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 다리다."
"우아! 바다다."
조제는 너무 좋아서 숨을 헐떡이며 외친다. 조제는
금방 호흡이 가빠진다. 너무 웃거나 센 맞바람을
받으면 호흡 곤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호흡할 공기
를 빼앗겨버리는 것 같다. 아마도 하반신 마비와
관계 있는 것 같지만,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어릴
적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지만, 뇌성마비 특유의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을 부정하는 의사도
있어서, 결국 원인도 모른 채 조제는 '뇌성마비'
환자가 되고 말았다. 벌써 스물다섯 살이나 되었다.
조제는 맞바람을 맞아 숨이 막히는 통에, 자신은
큰 소리를 냈다고 생각하지만, 소리가 바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조제, 창문 닫아! 또 숨이 막히잖아."
츠네오가 그렇게 말하자, 조제는 서둘러 버튼을 눌러
창문을 올린다. 이전에 빌린 차는 창문을 닫으려면
핸들을 돌려야 했다. 불편한 자세가 조제의 몸에는
부담을 줄 수도 있어서, 이번에는 버튼 하나로 창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차로 빌렸다. 조제는 버튼만 누르면
창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게 재미있다면, 꼭 두세
번은 반복한다.
"그걸로 장난치면 안 돼, 바보!"
츠네오가 들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들썽거리다 : 가라앉지 않고 어수선하게 자꾸
들뜨다.)
"아,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조제가 만족스럽게 말하자, 츠네오는,
"더 편리한 차도 있대."
"아니, 이 여행을 두고 하는 말이야. 이렇게 멋진 경치,
정말 처음이야."
"나도 여기는 처음이야."
"자기가 처음인 거하고, 내가 처음인 거하고는 질이
달라. 내가 처음이라는 건 내용이 더 알차다구.
나, 바다, 이걸로 두 번째야."
"까불지 마. 신혼여행은 처음이잖아, 둘 다."
"흐응."
"조제, 누구랑 여행해본 적 있어?"
"상상에 맡길게. 난 인기가 있으니까. 자기 같은
관리인하고는 달라."
"쳇."
조제가 츠네오를 '관리인'이라 부르는 건 특별히
기분이 좋을 때 뿐이다. 언젠가 외출하기 전에
츠네오가,
"잠깐 기다려" 하고 화장실에 간 적이 있었다.
조제는 기다리기가 지겨운지 문 바깥에서,
"하지 마. 오줌 누지 마! 건방져! 빨리 나와."
츠네오는 볼일을 보면서,
"무슨 말버릇이 그래. 남편에게 지금 뭐라는 거야."
"남편하고 달라!"
"그럼 뭔데?"
"관리인이잖아, 자기!"
조제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관리인이라고
불렀다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그 후로는
츠네오를 관리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츠네오도
때에 따라서는,
"관리인의 견해로는" 하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츠네오는 무슨 일에든 금방 익숙해지는 순응적인
남자로, 아내의 이름도 어느새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제라고 불러주었다.
언젠가, 갑자기 조제가,
"나 말이야, 지금부터 내 이름, 조제로 할래."
"왜 네가 조제야?"
츠네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없어. 그냥 조제가 내게 꼭 어울리니까.
구미코라는 내 이름, 이제부터 안 쓸래."
"그렇게 아렇게나 이름을 바꾸면 안 돼. 시청에서
허락해주지 않을걸."
"시청 따위가 아무렴 어때. 내가 그냥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자기, 앞으로 조제라고 안
부르면, 대답하지 않을 거야."
츠네오는 슬그머니 그 이름을 지은 연유를 물어
보았다. 소설을 좋아하는 조제는 시청에서 운영
하는 순회부인문고에서 소설책을 자주 빌려 읽
는데(장애인은 무료),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추리소설인 줄
알고 빌렸는데,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몇
권이나 빌려 보게 되었다.
