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如如)란 뜻?? |
여(如)하고 여(如)하다는 뜻으로, |
"있는 그대로 (대)자유롭(게)다."란 의미로 |
"있는 그대로 같고 같다." |
"있는 그대로 항상 그렇고 그러하다." "있는 그대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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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엇이 있는 그대로 같고 같으며, 그렇고 그러하다는 것인가? |
그것은 여(如)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
그럼 무엇을(이) 여(如)라 하는 것인가? |
그것은 일체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 |
불이(不二)로 동일 평등함으로 같다는 것입니다. |
그럼 무엇이 불이(不二)로, 동일 평등함으로 같다는 것인가? |
그것은 본성 진여...로 같다는 여(如)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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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세계 속 각기 서로 다른 이름으로 다르지만, |
그 어느 것이든 있는 그대로 여(如)함으로 같다는 |
여(如)의 뜻이 하나만이 아니함으로, |
여(如)하고 여(如)하다 하는 뜻으로, 여여(如如)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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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여여(如如)...라는 말은?? |
우주 삼라만상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
드러나 있는 그대로 변함없이 같다는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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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의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말합니다. |
즉,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보고 듣고, |
보면 보는 성품 자체가 되고 |
들으면 듣는 성품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
이러할 때 여(如)가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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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여(如)는 법(法)이 다하여 없어진 것이고, |
법이 생기지 않는 것이며, |
법으로부터의 원리고 법의 열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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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 중생 성문 독각 부처의 경지 모두가 여(如)에서 비롯된 경지입니다. |
여(如)는 오는 것도 아니요. |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요. |
어떤 상태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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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如)를 방해하는 아무 것도 없고, |
어디나 존재하고 부서지는 일도 없고, |
나뉘어지지 않는 불이(不二)이고, |
어떤 때라도 여(如)가 아닌 일이 없고, 항상 여(如)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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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如)에 들어감으로 |
있는 그대로의 모든 법과 상(相)에 들어가고, |
여(如)라는 존재 양상에 들어감으로 |
있는 그대로의 모든 법(法)의 상(相)에 들어가고, |
여(如)를 초월하여 다른 법을 설하는 것을 들어도 |
의심하지 않고, 미혹되지 않고, 시비(是非)를 말하지 않으며, |
여(如)는 여(如)에 의하여 작용하되, |
그러면서도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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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모든 법에 저절로 있는 여(如)에 모든 법은 모두 여(如)에 들어갑니다. |
그럼으로 이를 일러 여(如)하고, 여(如)하다 하여 여여(如如)라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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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설명 : 불교용어』
☆ 여여(如如)란?? 여여(如如)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참으로 고요하고 변함이 없기에 여여(如如)라고 한다.
과거 모든 부처님도 이 여여(如如)한 행을 수행하여 도를 이루시었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행을 수행하여 도를 이루시며, 미래의 부처님도 이 행을 수행하여 도를 이룰것이니,
삼세 모든 부처님이 닦어 도를 증득한 것이 이것과 조금도 다를게 없다. 그러므로 여여(如如)라고 한다.
"유마경"에서 "모든 부처님도 여여(如如)하며, 미륵보살도 여여(如如)하며, 모든 중생도 다 여여(如如)하니 무엇 때문인가, 부처님의 성품이란? 변함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 여여(如如)란?? = 나무관세음보살 = 타타타(산스크리트어:tathata) 불가에선 나무관세음보살 처럼 하는데요. 욕심없이 내려놓음과 같이 함께라고 알고 있어요.
☆ 여여(如如)란??
허심탄회하게, 무심하게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생사도 선악도 정의도 불의도 고락도 의식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무애자재하게 살아가는 것.
☆ 여여(如如)란?? 대중가요로 히트한 '타타타'가 바로 이 '여여'란 뜻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여여'란 산스크리트어 타타타(tathata)의 의역으로 "있는 그대로 진실의 모습을 의미한다". | | <법화경> '수량품'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 如來如實知見三界之相 無有生死 若退若出 亦無在世及滅度者 非實非虛 非如非異 | 不如 三界見於三界 | | 내용을 압축해 설명하면, "여실히 삼계의 상을 지견 또는 관찰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여실지견(如實之見)이 있는 곳에 해탈이 있다'고 불교에선 가르친다. 여실지견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여실지견의 입장에서 보면 일체법은 유(有)가 아니면서 유이고, 유이면서 유가 아니다. 그래서 유에도 주(住)하지 아니하고 무(無)에도 주하지 않는다고 〈종경록〉에서 밝히고 있다. | 이 여(如)의 사상은 가장 인도적이면서도 중국 및 한국과 일본의 불교사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는 '그대로', '그와같이'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본래 부사였으나 나중에 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이 '여'가 불교에 들어와 쓰일 때는 '같이', '그러한' 뜻으로 쓰이지 않고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란 뜻으로 인용된다. 자연법이(自然法爾)와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여는 반드시 '여실'이며 '진여(眞如)'라야 한다. 부처님을 다른 표현으로 여래(如來)라고도 하는데 '진여로부터 내생(來生)한 이'로 수행을 완성한 사람, 인격완성자, 완전한 사람을 지칭한다. 나아가 진여로부터 왔기 때문에 진리의 체현자로서 중생을 가르쳐 이끈다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 있는 그대로 보라는 '여'의 논리는 뒤에 공(空)과 같은 뜻에 놓이게 된다. 차례차례대로 관찰해 나아가 보니 모두가 공이 아닌 것이 없다. 여의 진실은 곧 공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공이면서 불공(不空), 불공이면서 공이다 하는 것은 여여의 뜻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중도(中道)라고도 해석한다. | | 〈종경록〉제30권에 '유여여급여여지독존(唯如如及如如智獨存)'이란 말이 나온다. 여든 공이든 적(寂)이든 그것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데 무엇인가 그것을 아는 놈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아는 놈이 지(智)라는 것이다. 이 지가 있어야 여여가 인정된다. 이것을 여여지(如如智)라고 한다. 하지만 이 여여지는 여여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여와 여여지는 또 일여의 체중(體中)으로 거두어지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여가 곧 여지이고 여지가 곧 여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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