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무덤
나는 무자년 섣달, 양력으로는 1949년 1월생이다. 한 살이 더 늘어나니 집나이 쉰일곱 살. 구정을 맞이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기에 내 가족사에 관한 글을 조금 썼다.
조선왕조 역사를 배우면서 수양대군(세조)이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을 알았다. 열다섯 살 먹은 어린 조카를 노산군으로 강등하였고, 강원도 영월에 유배하였다가 열일곱 살 때 사약을 먹여서 죽였다고 기술했다(사실은 목을 졸라서 살해). 영월군 청령포와 장릉에 단종의 포한이 서려 있다는 현지 안내인의 말이 귓전에서 맴돈다. 숙부라는 존재가 무척이나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내 숙부는 풍수지리설을 믿으셨다. 명당자리를 잡는다고 외지에서 온 지관을 데리고 여러 군데의 산과 꽤나 많은 능선을 오르내렸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나의 좋은 예가 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花望 곶부래) 뒷산인 신안재에 당신의 소유로 된 산이 있다. 임씨의 말에 따르면 4년 흉년(6·25사변 직후) 당시에 황씨네한테서 샀다고 하며, 이를 증명하듯이 아직도 황씨네 무덤 두어 기가 남아 있다. 흉년에 산을 팔았단다. 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같이 샀다는데도 숙부 단독소유로 등기되었다며 내 어머니는 이를 아쉬워하셨다.
2정보가 넘는 넓은 산이기에 정상에 이르는 길목에는 긴 능선이 있다. 능선 따라 양지의 남측과 음지의 북측 경계선으로 나누어졌다. 작은아버지는 샘골 황씨네 산의 경계선과 맞닿은 곳에 묫자리 두 군데를 마련했다. 길 한가운데에 가묘를 썼다. 임야 측정을 한 결과 황씨네가 경계선을 조금 침범했다고 하나 지형상 고약한 위치에 마련한 유택이었다. 양지쪽에 쓴 가묘(假墓) 두 군데는 상석(床石)까지 썼다. 비석 2기, 상석 한 벌을 세워두고, 석관 한 벌을 땅 속에 묻었다. 사후를 대비하여 미리 치표(置標)했다.
이 가묘와 조카가 묻힌 무덤과의 간격이 무척이나 가깝다. 조카의 무덤은 능선의 북쪽으로 치우쳐서 산길과는 다소 떨어졌고, 지형상 터가 좁고, 산소 마당도 아주 비좁았다. 가묘의 봉분은 좁은 산줄기 능선의 상단에 있기에 봉분의 상하가 문제였다. 두 봉분의 간격과 폭이 아주 짧고 좁다. 능선의 위쪽에 쓴 가묘의 끝자락(묘역)이 아랫 봉분의 상단과 겹쳤다. 가묘와 조카의 봉분은 불과 예닐곱 발걸음의 상관이다. 상단 묘소 앞에서 4남 4녀의 사촌들이 절을 하면 하단 봉분의 유해(상체) 위치를 밟을 수 있는 형국이다. 사촌들의 자손이 더 많이 퍼지면 필연적으로 밟을 수밖에 없을 만큼 아주 비좁은 터(장소)로 변질되었다. 뱀 물려 죽은 사촌형의 무덤가를 밟지 않겠다, 조심하겠다고 하겠지만 지형위치로는 밟을 수밖에 없다.
갯바람(海風)과 갯안개(海霧)을 병풍처럼 가린 산, 신안재에 동생의 무덤을 쓴 이유가 있었다. 1960년 이른 봄. 어린 나이로 대전으로 전학을 간 쌍둥이 형제는 방학 때마다 고향에 오면 틈이 나는 대로 뒷산 신안재에 올라가서 대천해수욕장, 용머리해수욕장, 무챙이(무창포해수욕장), 비인만(동백정해수욕장 - 훗날 춘장대해수욕장으로 교체)을 멀리 내려다보았다. 바다를 향한 소년의 꿈과 기상을 펼쳤다.
작은쌍둥이는 1969년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왔다가 울안에서 뱀 물려서 다음날인 8월 10일에 죽었다. 집나이 22살 - 만나이 20살. 용머리(남포면 용두리해수욕장)에 사시는 큰외숙부는 쌍둥이 형제가 자주 올라갔던 마을 뒷산인 신안재가 명당이라면서 묘터를 잡았다. 여성 음부처럼 바위가 좌우로 박혀 있는 공간을 살짝 비킨 바로 위이다. 아쉽게도 묘역은 엎드려서 절할 만한 공간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숙부가 가묘를 쓴 뒤부터 냉가슴 앓듯 짠한 문제가 내재되었다. 어머니와 내가 우려했던 문제점이 현실로 드러났다.
2004년 1월 16일(섣달 스무닷새) 새벽 5시. 한 분뿐이었던 작은아버지가 향년 83세로 돌아가셨다. 화망마을(花望) 자택에서 공주로 치료받으러 가셨고, 감기 초기의 증상인 줄로 여겼으나 폐암 판정을 받은 뒤 십여 일만에 졸지에 작고하셨다.
