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4일, 수요일, Filadelfia, Hotel Safari (오늘의 경비 US $27: 숙박료 80, 아침 7, 점심 11, 저녁 30, 택시 20, 인터넷 12, 환율 US $1 = 6,000 guarani)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모기 물린 자국이 수십, 수백 군데다. 전혀 모기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물리는 것을 느끼지도 못 했는데 3일 밤 동안 모기 밥이 되었던 모양이다. 모기가 있으면 모기 소리를 듣는데 이곳 모기는 게릴라 모기인 모양인지 못 들었다. 열대 지방을 여행하면 말라리아 때문에 모기가 참 문제다. 열대지방에는 아직도 말라리아가 퇴치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말라리아는 예방주사가 없다. 약은 있지만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다. 그냥 먹어 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부작용이 있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약은 있지만 아직까지 안 먹었다. 어쨌든 모기를 좀 더 조심해야겠다. 오정 때쯤 Asuncion 버스 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갔다. 버스를 타고 가면 훨씬 싸지만 지난번에 회전하는 십자가문 때문에 고생을 해서 비싸지만 택시를 타고 갔다. 버스 터미널에는 웬 잡상인들이 그렇게 많은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1분에 한 사람씩 다가와서 무엇을 사라고 한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보다 잡상인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구석으로 자리로 옮겼더니 좀 나았다. 오후 2시 반에 버스에 올라서 보니 승객이 몇 명 안 되는데 스페인어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전부 독일어 하는 사람들이다. 버스가 가는 Filadelfia가 독일계인 기독교 메노 파 (Mennonites) 교인들이 사는 도시라 그런가 보다. 예정보다 한 시간 빠르게 Filadelfia에 도착한 것은 좋았으나 Lonely Planet에 소개된 단 하나의 호텔인 Hotel Florida가 만원이다. 굉장히 오지로 생각했는데 호텔이 텅텅 비지 않고 만원이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Hotel Florida에서 소개 받은 Hotel Safari로 갔더니 제일 싼 방이 80,000 guarani이다. Hotel Florida의 방은 25,000 guarani인데 80,000 guarani이라니 너무 비싸다. 지금까지의 파라과이에서 든 호텔 값을 보면 Encarnacion 15,000 guarani, San Ignacio 30,000 guarani, Asuncion 30,000 guarani, 그리고 이곳이 80,000 guarani이다. 경비를 절약하려면 좀 더 신중히 숙소를 정해야겠다. 내일은 Hotel Florida에 빈 방이 생긴다니 그곳으로 옮겨야겠다. 저녁을 시내 어느 음식점에서 먹었는데 웨이터들이 전부 독일계 백인들이다. 이곳에 사는 메노 파 교인들인가 보다. Filadefia는 미국 Pennsylvania 주 수도인 Philadelphia와 발음이 같은데 그리스 어로 "brotherly love, 형제 같은 이웃 애"란 뜻이겠다. 여행지도 독일계 기독교 메노 파가 (Mennonites) 세운 도시 Filadelfia 거리 풍경 2004년 3월 25일, 목요일, Filadelfia, Hotel Florida (오늘의 경비 US $11: 숙박료 25,000, 점심 20,000, 식료품 21,000, 기타 2,000, 환율 US $1 = 6,000 guarani) 호텔 요금에 포함되어있는 아침 식사는 제법 좋았다. 다른 곳은 대부분 커피와 빵 몇 조각이고 가끔 치즈와 과일이 나오는데 이곳은 오렌지 주스, 계란, 햄까지 완전한 아침식사다. 이곳은 날씨가 더워서 하루 일과가 일찍 시작되어서 아침식사가 6시에 나왔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시내에 나가 보니 7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상점들도 다 열려있고 길거리는 번잡했다. 이곳은 지금까지 본 파라과이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도시 생김새도 다르고 사는 사람들도 다르다. 길 이름도 Hindenburg, Unruh 등 독일 이름이다. Hotel Florida 길 건너에 있는 Unger 박물관 구경을 갔다. 자그마한 박물관에는 1932년에 이곳에 정착한 Mennonite 들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Mennonite 유물들보다도 Mennonite의 이민역사에 더 관심이 있어서 직원이면서 박물관장인 50대 남자에게 이민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들었다. Filadefia가 위치한 파라과이의 Chaco 지역에는 Mennonite 정착지가 세 군데 있는데 이곳 Filadefia에는 1932년 소련에서 온 Mennonite들이 정착했다. 이곳에 오게 된 동기는 시베리아 Omsk 지역에서 Mennonite 사람들이 백여 년 이상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잘 살고 있었는데 1919년에 공산주의 세상이 되면서 지주계급으로 몰려서 쫓겨나게 되었다. 일부는 서쪽으로 이동해서 대서양을 건너서 오고 일부는 동쪽으로 이동해서 흑룡강을 건너서 한 동안 만주 Harbin에 거주 하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미국의 돈 많은 Mennonite 사람들의 도움과 주선으로 오게 되었는데 파라과이가 유럽인들의 이민을 많이 받을 때라 쉽게 올 수 있었다. 1865년에 소국인 파라과이가 엉뚱하게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세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가 남자 인구의 90%가 죽고 패했다. 그 후 파라과이 정부는 인구 보충을 목적으로 유럽인들의 이민을 장려해서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독일, 동유럽 등에서 많은 이민이 왔다. Mennonite들은 파라과이 정부로부터 거의 치외법권에 해당하는 많은 특권을 받았는데 완전한 종교와 징집으로부터의 자유, 독일어 학교 운영권, 수준 높은 자치권, 지속적인 추가적 Mennonite 이민 권리 등이 포함되었다. 대신 엄청난 바가지 가격으로 황무지 같은 파라과이 땅을 구입해야 했다. 이곳 Filadelfia에 정착한 Mennonite 사람들은 시베리아 고향을 떠나면서 얼마나 서글프고 힘들었을까. 그러나 교단에서 이민을 주선해주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또한 1932년 이곳으로 이민을 와서 7년 후에 일어난 2차 대전을 피할 수 있었으니 그 역시 다행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너무나 고립되어서 사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어디로 가는가. 