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업이 나아가야 할 길
게시일 : 2001/01/22 (월) AM 10:11
지금 우리 농촌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4,000만 민족의 뿌리이며 고향인 이 농촌을 누가 지켜나가야 하는가!
우리 민족의 얼과 700만 농민의 생존권이 달린 쌀만이라도 지키기 위하여 온 국민들이 성토하는 함성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메아리 치고 있고, 우리 농민을 대표하는 농협이 앞장서서 추진했던 쌀 개방 반대 1,000만인 서명운동이 최단시일내에 돌파되어 우리의 의지를 농촌의 상징인 소달구지에 실어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던 길은 당당했었고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과연 우리 농업의 마지막 보루인 살만은 끝가지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뿌리 없는 나무는 거목이 될 수 없듯이, 뿌리인 농촌이 무너진다면 우리 나라의 경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파탄을 초래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므로 어떻게 해서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의 농촌, 우리의 농업을 살리기 위해 우리 마을과 우리 고장, 우리 농산물을 지켜보겠다고 내심 발버둥치고는 있지만, 농산물의 예외 없는 수입개방에 거센 파고와 싸워서 이겨 나가기엔 너무나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인 우리 농업을 결코 외국인에게 몽땅 내어 줄 수만은 없는 일이기에 나는 오늘도 최고의 품질과 맛으로 내가 지은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는 있지만 지난 한해동안 여러 곳의 농산물 직판 행사를 치뤄보았으나 우리 나라의 고질화된 유통구조 밑에서는 중간 상인들의 횡포에 생산 농민과 소비자들만이 골탕을 먹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 대산읍 소재지에 농산물 직판장 상설매장과 현대 석유화학과의 채소 계약재배를 체결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련도 있었지만 대산읍 전 농어민후계자들의 규합된 정신과 우리 농산믈을 지키고 우리 농민의 살길은 오직 이길 뿐이라는 각오로 우리 모두는 생산 뿐만아니라 유통까지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해 군 농어민 후계자 연합회의 주관으로 대전 중구청과 연계되어 대전 삼부아파트 모델 하우스에서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매주 금요일마다 농산물 직거래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 나로서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함께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채소를 비롯한 마늘 등 군내 후계자들이 생산한 각종 농산물을 1톤 화물 2대에 나누어 싣고 250km나 되는 먼 거리를 달려갔지만 새벽부터 출발할 때의 기대이상의 부풀었던 마음은 얼마가지 못한 채 현지에서의 우리 일행들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이라서인지 아니면 홍보가 안된 탓인지 상품을 잔뜩 펼쳐 놓고 소비자들을 기다렸지만 몇몇 지나는 소비자들만이 다녀갔을 뿐이었다.
해가 질 무렵 우리 일행은 50%도 처분하지 못하고 점심밥도 굶으면서 허기진 몸으로 물건을 싣고나니 모두들 허탈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군회장의 제의로 서대전 역전에 가면 팔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모두 서대전역으로 달려갔지만 어는 한 곳 농산물을 펼쳐놓고 판매할 공간조차 없었다.
역 앞 식당에서 짜장면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모면한 우리는 남은 농산물을 서울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 출하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일부 회원들은 서울로 출발하였다. 결국 다음날에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일은, 지금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시장 개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우리들은 군 연합회 사무실에 모여 대책회의를 갖고 대전 직판장의 결과는 홍보부족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참여하기로 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동사무소들에 전화를 걸어 홍보를 부탁했다.
다음 주 우리는 지난주보다 더 다양한 서산 특산품인 마늘을 비롯한 각종 농산물을 싣고 새벽부터 서둘러 대전으로 출발했다.
서산을 출발하여 홍서, 청양, 공주를 거쳐 계룡산휴게소에 도착 아침겸 점심으로 김치찌개 백반 한 그릇씩을 맛있게 먹고 목적지인 대전 중구 태평동에 있는 직판장으로 달려갔다.
우리 일행이 직판장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지난주와는 대조적으로 홍보가 잘 되었던지 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4시간도 채 못되어 가지고 간 농산물의 일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바닥이 났다.
우리들은 소비자들에게 농산물을 고르는 요령과 보관하는 방법 및 생산과정 등 우리 농산물을 왜 애용해야 하는지를 홍보하면서 소비자들을 열과 성의를 다해서 맞이했다.
우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군연합회사무실에 도착하여 품목별 결산을 끝내고 나니,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이러한 행사에 참여해 보지 않고서는 이 야릇한 보람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3번째, 4번째 계속 참여하다보니 한 달이 지나 수개월이 되고 밭에 보이는 것은 모두 돈이 되었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로서는 7월초 내가 직접 개발한 터널재배법으로 재배한 밤고구마가 첫선을 보이게 되면서, 길 건너 밭의 수박, 밭 언덕에 열려있는 늙은 호박이며 산모에게 좋다는 약호박과 애호박, 먹고 남은 토마토, 더덕, 고추, 호박순, 들깨잎, 시금치, 풋콩, 풋동부, 배추, 무 등을 가지고 매주 빼놓지 않고 참여했다.
