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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모스다!”
동무들과 어우러져 놀던 꼬마 하나가 열녀문이 있는 저 위쪽을 가리키며 소리 지른다. 말타기를 하며 놀던 아이들이 와끌시끌거리며 기름집 앞으로 몰려간다. 아이들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저 위의 사람은 오던 대로 비탈길을 걸어내리고 있다. 그가 아래쪽에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은 점점 신이 난다. 재미나는 놀잇감이라도 발견한 듯하다.
“이스! 모스!”
“코스! 모스!”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위쪽을 향해 뻗어간다. 그는 열댓 걸음 앞에까지 와 있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익숙한 듯 그는 괘념치 않으며 내려온다. 아이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준다. 그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아이들 사이를 통과한다. 꼬맹이들보다 한 뼘 정도 더 있는 것을 보면 백오십 어름이나 되지 싶다. 빼빼마른 몸에 허리까지 좀 굽어 작은 키가 더 줄어들어 보인다. 머리카락은 갯물에 쓸린 파래처럼 맥대로 헝클어졌다. 눈은 퀭하니 꺼져 들었고, 이빨이 빠진 볼은 움푹 패여 광대뼈가 툭 불거져 보인다. 땀에 흠뻑 젖은 땟국물 전 누런 런닝은 몸뚱이에 찰싹 달라붙어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 안그래도 초라한 몰골을 더욱 불쌍해 보이게 한다. 헌 넥타이로 허리띠를 해서 묶은 바지는 무릎까지 대충 걷어올려졌고, 헝겊을 대 군데군데 징근 검정고무신은 벗어지지 않도록 새끼로 둘러 묶었다. 생김새가 그래서인지 나이는 잘 가늠이 안된다. 언뜻보면 마흔 정도인데, 웃을 때 드러나는 듬성듬성 이가 빠진 입념을 보면 환갑도 지났을 듯한데, 날래게 신작로를 쌔달리는 모습에서는 팔팔한 이십대가 느껴진다.
‘이스모스’라 불리는 그는 아이들을 지나 동네로 들어선다. 그러고는 예의 그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품으로 다시 뛰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이스모스!”를 연호하며 뒤를 따른다. 마치 전쟁에 승리한 군사들이 대장을 앞장세우고 조국으로 귀환하는 듯한 형상이다. 초라한 몰골의 이스모스가 대장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서 보면 그렇게 보인다. 이스모스는 지서를 지나고 농협을 지나 점빵들이 마주하고 있는 길을 달린다. 꼬맹이들이 질러대는 “이스! 모스!” 소리에, 집에 있던 아이들이 고무신을 꿰고 뛰쳐나와 대열에 합류한다. 갈수록 소리를 지르며 뒤를 따르는 병사들의 수가 늘어간다. 조금 있으면 온 동네의 꼬맹이들이 다 모여들것만 같다. 익숙한 풍경인 듯 어른들은 흘낏슬쩍 돌아만 볼 뿐 별 관심이 없다.
이스모스와 아이들이 만드는 대열은 객선머리를 향하고 있다. 도개집 삼거리에서 꺾어져 약방을 지나고, 수협을 거쳐 철공소를 지난다. 동네 끝에 장승처럼 서 있는 사각기둥의 표어탑을 지날 때 멀리에서 “뚜우!”하고 기적이 울린다. 약속이나 한 듯 항상 그 지점에서 그들의 행렬은 기적소리를 듣는다. 공터를 지난 이스모스는 삼바시로 안 들어가고 배다리를 지나친다. 거기까지 뒤따르던 아이들은 이제 이스모스를 잊고 객선이 닿는 삼바시로 몰려들어 간다. 인솔자와 아이들은 거기에서 서로 헤어진다.
그 사이에 방파제 사이의 물목을 지난 객선이 왼쪽으로 몸을 틀어 선창으로 들어오고 있다. 삼바시에 닿은 객선은 기적을 한번 울리고는 옆구리의 문을 열어준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삼바시가 웅성둥성해진다. 배다리를 건너오는 사람, 배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로 배다리가 휘청거리며 아래로 청처짐해진다.
이스모스는 어판장 앞에 선 채, 배다리를 건너와 출구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보고 있다. 이스모스의 눈길은 여자에게만 집중돼 있다. 배다리 출구까지 내려가 얼굴을 살피기도 하고, 어쩔 때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찾는 얼굴이 아닌 듯 실망한 표정으로 물러나온다. 어떤 여자들은 가까이에 접근해오는 이스모스를 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멀찍이서 승객들을 지켜보던 이스모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선창에 내려 제갈길로 가고 삼바시가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그제서야 배다리를 건너간다. 객선에 오른 이스모스는 아래층 선실로 내려간다. 그곳을 휘 둘러보고 나와 바로 이층으로 올라간다. 선실 문을 열어 한번 빙 훑어보고는, 선실 앞에 붙은 선원실과 그 앞의 조타실까지 들여다본다.
여기저기를 뒤지는 이스모스를 보고도 선원들은 익숙한 듯 무심히 지나친다. 이층을 훑은 이스모스는 일층으로 내려와 앞선실과 뒷선실을 둘러본다. 배의 모든 선실을 확인한 이스모스는 삼바시로 내려온다. 웬만한 집 마당의 서너 개는 됨 직한 직사각형의 삼바시에는 여기저기 그물더미나 나무궤짝들이 널려 있다. 이스모스는 삼바시를 돌며 그물을 들춰보고 궤짝 사이를 들여다보며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핀다. 날은 어둡지만 무언가를 찾는 이스모스의 눈길을 빈틈이 없어 보인다.
삼바시 수색까지 마친 이스모스는 배다리를 되걸어 선창으로 나온다. 밤이 내려 주위는 캄캄하다. 고무신을 짬맨 새끼를 고쳐 묶은 이스모스는 허리띠 대용인 헌 넥타이도 끌러 다시 당겨 맨다. 준비가 끝난 듯 이스모스는 왔던 길을 되짚는다. 아까침에 꼬맹이들과 함께 뛰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혼자이다. 표어탑을 지나고 약방을 지나, 도개집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점빵들의 길을 지나 다릿독을 지나고, 농협을 지나 기꼬탕의 지서와 면사무소를 지나면 동네의 다른 쪽 끝이다. 맨 마지막의 기름집을 지나자 어둠이 앞을 막아선다. 빗물에 패여 자갈길이 돼 있는 신작로가 어둠속에 어렴풋하다. 이스모스는 그 속으로 달려 들어간다. 희미하게 뻗어 있는 길과, 그 길을 싸고 있는 어둠이 이스모스와 함께 밤을 달린다.
첫댓글 적어도 헹님한테는 성공하고 있구만. 어찬가 헹님은 볼 거께. 봐봅시다. 저는 저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데 헹님은 어찬가. 어차피 소설은 공갈이께.
너빠퉁 답다.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구만. 책 언제 나오삼?
다다음주. 책 나오믄 청산 가란데 이녁도 시간 내보셔. 엄니 젖도 잔 묵고 새해 계획도 짜고, 얼마나 걸음 잘 걸은가 연습보기도 한번 해보게.
글을 읽어본께 우리 애릴때도 맨날 달리기 하던 상삼포 찌느기 생각이 나네랍 그 누이 보기미 생각도 나고 ᆢ
긍깨요이 상삼포 얼굴들이 나의 뇌리에 스쳐 가는것 같으요. 그집에 한 분은 구장리 단비 하납시 작은 엄무로 알고 있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