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1 괴산 흥천사
늦게 나누어준 108산사순례 목걸이. 입장료를 받는 곳에서는 패스포트 역할을 한다.
▶괴산 연풍리 마애이불좌상(보물 제97호)
각연사에서 고사리 흥천사 가는 길에 기사님께 부탁하여 들렀다. 이렇게 횡재하는 날도 있다. 법화경의 다보여래 석가여래.
흥천사.
●연혁 및 설화
일붕선교종 사찰이다. 흥천사는 1천4백년 기도도량으로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창건돼 원효대사, 나옹대사, 무학대사 등이 기도 참선한 유래 깊은 기도도량이며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곳에 머물며 쓴 비석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6.25사변 때 금강산에서 수도 정진하던 지산 스님이 주석했다. 그 후 태백산 토굴에서 자연을 벗 삼아 남북통일을 기원하던 동봉 스님(전 일붕선교종 총무원장, 현 일붕신문사 사장)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산신각, 극락전, 단군전, 영전각을 증축하고, 종각, 사천왕, 부처님 진신 사리탑, 문수보살 석불조성, 선방, 극락교, 주자장, 객승실, 불교회관(2층, 200여평) 불사를 완료해 대가람의 위용을 찾게 됐다.
하늘 천자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이 석상은 아마도 일붕서경보로 보인다. 1980년 전두환 국보위입법위원에 참여하기도 했던 일붕 서경보는 1988년 조계종에서 원로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불만으로 1000여명의 추종하는 스님을 데리고 일붕선교종을 창시했다. 스스로 설립한 세계법왕청 법왕에 즉위하기도 했다.
●살펴 볼 곳
소원성취를 빌면 하늘에서 복을 내려준다는 의미의 천복궁에는 13m 높이의 동양 최대의 비노자나 석불 부처님이 석물로 조성된 단에 모셔져 있고, 법당 외벽의 기둥과 대들보등도 모두 석재로 되어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특히 우리 민족의 뿌리인 단군전이 모셔져 있는 유일한 사찰이기도하다.
경내를 둘러보면 극락전 내 천정과 벽면이 태양아래 우주법계를 이해하기 쉽게 동봉스님이 직접 단청그림과 함께 전면에 세계 각국의 진귀한 500불의 부처님이 눈길을 끈다.
동봉스님은 매년 10월26일 흥천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추모법회를 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영전각이 여기 모셔져있다
▶천복궁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다. 그렇다 통일교 용산 본부교회에 천복궁이 있다. 일붕 서경보가 창시한 일붕선교종은 통일교와 묘하게 겹친다. 입구의 조국평화통일기원도량이라는 입석부터... 예전에 제주도 마라도에 있는 기원정사에서도 보았고 이천휴게소에서도 보았었다.
▶박정희 부부를 모신 영정각
▶삼성각
▶단군전
▶극락전
우리 성범스님께서 심우도에 대해 열강을 하고 계신다.
오늘은 거리가 가까워 일찍 돌아 올 수 있었다. 홍보부장이 저녁 국수공양을 전 참가자에게 쏘았다. 홍보부장 만세!
인터넷에서 퍼온 글
(봉축특집탐방) 1400년 전통의 합격 기도처인 문경새재 괴산 흥천사
박문수 어사의 친필 표지석 눈길...과거보러가던 영남선비들 흥천사 들러 합격기도 발원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惜兮(료무애이무석혜)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가 기도 중 참선곡을 지었으며 그 유명한 오도송이 지어진 곳. 문경새재의 마패봉 아래 자리잡고 있는 천년고찰 조령산 흥천사이다. 흥천사는 그 옛날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가는 길목이었다.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길에서 남쪽의 추풍령으로 넘으면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고 북쪽의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금기가 있어 이곳 조령산으로 향했고, 새재 중턱에 있는 흥천사에서 기도를 하고 가면 과거에 합격했다고 한다.
문수보살 가피로 태어났다고 하는 박문수는 장원급제후 영조대왕(1727년)으로부터 숭유배불이 정책의 기조였던 조선조에 영남 선비들이 과거 길에 흥천사에서 과거급제 기도를 한다는 상소가 올라와 그 내용을 알아보라는 영조의 밀명을 받고, 영남 암행어사로 제수된다.
새재를 넘어오는 유생들이 하나같이 흥천사에 들려 법당 부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을 본 박문수는 한 유생을 잡고 그 연유를 물으니 '자신은 흥천사 호법신중이니 한양 과거 길에 꼭 흥천사에 들려 기도해야 소원을 성취한다'는 새재 산신의 현몽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날 밤 꿈에 박문수 앞에 새재 산신이 나타나 "흥천사 부처님께서 나라의 인재를 위해 가피를 주는 것인데 어찌 편을 가르는가. 불법은 원융무애하여 진속을 가리지 않으니 그대 또한 나라와 억울한 백성을 위해 공평무사하게 어사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며 홀연히 사라졌다.
이튿날, 영조대왕에게 사실을 그대로 상소를 올린 박문수는 친필로 흥천사란 비문을 표지석으로 세운 뒤 출두하여 공평무사하게 탐관오리를 척결하여 경상우도 관찰사라는 큰 벼슬을 제수받았다. 그래선지 박문수 어사의 친필 표지석이 지금도 남아있고, 흥천사에서 고시.행시, 공무원 등의 시험공부를 하거나 산신기도를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흥천사는 원래부터 기도처였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3년)에 창건된 신라불교 사찰로 원효대사가 100일간 수도 정진하였으며, 고려 태조 왕건이 다녀가고, 고려 말에는 무학대사가 큰 뜻을 품고 기도하는등 많은 고승들이 모여 기도하였던 유래 깊은 고찰이었기에 마을 이름이 고사리로 불리어 오다 최근에 원풍리로 바뀌었다.
동봉 스님은 “공부하는 불자들이 우주법계를 보고 500불 부처님 한 분 한 분을 친견하면 불교 교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다 불성이 있으니 빈부귀천 남녀노소 누구나 다 평등하게 소원성취하여 하늘(도솔천)의 복을 받았으면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