다른 것보다도 마늘과, 4Kg짜리 소포장된 밤고구마가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벼와 가정용 정미기로 현장에서 직접 도정하여 나오는 햅쌀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우리들 스스로 취한 대전 직판장 행사참여는 물론 농협 충남도지부에서 실시한 농산물 직판행사참여와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에서 한국 농어민후계자중앙연합회가 주관한 "으뜸 농산물 시장"에 참여하여 현지에서 물건을 올려주지 못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던 행사도 있었다.
직판행사가 계속되다보니 지난 한해는 어느 농산물이고 판로문제로 애로를 느끼는 일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읍농어민후계자 회장으로서 사업계획의 마지막 행사인 김장시장을 지난 해 12월 1일부터 10일간의 계획으로 개장하게 되었다.
21명의 전회원들이 참여하여 배추, 무, 총각무우, 갓, 당근, 파, 마늘, 생강, 고추, 소금, 젓갈류 등 김장에 필요한 전품목을 갖추어 놓고 소비자들을 맞이했다.
계획했던 것보다 소비자들로부터의 호응은 대단히 좋아서 물품이 달리자 회원들은 새벽부터 나와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날이 새기도 전에 밭으로 달려가 작업을 해서 실어 날랐다. 값이 저렴해서였던지 어떤 소비자들은 서울 친지들에게 연락하여 화물차를 가지고 내려와 김장채소를 사 가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워낙 바쁘게 뛰다보니 아파트 배달은 해가 지고서야 시작이 되었다. 배추 5포기 아니면 10포기, 무 5개, 10개를 가지고 15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밤 10시 11시가 되어서야 하루 판매를 마감하게 되어다.
손이 시려워서 호호 불며 배달을 하다보면 따끈한 차 한 잔의 대접이 감사한 마음에 온몸을 녹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배추, 무의 준비한 물량이 모두 매진되어서 개장 계획기간 10일을 7일간의 판매로 파장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생산자 회원들로부터 시중가 판매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입하여 이 기간동안 팔았음에도 경비를 제외한 순이익 127만원의 기금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한해동안 직판사업으로 높은 소득을 얻게된 회원들은 이제 우리도 농산물 직판장의 상설개장을 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모두가 출자금 모금에 힘을 기울였다.
나는 동료 임원진들과 함께 농산물직판장 추진계획을 세우고 정관 및 제규정을 만들며 유관 기관과의 협조를 의뢰하는 등 겨울 농한기동안 바쁘게 뛰어다녔다.
군수 님께서는 군비 5,000만원을 들여 판매장을 임대하여 주셨고 우리 회원들은 적게는 5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500만원까지 출자금을 모아, 총 1억 여 원의 자금을 확보하므로써 지난 연초 1월 21일 드디어 우리들의 소망인 농산물직판장 <대산 종합유통>을 탄생시켰다.
우리 지역의 입지조건은 현대, 삼성, 극동 3사의 대규모 공단이 입주한 신도시 개발지역으로 도시계획의 확정발표와 함께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 있고, 인구유입이 계속 증가되면서 지난해 12월 1일부로 읍으로 승격되어 농산물의 소비증가에 활력소가 되고 있으며, 이제는 도시근교 농업으로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는 지역으로, 농산물 직판장 상설개장은 필연적인 사업이 아닌가 생각된다.
직판장에서는 쌀을 비롯한 잡곡류 일절과 패소류 일절 지역에서 생산되는 내고장 과일은 물론 한우고기만을 전문 취급하고, 돼지고기, 토종닭, 토종란을 취급하는 축산물 코너와 어민 후계자들이 생산하는 김 등 수산물류, 군내 후계자들이 생산하는 영지버섯·표고·느타리· 등의 특산품, 또한 부녀회원들이 생산하는 아홉가지의 나물셑트·강정셑트 등도 취급하므로써, 백화점이나 선진국 농산물 슈퍼에서나 볼 수 있는 모든 농산물을 소포장화하여, 가격표와 우리고유의 논산물직판장 상표를 붙여서 판매하는 종합 농·수·축산물의 판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개장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1일 판매고가 100만원을 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앞으로의 전망은 밝다고 생각되며, 우리 모두는 만족스럽게 느끼고 있다.
이제는 농산물직판장의 상설개장으로써 판로문제는 보장되므로 우수농산물 생산에만 전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UR위기 극복의 승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와서 우리 후계자들과 현대 석유화학과의 채소류 계약 재배 체결로, 우리가 생산하는 농산물은 모두 우리지역에서 전량 소비를 보장받게 되었다.
다만 겨울 영농인 채소재배 시설이 부족하여 어느 정도의 물량을 감당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금년 가을부터는 하우스시설의 대량설치가 불가피하나 자재값 상승 등으로 자금난이 문제되고 있다.
우리들은 생산에 주력해야할 농민들인데도 유통단계까지 직접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달리 생각해보면 가슴아픈 일이지만, 수입 농산물이 판을 치며 우리 농산물을 위협하고 있는 요즘, 어느새 바나나가 조상들의 차례 상까지 버젓이 올라가게 되었으니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이기에, 우리 농민들 모두는 유통인들의 폭리와 농정부재를 탓하기 전에 우리 농민들이 가야할 길을 바로 보고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몫은 우리 농민들 스스로가 찾아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내 고향과 우리 농산물을 기필코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는 강인한 힘을 길러 나가야만 우리 농촌은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