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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7구간)
두문동재~구부시령(‘09.11.14 토)
숨쉬는 새벽 공기, 둘러싼 풍경들이 갑자기
내가 어디 서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한동안 다정했던 기억들이 갈피를 접고
검고 찬 눈으로 속내를 들여다 볼 때, 감히
의심하지 못한다. 겨울 산에 오르다.
○ 일 시 : 2009.11.14. 토요일. 05시30분 두문동재 출발
○ 구 간 : 두문동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한의령~삼수령~구부시령
26구간 금대봉 산불감시원의 기억을 떠올리며 감시원의 눈을 피해 올라야 하는 것이 관건이라 당일 산행을 무박으로 결정하고 금요일 저녁 10시 출발이다.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통제가 심하다는 두문동재와 금대봉을 감시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아침 일찍 오르고 구부시령까지 진출하여 산행을 마감할 계획이다.
두문동재 고갯마루는 해발고도가 1,268m나 되는, 대간을 넘는 고갯길로는 인근의 만항재 다음으로 높은 곳이다. 그러나 '하늘 아래 첫 도시' 태백시의 해발고도가 워낙 높다보니 잠깐 사이에 두문동재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시간은 02시20분. 대저분기점에서 3시간 50분 걸렸다. 초고속으로 온 셈인데 이 길을 기록담당 혼자서 해치웠다. 대단한 정신력과 운전력이다. 길 양옆으로는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고 매서운 바람이 우리를 반긴다. 꾸지뽕 술과 복분자술을 취침주로 활용, 음복하고 05시까지 잠을 청한다.
아침은 시락국이다. 이 무슨 행복한 밥상이람.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세요]송미 언니의 푸짐한 준비가 확 다가오는 순간인데 눈 깜짝할 사이 밥을 말아 가볍게 해치운다. 05시40분. 대리운전기사 도착. 산행준비 완료. 캄캄한 어둠속에 고요한 적막을 뚫는 우리들의 대간구호 ‘복 만나 개고생, 백두대간 야!,는 두문동재 새벽을 일으킨다. 너무나 당당하게 산불감시초소 앞을 지난다. 헤드렌턴 빛에 비치는 임도를 따라 오르다 오른쪽을 주시하는 대장님 렌턴 불빛에 큼지막한 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넓은 공터 삼거리다. 금대봉 오름길 초입이다.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10분 만에 산불감시초소가 높이 자리한 금대봉 정상에 서게 된다. 해발 1,418m. 당연 감시초소에는 아직 감시원이 나와 있지 않다. 금대봉 표지석 곁에는 '양강발원봉'이라 적힌 나무말뚝이 서 있다. 금대봉과 서쪽 건너편의 대덕산 사이 깊은 골짜기에 있는 검용소는 남한강의 발원이라 알려져 있고,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이라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커다란 두 강줄기가 시작되는 봉우리라 하니 예사로운 봉우리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겠다.
금대봉을 넘어서자 발아래는 온통 하얀 눈 지뢰밭이다. 아뿔싸! 한 발짝 내딛기가 어렵겠다 싶었는데 웬걸 습설이라 내딛는 발밑에서 따로 떨어진다. 가볍게 쭉쭉 미끌리며 신나게 내린다. 동쪽 방향, 밝아오는 일조에 대간의 용트림은 더욱 기운차 보인다. 저 산줄기 너머에는 망망대해 동해바다가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쑤아밭령에 닿는다. 금대봉에서 이 일대는 거대한 야생화 꽃밭이란다. 야생화축제와 산나물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언제 꼭 한번 와 봐야겠다. 쑤아밭이 무얼 뜻하지는 모르겠다. 이곳 이정표에 비로소 동쪽 용연동굴 방향 표지와 함께 서쪽 대덕산 사이의 검용소까지 거리를 가리키는 표지가 붙어 있다.
쑤아밭령을 지나 약간 오름길 1조장 생리현상을 호소한다. 허나 뻥 뚫린 이곳에서 어떻게 해결하남요. 남자대원들이 앞서 동그마한 동산 너머로 사라지자 여대원들 한숨 휴~ 비단봉 정상 바로 아래 지점에서 모두 합류한다. 여기서 대장님 한 말씀. 동절기에는 아픈 배 부여잡고 해결을 깔끔하게 하려면 동사한다. 적당하게 한번 끊고 나서 다시 배가 아파오면 또 한번 자리를 잡아야한다는 경험담이다.
