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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
“병마(兵馬)”가 무엇이냐?
전쟁에 쓰기 위한 말이다. 고대 시대 전쟁에서 병마는 필수조건이다.
병마 없이 싸워서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삼하8:4 “(다윗이)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삼하8:6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
이 말씀에 순종하여 강성대국을 이룬 왕이 있다. 누굴까? 다윗 왕이다!
하나님은 역설적인 분이다. 병마 없이 싸울 때 이기게 해 주신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이 명령에 따르지 않은 왕이 있다.
왕상10:26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왕상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 왕이다.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은 병마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나님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하셨는데, 이스라엘은 반대로 병마를 늘려나갔다.
북조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에게 멸망당했다.
남조 유다는 136년이 지난 주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당했다.
그리고 포로가 되었다.
스가랴 선지자는 포로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자랐다.
거기서 자기 ① 정체성을 찾았다. ② 역사의식을 가졌다. ③ 하나님을 묵상했다.
전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라!
기억한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이다. ~ 하나님을 배우자!
기억한다는 것은 체험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을 체험하자!
기억한다는 것은 실현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 말씀으로 살자!
스가랴 선지자가 이렇게 살았다.
스가랴가 이해한 조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병마를 줄였더니 부국강병을 이루게 하셨다.
솔로몬 왕 이후로 경쟁적으로 병마 확보에 힘을 쏟다가 패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국제 정세는 어떠한가?
<3. 스가랴 선지자가 본 당시의 국제 정세>
당시의 전쟁을 살펴보니, 병마를 많이 보유한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었다.
병마 없이 싸워서 이기는 나라가 없다.
전쟁의 승패를 병마가 좌우했다.
잘 달리는 말을 누가 더 많이 보유했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 온 백성을 구원하고 먹여 살리는 시대다.
백성들은 전쟁영웅에게 환호했다. 왜?
그들이 구원자니까! 그들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니까!
전쟁 영웅을 최고로 숭배했다.
이 시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개선장군 퍼레이드”를 했다.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화려한 말에 개선장군이 올라탔다.
시내를 가로질러 황제 앞으로 간다.
황제는 개선장군을 최고의 예로써 맞이했다.
왜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퍼레이드에 동원되었을까?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말(馬)이다!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 하면 떠오르는 생각? 영화 “벤허”
세계 영화사에 길이길이 기념이 될 명장면이다.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말을 탔다. 누가? 전쟁 영웅이!
<4. 말(馬)이 지배하는 역사 속 로마>
역사도 이를 증명한다.
말로써 세상을 제패한 제국은 여럿이다.
대표적으로 “몽골의 징키스칸”
몽골의 징키스칸이 “세계를 지배한 속도가 말이 달리는 속도와 일치했다!”
말이 몽골에서 홍콩까지 달려오면, 이미 이 지역이 징키스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런데 징키스칸은 오래 못 갔다.
말로써 세상을 제패하고 제법 오랫동안 지배한 제국이 있다. 어딜까? ~ 로마 제국이다!
주전 8세기에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지금의 이탈리아에 로마를 건국했다.
이들은 말을 잘 탔다. 좋은 말을 많이 가졌다. 그리고 영토를 넓혀갔다. 지중해를 정복했다.
로마는 주전 8세기부터 주후 5세기까지 존속했다. 그러면 모두 몇 년간인가? 1300년이다.
대략 1,300년간 로마가 존속했다.
말로 세계를 제패하고 어떻게 1,300년이나 존속했을까? 그 비밀이 뭘까?
그 비결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로마의 개선장군 환영 퍼레이드는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전쟁에 나가 이기고 돌아오면 로마 시내 퍼레이드를 한다.
이때 두 마리, 혹은 네 마리가 이끄는 마차를 탔다.
개선장군은 화려한 복장에 얼굴에는 붉은 피 칠을 했다. 적군의 피를 가져왔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고대 여러 제국의 개선장군 퍼레이드와 다를 바가 없다. 똑같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인데, 어떻게 하느냐?
개선장군이 마차에 오르면, 잡혀온 포로 중에서 젊고 목청 좋은 사람을 바로 뒤에 태운다.
