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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아버지와 도넛
김임지
“민지야, 어제 너거 아버지 또 술 취했제? 엄마 심부름 갔다가 가게에서 술 먹는 거 봤다.” 명순이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현주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디 숨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 아니. 술, 술 냄새 안 나는 거 같던데?”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요즘은 누가 아버지 말만 꺼내도 괜히 마음이 쪼그라든다. 얼마 전 도시에서 전학 온 현주 앞에서는 더 그렇다. “그래? 내가 봤을 때는 엄청 먹은 것 같던데.” 베슬거리며 말하는 명순이 속을 알 수가 없다. 둘이 있을 때는 입에 꿀 바른 소리만 하다가도 다른 친구들과 있으면 꼭 내 약점을 잡고 늘어진다. 우리 아버지 술 먹는 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라고. 아니, 사실은 명순이보다 아버지가 더 밉다. 요즘 들어 아버지가 이상하다. 부쩍 술을 드시고, 집에 와서 엄마랑 싸우신다. 밤늦도록 집에 안 들어오실 때도 많다. 밤중에 엄마가 막내 동생을 업고 동구 밖까지 나갔다 오는 걸 보면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래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그날따라 청소가 늦어졌다. 다음 날 학교에 손님이 오신다고 선생님이 끝까지 남아서 청소 검사를 하셨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려고 친구들이랑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걷고 있었다. 엄마는 도로는 위험하니까 시간이 걸려도 논두렁길로 다니라고 하신다. 요즘 들어 자동차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우리가 어른이 될 때쯤이면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때가 되면 정말 도로는 위험해 질 것 같다. 그런데 저만치 앞서 가던 명순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야. 저기 사람이 누워 있다.” 명순이가 가리킨 곳은 도로가에서 좀 떨어진 풀숲이었다. 남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면서 말했다. “혹시 사고 난 거 아이가?” 그 말에 온 몸이 꽁꽁 얼어붙고 머리털까지 쭈뼛거렸다. “사고는 아냐. 다친 데가 없는 걸.”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무섬증이 가시지 않아 누워 있는 사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명순이가 두리번거리더니 손뼉을 ‘탁’ 쳤다. “어머나! 민지야, 너거 아버지다!” 그 말에 놀랄 사이도 없이 명순이가 코를 감싸 쥐고 나를 돌아 봤다. “어휴 술 냄새. 너거 아버지 술 취해서 자는 갚다.” “아이다. 니 무슨 소리 하노?” 술 취해서 잠든 사람이 아버지라니!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다가갔다. “엄마야!” 그러나 바닥에 누운 사람이 입은 셔츠는 아버지 거랑 똑 같았다. 푸르죽죽한 바지도 아침에 봤던 거였다. 그 순간 나는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뒤로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내가 조금만 엎드려 있어도 “야 니도 술 묵꼬 자나?”라며 놀려댔다. 그때마다 내 마음은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셋이서 나란히 걷던 나는 어느새 뒤처졌다.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걷는 명순이가 부럽다. 명순이 아버지는 술 먹고 아무데서나 자지 않기 때문이다. 현주는 부럽다 못해 우러러 보인다. 아버지를 거리낌 없이 ‘아빠!’라고 부를 수 있으니까. 우리 아버지 딸인 나는 정말 불쌍하다. 현주는 얼마 전에 도시에서 전학 왔는데, 자랑을 입에 달고 산다. 현주 집에 안 가 봐도 뭐가 있는지 훤히 알 정도다. 선생님이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손을 들더니, 전축 있는 사람? 할 때도 손을 들었다. 텔레비전 있는 사람? 할 때는 나도 손을 들었는데 굳이 자기 텔레비전은 칼라라고 잘난 체를 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내내 자기 아빠 자랑이다. 아빠가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 뒀고, 불량 식품을 못 먹게 하고, 남녀 차별을 두지 않아서 오빠보다 더 자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시골로 이사 온 것도 다 아빠의 남다른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어릴 때는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사는 게 좋대. 그래야 나중에 커서 추억할 게 많다고 우리 아빠가 그러셨어.” “추억?” “그래. 옛날 생각하면 좋고 그런 거. 어른이 되면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거래. 우리 아빠 말은 믿어도 되거든.” 하여간 낯간지럽게 ‘우리 아빠’하면서 어찌나 자랑을 늘어놓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그런 현주가 우리 아버지를 술만 먹는 사람으로 알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현주 앞에서 분명하게 말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앞서가던 명순이를 불러 세웠다. “명순아! 어른한테는 술 먹었다 카는 거 아니다. 약주 하셨다고 카는 거다. 그리고 그 날 우리 아버지가 길에서 주무신 거는, 낮에 드신 몸살 약을 못 이겨서 그랬다. 