그 프랑수아즈라는 여류작가는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조제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제는 이
작가의 소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야마무라
구미코라는 이름보다, 야마무라 조제가 훨씬 더
멋있어 보였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아니, 분명히 좋은 일이 있었는데, 조제라는 이름이
그런 행운을 가져다 준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일이
란, 그녀 앞에 츠네오가 나타난 것을 두고 하는 말
이다.
츠네오는, 조제라니 참 이상한 이름이야, 라고
말했지만, (소설도 별로 읽지 않고, 그 이름을
혀를 굴려 발음해봐도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새 그 이름에 감화되어 "어이, 조제"
하고 부르게 되었다.
조제는 텔레비전에서 본 가수의 몸짓이나 표정에
영향을 받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름까지 다른
데서 영향을 받기는 처음이다. 조제는 '나'라고
할 때, 아이처럼 콧소리를 낸다.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가 데리고 온 애가 세 살 적에 그런 식으로
발음을 했다. 조제는 그 코맹맹이 같은 발음 때문에
아버지와 여자가 그 아이를 귀여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열네 살이던 조제도 그때부터 '나'라고
말할 때 콧소리를 섞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는 몸으로 생리가 시작되어 몸을
제대로 주체하기 힘들어진 조제를, 여자는 귀찮다
고 시설에 넣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찾아
오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도 내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조제에게 남은 것은, 콧소리가
섞인 이상한 '나'라는 발음뿐이었다.
어머니는 조제가 아기 적에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에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조제는 열일곱 살 때 친
할머니에게 보내져 교외에 있는 집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할머니는 조제를 귀여워해주었지만,
휠체어 탄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걸 싫어해
서 밤에만 외출을 허락했다. 뒷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긴 하지만, 힘이 달리는 할머니는 휠체어를 잘
밀 수 없었다. 그래도 조제는 봄이나 여름날 밤에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할머니와 같이 나갔다가 아직 문이 열린
담뱃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잠깐 기다려" 하고 할머니는 훨체어를 멈추고 그
가게에 뭔가를 사러 갔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
만, 조금 경사가 진 위치였다. 한쪽 편으로 길게
담이 둘러쳐진 집 옆이었는데, 나무들 때문에 어두
웠다.
문득, 조제는 인기척을 느꼈고, 다음 순간, 휠체어는
빠르게 굴러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인기척'은
악의에 찬 인간에 대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츠네오는,
술 취한 사람이 친 장난일 거라고 말했지만, 조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이나 시설에서나, 조제는
악의에 찬 인간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조제가 탄 휠체어를
힘껏 비탈길 쪽으로 밀어버리고는 도망쳤다.
휠체어는 거침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할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휠체어 뒤를 쫓았고, 조제는 너무
놀라서 거의 정신을 잃었다. 다만, 누군지 모를
남자가 흉포한 충동에 사로잡혀 휠체어를 밀었고,
자신에 대한 살의를 느낀 조제는 그저 비명을 질
렀던 것을 기억할 따름이다. 비탈길 아래서 올라
오던 사람 그림자 하나가 할머니의 비명을 듣고
깜짝 놀라 쏜살처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휠체어를 발견하고 붙들었다. 마침 그 부근에서
경사가 완만해졌다. 그 사람은 휠체어를 온몸으
로 받으면서 충격으로 넘어졌고, 덕분에 휠체
어는 넘어지지 않고 멈춰 섰다.
"괜찮아요?"
남자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조제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제
는 흥분하면 호흡이 가빠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제는 흥분하면 호흡이 가빠
져서 숨을 고르기에도 정신이 없어진다.
죽은 사람처럼 새파랗게 질려 축 늘어져 있는
걸 본 남자는 당황하여 뭐라고 큰소리로 말을
걸었는데, 조제에게는 시끄러운 잡음처럼
들렸을 뿐이다. 할머니가 달려오고,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조제는 겨우 숨을 고르고
제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