환호하는 시민에게 손 흔들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개선장군에 쉼 없이 외치도록 했다.
그때 외친 말이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쉬지 않고 외쳐야 한다.
메멘토 모리가 무슨 뜻인가? 라틴어다!
이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황제에게도 메멘토 모리!를 외쳤다.
매일 아침 황제가 침실에서 눈을 뜨면,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조용히 아뢴다.
“메/멘/토 // 모/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메멘토 모리는 인간의 교만에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가져오는 일급비밀이었다.
그래서 로마가 무려 1,300년이나 존속할 수 있었던 1급 비밀이었다.
그러나 로마도 1,300년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스가랴는 로마가 건국한지 200년 후에 태어났지만,
스가랴가 보기에 전쟁을 좌우하는 것은 분명히 병마였다.
그러나 자기 조국 이스라엘을 볼 때는 반대였다.
솔로몬 이후 병마 확보에 힘을 쏟다가 전쟁에 패망했다.
스가랴는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어찌 이렇게 됩니까?”
<5. 아브라함과 스가랴의 하나님의 음성 듣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깎아서 파는 장사꾼이었다.
여러 가지 ‘신상(神象)’을 깎아서 사람들에게 팔았다.
그걸 사간 사람들은 그것을 신으로 모셨다.
그 신에게 빌고, 절하고, 예배하고, 온갖 정성을 다했다.
이 장사 짭짤했을 것 같다! 여러분 생각은?
오늘날도 짭짤하다. “오늘의 운세!” “타로점” “궁합” “사주팔짜” 이런 것들이다.
아브라함은 아버지가 우상을 깎아서 파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이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믿음의 조상”이 무슨 의미인가? ~ 바로 여러분과 나의 조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할렐루야!
스가랴도 “이게 아닌데?” 뭘 보고 “이게 아닌데?”
전쟁에서 말이 승패를 좌우하는 것을 보면서!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오늘 본문 말씀이다.
말 vs 나귀 새끼
말은 교만이고, 나귀는 겸손이다!
말은 힘의 지배이고, 나귀는 공의로움이다!
말은 일시적 승리이고, 나귀는 영원한 구원이다!
말은 세상이 인정하고, 나귀는 하나님이 인정한다!
말은 세상의 철학, 사상, 학문이고, 나귀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예수님 오시기 52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가 선포했다.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감람산 언덕에서 제자들을 시켜서 새끼 나귀 한 마리를 끌어오도록 했다.
마 21:9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뛰어난 명마(名馬)!
그것이 역사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길어봤자, 로마제국의 1,300년이다!
예수님의 나라 이미 2천 년을 넘어섰다! 할렐루야~
<맺음>
사랑하는 홍콩 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으로 나귀 등에 타기를 소망하십니까?
혹시,
“주님, 주님께서는 나귀 등에 타세요! 나는 말에 올라타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것이면, 교회 안에서도 인정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떠 받들면, 교회에서도 떠받드는 풍조가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나귀 타던 사람이 말 타게 된다!
혹시 이렇게 예수 믿지는 않습니까?
혹시 이렇게 전도하시지는 않습니까?
“예수 믿어봐! 말이 이끄는 화려한 마차를 타게 될거야!”
“예수 믿어봐! 소나타 버리고 포르쉐 타게 될 거야!”
반대로 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말 타다가, 나귀 새끼 타게 된다!”
부족한 종이 3일간 제일교회에 와서 부흥사경회를 인도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고, 오기 전에 아내 앞에서 설교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주문합니다.
설교 듣고 성도가 소망을 갖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설교 듣고 성도가 결단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옳은 소리입니다.
여러분! 황의찬 목사의 설교 듣고요,
지금까지 말 타던 분 계시면 나귀 탈 소망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까지 섬김을 받도 사셨다면, 이제부터는 섬기기로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세상이 주는 평안을 누리고 살았다면,
이제는 나귀타고 고생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 누리기로 결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갈 길은 좁은 길입니다!
주님이 그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이 나귀 타고 가신 그 길 끝에 “부활!”이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요, 우리는 두 번째 열매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