대학 졸업 후에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아니면 타지에서 사는가. 젊은이들이 안 돌아오면 이곳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에 비하면 미국 동부에서 쫓겨나서 1847년에 미국 Utah 주에 정착한 몰몬교는 참 성공했다. 유타 주 정착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미국 전역을 누비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선교활동도 기독교의 어느 교단보다도 더 활발히 하고 있다. Mennonite들은 아마 몰몬교를 매우 부러워 할 것이다. Mennonite들은 언젠가는 정치가 불안한 이곳을 떠나서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으로 이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라과이 정부가 특권을 주었다면 뺐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곳은 황무지 같아 보이는데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그래서 Mennonite들은 생활수준이 높은데 주요 생산품은 육류, 낙농품, 목화, 땅콩 등이란다. Mennonite 교도는 전 세계적으로 100만 정도 있는데 독일계가 대부분이라 한다. Mennonite 교도들은 시베리아에 살기 전에는 우크라이나의 흑해 부근의 살았고 그 전에는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 해변 지역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지난 300여 년 동안 한 군데 오래 살지 못하고 옮겨 다니며 산 셈이다. 이곳에는 얼마나 오래 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기독교 교단으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아서 그렇게 옮겨 다니며 살게 되었다하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이단 취급을 받았는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박물관장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10살 정도 되 보이는 어린이 수십 명이 버스 두 대에서 내려서 박물관 관람을 온다. 대부분 금발이고 독일어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장은 나중에 다시 얘기를 더 해주겠다고 하고 어린이들 안내를 하러갔다. 이곳은 더 이상 별로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곳 같아서 오늘 떠나려고 버스 정거장으로 한참 걸어서 갔더니 11시 반 Concepcion행 버스가 고장이 나서 고치고 있는 중인데 못 갈지도 모르겠다며 10시 반쯤 다시 와 보란다. 10시 반에 짐을 지고 다시 버스 터미널에 가보니 오늘은 버스가 못 떠난다고 한다. 내일은 틀림없이 떠날 거라며 Hotel Florida 직원에게 부탁해서 아침 10시에 자기네한테 전화 연락을 해달라고 한다. 나를 태우러 호텔로 버스가 오겠다는 얘기인지 혹시 또 못 갈 수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시 무거운 짐을 지고 Hotel Florida로 가서 미리 예약해 놓았던 25,000 guarani 짜리 방에 들었다. 호텔이 그럴 듯하다. 수영장도 있고 정원에 나무가 우거지고 아름답다. 정원 그늘 밑에 앉아있으면 더위를 별로 모르겠다. 내일은 Concepcion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호텔로 걸어오는 동안 벌써 더워져서 좀 힘들었다. 도로가 비포장이라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많이 났다. 도시계획이 잘 되어서 길이 널찍널찍하고 (폭이 100m나 되어 보인다) 바둑판처럼 나있다. 집들도 널찍널찍하게 터를 잡아서 블록이 매우 크다. 한 블록 걷는데 다른 도시의 서너 블록은 걷는 것과 같다. 차는 소형 트럭과 오토바이가 많고 자전거도 많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30년경 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는 Mennonite 백인들뿐이었을 텐데 지금은 인디언들과 메스티소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백인들은 모두 키가 크고 대부분 금발이다. 황무지 같은 곳인데 나무를 많이 심어서 나무가 많다. 그런데 도로는 왜 포장이 안 되었는지 모르겠다. 웬만한 파라과이 도시들은 도로가 다 포장되어 있는데 포장이 더 잘 되었어야 할 이곳은 안 되어있다. 이 도시는 파라과이 도시 같지는 않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 같다. 백인들과 비 백인들과의 빈부 차가 너무 눈에 뜨인다. 그리고 인종이 너무 섞이지 않았다. 장래의 불화의 불씨를 보는 것 같다. 이곳 Chaco 지역에는 Mennonite 도시가 Filadelfia 말고도 두 군데가 더 있다. Loma Plata는 Filadelfia보다 3년 먼저 생긴 도시인데 캐나다의 Mennonite들이 이주해 왔다고 한다. 군대 징집문제 때문에 캐나다를 떠났다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그리고 Neu-Halbstadt는 Filadelfia나 Loma Plata보다는 한참 후인 1947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온 Mennonite들이 세웠다. 이 사람들은 일찍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이차대전이 나자 군대 생활을 했다한다. 소련군이었는지 독일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유의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점심은 Hotel Florida 식당에서 먹었는데 뷔페식이었다. 아마 독일 음식인 모양인데 하나 같이 맛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독일 음식인데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아마 한국 음식처럼 온대지방 음식이라서 그런 것 같다. 열대지방 음식은 남미도 동남아도 비위에 거슬리는 향료 때문에 입에 잘 안 맞거나 전혀 못 먹는 음식들이 많은데 오늘 먹은 독일 음식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 저녁도 사먹을까 하다가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만두었다. 저녁은 숙소 근처 수퍼마켓에 가서 샌드위치 감을 사 가지고 호텔 방에 돌아와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학교가 파해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니 흡사 미국 Utah 주의 소도시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Mennonites 이민사 박물관 금발의 Filadefia 어린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