비단봉 바위전망대에 도착한다. 남쪽과 서쪽 조망이 탁월하다. 비단봉 표지석 앞에서 보는 은대봉 금대봉의 마루금은 소백산의 능선과 비교 될 만큼 순하게 뻗어있다. 두 봉우리 모두 1,400m가 넘는 고봉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펑퍼짐한 뒷동산의 모습이다. 함백산의 서학리조트 스키장은 흉물 그 자체이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일환으로 조성되었다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제시한다.
남동방향으로는 장엄한 산줄기들이 첩첩이고 사방 1,000m 이상의 고봉들 사이에 태백 시가지가 엄마 품속인 듯 폭 안겨있다. 비단봉 정상은 이곳에서 20여미터 더 가야하는데 나무에 가려 조망이 없어서인지 비단봉 표지석이 이곳에 서 있다. 해발 1,279m 비단봉 정상을 넘어가는데 오른쪽 나뭇가지 틈으로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비단봉 능선마루를 따르던 길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계단 길로 내려선다.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지만 악천후 때는 길 조심해야겠다. 잠시 만에 내려서니 이윽고 숲길이 끝나고 앞쪽이 훤히 열리는데 넓은 구릉 건너 풍력발전기가 우뚝 마주 서있고 하얀~ 눈 천지이다.
이 곳에서 채소밭 하나를 지나 가르마처럼 마루 금을 타고 가는 포장된 농로로 바로 내려설 수도 있겠으나, 표지기는 다시 우측 숲속 길로 안내한다. 숲길 끝에 금대봉에서 보았던 형태의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길이 정규 등반로인 모양이다. 이정표 앞으로 나오면 고랭지 채소밭이다. 빈 밭에는 지금, 얌전하게 수북이 쌓여있는 하얀 눈이 주인이다.
밭 사이는 고랭지 배추는 흔적만이 남겨두고 웃자란 풀들이 눈에 덮여 모습을 드러내기 바쁘다. 발 밑 눈은 무릎까지 푹푹 들어간다. 1조장 갑자기 앞으로 뛰어나간다. 그것도 겁도 없이 대장님 앞을 벗어나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아~ 하고 함성을 내지르며 너른 채소밭 지대를 마구 뛰어가다 뒤로 덜렁 누워버린다. 광활한 고랭지채소밭을 눈 오는 날 강아지 마냥 마구 헤집고 다닌다. 시원스럽게 뻗어 있는 풍력발전기 배경으로 한 컷, 눈이 무릎까지 덮어버린 자세로 한 컷, 기록담당 이곳저곳 사진 찍어 주느라 바빠요 바빠. 수확이 끝난 채소밭을 마음껏 밟고 이어지던 흐릿한 길 자취가 사라지고 첫 번째 만나는 풍력발전기 옆에서, 커다란 채소밭 하나를 가로질러 농로로 올라선다.
조금 진행하여, 포장된 농로의 농기계보관창고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창고 앞을 지난다. 농번기에만 사용하는지 포크레인 한대가 방치되어 있고, 포장된 농로 한쪽에는 화학비료 수십 포가 쌓여져 있다. 산을 훼손하는 주범이 따로 있냐며 대장님 마음 아파하신다. 막다른 지점에서 밭을 가로 질러 풍력발전기 아래 숲길 초입 표지기가 이리로 오라며 바람에 나부낀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고지 점령한다.
보는 것보다 길 찾기가 무척 까다롭다. 눈바람이 차갑게 몸을 감싸고 앞에 보이는 고지를 향해 무릎이 가슴까지 올라온다. 많은 수고를 한 결과 풍력발전기 8호기 앞에 오른다. 1호기 뒤로 뾰족한 첨탑이 서 있는 매봉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매봉산 표지석이 8호기 앞에서 우리들을 반겨준다. 왜 이 곳에 세워두었는지 의문이 가지만 산림청의 매봉산 표지석이 서 있다.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이는 전망 좋은 산마루이다. 하긴 풍력발전기를 세워 둔 곳이니 말하나 마나 당연할 것이다. 매봉산은 산 전체가 고랭지 채소밭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채소밭 너머로 멀리 낙동정맥 백병산에서 동해로 흘러가는 산줄기가 병풍을 치고 있고, 왼쪽 정북방향으로는 두타와 청옥, 두 볼록한 봉우리가 그 모습까지 훤히 보여준다.