공주 장례식장은 시내 변두리에 있었다. 대전직할시 방향의 구도로를 끼고 흐르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북향 산자락 하단에 있는 장례식장은 빈소와 주차장 터가 무척이나 넓었다.
삼일장. 일요일 아침 8시에 발인제를 지내고는 공주에서 부여 고도(古都)를 거쳐 고향인 서해안으로 향했다. 화망마을회관 앞에 운구차가 들어섰다. 내 어머니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상여는 숙부의 집 담벼락을 스쳐 지나가고, 마을 뒷산인 신안재로 올라갔다. 장지(葬地)에 따라온 많은 문상객들 가운데 일부는 봉분이 낮아진 쌍둥이-동생의 무덤 한 자락을 무심하게도 밟았고, 또 어떤 사람은 발길로 툭툭 걷어차기도 했다.
무덤 자락을 밟고, 발길로 툭툭 차는 행위를 보면서도 나는 짐짓 모르는 체 고개를 외로 틀었다. 진눈깨비 휘날리는 날씨때문에 매장(埋葬)을 서둘러서 끝내는 것이 더 시급했고, 하관시간을 앞당기는 판에 이런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남의 산소 자락을 밟지 마세요'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노천리 김기호 내당숙(작은대고모의 큰아들)은 눈꼴사나운 현장을 말로 쓸어덮으셨다.
“죽으면 그만이여, 무엇을 알겠어?”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으로 낮아진 무덤, 그 앞에 있는 상석(床石)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는 그게 망인(亡人)의 조카 무덤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 동생의 무덤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 이장하려면 경비가 많이 난다고 해도 그 시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새로 이장할 묘터는 죽청리산 아버지의 무덤 아래이다. 9대조, 5대조, 증조부, 할머니 등 선영음택(先瑩陰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또 하나의 선산(先山)이다. 내 소유이니 아무 데나 산소를 써도 된다. 자손이 없는 동생을 선영 아래에 무덤을 쓴다면 내 사후라도 내 자식들이, 그 자식들의 후손들이 관리해 줄 것이다.
숙부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졌다. 명부(冥府 지하세계)에 가신 분께 묻고 싶다.
'맨 천지가 땅(山)인데 하필이면 그 구멍(혈穴)으로 들어가야 했습니까, 구천(九泉)에서 복받으려고 명당자리를 찾았습니까, 생기발복(生氣發福)을 위한 명당자리, 유택(幽宅)이 뱀 물려 죽은 조카의 무덤 바로 위 언저리입니까, 당신도 작은아버지입니까?'
2004. 1. 24.
추가 :
2016년 봄철, 상전산 상단에 있던 최씨네 종산이 일반산업단지로 토지수용되는 바람에 분묘 모두를 죽청리산으로 이장했음. 안타까웠던 동생의 무덤도 파묘하여 죽청리산 상단에 있는 아버지(1982년 6월 작고)와 어머니(2015년 2월 작고)의 합장 봉분 아래 좌측으로 이장했음. 새로 이장한 가작굴 꼭대기(서낭댕이 앞산)에서도 바다가 멀리 보이기에 갯바다를 좋아하였던 쌍둥이의 어린시절, 젊은날의 꿈이 늘 함께 할 것임. 솔바람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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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수필로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산문'이란 용어를 썼다고 지적하는 회원이 있기에 '수필'로 정정합니다.
덜 혼나려고요.
어색한 곳을 지적해 주시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김 선생님 지우지 마세요. 그냥 놔두세요.
<내 마음의 숲> 원고모집 안내문에는 '시3편 수필 1편 산문 1편'으로 제한한다는 뜻이군요?
위 댓글을 보고는 내가 실수했나? 하고는 안내문을 확인하니 아래 문구가 뜨는군요.
'수필- 1편(동인문집- 6권): 6만원, 수필- 2편(동인문집- 12권): 12만원'
위 문구를 보고는 안심합니다. '수필 2편' 운운했으니까요.
김 선생님.
원고모집 안내문을 재확인해 보세요.
그럼 제 답변은 이쯤에서 접습니다.
동인지 문집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셨군요.
부럽습니다. 그 열정이...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안내문
'수필- 1편(동인문집- 6권): 6만원, 수필- 2편(동인문집- 12권): 12만원'
저한테는 '수필은 2편까지 해당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군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김상문 선생님의 문자 해독력이 돋보이는군요.
김 선생님이 <한국국보문학>, <내 마음의 숲> 발간 총책임자입니까?
위 안내문에는 '산문'이란 표현이 없어서 그렀습니까?
희한한 해석이군요.
고맙습니다.
산문을 수필로 정정하겠습니다.
됐습니까?
@최윤환
김 선생님이 달아주신 댓글은 삭제하기 말고 그대로 보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산문이냐, 수필이냐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더 확인해야겠기에...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거듭되는 댓글과 덧글.
고맙습니다.
김 선생님이 단 댓글과 덧글은 삭제하기 말고, 그대로 보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문자해석을 더 공부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