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탁은우
한동안 콩자반이 싫었다 어머니는 늘 외출 중이고 우리는 달고 윤기 나는 콩자반에
물을 말아 먹었다.스물둘 여름 휴가지에서 막 바다를 가로지르던 중 누이의 전화를 받았다.
누이의 전화는 노르웨이 숲으로 이어지는 컬러링이 끝날 즈음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바다의 색깔이 검은 색인 줄 알았고 사람들이 나의 비극으로 입을 닫은 줄 알았다.
차를 몰아 병원으로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누이 외에 다른 비명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를 맞은 것은 한숨에 젖은 부모님과 시트 밖으로 나온 누이의 흰 손, 핏방울이었다.
묘목원
탁은우
묘목들이 꼬리표를 매달고 기다린다
트럭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황토 사이를 휘젓는다
아, 이건 개복숭아군
여름내 벌레 꼬이고, 발효하는 것 외에는 쓸모가 적어
사람들의 속삭임에 전체가 휘어지는 균열
근본이 꼬리표가 되지 않기 위해
미처 들어가지 못한 맨마지막 이파리를 숨긴다
검은 모자를 쓴 인부가 떨어진 잎을 감싸서 건네준다
ㅡ 이놈은 영특해서 물꽂이가 잘 돼요
어떤 것은 마지막까지도 쓸모가 있다
*탁운우: 2012년 『시현실』로 등단. 시집 『혜화동 5번지』.
빛글문학. 시를 뿌리다. 춘천민예총문학협회. 시문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