매봉산 정상을 향해 '바람의 언덕'을 걷는다. 백두대간을 나서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걷는 맛도 이제는 즐긴다. 때로는 고통스러움도 지금 이 충만한 자유로움에는 대적되지 못한다. 눈과 마음이 한없이 맑아져 오는 듯하다. 물질과 권모술수는 없다. 자연과 내가 한 몸이 되는 이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풍력발전기 아래로 널찍하게 진행되던 마루금 길이 2호기 뒤쪽에서 오붓한 산길로 바뀌면서 약간의 오름이 된다. 삼수령(피재) 내림 길이 갈린다. 매봉산 정상의 중요성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매봉산으로 오른다. 매봉산(천의봉) 정상이다. 태백산사랑회는 이 표지석의 앞쪽에는 매봉산, 뒷면에는 천의봉이라 새겨 놓았다. 앞으로 한번, 뒤로 한번 배경을 바꿔가며 포즈를 취하고 다음 연도 낙동정맥종주를 기대해본다.
정상에는 표지석과 방송중계탑이 서 있다. 유리창이 깨져나간 감시초소가 있고, 중계탑 뒷쪽에 나무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다. 조금 어수선한 모습이지만 전망은 뛰어나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멀리 부산 몰운대 앞바다까지 이어지는 낙동정맥 산줄기를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조망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매봉산 정상에서 도로 나와 삼수령 방향을 따른다. 숲길로 내려가다가 채소밭과 농가 비닐하우스, 그리고 창고가 보인다. 채소밭을 빠져나오니 널찍한 농로를 만난다. 조금 진행하니 이번에는 포장된 농로를 만난다. 이정표가 풍력발전기 1호기 쪽으로 '풍차 구경 가는 길'이라 안내하고 있다. 부는 바람을 적당하게 피해가는 자리에서 휴식을 한다. 한잔의 오미자주가 이렇게 향기로울 수 가 없다. 입안에서 머물지도 않고 논스톱으로 오장육부로 스며든다.
삼수령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다시 만난다. 이 곳에서 대간은 오른쪽 능선마루를 넘어 1,145봉으로 뻗친다. 포포장된 도로만 따라 내리면 삼수령으로 곧장 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작은 피재 건너 시작되고 있는 낙동정맥을 본다. 1,145봉을 넘어 짧은 백두대간으로 불리는 낙동정맥 분기길을 알리는 표석을 만난다. 예전에 이곳에는 부산 건건산악회의 철제 표지판이 있었던 곳이라며 대장님은 낙동정맥 종주를 마칠 당시를 회상한다. 이 곳에서 백두대간은 길고 긴 또 하나의 우리 산줄기, 낙동정맥 400여Km를 분가시킨다.
삼수령 바로 위 지점이다. 내림 방향쪽으로 보면 매점도 있고 정자도 있는, 널찍하게 잘 조성된 삼수령 소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시멘트 도로를 잠시 내리니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흥겹다. 삼수령 소공원 곁으로는 태백과 삼척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대장님 두문동재 쉼터 매점에서 이뤄지지 못한 약속인 오뎅을 여기서 해결하시겠다며 선언하신다.
백두대간을 넘는 삼수령을 (큰)피재라 하고, 매봉산 1,145봉에서 낙동정맥을 잇는 고개는 작은피재라 한다. 큰피재와 작은피재 사이, 모두를 통틀어 삼수령이라 해야겠다. 이 인근에 떨어지는 물은 세 갈래로 나뉘어 남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강물로 흘러들어 서해바다로, 남해바다로, 동해바다로 각각 길을 달리한다. 즉, 삼파수(삼분수)인 것이다.
