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s-KF5_mJ5ac
새벽은 늘 말보다 먼저 찾아온다.
창밖은 아직 어둠의 가장자리에
잠겨 있고,
집 안에는 냉장고의 낮은 숨소리와 벽시계의 작은 초침만이
살아 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성경을
펼쳤다.
오래 읽어 익숙해진 페이지였지만,
그날 새벽에는 한 문장이 유난히
나를 붙들었다.
“My God will supply your
every need according to his glorious riches in Christ Jesus.”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말씀.
나는 그 문장 앞에서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말씀은 때때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으로는 한 줄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 한 줄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지금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젊은 날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무엇인가를 말했을 것이다.
더 많은 시간,
더 넓은 기회,
이루지 못한 꿈, 건강,
혹은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어떤
가능성들.
그러나 칠십 년을 지나온 마음에서
뜻밖에 떠오른 것은 아주 단순한
말이었다.
"진실한 사랑."
두 글자, '사랑'이 아니라,
세 글자, '진실한'이 마음속에서
오래 울렸다.
나는 오랫동안 먼저 마음을
건네며 살아왔다.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하면 먼저
전화를 했고,
좋은 것이 생기면 나누고 싶었다.
작은 선물 하나를 건네고,
먼 길을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힘들어 보이는 이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주는 일이 좋았다.
누군가가 내 작은 마음 때문에
잠시라도 환해지는 것을 보면,
나 역시 행복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말하지 않은 기대 하나가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진심으로 사랑하면,
언젠가 저 사람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겠지.*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라기보다,
사랑을 통해 되돌려 받고 싶었던
어떤 온기였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그런
작은 잔이 하나씩 놓여 있는지
모른다.
아무리 오래 사랑을 퍼내어도,
누군가가 내 잔에도 조금은
채워 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세월은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간단한 셈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건넨 마음이 언제나 같은
크기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고마워했지만,
어떤 이는 너무 자연스럽게
받기만 했다.
어떤 이는 곁에 오래 머물렀지만,
어떤 이는 필요했던 시간이
지나자 조용히 멀어졌다.
처음에는 서운했다.
그 서운함이 오래 머무는 날에는
허무가 되었다.
그리고 허무가 더 깊어지는
날에는,
내가 사랑한 것이 과연 그
사람에게 닿기는 했던가 하는
쓸쓸한 의문이 되었다.
나는 한때,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건네던 관심과 친절을 좋아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은 더 차가워졌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덜 아팠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나는 사람에게 사랑의 보답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처음에는 쓸쓸한 일이었다.
마치 오래 열어 두었던 창문
하나를 닫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창문을 닫는 일이
세상과 등을 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사람에게서 받아내려던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일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되,
사랑의 근원을 사람에게
두지 않는 일.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누군가의 전화가 오면 기뻤고,
오지 않으면 전처럼 오래
서운해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감사했고,
알아주지 못해도 그 마음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은 언제나
말과 응답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의 삶에 눌려
표현하지 못한 사랑도 있었고,
너무 가까워서 서로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사랑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말씀 앞에 앉아 있던
어느 새벽이었다.
문득 시선이 책상 한쪽으로
옮겨 갔다.
성경 옆에 물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매일 그 자리에 있는 평범한
물병이었다.
어제도 그곳에 있었고,
그제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마 그 물병을 수없이
바라보았으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는지 모른다.
목이 마르지 않을 때 물은 그저
물병 안에 담긴 투명한 것이었다.
있어도 특별하지 않고,
너무 익숙하여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것.
그러나 몹시 목이 마른 날,
그 물을 한 모금 마셔 본 사람은
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 한 모금이 목을 지나갈 때,
세상에 그보다 더 달고
고마운 것이 없다는 것을.
갈라진 속을 적시는 그 짧은 순간,
물은 더 이상 평범한 물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 되고,
위로가 되고,
말없이 건네받은 선물이 된다.
나는 물병을 바라보다가
문득 알았다.
목마름이
물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다.
물은 처음부터 내 곁에 있었다.
내가 목마르기 전부터,
내가 그것의 존재를 잊고 있던
시간에도,
물은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갈증이 찾아온 뒤에야
나는 비로소 그 물을 알아보았다.
하나님의 사랑도 어쩌면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기도하지 못하던 날에도,
마음이 메말라 말씀을
펼치지 않던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서운하여
세상 전체가 나를 외면하는
것처럼 느끼던 순간에도,
그 사랑은 사라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사랑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조금씩 보내
주시는 줄 알았다.
아픈 곳에 붕대를 붙이듯,
외로운 날에만 위로를 더해
주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보니 그것은
순간순간의 땜질 같은 사랑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늘 내 삶의 곁에 있었다.
내가 태어나 처음 울던 날부터,
넘어지고 다시 일어섰던 날들
속에도,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웃었던 시간에도,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만남과 도움 속에도,
그 사랑은 이미 스며 있었다.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그럴지 모른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살아온 사람.
늘 그 자리에 있어,
언젠가부터는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된 사람.
말은 적었지만 묵묵히 내 곁을
지켜 준 사람.
내가 힘들 때 조용히 밥 한 끼를
건네고,
별것 아닌 안부를 묻고,
오래전 내 이름을 기억해 준 사람.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내 곁에 보내 주신
사랑의 한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질문을
바꾸어 보려 한다.
왜 사람들은 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는가?
그 질문 대신,
**나는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얼마나 알아보며 살아왔는가.**
사람에게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사람을 내 결핍을 채워 줄
샘으로 붙들지 않을 때,
나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께 두고,
사람에게서 오는 사랑은
감사히 받고,
내가 받은 사랑은
다시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일.
이제 그것이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사랑의 방식이다.
지나온 칠십 년을 천천히 돌아본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많은 손길을 받았다.
어떤 이는 내 삶에 오래 머물렀고,
어떤 이는 짧게 스쳐 갔지만,
그 모두가 내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갔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함께 웃던 한때,
넘어졌을 때 잡아 준 손,
이름 없이 지나간 친절,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나는 너무 오래 멀리 있는 사랑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이미 내 손안에
쥐어져 있던 사랑들,
내 곁에서 조용히 숨 쉬던
사랑들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새벽 책상 위에는
오늘도 물병 하나가 놓여 있다.
어제도 그 자리에 있었고,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나는 이제야
그 물병을 바라보며 감사한다.
갈증이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갈증이 내 곁에 있던 물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는 것을.
사랑의 결핍이
나를 버려진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이미 얼마나 많은
사랑 속을 지나왔는지
돌아보게 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하더라도,
나는 아쉬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