평소에는 안 그렇다.” 명순이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곤 현주 귀를 잡아당겨서 귀엣말로 뭐라고 했다. 현주는 관심 없다는 듯이 앞만 보고 걸었다. “오늘 집에 빨리 가야 돼. 우리 아빠가 읍내 가서 전과랑 도나츠를 사 주신다고 했거든.” “우와~ 도나츠?” 명순이가 현주 뒤를 쪼르르 쫓아가며 물었다. 앞서 가던 현주가 홱 돌아서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 부글부글 끓는 기름에 배가 빵빵해지도록 튀겨서 하얀 설탕을 가득 묻힌 도나츠 말이야.” 나비처럼 팔랑팔랑 뛰어가는 현주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피, 나도 우리 아빠가 도나츠 사 준 적 있는데.” 명순이가 어색하게 자기 아버지 더러 ‘아빠’라고 말했다. 나도 속으로 ‘아빠’라고 불러 보았다. 언젠가 멋모르고 송충이를 만졌을 때처럼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콧날이 약간 시큰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아빠. 도시 아이들은 모두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걸까? 아버지 자랑만 하는 현주가 쌤통이지만 사실 부럽다. 현주가 ‘우리 아빠. 아빠’할 때는 현주 아빠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공부를 많이 하셨으니까 분명히 검정 테 안경을 썼을 거다. 도시에서 살았으니까 얼굴도 하얄 테고, 도나츠도 쉽게 사줄 수 있으니까 돈도 아주 많겠지? 꼭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팔을 벌리고 아빠! 하고 달려가면, 우리 공주님! 하면서 번쩍 안아 줄 거다. 그런 아버지라야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아버지는 대학교는커녕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한글과 한자 모두 어깨 너머로 깨치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아버지 학벌에 ‘중학교 졸업’이라고 적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얼굴도 새까맣고 몸도 빼빼 말랐다. 경진이 아빠처럼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기는커녕, 내가 있는데도 집에 아무도 없나? 아니면 엄마는? 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당연히 남녀 차별도 한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다가도 오빠와 남동생이 상을 받아 오면 슬쩍 웃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도 했다. 나도 잘 하는 게 있다. 포스터 그리기 대회 때 마다 상을 탔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칭찬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사진첩을 뒤져봐도 아버지가 나를 안고 있는 사진은 없다. 아니 돌 사진 대신 찍었다는 가족사진에 아버지가 나를 안고 있는 사진이 딱 한 장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불쌍해진다.
어스름이 끼기 시작할 때쯤 가마솥에 밥이 다 끓었다. 이제 뜸만 들이면 된다. 막내를 업은 채로 서성거리던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민지야. 아버지는 또 늦는 갚다. 뜸 다 들이면 쌀밥 있는 쪽은 몰아 놓고 보리밥 쪽만 푸라.” 엄마 말에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버지 또 술 드시고 길바닥에서 주무시는 거 아이가? 애들이 얼마나 놀리는지 아나?”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대들고 말았다. “우리 아버지는 와 저렇노?” 엄마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말했다. “갑자기 왜 이라노?” “다른 아버지는 읍내에 데리고 가서 전과도 사 주고 도나츠도 사 준다 카더라. 나는 그런 아버지는 생각도 안 한다. 그냥 술만 안 먹었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정말 싫타. 아버지가 정말 부끄럽다.” 엄마가 밥그릇을 챙기다 말고 나를 돌아봤다. 엄마 몸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누가 술 먹는다고 그 카드노? 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소리고?” “엄마도 싫으면서 왜 그러는데? 만날 아버지하고 싸운다 아이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엄마한테 업힌 막내 동생도 입을 삐죽이며 울려고 했다. 쪼그리고 앉아 우는 내 곁에 엄마가 다가와 앉았다. 마당에 내린 어둠만큼이나 착 가라앉은 목소리다. “너거 아버지 이해해야 된대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혀서 안 저렇나. 그러니까 아버지 원망만 하지 마래이.” 한번 터진 울음이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낮에 나비처럼 팔랑팔랑 뛰어가던 현주 모습이 떠올랐다. 쪼그리고 앉아서 그런지 다리에 쥐가 나려고 했다. 일어서려는 순간 마당가에서 무언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겨우 버티고 선, 컴컴한 하늘을 어깨에 다 짊어진 듯 힘겨워 보이는, 아버지였다. 나는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아버지!” 엄마도 덩달아 일어섰다. 잠깐 동안 사방이 조용해졌다. 막내도 칭얼대지 않았다. 숨이 막혀왔다. 엄마가 살강 위에 있던 아버지 밥그릇을 달그락거리며 내렸다. “민지야, 아버지 밥 고봉을 푸라.”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독대에 김치를 내러가셨다. ‘아버지가 언제 오신 걸까? 설마 내가 했던 말을 다 들으신 건 아니겠지? 그냥 홧김에 한 말인데…….’ 식은땀이 났다.