매점 문을 열어 주인아줌마를 찾는다. 오뎅과 막걸리를 주문하고 테이블 자리에 앉는다. 대장님 잠시 밖으로 나가시더니 싼타페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계신다. 매봉산 내림길 술이 정량을 넘었나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이 무슨 일. 오뎅이 우리 앞에 배달되고 막걸리 한잔씩 배급받아 건배를 하려는 순간 싼타페 차주가 소주, 막걸리 각각 한 병을 우리 테이블에 건넨다. 오늘 ‘일’ 나지 싶다. 명함을 받는다. 최용헌 강원도 삼척 도계읍 점리에서 범재포도농원을 하고 있다며 옆에 같이 온 동생은 울산에서 놀러 왔다며 호적 이름은 최사헌이지만 최영일이라 한단다. 인사가 오가고 다음 기회에 볼 기약을 남기고 뜨겁게 악수하고 매점을 나선다. 손이 워낙 크고 정권단련이 많이 되어있어 대장님이 단 하셨냐고 묻던 장면이 갑자기 떠올려진다.
팔각정 왼편에서 숲길로 들어서야 대간인걸 뒷전으로 두고 임도 따라 나선다. 조금 나아가니 왼쪽에 파란 표지기쪽으로 1조장 서둘러 나가고 이어지는 방화선 도로가 희미하게 이어지면서 앞을 가로 막는다. 확인조 방화선 따라 1조장 앞으로 더나가고, 기록담당 임도따라 다시 돌아나간다. 기별은 기록담당 쪽에서 먼저 온다. '길이 여기예요~'.
포장임도와 헤어져 숲속으로 들어간다. 계단 오름길이 시작된다. 널찍하고 밋밋한 길을 따라가니 오래된 임도가 왼쪽 태백공원묘지쪽으로 널찍하게 갈려나가고 대간은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는 방향으로 직진이다. 약간의 오름길이 시작된다. 960봉 정상에서 내려와 무덤 하나를 지나니 널찍한 공터이다. 강원도 산림개발연구원에서 백두대간 안내판을 세워둔 곳 고갯마루 건너편 들머리 표지기가 보인다. 아래가 건의령(한의령)이다.
아침에 두문동재, 금대봉 출입단속 감시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빠져 나왔다. 11월1일부터 12월15일까지는 경방기간이어서 여기뿐만 아니라 주요 고갯마루마다 감시원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한의령 내리는 나무계단 맞은편 감시원이 앉아 지키는 빈 나무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대장님 왈 이곳에는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단다. 허나 흔적은 없다. 일단 바람을 피해 점심 먹을 장소를 찾는다. 양지바른 임도의 한 복판에 퍼질고 앉아 우리들만의 오붓한 먹을거리의 장을 연다.
한의령 안내도 앞 기념촬영을 한다. 기록담당 대장님을 감시원 의자에 앉으시라며 간곡히 부탁하는지라 대장님 고맙게 주저앉는 순간 아~ 하는 괴성과 함께 박차고 자리를 일어나신다. 이유인즉 나무의자 앉는 부분 그러니까 엉덩이가 되이는 부분이 천으로 되어 있어 아침에 내린 눈이 그 위에 소복이 쌓여 있다 햇볕의 따스함에 녹아 물을 머금고 있었다는 증명의 흔적은 대장님 엉덩이 부분이 널따랗게 젖어있었다. 순간 박장대소의 웃음보가 터졌는데 온몸에 힘이 쫙 빠질 정도로 길게 높게 크게 웃어버렸네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푯대봉으로 향한다. 의외로 푯대봉 오름길이 순하다. 점심 먹고 움직임을 강행했는지라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푹신한 나뭇잎 침대를 삼아 적당한 자리를 잡아 10분간 오침이 내려진다. 이 행복한 순간도 금방 흘러가 버린다. 출발의 호령에 모두 제자리에 일어 섯! 앞으로 갓! 푯대봉을 100m앞에 두고 대간 길은 P턴으로 급히 돌아 내려간다. 완만한 내림이다. 삼수령-건의령 길과는 달리 샛길도 별로 보이지 않고, 길 잘못 들만 한 지점에는 어김없이 산림청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나타난다. 아이고~ 고마우셔라.
