의 랑케식의 역사주의와 헤겔식의 역사철학과 맺는 관계와도 동일하다.
5) 낭만주의적 역사는 과거의 위대했던 순간을 추켜세운다. 특히 고전주의가 그리스/로마의 보편주의를 내세운 반면 낭만주의는 중세 각 민족의 영웅들이나 위대했던 시대라는 민족의 특수성을 내세운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는 샤를르마뉴를, 독일은 오토대제 등을 내세웠으며 이렇다할 영웅이 없는 민족이라 할지라도 과거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상정하고 현재 즉 19세기에 그 영광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의 흐름과 쉽게 결합하였고 역사학이 국가통일의 가장 큰 역할을 한 독일을 사례는 가장 대표적이다.
6) 랑케의 역사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역사서술에서 역사가의 주관적인 입장을 최대한 배제하여 객관적인 역사를 서술할 것. ②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할 것. ③역사 각각의 시대는 어떠한 가치로도 우열을 판단할 수 없다. 즉 각각의 시대 모두는 신(神)에 접해 있다. 이 세가지 주장은 현재의 삶에 따른 가치판단을 배제한다는 점, 단순한 호고주의로 빠지기 쉽다는 점, 또 삶의 심약함과 연결되는 객관주의 등의 측면에서 모두 니체의 비판을 모면하기 어렵다.
7) 강한 인격성은 낯설고 다양한 세상을 긍정하는 성격이고 약한 인격성은 그것을 부정하는 성격이다. 예를 들어보자 강한 인격성은 세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며, 그러한 삶에 대한 성찰 속에서 창조적인 개념과 새로운 문제제기로 삶을 위한 학문, 지식 즉 '즐거운 학문'에 매진한다. 이러한 학문과 학자는 당연하게 기존의 획일적인 질서나 공식과 부딪히게 되며, 학계의 이단아가 되기 쉽다.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는 이 학자는 강한 인격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반면 약한 인격성을 지니고 있는 학자는 기존의 질서와 공식에 더 기여거나 이를 보강하고 강화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학문이 삶에서 괴리되어 학문을 위한 학문이 되더라도 학문의 객관성 운운하며 현실의 삶을 외면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 학문의 틀을 지키는 것이지, 새로운 삶을 위한 새로운 학문의 틀을 짜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난받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빗나가지 않으려고 하며, 스스로를 구속한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약한 인격성의 소유자이다.
8) 본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역사의 여신인 Clio는 Zeus와 기억의 여신인 Mnemosyne(Memoria) 사이에 태어난 아홉 Muse들 중의 하나이다. 이는 역사란 결국 창작과 관련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창작이라면, 즉 니체가 말한대로 극작과 다를 것이 없다면 역사와 문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필자는 역사가 문학과 다른 점은 대상의 파악에 있어 일차적으로 과학성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유물/유적과 사료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 없이 역사학은 과거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역사학은 이 과학성을 토대로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어 창작을 수행한다. 문학가는 현재를 살아가며 현재를 이해하지만 역사가는 과거를 살아갈 수 없기에 과거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과거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