모처럼만에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서 저녁상을 받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내 말을 듣지 못한 눈치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막내를 안아서 어르기 까지 하신다. 저녁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김칫국, 나물 몇 가지가 올랐다. 가장자리에 참기름 병도 올라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 밥 위에 참기름을 주루룩 부었다. “싹싹 잘 비벼 드이소.” 이어서 오빠 밥과 남동생 밥 위에도 참기름 몇 방울을 또옥, 똑 떨어뜨렸다. 오빠와 남동생은 뜨거운 밥을 참기름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숟가락 사이로 노른자가 툭 터지면서 익어가는 게 보였다. 김칫국에 보리밥을 넣고 한 술 뜨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훅 끼쳤다. 코앞에 참기름으로 싹싹 비빈 계란비빔밥이 있었다.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이거는 우리 민지 거다.” 아버지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민지.’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아버지 계란비빔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눈을 감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남동생이 잠결에 이불을 걷어차 버렸다.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와 닿았다. 엄마가 내 목까지 이불을 끌어당겨 주며 말했다. “당신이 유독 민지를 좋아했지요.”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민지, 우리 딸 하면서 말입니더.”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지 오빠 동생한테 많이 치어서 안 됐어예.” 엄마 말에 울컥해졌다. “못난 애비 만나서 안 그렇나.” 나는 그만 돌아누워야 했다. 눈물이 귓구멍으로 들어가서 얼얼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엄마는 밤늦도록 끊어질 듯 말 듯 얘기를 나눴다. 참 이상했다. 그 얘기들이 서러워서 눈물이 나는데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졌다. 꼭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말이 아득하게 멀어지며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돈이 안 될라카이 안 그렇는교. 다 잊어뿌이소.”
단팥을 옴팡지게 품고 부풀어 오른 도넛이 한 접시 가득이다. 그대로도 맛있겠는데, 달콤한 설탕까지 잔뜩 묻어 있다. “민지야. 얼마든지 먹어라.” 도넛을 집기 전에 주위를 살폈다. 아무리 둘러 봐도 나처럼 어린 아이는 없다. 대부분 고등학생 아니면 중학생 언니 오빠들이다. 명순이는 이런 데 한 번도 못 와 봤겠지? 명순이한테는 한동안 비밀로 해주고 싶다. 그래도 현주한테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가게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현주가 들어 왔으면 좋겠다. 아버지와 내가 마주 앉은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버지는 목이 막힌다며 사이다 한 병도 따서 내 곁에 놓았다. 사이다는 집에 들고 가고 싶었는데, 조금 아깝다. “전부 니 꺼다.” 아버지가 도넛 접시를 내 앞으로 바짝 밀어 주셨다. 도넛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아직 하나도 다 못 먹었는데 벌써 배가 부르다. *
동화가 실린 경남아동문학회 2011년 연간집 <울긋불긋 꽃대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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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실감이 돋보입니다. 김임지 선생님은 소외된 친구들에게 많은 사랑을 줄 글을 쓰실 분 같습니다. 그런데 김현우 선생님. 상단의 꽃이 무슨 꽃인가요? 난초 종류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