961봉을 넘어 내려서면, 능선을 따라가던 산길이 서쪽방향으로 거의 90도 각도로 휘는 곳이 있다. 능선 위로도 흐리지만 길이 있어, 방심하면 여지없이 아르바이트할 수 있는 곳이다. 고랭지 농지를 조성하는지 주변을 황량하게 벌목해 버린 한내령에 도착한다.
이곳에도 감시원이 있나 조심스럽게 내리지만 감시원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1,162봉을 오른다. 건의령에서의 활극이 페이스를 무너뜨렸나, 된비알 오름길이 버겁다 느껴진다. 나뭇가지 틈으로 구부시령 직전 봉우리인 1,055봉이 까마득히 멀어 보인다.
이정표가 구부시령 2.3km 남았다 한다. 이정표의 거리 표시에 눈이 자주 가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일 게다. 급경사로 내렸다가 다시 된비알로 1,017봉을 넘는다. 오늘 진행해온 구간 중 이쪽 지형이 가장 고저차가 심하다. 다시 급경사를 내려오자 안부에 구부시령 1.2Km 남았다는 이정표이다. 1,055봉 오름길이 무척이나 힘들다.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선명한 파란색이 힘을 보태 준다.
1,055봉에 오른다. 구부시령까지는 이제 700m 남았다. 해는 저만치 멀어져가고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깊고 높은 산속에 불어오는 바람은 추위를 한층 더 일으키고 조금씩 식어가는 체온을 어떻게라도 버티어 보는데 내림 길은 한없이 이어진다. 마침내 펑퍼짐한 넓은 구릉이 나오고 좁다란 길을 살짝 도니 구부시령. 안내판에 구부시령 유래를 적어 놓았다. 단체 증명사진도 찍었습니다.
왼쪽 예수원 방향과 오른쪽 삼척시 도계 방향으로도 선명한 산길이 나있다. 본래 ‘새목이재까지 진행해야하나 예수원쪽으로 내려갈 것이다,라고 대장님 선언하며 40분 정도만 더 진행하면 오늘 산행도 마감된단다. 히말라야시더가 즐비하게 서있는 내림길은 생각보다 한층 편안하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분위기 사이로 실오라기 같은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동네에 들어서도 스타렉스 6밴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입구 다리 앞 나무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대리운전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하사미동 본 마을회관 앞에 차를 갖다 두었단다. 기록담당 차키를 들고 1Km 가량을 달려가 6밴을 몰고 온다. 기록담당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그대로 누워버린다. 어진남 운전 바통을 이어받아 운전대에 앉고 석포삼거리 육송정 쉼터에서 저녁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바람은 끝까지 우리를 따라온다. 이곳저곳 자리를 찾아본다. 불이 꺼져있는 매점 앞에 자리를 잡는다. 차를 바람막이로 삼아 횡으로 주차하고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장님 버너에 불을 지펴 가져온 오뎅탕과 고등어찌게를 데워 대원들에게 요기를 해야 만이 몸이 제 온도를 찾는다며 일일이 한술 뜨기를 권한다. 추위에 먹는 것조차 거부하고 싶지만 열화와 같은 대장님의 성원에 한기로 수저마저 떨리지만 따뜻한 국물과 푹 퍼진 오뎅을 우물우물 씹어 넘기니 거짓말 같이 몸에 온기가 돌아온다. 기록담당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거부한다. 꼬부랑 길 청옥산을 넘는 차의 휘청거림에 우리의 기록님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이일을 어찌할꼬. 멀미. 멀미. 멀미~
대간 계절은 바야흐로 겨울이다. 겨울산행 준비도 꼼꼼히 챙겨야겠지만 체력 보강이 더 우선이다. 산행거리도 조정 되어야겠고, 주말이면 꼭 준비되어 있는 계획이 있어 나서야 하는데, 풀어진 마음을 잡아 챙겨 각오도 단단히 하고 가면 체력을 초월한 정신력을 얻게 된다. 아직 가야할 길- 멀다. 많이 남았다. 가늠할 수 없는 날씨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의 숲과 바위와 암벽과 봉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