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력 키우기
송 가 영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7월의 어느 아침, 갑자기 “쾅” 하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창졸간에 혼비백산이 되었다. 가까스로 정신
을 추슬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철제 셔터는 만삭의 배불뚝이처럼 되어 있고, 문틀은
휘어져 있었다. 박살이 난 쇼윈도 유리는 통로까지 막아버려 오갈 수도 없게 돼 있었
다. 겨우겨우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갔다. 옆집 세탁소 아저씨와 길 건너의 종이집
아저씨가 서 있고, 그 곁에는 웬 하얀색 차 한 대가 가게를 향해 서 있었다.
몽롱한 정신에도 “이게 뭐예요?” 하고 다그쳐 물었다. 종이집 아저씨가 쭈뼛거리며
“죄송합니다. 제 찹니다.”라고 대답했다. “후유~” 한숨을 쉬고 가게로 들어가 옷을 갖
춰 입고 다시 나갔다. 언제 모여들었는지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비탈길에서
사이드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아서 빚어진 참사였다.
“그러니 저 차가 눈을 부라리며 아저씨를 쏘아 보고 있지요.”
나는 홧김에 소리를 질렀다.
“미안합니다. 모든 걸 원상복귀 시키겠습니다.”
뒤돌아보니 가게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가
게 문을 열고 재봉틀 뒤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곤 했다. 바느질을 시작
하기 전 하루를 여는 나만의 의식이었던 셈이다. 제동이 풀린 차가 들이박은 자리가
바로 그곳이었다. 조금 더 일찍 부지런을 떨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덧닫이, 너는 지난 1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내리며 일터를 지켜주더니 이
젠 내 생명의 방패까지 되어 주는구나!” 나는 찌그러진 셔터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종이집 사장 부인은 내게 우황청심환을 먹여주었다. 그리고는 깨진 유리조각을 치
우며 부산을 떨었다. 얼마 후엔 일꾼들이 달려와 셔터며 문틀을 재생시키고, 유리도
끼워 넣었다. 가게가 말끔히 정리 되자 그제야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고 아프기까지 해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아
무런 이상이 없으니 진정하면 좋아질 거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고 나자 졸
음이 쏟아지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놀랜다는 것이 이토록 무섭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
게 되었다. 사흘이 지나자 가슴에 주먹만 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 같아 답답하더니
닷새가 지나면서부터는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찾아왔다.
“나는 아픈데, 왜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지?”
“어머니는 차에 부딪히지도 않고 부상이 없으니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 게
당연할 거예요. 하지만 양의에서 발견 못하는 걸 한의에서는 발견할 수도 있으니 한
의원을 찾아가 보세요”
아들의 말에 따라 나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담이 작아져 있으니 담을 키워야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모든 일을 겁 없이 계획하고 저질러 왔기 때문에 담이 큰 줄 알았는
데 이렇게 아픈 걸 보면 담 주머니가 조롱박만한가 봐요?” 한의사가 빙그레 웃었다.
“지금 여사님 담 주머니는 요즈음 직장 상사에게 억눌리고 직장 후배에게 치이는
중년 남성 같습니다.”
월급을 받으려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참으며 마음에도 없는 상사 비위 맞추
느라 전전긍긍하는 고개 숙인 중년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어느 신문에서 본 적
이 있다. 그렇다. 현대인들은 조직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에 더는 설 곳도 설 힘도 없
이 자신의 처지와 희망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는 것이다.
“꽝!” 소리에 놀란 나나 고개 숙인 가장들이나 그런 걸 극복하려면 담을 키워야 한
다는 진단이었다. 담을 키우려면 약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등산도 그
중의 하나라고 했다. 흙을 밟고 땅의 기운을 마시며 산행을 하는 동안 몸속의 기가
되살아나 자연스럽게 담력도 커진다는 설명이었다.
이 험난한 세파를 뚫고 살아가려면 배짱이나 용기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담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겠다. 나는 오래전부터 산행을 해왔지만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해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사가 지어준 약을 갖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유난히 파란 하늘이었다. 저 하늘이 찢어지고 터지는 소리가 나더라도 담담할 수 있
다면 좋으련만…. 어디선가 “봐라봐라 바라밤”하며 질주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나를 응시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력>
① 송가영 (본명 송정자) (시조 시인)
➁ 주소: 서울 동작구 성대로 26 (상도동) 313 – 13. 1층.
➂ 계좌번호: 기업은행. 265 – 003930 – 02 – 012. 송정자
➃주민등록번호: 430130 - 2535239
➄전화번호: 010 – 3191 - 5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